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피부 덕에 백인 사회에 소속되기 쉬웠지만 그 속에서도 절망을 계속 마주하는 클레어의 모습은 성소수자가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살며 경험하는 소외와 불안과도 맞닿아있다.패싱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사람이더라도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위한 장치라는 건 그 선택이 결코 자의적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오 분전까지만 해도 그 잔을 어떻게 없애 버릴지 전혀 몰랐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제 알아요. 그냥 깨뜨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러면 영영 그 잔에서 벗어나는 거지요. 그렇게 간단하게! 그런데 전에는 그걸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니까요. (188쪽)이 문장은 넬라 라슨이 말하고 싶은 내용과 절묘하게 일치하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체득하고 체화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관습, 계급, 인종, 성별이 사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 억압의 도구이고 그것은 한 순간에 깨뜨려 없애 버릴 수 있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 과거에는 당연했던 신분제나 노예제가 현대에 와서는 반인륜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듯 지금 첨예하게 갈등을 이루는 어떤 문제들 역시 마찬가지로 후대에서는 같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