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습관에게 말을 걸다 - 손톱을 물어뜯는 여자, 매일 늦는 남자
앤 가드 지음, 이보연 옮김 / 시아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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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의적으로 행하는 습관에 담긴 의미

 

습관이란 이름의 익숙한 행동을 누구나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집에 있는 손톱깎이를 무용지물로 만들 만큼 아주 오랫동안 손톱을 물어뜯어 왔으며 앉은 자리에서 이따금씩 다리 떠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렇게 눈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것부터 개인 스스로에게 내제된 채 생각으로만 존재하거나 아니면 혼자 있거나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처럼 특수한 상황에서 출몰하는 경우 등 습관은 이 세상에는 널리 만연해 있다. 하지만 얼굴에 바르는 로션만큼이나 가까이 있고 자주 애용하는 이 습관을 제대로 인지하고 발생 원인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에게 습관은 그냥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의미없는 행동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생각할 것도, 고치려 노력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습관에는 나름의 원인과 감춰진 이유가 있다는 것에서 <심리학, 습관에게 말을 걸다>는 시작한다. 당신이 손톱을 물어뜯는 건 불안을 잠재우거나 분노를 표시하는 행위이며 다리를 떠는 것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동침자에게 심각한 짜증을 선사하는 코를 골거나 이를 가는 행위는 억압받거나 불안해하는 심리와 관계가 있으며 지나치게 꾸물거리거나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경우는 낙천적인 성격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저항의 표시이자 낮은 자긍심으로 인한 회피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이밖에도 정말 많은 습관들이 억압되고 뒤틀린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튀어나와 우리의 행동에 묻어나고 있으며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내가 자주 범하는 작은 행위가 나를 차츰 낭떠러지로 몰고 있으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잘못된 습관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모든 습관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앞에서 밝혀두었다. 그렇기에 잘못된 ’습관 고치기’는 자신이 의식 또는 무의적으로 행하는 습관이 도대체 어떤 것에서 기인한 것인지 찾아내는 게 먼저다. 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에게 좀더 관심을 갖고 본성을 찾기 위해 내면과의 진솔한 대화가 필요하다. 나는 분노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분노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거나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 나를 정말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가족, 친구를 비롯한 주변 사람과의 마찰이나 감정싸움을 일으킨 적은 없는가? 등등 억압된 채 짓눌려 있는 감정의 원형을 찾고, 조금은 ’불편한 진실’들과 마주해야 한다. 솔직한 모습의 자기 자신과 만나는 일은 그런 생각을 했다는 자체로 죄의식과 자책감을 주기도 하지만 ’처음 만나는 자신’에게 느끼는 낯선 감정으로 생각하고 마음에 담아 두지는 말자.

 

순수하고 진실된, 잘못된 습관의 원형인 감정과 만났으면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불안해하거나 분노하는 등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마음에 남아 어떤 습관으로 나타나게 되므로 떨쳐버려야 한다. 불안은 단전호흡이나 기체조 등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고, 분노는 감정을 배제한 대화가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른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부정적인 생각을 내 안으로 자꾸만 깊숙이 넣으려 하지 말고 밖으로 배출해야 한다. 감정을 억누른 채 폭식이나 과음 등의 방법으로 잠시나마 고통스런 감정에서 해방되려 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서 그 감정의 뿌리를 찾아 뽑아내야 한다. 우리가 자주 행하는 '덮어주기'는 '해소시키기'보다 훨씬 편하고 익숙한 방법이지만 근원을 제거하지 않았기에 '감정이입된' 나쁜 습관이 생기고 이것이 순환과 복합의 과정으로 이어져 후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기보단 덮어두려는 것, 나아가 잘못된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것 역시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과 관계돼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변화에 부딪히는 일이 많을수록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진다. 평온하고 순탄할 때가 아니라, 변화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감정적,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고난은 개인의 성장을 이끌어 내는 유인이다. 정체되어있는 자신을 성장시키겠다는 의지로 변화를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용기있는 발걸음을 내디뎌라.’ 결국 잘못된 습관을 안고 사는 건 자신을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현실에 안주하며 정체된 삶을 사는 것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내가 내 자신을 알지 못하고, 알기를 두려워하고, 치료를 망설이는 사이 나는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라도 나 자신을 더 나아가지 못하게 옭매고 있는 감정의 원형들과 만나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서랍을 열어 보관용으로 전락해버린 오래된 손톱깎이를 꺼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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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가 내 삶에 들어왔다, 교토
이혜필 지음 / 컬처그라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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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년 수도의 도시 교토, 그 곳에서의 하루

 교토라는 도시 이름을 처음 들어본 건 수년 전 당시 박지성 선수의 소속팀이었던 교토 퍼플상가라는 축구팀 때문이었을 것이다. 팀 이름도 지명도 그 때 당시의 내겐 모두 낯설었지만 우리나라 선수가 뛰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그 낯설음을 친근함으로 뒤바꿔주었다. 그렇게 내 삶에 잠시 나타났던 교토는 TV나 신문에서 지명의 하나로서만 이따금 스쳐지나갈 뿐 제대로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읽었던 두 소설을 통해 비교적 구체적인 공간으로서의 교토와 다시 만나게 됐다.

<왕의 밀사>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각각 과거와 현재의 교토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 소설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공간묘사와 사실적인 지명 언급은 교토라는 도시가 이런 곳이구나! 하는 걸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특히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는 위풍당당하게 활보하는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교토 곳곳이 비춰지고 있어 가히 '교토소설'이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가보지 않은 어떤 곳의 묘사를 내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나 하는 점 때문이다. 나 역시 본토초, 치토세야 등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를 오로지 상상에만 의존한 채 이야기를 따라가야 하는 게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아 답답했다.

'이 놈의 교토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하는 생각이 당연히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로는 교토만큼 전통과 현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곳도 없다고 하던데, 그렇게 멋진 곳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이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이렇듯 아쉽고 궁금한 내 마음을 달래준 게 바로 <그 도시가 내 삶에 들어왔다, 교토>다. 꼭 필요할 때 내리는 단비처럼 정말 궁금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가웠다. 게다가 책은 '여행지 교토'보다 '삶의 공간으로서의 교토'를 담고 있어 교토라는 도시에 풍덩~하고 싶은 내게 더욱 제격이었다.

 저자 이혜필 씨는 짧은 머묾이 아닌 새로운 일상의 장으로 교토를 선택한다. 그녀 스스로를 내몰아 시작한 6개월간의 교토생활. 책은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모습으로 보여주며 문을 연다. 저자는 거처할 곳에 짐을 풀고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장만한 뒤 바로 교토 탐색에 들어간다. 저자의 발걸음이 곳곳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두 눈을 사로잡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니시키이치바다. 사진 속 모습은 꼭 우리나라의 대형 상설시장을 연상시키지만 질서정연하면서도 깔끔한 것이 일본식 시장이라는 느낌을 물씬 풍긴다. 이어서 등장하는, 내가 가장 알고 싶었던 곳 본토초. 이곳은 예스런 모습의 중후한 매력이 돋보이는 '전통'거리였다. 두 컷의 사진이 전부였지만 그 곳의 풍경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잘 담아냈다.

전통의 모습이 녹아있는 도시답게 저자의 발길이 닿는 여정 가운데서도 잘 보존된 옛 유적지가 단연 돋보였다. 금각사, 은각사 등의 사찰은 물론 교토고쇼, 니조죠 등의 유적지까지 한결같이 현대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있으면서도 전혀 현대의 느낌이 배지 않은 채 전통과 자연이 오묘한 조화를 이뤄 멋지게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전주 역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표방하고 있는 도시지만 전통의 모습은 현대의 영향력 아래 조화처럼 살풍경하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 그 어떤 멋도 찾아 볼 수 없다. 이에 비해 교토가 지닌 특유의 멋스러움은 질투가 날 만큼 몹시 부러웠다.

멋만큼 중요한 게 바로 맛. 저자는 교토의 다양한 곳에 독자들을 안내하면서도 이름난 맛집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먼저 아지 비루라는 곳이 눈에 띈다. 층 식당인 이곳에서는 푸짐한 식사가 가능하다는, 일본식당답지 않은 놀라운 특징이 있었다. 한편 단풍이 아름답다는 도후쿠지에서 파는 크기를 가격으로 정하는 군고구마가 참 이색적이었고, 면 요리 전문점 나다이 오멘의 음식이 참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저자의 이런 음식이야기에는 항상 같이한 일행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교토라는 낯선 곳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으로 여행지기는 물론 맛집 대동을 기껍게 생각하는 그들을 보면서 여행과 삶에 있어서 진정으로 소중한 게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여행,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그 도시가 내 삶에 들어왔다, 교토>를 읽는 내내 이국의 낯설지만 아늑한 풍경에 슬며시 빠져들면서 삶에 있어 여행이 주는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단조로운 삶에, 관성으로 굳어져 가는 삶에 여행이라는, 아니 낯선 곳에서의 시작이라는 뜻밖의 계기가 어떤 활력을 주고 어떤 만남과 인연을 가능케 하는지를 알게 됐다. 나에게도 내 머릿속을 차고 나올 듯한 압력이 생기면 오늘을 뒤로 하고 또 다른 내 삶을 위해 짐을 꾸리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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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도우 - 스타테이라의 검
이은숙 지음 / 높은오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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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검의 찾아 떠나는 모험

 

보물이든 신비한 물건이든 베일에 싸인 채 전설로 전해지는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모험은 그 여정에 따르는 고난과 역경이 클수록 그리고 찾고자 하는 물건의 가치가 높을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지기 마련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나 <미이라 시리즈>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아마 그런 느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쉐도우 - 스타테이라의 검>은 아주 만족할 만한 재미를 준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른 수없이 많은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그들이 찾고자 하는 그 물건은 그런 숱한 위기를 감수할 만한 것이었으니 그들은 겪는 고초는 대업을 이루기 위한 필수코스에 지나지 않았다.

 

보물사냥꾼이자 학자이면서 날렵한 재주꾼이기도 한 '그림자' 해성은 친구인 산과 함께 오 교수를 도와 손에 넣은 일지가 의미하는 전설 속 검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검을 노리는 간악한 무리가 있었으니 허탈하게도 그들에게 일지를 빼앗겨 버리게 된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일지 못지않게 중요한 지도가 아직 그들 손에 있었고, 오 교수가 일지의 내용을 암기하고 있었다. 이런 복잡하고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해성의 일행에 뜬금없이 신유미와 건이 동참하게 되고 운명을 건 모험에 함께하게 된다.

 

'이곳을 뚫고 지나가는 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뜻을 지닌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시작되는 모험은 일행에게 사막에서의 여정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우쳐 준다. 건조한 모래 위에서의 여정으로 지칠 대로 지쳐 바스러질 무렵 그들 앞에 오아시스가 나타나고 꿈처럼 달콤한 휴식을 맛본다. 그것도 잠시 오아시스에 자리한 유곽 마담의 조언을 경계 삼아 짧은 휴식을 뒤로 하고 그들은 다시 사막 길에 오른다. 게다가 그들 앞에는 엄청난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보여준 뜨거운 태양과 건조한 기후가 전형적인 사막의 모습이라면 무서우리만큼 거친 모래폭풍과 모래기둥은 사막 여행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특별한 사막의 모습이다. 일행에게 닥친 갑작스런 위기에서 그들을 구해준 건 해성과 인연이 깊은 황금신발. 하지만 해성과 황금신발과의 해후는 반갑지 않은 일. 그렇지만 해성이 모험의 목적과 의미를 강조하면서 그의 협조를 구하고 게다가 모험을 지지하는 뜻밖의 신탁도 얻어 황금신발도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천군만마를 얻은 해성일행. 그렇지만 또 다시 일행의 납치라는 간악한 무리의 구차한 술수에 휘말리게 되고 해성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모두를 놀라게 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하게 된다. 해성의 결단으로 간악한 무리가 전설의 검에 다다르고 이제 역사를 움직일 검의 소유를 두고 뜨거운 쟁탈전이 벌어진다. 과연 검은 누구의 손에 들어갈 것인가?

 

알렉산더 대왕의 유산이라는 전설의 검의 행방을 찾기 위한 모험을 그린 <쉐도우 - 스타테이라의 검>은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사막을 무대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모험소설로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려 소설의 재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소설의 초반부 좀 더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1930년대의 시대상황을 묘사했더라면 하는 점이다. 그랬다면 실감나게 소설 속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모험소설이 가져야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섬세한 필체로 광활한 무대를 배경으로 신명나는 이야기를 펼친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부디 해성과 유미가 또 다른 모험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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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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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 발랄한 로맨틱 판타지~!!

아, 정말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이토록 멋지게 순수함과 기발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시종일관 명랑한 분위기속에서 소설의 재미에 취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청춘 소설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게다가 몽상, 망상, 멍 때리기 등등 내가 평소에 사랑해 마지않는 단어와 표현들이 소설 속 인물들에 의해 버젓이 그려지는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나무나무!'하고 외쳐댔다. 내 머릿속 풍경과 비슷한 모습을 한 이 소설,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다.

소설의 주된 내용은 학교 서클 후배로 들어온 신입생 아가씨를 짝사랑하는 어느 소심한 서클 선배의 고군분투 '연애시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는 감히 어느 누구도 시도 못할 독특한 인물들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하고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마디로 만화 같은 상상력이 빗어낸 놀랄 만큼 재밌는 이야기로 순수함의 결정체인 두 주인공이 벌이는 유쾌한 사건들이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독자들의 혼을 쏙~ 빼놓을 기세로 전개된다.

선배인 '그'는 서클 후배인 '그녀' 곁을 꾸준히 맴돌며 그녀와의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노출되는 횟수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반응은 "아! 선배, 또 만났네요!"정도. 한심하기 그지없는 결과지만 그녀에 대한 로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봄날의 정취가 무르익어가는 어느 밤 그는 클럽 술자리에서 조용히 빠져나가는 그녀를 따라나서고 갖은 봉변을 당하면서 그녀를 지켜보지만 얻은 수확이라곤 '그녀는 술고래였다.'라는 사실과 수상쩍은 인물들과의 만남뿐이었다.

계절이 지나 여름의 헌책시장. 그녀가 이곳에 온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 그 역시 찾아왔다. 그는 나름의 로맨틱한 망상을 해보며 그녀와의 멋진 만남을 꿈꾸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로맨틱한 만남이 아니라 엄청나게 더운 곳에서 엄청나게 뜨거운 걸 참아야 하는 엉뚱한 시합이었다. 애초 시합에 참가한 목적은 그녀가 원한다던 그림책을 찾아 주기 위해서였는데 그 목적 이면에는 앞서 생각한 멋진 만남을 떨쳐버릴 만큼의 멋진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계획은 또 꼬이게 되고 의외의 엉뚱한 결과를 맞게 된다.

이번엔 가을의 대학축제. 평소 축제에 참가할 의사가 눈꼽만큼도 없었던 그는 그녀가 출몰할 것 같은 기대감에 축제장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 그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녀를 따라 나서는 그였지만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교내를 휩쓸다시피 하는 그녀를 쫓다보니 봄밤의 야행이나 여름날의 헌책시장 활보에서 겪었던 것처럼 '불의의' 모험을 겪게 된다. 하지만 모험의 끝에 그녀를 살포시 안아 볼 수 있는 행운이 있었으니 그에겐 이만한 보상이 없었다.

그녀와의 달콤했던 순간은 지나고 겨울이 찾아왔다. 두근거렸던 그날의 포옹은 이제 꿈처럼 아득하게 여겨질 뿐. 감기의 계절은 자기 본연의 임무에 너무도 충실한 나머지 그와 그녀 주위 사람들을 모두 감기에 걸리게 했다. 애석하게도 그마저 감기에 든다. 좋아하는 이의 돌봄없이 홀로 견뎌야 하는 아픔 속에 있는 그에게 나는 내가 가진 동정표를 아낌없이 주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젊은이란 말인가. 하지만 소설은 다시 한 번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꿈같은 이야기를 보여주며 그가 그토록 원하던 바를 이루게 해주었다. 동정표 회수!!!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장밋빛 미래를 암시하는 내용으로 소설은 대미를 장식한다.

좋아하는 여자 후배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며 이른바 '눈도장 찍기'를 시도하는 그의 행동은  너무 소극적이고 효율성 낮은 시도였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마침내 뜻한 바를 이루었으니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바다. 한편 이런 남자의 순정도 모른 채 호기심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던 그녀는 무뎌도 너무 무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순수하다 못해 아이와 같은 아가씨였다. 하지만 그런 순수함이야말로 소설의 재미와 함께 그와의 로맨스를 더욱 증폭시켜주니 기껍게 받아드릴 수밖에...

한편 이 두 사람의 목적을 알 수 없는 행보에 동참해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빛나는 주변 인물들이 있었으니 히구치, 하누키, 이백, 소년 등이 그들이다. '텐구같은 인물' 히구치는 소설 전반에 걸쳐 기묘한 사건을 만들어 내는 묘한 인물로 이 소설이 '위풍당당 판타지'가 되는 주된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그녀 못지않은 술고래 아가씨 하누키는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며 베일에 싸인 노인장 이백 씨와 영특하다 못해 '신'처럼 느껴지는 소년 역시 이 소설이 만화풍의 느낌이 나도록 하는 데 일조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진난만한 그녀와 그녀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는 소심쟁이 그가 펼치는 한 밤의 꿈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특이한 사건들, 매력적인 인물들, 환상적인 이야기가 조화를 이룬 정말 유쾌한 소설이었다. 밤이 깊어 가는 가을날 새로운 느낌의 소설을 읽고 싶다면 이 소설 속 주인공들과 만나보길 권한다. 그리고 그 만남에는 분명 기막힌 웃음이 함께하리라는 것을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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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인 러브 판타 빌리지
로라 위트콤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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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영혼 간의 감동적인 사랑얘기를 다룬 [고스트]는 인간이 죽는 순간 몸에 있던 혼(령)은 천국 또는 지옥으로만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대로 세상에 머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독특한 영화다. 영화를 보면 지상에 남은 혼령은 특별한 바람을 일으켜 깡통을 넘어뜨리거나 다른 이의 몸을 통해 혼령 '본인'의 소리를 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소수의 인간에게는 혼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부여되기도 했다. 이 참신한 영화의 백미는 먼지처럼 부유하던 남자주인공의 혼령이 마침내 자신의 한을 풀고? 천국으로 가는 장면으로 혼령의 상태에서도 아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선행이 천국행이라는 궁극의 결과를 이끌었던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영화[고스트]와 로라 위트콤의 소설 <고스트 인 러브>는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인간 세계를 배회하는 혼령이 등장한다는 점이 그렇고, 혼령 역시 보통의 인간들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과 아주 당연하게도 혼령은 공간의 경계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유유자적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비슷한 설정과는 달리 두 작품의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고스트]가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이야기에 치우쳐 있는 반면 <고스트 인 러브>는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 뿐만 아니라 죽음의 순간마저 떨쳐버릴 수 없었던 한 인간의 죄의식과 지독한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고, 상반된 가정환경 속에서 겪는 아이들의 정체성 문제와 기성세대의 위선을 그리고 있다.


130년 전의 죽음 이후로 혼령의 상태로 뜻하지 않게 인간 세계에 머물게 된 헬렌은 지독한 '영혼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호스트'라 불리는 인간들 곁에 살아야 했다. 브라운씨는 그녀의 다섯 번째 호스트로 그에게 마음의 동요를 일으킬 만한 애정을 느끼지만 둘의 관계가 나아질 방법은 없다. 학교 선생인 브라운씨를 따라 그의 수업을 함께하던 중 헬렌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보는 제임스를 발견하고 그와 교감을 나눈다. 제임스는 특이하게도 혼령이 비어있던 블레이크라는 아이의 육체에 기거하고 있었고, 제임스의 조언에 따라 헬렌 역시 자신이 들어갈 혼령이 빈 육체를 찾게 된다. 그렇게 찾다가 만난 제니. 이제 헬렌은 제니가 되었고, 블레이크가 된 제임스와 서로를 '느낄 수 있는' 교분을 쌓는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곳곳에서 잡음을 일으킨다. 인간의 몸으로 들어간 제임스와 헬렌은 종종 자신의 과거 기억과 만나며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되고, 또한 그들 자신이 온전히 블레이크와 제니가 될 수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영혼의 운명'을 건 최후의 결정을 한다.


제니의 몸을 빌려 살면서 헬렌은 분명 많은 것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생전에 전혀 맛보지 못한 음식에서부터 달콤하고 격정적인 사랑에 이르기까지 태어난 지 150년이 넘은 그녀에겐 모든 것이 새로웠을 것이고 건강한 육체로 살아있음이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곧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데 한계를 느꼈고, 진정으로 제니 자신만이 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나버린 제니의 영혼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그녀는 자신을 억눌렀던 고통스런 기억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구원의 길에 이르게 된다. '네가 베푼 선행이 너를 구원하리라'는 단순한 진리가 새삼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었다. 구원받고 싶은 모든 영혼이 나에게 찾아와서 선행을 베풀기를 망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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