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남짓한 세월을 함께한, 베르나르 베르베르!
신간이 나오면 내용에 상관없이, 내용에 대한 사전정보없이 무조건 구입하는 인생작가이기도 한, 그
그의 많은 작품을 좋아하지만, 오랜 시간 많은 작품은 써 온 작가이다보니 자가복제하는 느낌의 소설이 간혹 나와 실망스러움을 느끼기기도 했던.
고양이에서 느낀 실망감이, 잠으로 보완이 되었고, 이후 심판에서 살짝 갸웃거렸지만.
이번 기억으로, 다음 작품을 기다릴 수 있을 만족감을 얻었다.
잠과 심판을 믹스해서, 발전시킨 느낌이랄까?
베르베르스러운 재치,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를 다음 작품에서 또 만날 수 있기를!
「나는 그것을 의식의 확장이라고 믿어. 올더스 헉슬리가 말했듯이 나는 새로운 지각의 문을 연 거야. 그 유명한 록 밴드 도어스의 이름도 거기서 나왔지.」
재갈을 물려야 하는 비정상적 잠재 인격들 말이지. 우리는 지각할 수 있고 확인 가능한 하나의 시공간에서, 오직 하나의 생을 살게 돼 있어. 단 하나의 기억, 온전한작용인으로서 단 하나의 정신을 가진 존재란 말이야.
언제나 포기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지. 체념하고 두 손 드는것. 싸움을 중단하는 것. 여러 번의 생에서 이미 이 방법을 선택해 봤지만 결론은 만족스럽지 않았어.
늘 그랬듯 원하는 게 구체화되는 순간 해답이 떠오른다.
「당신이 기억 상실을 걱정한다면 나는 정반대의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기억 이상 증진이라는 거죠. 모든걸 지나치게 상세히 기억하는 병이에요.」「당신이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르네가 입 안 가득 음식을 물고 말한다.
「그 말은 맞아요. 어릴 때 참 행복했었죠. 그 즐거운 순간들을 모두 기억하려고 애쓰다 보니 커서도 그런 습관이 생겼어요.」
그는 외부의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줄만 알지 우리에게 소중한 순간들을 기억하지는못했어요. 그는 우리가 어제 뭘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우리가 먹은 음식, 우리가 식사 중에 나눈대화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죠.」「평범한 사람은 다 전남편 같지 않나요.」
「나한테 그는 지나치게 평범한 사람이었던 거죠. 그를사랑했지만, 마치 구멍이 숭숭 뚫린 그뤼에르 치즈 같은정신의 소유자와 사는 기분이 들었어요.
「적어도 당신은 인정은 하잖아요. 그리고 당신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잖아요. 하지만 내 전남편은내 생일을, 게다가 우리 결혼기념일까지 잊어버리고도아무렇지 않았어요. 자기가 정상이고 내가 너무 속이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죠.」그녀가 나지막한 한숨을 내뱉는다.
「아무튼 내가 말한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요. 우리가 뜨거운 첫 키스를 나눈 뒤로, 물론 그는 이것도 잊어버렸지만, 그가 부주의와 미숙함으로 내게 상처를 준 일은 정말이지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어요. 기억력이 나쁜사람을 억지로 용서해 줄 수밖에 없는 것, 이게 절대적인기억력의 단점이에요, 안 그래요?」
르네의 시선이 거실 벽에 걸려 있는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으로 향한다. 황혼 녘의 하늘을 배경으로 해변이 펼쳐져 있고 멀리 절벽이 솟아 있다. 나뭇가지에 늘어진 시계가 하나 걸려 있다. 바로 옆에 당장 녹아내릴 듯한 시계가 하나 더 보인다. 개미들로 뒤덮인 세 번째 시계는 다른 시계와 달리 단단해 보인다. 해변 가운데 긴눈썹이 달린 감긴 눈이 하나 누워 있다. 그 위에 늘어진네 번째 시계가 걸쳐져 있다.
「아, 이 그림이 마음에 드나 봐요? 달리가 햇볕에 녹는카망베르 치즈를 보고 영감을 얻어 그렸다고 해요. 그림속에 나오는 네 개의 시계는 단단하고, 조금 무르고, 아주 무르고,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각기 다른 변형의 단계를 보이잖아요. 그것을 통해 흐르는 시간을 표현하고자했대요. 기억도 시계처럼 그렇게 단단하고, 부드럽고, 무르고, 흐물흐물한 변화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기억의 지속)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는군요. 개미들의 공격을 받는 단단한 시계는 시간이 기억을 갉아먹는 죽은자를 표현한 메타포일지도 몰라요. 」
궤변은 허위적 논리, 다시 말해 그럴듯해 보여도 실제로는 이치에 닿지 않는 논리에 근거한 논법을 말한다. 듣는 이를 기만하는 것이 이 논법의 목적이다.
「어떤 정보든, 그게 역사적 정보라면 더더욱 의심하는게 내 직업이에요.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모든 역사에는 세 가지 관점이 있다. 나의 관점, 타인의 관점, 그리고 진실. 이번 일에서만은 내 관점과 진실이 하나로 포개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가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같다는 의미예요. 매순간 우리는 우리의 자유 의지와 양심에 따라 선택하고행동한다고 믿지만 실은…….」「....…우리 위에 있는 작가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행동을 결정하고 있다는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