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라영은 자신이 겪어 온 성폭력 경험을 복기함으로써, 여전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기억을 갖고 있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는 한편 성폭력 범죄자들과 그 비호 세력 앞에서는 스스로 증거가 된다.여성을 둘러싼 폭력의 진부함. 말 그대로 진부하게 느껴질만큼 익숙한, 너무 익숙해서 무엇이 폭력인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버린 현실.p.194 사람이 죽으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목소리‘다. 체온은 서서히 식어가고 육신은 더욱 천천히 사라지지만, 목소리는 즉각적으로 사라진다. 억울한 죽음과 함께할 수 있는 최선의 연대는 ‘아직 살아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사주명리학의 성차별적 해석과 굿판에서 제물로 바치는 비인간 동물의 사체를 보고, 왜 꼭 그래야만 하는지 의문을 품은 홍칼리는 점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좀 더 입체적이고 폭넓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유명한 페미니스트 명리학자 릴리스처럼 많은 여성들에게 유의미한 내용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가 갓 스물이 되던 해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 저자와 아버지를 둘러싼 급박한 순간과 탈출구 없는 상황의 반복은 매 장을 넘길때마다 한숨이 절로 났다.국가적 돌봄의 부재는 저자로 하여금 가난의 경로를 따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게 만들었다. 민원인을 비롯해 공무원들이 득실한 곳에서 프라이버스는 고사하고 내 가난을 고백해야만 했던 저자는 끊임없이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경험을 한다.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쌍한데 착해야 하고, 삶 전체를 가난으로 설명해야(41쪽) 이런저런 경제적 지원 심사에 통과할 수 있으니까.일을 하면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서 탈락한다. 일정 금액 이상의 월급을 받으면 차상위계층에서도 탈락한다. 그래서 일을 안하고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는 편이 낫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복지대상자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진다고 염려한다. 일을 하고 싶어도 지원이 끊기니 일을 할 수 없는 현실, 진짜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는 것은 누구일까?˝하루 8만 5천원을 받는 간병인은 아빠 나이에 내 나이를 더한 나이였다.˝(48쪽)는 문장은 이 책이 전하는 메세지와 한국 사회를 관통한다. 이 책에서 꼬집는 의무부양자제도와 저임금 여성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돌봄노동 문제 등은 곧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이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돌봄의 문제는 특정한 누군가만이 경험할 일이 아니니까.
˝페미니즘을 통해 자각하게 된 소수자의 사회적 위치와 차별의 작동 원리는 나의 인권 감수성을 더욱 예민하게 만든다. 장애인 문제나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예전보다 더 관심이 가고 차별의 구도도 빨리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배움을 동물에게까지 넓히자니 나는 거의 수도자, 수도승이 되는 기분인데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살아야 할까, 하는 불평이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다. 하지만 피곤하다는 이유로 내세울 수 있는 선택의 여유는 내가 누리는 기득권이고, 누군가에게 혹은 어느 동물에게는 숨 막히게 싸워야 할 삶의 문제인 것이다. 그걸 지금 깨달았다.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다른 존재의 불행 위를 걸어가는 것이라고.˝위의 글은 저자가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D의 글로 자신이 15여 년 전부터 채식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쓴 것인데요. 홍승은의 책을 읽었지만 이 글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어쩌면 저자는 그걸 바라고 이 책의 상당 부분을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이들의 글을 싣는 데 할애했는지도 모릅니다. 별 볼일 없다고 스스로 폄하하던 그들의 글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더 많은 이들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요.저자는 김원영 변호사가 첫 책 출간 이후 8년 만에 낸 책을 통해 ‘나‘에서 ‘실격당한 자들‘로 주체의 확장을 보여주었다고 말하는데, 저는 홍승은 역시 이 책을 통해 주체와 시야가 확장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홍승은의 글을 읽을 때면 저는 이따금씩 눈물을 흘리고, 자주 제 과거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미 오래전 저자의 첫 책을 읽고서 세상의 평가에 굴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 감동받은 저는 ‘언젠가 나도 내 이야기를 쓸 거야.‘라고 다짐했어요. 두려움 때문에 좀처럼 쓰는 일은 쉽지 않았고, 오랜 시간 버거운 일이었는데요. 그때마다 홍자매라 불리는 홍승은, 홍승희의 글이 위로와 용기가 되곤 했습니다. 저는 이제야 용기를 내서 내 안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넋두리 후에 흩어지는 그 언어들을 쓰기를 통해 해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느낀 것처럼 이 책은 많은 분들에게 자기 서사 쓰기를 실천케하는 용기가 될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