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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조선왕조실록 - 조선왕조실록으로 오늘을 읽는다
이남희 지음 / 다할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의 눈으로 다시 보는 조선의 모습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그 어떤 시대보다도 조선시대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유독 많다. 아무래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나 소설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여느 시대보다도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져 다른 시대보다도 조선시대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쌓인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조선시대에 대한 관심을 한정하는 건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에 내가 읽었던 조선시대에 관한 단행본 역사서의 면면을 살펴보면 왕의 경우 세종, 연산군, 성종, 광해군, 정조 시대가 가장 많았다. 특히 정조와 세종에 관한 책들이 많았는데 특정 왕대에 관한 농밀한 역사를 알고픈 욕구가 반영된 점이라 하겠다. 한편 시대적인 경우 19세기에 관한 책들이 대다수였다. 연암과 다산, 이덕무 등이 등장한 19세기 후반의 시대상을 반영한 책은 지금도 가장 즐겨 읽는 책이다. 요컨대 특정 시대에 관한 지적인 호기심이 그 시대에 관한 책을 읽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 같다.
조선시대에 관한 책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특수한 몇몇 경우에서 자연스레 당시 조선의 모습과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비교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조선의 법제도와 오늘날의 법제도, 조선의 지식인과 오늘날의 지식인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물론 시대적인 차이에서 오는 한계로 온전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비교'라는 방법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무엇이 바른 길인가'하는 점을 생각해 보곤 했다.
'조선왕조실록으로 오늘을 읽는다'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클릭!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라는 거울을 통해 오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시대적인 간극과 엄밀한 대조를 잠시 접어두고 사건 자체만을 추출해 오늘날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책은 조선의 법과 정치, 무역과 경제, 사회와 유교, 문화와 생활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조선의 법과 정치를 다루는 장에서는 아무래도 오늘날의 정치모습과 많이 비교되어 서술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조선에 있었던 두 번의 반정 그리고 민심을 천심이라 여겼던 왕과 신하의 모습을 다룬 부분이다. 저자는 이것을 통해 '탄핵정국'을 맞이했던 그날의 모습과 촛불시위라는 민심으로 점철되는 오늘의 모습을 언급하면서 정치의 방향과 사회적 책임에 관해서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다. 민심을 가장 중요한 가치척도로 여기며 천재지변마저 자신들의 책임으로 돌리려 했던 조선의 왕과 신하들의 태도, 어떻게 되살릴 방법은 없는 걸까?
조선시대의 무역과 경제를 다룬 장에서는 영조시대의 '청계천 준설작업'이 무척 이채롭다. 백성을 위한 토목공사를 벌였다는 점만 해도 흥미로운데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의견을 구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웠다. 검소한 임금 영조의 또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내용과 상응하는 오늘날의 모습은 영조의 그 깊은 뜻과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아쉽기만 하다. 국민의 의견을 무시한 채 과거 70년대식으로 무리하게 벌이는 국책사업은 민생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게 자명하다. 국민의 뜻을 헤아리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제3부는 조선의 사회와 유교를 다루고 있는 장이다.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인 유감동과 어우동의 작태, 세종 며느리의 이색적인 성 취향 등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 별로 새로울 게 없었다. 눈에 띄는 건 '조선시대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내용이다. 노비 영만이란 자가 살해한 사람 수는 무려 30명. 그런데 이 끔찍한 살인마는 법이 아닌 다른 노비의 복수로 최후를 맞는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그 살인자도 혹 누군가의 복수로 이미 죄값을 치른 건 아닐까? 한편 이 장에선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일침을 가하는 글도 포함돼 있다. 국력을 증강시켜 그들의 만행에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설득력을 잃었다. 국민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을 모아 조금씩 진실을 알리는 길만이 그들의 권모술수에 대처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장은 조선의 문화와 생활로 '뜻밖의 조선사'를 알 수 있는 유익한 장이라 하겠다. 조선에 살았던 외국인에 대한 내용과 '지역별 인재할당제'라는 지역균형을 위한 제도는 조선의 새로운 모습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장금이'의 실존인물 여부까지 확인해 주니 새로 알게 된 게 참 많았다. 하지만 신비의 명약 '천문동'을 오늘날의 웰빙 문화와 비교하는 내용은 좀 지나친 게 아닌가 싶다. 특효약 또는 만병통치약쯤으로 여겨지는 천문동이 건강한 삶을 위해 자연그대로의 것을 섭취하고, 자연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웰빙 문화에 비견되는 건 아무래도 지나친 비약에 가깝지 않을까?
조선의 정치에서 문화에 이르기까지 <클릭! 조선왕조실록>이 다룬 내용은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그리고 그 다양한 조선의 모습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건 물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모습까지도 그려보게 된다. 저자는 서문에서 조선왕조실록이 이제 CD-ROM으로 만들어져 누구나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것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혜안이 담긴 기록물이 우리 일상 가까이에 와있다는 말이 된다. 누구나 접근가능하다는 말이 누구나 접근한다는 말이 아닌 것처럼 이제 그 기록을 제대로 뜻 깊게 활용하는 일은 우리 몫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