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효(孝)를 강조하고 강요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원가족을 버리지 못하거나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자신의 경험을 가정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정신을 파괴하고 마음을 갉아먹더라도 ‘그래도 가족‘이라며 참고 견디기 일쑤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모든 행위들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무척이나 힘든 것 같다. 아마도 가족이란 굉장히 다층적이고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저자는 자꾸만 죽음을 생각케 했던 원가족으로부터의 탈출 이후, 살기를 꿈꾼다. 여성인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 비혼주의자인 나 역시 언젠가 여성들과 가족을 이루어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기에, 저자의 앞 날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산다면 가족으로 인정받는 생활동반자법 도입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출간된 시기를 생각해보면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인 내용임에 틀림 없지만, 한편으로는 학대받거나 차별받는 여성의 메세지를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공감하며 읽는다는 사실이 착잡하기도 했다.독자에 따라 주인공의 태도나 말이 간혹 신경질적으로 보이고 이해하기 힘들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다 그 당시 양귀자가 가진 통찰에 감탄했다.이야기의 중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양귀자는 말한다. 폭력이나 혐오에 직접 가담하지 않더라도 방관하는 것 역시 정당한 행위가 아니라고. 그리고 주인공의 가치관과 심경을 통해 이 책의 제목이 가진 의미를 독자에게 전달한다.˝나는 가능하면 이 소설이 여성소설의 범주에만 잃히지 않고 세상의 온갖 불합리와 유형무형의 폭력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함께 읽히기를 감히 소망한다.˝(작가의 말_358쪽)
밝은 피부 덕에 백인 사회에 소속되기 쉬웠지만 그 속에서도 절망을 계속 마주하는 클레어의 모습은 성소수자가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살며 경험하는 소외와 불안과도 맞닿아있다.패싱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사람이더라도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위한 장치라는 건 그 선택이 결코 자의적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오 분전까지만 해도 그 잔을 어떻게 없애 버릴지 전혀 몰랐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제 알아요. 그냥 깨뜨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러면 영영 그 잔에서 벗어나는 거지요. 그렇게 간단하게! 그런데 전에는 그걸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니까요. (188쪽)이 문장은 넬라 라슨이 말하고 싶은 내용과 절묘하게 일치하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체득하고 체화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관습, 계급, 인종, 성별이 사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 억압의 도구이고 그것은 한 순간에 깨뜨려 없애 버릴 수 있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 과거에는 당연했던 신분제나 노예제가 현대에 와서는 반인륜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듯 지금 첨예하게 갈등을 이루는 어떤 문제들 역시 마찬가지로 후대에서는 같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