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전범선 지음 / 포르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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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공장식 축산의 잔혹함을 알게 된 후 비거니즘을 실천한 저자 전범선은 페미니스트 애인을 만나며 자신이 비장애인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으로 태어난 사실 자체가 엄청난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재확인합니다. 그리고 여성주의-채식주의-생태주의-평화주의는 모두 연결되어있고, 연결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며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이라고 말하는데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저자는 비인간 동물 각각의 이름이 있는데도 이름 명을 사람 셀 때만 사용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이 엄연한 종차별임을 꼬집으며(165쪽) 비인간 동물을 언급할 때 마다 ‘마리‘가 아닌 ‘명‘으로 수식합니다. 그러면서 채식주의를 단계별로 분류하고 위계질서를 부여해(145쪽) 채식주의자로 하여금 자기검열과 죄책감을 심어주는 사회적 시선에 우려를 표하는데요. 인간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비건이기에 완벽한 비건은 없으며, 누가 더 윤리적으로 순결한가를 겨루는 것조차 인간중심적인 허세(148쪽)라고 일침합니다. 1월부터 육식을 하지 않고 있는 저 역시도 완전한 비건이 아닌 페스코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로 죄의식에 괴로웠는데, 그의 말에 위안을 받으며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저자는 책에서 비거니즘을 중심으로 문제시되는 여러 담론들을 꺼내옵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거대 담론일 수도 있을 내용들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지금도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고통이 돈으로 환산되는 과정에서 악의 근원에 대한 사유는 실종된다˝(169쪽)는 그의 말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생활의 편의 속에서 누군가의 고통을 자연스레 망각하며 지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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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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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192쪽)

˝그 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311쪽)

느릿느릿 전개되는 이야기는 중후반부터 거센 눈보라처럼 몰아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아픔을 갖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손가락을 절단 당한 사고를 당했음에도 자신의 새 아마의 생명을 생각하는 인선과 생을 끝내고 싶을 만큼의 우울감에도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까지 가게 되는 경하. 죽음의 세월을 지나 온 인선의 어머니 이야기는 그렇게 독자에게 가닿게 됩니다.

그 날의 증언은 제주 방언으로 기록되었기에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비통함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소중한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사람은 황망한 마음을 뒤로 한 채, 계속 살아내야 하는 고통과 마주합니다. 그이들을 기억하는 것, 그건 남은 이들의 숙명이겠지요.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간 무수한 사람들. 기억해야 할 아픔의 역사들은 우리와 작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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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 라이더가 말하는 한국형 플랫폼 노동
박정훈 지음 / 빨간소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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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노동자와 근로자를 혼용해서 사용한 것이 약간 아쉽긴 하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한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배달업에 종사하는 라이더를 향해 ˝월 300은 족히 넘게 벌면서 세금 안 낸다˝, ˝신호 위반을 너무 많이 한다˝라는 식의 비난을 합니다. 게다가 배달노동을 단순 아르바이트로 치부하거나 못 배운 사람들이라는 원색적이고 천박한 소리까지도 합니다. 당장 유튜브나 라이더 관련 인터넷 뉴스 댓글창만 보더라도 그렇지요. 라이더들이 배달 중 사고가 나서 손가락 인대가 찢어지더라도 탈탈 털고 일어나 다시 배달을 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길 바랄 뿐입니다.

거대한 배달 플랫폼 업체는 배달하는 사람을 ‘파트너‘로 부르면서(97쪽) 정작 계약서에는 고용 또는 대리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명시(101쪽)합니다. 또 라이더들의 출퇴근 시간과 휴무를 확인하고, 강제로 배차하는 등 지휘 감독하지만(179쪽) 정작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라 말하며 산재보험도 가입을 막습니다.(182쪽)

배달업은 연간 20조에 육박하는 거대한 산업이 성장했지만 라이더들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갇혀 있습니다. 음식점은 매월 사용료와 배달 건당 수수료를 플랫폼 업체와 배달대행업체에 지불하고, 라이더들은 건당 수수료와 관리비를 제한 금액을 가져갑니다. 이전에 소개해 드렸던 『중간착취의 지옥도』에서 말한 이중 착취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 본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바로고‘ ‘부릉‘ ‘생각대로‘ 등이 이중 착취의 근원지이자 이른바 사람 장사를 하는 곳이지요. 이를 개선하고 바로잡기 위해서는 라이더 당사자들의 노동조합 가입과 의식적 행동이 선행되어야 할 테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을 마련하는 고위 공직자들의 의지가 아닐까요.

CJ 대한통운 노동조합의 파업이 한 달을 넘겼습니다. 책을 읽으며 파업 노동자들이 제 머릿속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게도 한참 전에 주문했지만 도착하지 않은 책과 물품이 많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들의 파업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시민과 소상공인을 볼모로 삼고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며 악선동하는 찌라시 수준의 언론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려 우리가 진짜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연쇄작용으로 일어납니다. 택배 기사님들의 파업이 승리로 끝나야, 배달업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될 것이고, 다른 업종과 직종의 노동자들의 삶도 더 나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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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시대 - 생존 이상의 가치를 꿈꾸다 아르테 S 6
홍기빈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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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전염병의 확산은 세계적 재난 상황을 만들었고 자본주의 시스템은 한계를 드러냈다. 셀 수 없이 많은 노동자들은 해고됐고, 자영업자들은 파산했다. 이제는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는 우파정권 조차 언제부턴가 기본소득 정책을 말하고 있는데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비 뿐만 아니라, 모두가 안전하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 주요한 제도로 정착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다섯 명의 전문가는 기본소득을 둘러싼 정책의 필요성, 재원마련, 실효성 등에 대해 말한다. 생존 이상의 가치를 구현해 낼 기본소득은 어느새 현실로 다가왔다. 정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기본소득 시대』를 통해 여러분의 생각도 정립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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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없는 아이들 -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은유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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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의 존재 자체가 불법이라면 어떨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내 이름으로 된 통장도, 휴대폰도 만들 수 없고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서 병원에 갈 수도 없다. 하루 이틀 산 것도 아니고, 심지어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나라에서는 내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일상을 포기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실재한다. 자신의 삶을 저당잡힌 채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책에 등장하는 미등록 이주아동은 다양한 이유로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부모를 원망하며 자신의 상황에 순응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어느 아이는 주변의 도움을 통해 국가를 상대로 투쟁하기도 한다. 이주아동 당사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주인권 활동가와 변호사의 목소리를 함께 담아 구체적인 실상과 더불어 관련된 문제를 명확히 볼 수 있었다.

1994년 집계 시작 이후 난민 신청은 총 7만 2403건인데, 그중 난민이 인정된 사례는 1119건으로 1.5%에 불과하다. 이 수치는 국제적 기준에서도 한참을 밑돈다. 이 수치를 만든 건 인권 감수성이 부재한 공직자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버젓이 존재하는 내가, 내 가족이, 내 친구가 유령이 되어도 괜찮을까? 자신의 일생을 두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라는 어느 아이의 말이 얹힌 것처럼 좀체 소화되지 않는다.

p.34 세상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어서 범주화되기도 어렵고 서서히 지워지는 존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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