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역사 - 지질학, 생태학, 생물학으로 본
유리 카스텔프란치.니코 피트렐리 지음, 박영민 옮김, 레오나르도 메치니 외 그림 / 세용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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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역사, 그 놀라운 발자취

수십억 년 전 엄청난 폭발과 그로 인한 부산물들의 잔해로부터 시작된 지구의 역사. 불안정한 원시대기와 곳곳이 화염으로 뒤덮인 대지는 아직 생명이 꿈틀대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지구의 열기가 식어가면서 생물발현의 장이 마련되었고, 더불어 대기 속 산소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생물들이 비로소 가쁜 숨을 내쉬었다. 생물은 물에서 뭍으로 나아가 적응에 성공하고,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진화하면서 개체의 종 다양성의 확대와 함께 지구라는 터전에 훌륭히 자리 잡게 된다. 화염과 열기는 사라지고 산소로 가득한 지구는 이제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는 낙원되었다.

<지구의 역사>는 지구의 태동과 생물의 출현, 생물의 진화와 번성에 이르기까지 지구가 걸어온 과정을 되짚어 생생히 전한다. 온갖 가스와 뜨거운 불길이 지구를 감싸고 있던 원시 지구의 모습은 악몽 그 자체였지만 대기와 지구 표면이 차차 안정되면서 지구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갔고, 그 과정에서 생명이 탄생한다. 아직 확정된 사실은 아니지만 책 속에 그려진 초기 생명체가 나타난 과정의 화학작용은 생명의 근원에 관한 과학적인 이해를 돕는다. 수소, 헬륨 등의 위험한 기체가 대기에서 사라지고 산소가 지구의 대기를 장악하면서 곳곳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생명은 점차 힘찬 몸짓으로 지구라는 공간을 풍성하게 채워나간다. 그리고 멸종과 적응, 진화의 과정을 통해 지구에서의 치열한 생존싸움을 벌여나간다.

<지구의 역사>는 이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하는 지구의 모습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특히 생물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각 시대를 대표하는 동식물군을 그림으로 전하면서 그 시대에 대한 이해와 재미를 겸하고 있다. 동식물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했으며 어떤 기관이 더 발달했는지 또 대륙의 이동은 어떻게 전개됐는지 책에 그려진 정말 실감나는 삽화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지구의 역사>는 그림 보는 재미가 반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큼지막하니 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삽화)들이 많다. 이 그림들은 어떤 것의 변모하는 과정을 설명하거나 특정 시대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적절히 사용돼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한편 전하려는 내용을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흡수하도록 돕는다.

그림을 통해 흥미를 유발하고 내용전달에 큰 의미를 두면서도 <지구의 역사>는 아주 체계적인 구성으로 독자들에게 '지식을 전하는 책'으로서의 임무를 다한다. <지구의 역사>의 큰 줄기가 지구의 역사 전반에 대해 전하는 것이라면 작은 줄기는 지구과학 분야의 다양한 이론과 '지식의 최전선'이란 항목의 호기심 해결 섹션이라고 볼 수 있다. 책에는 오파린의 가설부터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까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고, 전하는 지구의 역사 내용마다 지식의 최전선이란 항목으로 주요 내용에서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보충하거나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사실들을 짤막하게 전한다. 이런 세심한 구성으로 독자들은 보다 명확한 지구의 역사에 접근하게 된다.

'지질학, 생태학, 생물학으로 본' <지구의 역사>를 보는 동안은 잊고 있던 지구의 역사와 그 변모과정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에 무턱대고 좋아했던 공룡이나 중고등학교 때 배운 다양한 생물군에 이르기까지 지난날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또한 한 권의 책을 통해 지구의 역사 전체를 한 눈에 살펴봄으로써 지구의 방대한 역사에 관해 총체적인 안목을 기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지구의 역사>는 자원에 관한 문제와 최근 자주 발생하는 자연재해를 언급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지구의 역사가 인간의 손에 의해 변모할 가능성을 시사하며 막을 내린다. 유구한 세월 속에서 다양한 생물들의 터전이 된 지구가 인간의 이기와 자만심으로 그 역사에 누를 끼쳐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을 완곡하게 내비치며 인간의 바른 선택을 절실히 요구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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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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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울리는 사랑의 노래

<가고일>은 두 남녀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거친 풍랑을 이겨내고 난폭한 물살을 헤쳐 나가는 작은 배처럼 온갖 시련에 맞서 끝까지 자신의 사랑을 지켜나가는 한 연인의 애절하면서도 고결한 사랑의 노래다. 700년이라는 세월을 가슴에 묻어둔 채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나서는 그녀, 마리안네 엥겔. 전생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자신의 상처 입은 육신을 돌보는 그녀의 손길에서 그녀가 자신의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는 그. 그와 그녀의 만남은 계속되는 고통 속에서 자살을 꿈꾸며 의미 없는 하루를 사는 그에게 불쑥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지만 차츰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 수많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리안네라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700년 동안 봉인한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바쳤던 마리안네의 혼신을 다한 노력이 그의 회복과 함께 조금씩 천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700년 전 그녀는 실제 기록에 존재하는 엥겔탈이라는 수녀원에서 살았던 수녀였다. 그녀는 일찍이 신의 은총을 받은 아이였으며 언어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리안네가 수녀원 꼭대기에 있는 필사실에서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면서 필사업무에 깊이 매진하던 중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찾아 온 용병군인인 그를 만나게 된다. 마리안네는 거부감 없이 그를 정성껏 치료했고, 그 역시 자신에게 헌신하는 그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결국 둘은 마리안네가 단테의 지옥 편과 관계된 일로 더 이상 수녀원에 있을 수 없게 되자 함께 수녀원을 나가게 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새로운 삶이 행복한 삶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다시 불행한 삶으로 변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유를 막론하고 군을 이탈한 그에게는 죽음의 응징만이 있을 뿐이었고, 그 일을 수행하고자 추격대가 찾아왔다. 장작더미 위에서 죽음의 불길에 신음하던 그의 가슴에 불멸의 사랑을 약속하는 힘이 담긴 화살이 꽂히고 마리안네와 그는 기약 없는 이별을 한다.

 

자신은 물론 마리안네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그는 현실처럼 생생한 꿈속에서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들 속 주인공과 그녀의 운명을 뒤바꾼 단테의 지옥 편에 관한 내용이 섞인 기묘한 '지옥'체험을 한다. 안내자와 함께 지옥 곳곳을 돌며 그녀를 찾아나서는 그. 그에게 이 체험은 진실로 자신과 마리안네가 사랑이라는 700년 묵은 끈으로 연결됐음을 일깨워주고 수백 년 전 그날처럼 불에 그을린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봐준 마리안네가 바로 자신의 사랑이요 자신을 살게 한 또 하나의 심장임을 알게 된다. 한편 끔찍한 사고로 온몸이 불에 타 흡사 괴물처럼 보이는 그와 그런 괴물의 모습을 한 조각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그녀는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치 현실 속에 지옥이 실제 하는 것처럼...지옥같은 고통은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고통을 통해서 비로소 신의 섭리에 닿을 수 있다고 외치는 마리안네의 모습은 고통 속에 조각 작업을 하는 그녀의 행동이 뜻한 바를 잘 보여준다. 결국 마리안네의 뜻을 이해한 그는 그녀가 하는 일을 묵묵히 지켜보며  그녀의 빈자리가 생길 즈음 700년 전 그녀처럼 이 모든 일들을 글에 옮기는 작업에 착수한다.

 

절망의 순간, 사랑하는 이의 심장을 겨눠야 했던 그녀의 선택. 지옥의 형벌이라고 할 수 있는 불의 고통 속에서 아파하는 연인을 바라봐야 하는 그녀의 심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지막 심장을 건네주기 위해 참아야 했던 그녀의 기다림. 이제 그녀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그를 통해 한 편의 글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죽음보다도 강했지만 지옥처럼 가혹했던 둘의 사랑은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깊이 새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를 위해 남겨두었던 마지막 심장은 불멸하는 사랑의 상징으로 영원히 많은 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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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종들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3
한 둥 지음, 김택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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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종들>은 한 개인이 지나온 삶과 한 시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성장소설이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손종일의 <어린 숲>이 떠오르기도 하는 이 소설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격동기였던 중국의 70년대부터 비교적 오늘날에 가까운 최근의 중국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장짜오의 눈을 통해 그려지는 세상의 모습은 과거 60, 70년대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의 사소한 놀이문화나 행동거지 등은 우리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 내 친구들을 보는 것처럼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졌고, 타국의 소설이라는 이질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장짜오라는 소년의 주인공이 궁수이의 현중학교로 전학을 오는 내용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고약한 장난을 일삼는 동급생 웨이둥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며 그가 다니게 될 초급2학년 1반에 입성하지만 오히려 웨이둥의 장난에 당한 일이 계기가 되어 주훙쥔이라는 배짱 두둑한 아이를 친구로 사귀게 된다. 주훙쥔은 좋은 아이였지만 정말 못 말리는 독종 중에 하나였다. 사람이 아닌 ’전기’와 겨루기를 하고, ’특이차량’에 열광했으며 그만의 독특한 ’사냥철학’으로 공갈 사냥을 했다. 또 한명의 독종은 어딜 가나 꼭 있기 마련인 안하무인의 망나니 같은 녀석이었다. 그의 이름은 앞서 언급한 웨이둥. 게다가 이 악동에게는 든든한 집안배경이 있었고, 또 그 배경만큼이나 무기가 될 만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 두 독종과 한 반이 되어 왕짜오는 그렇게 학창시절의 추억과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쌓아갔다.

양 극단에 위치한 두 독종은 좀처럼 대립하지 않았고, 왕짜오는 이를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호기심 있게 관찰했다. 이런 왕짜오의 관심은 점차 그 둘을 넘어 다른 아이들과 이웃들에게까지 이어지고 그의 눈에 비친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그 시절의 풍경과 함께 생생히 그려진다. 독종에다 타고난 괴짜였지만 친구에게만은 헌신을 아끼지 않은 ’절친’ 주훙쥔에서 가난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또 한명의 친한 친구 딩샤오하이, 명랑거지에서 괜찮은 집안의 양자가 됐다 살인범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장신성, 그리고 왕짜오 아버지의 친구들과 또 다른 독종들과 아이들과 팽팽한 기싸움을 하던 선생님 등등 궁수이에 만난 왕짜오의 다양한 인연들이 등장한다.

세월이 흘러 왕짜오와 주훙쥔, 딩샤오하이는 각자 자신의 길을 걷게 되고, 편지를 통해서 인연의 수명을 연장해 보지만 미대에 입학해서 무던한 대학생활을 하던 왕짜오와 군인으로 입대해 더욱 더 심한 괴짜기질을 보인 주훙쥔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의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그들의 깊은 우정에 금을 만든다. 두 친구의 반목은 딩샤오하이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고, 이제는 더욱 가속도를 내서 각자의 길을 갈뿐이었다. 이제 어린 시절의 우정과 추억은 말 그대로 과거의 일, 그뿐이었다. 종종 딩샤오하이에게서 주훙쥔의 소식을 듣지만 왕짜오는 소식을 듣는 걸로만 만족할 뿐이다. 왕짜오와 주훙쥔은 끝내 우정 어린 재회를 할 수 없게 되고, 과거의 희미한 기억만 가슴에 남은 채 왕짜오와 딩샤오하이만이 중년의 길에 접어든다.

점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소설 속 세 친구는 익숙한 우리주변의 모습이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그 시절을 지나서 누구는 대학에 가고, 누구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점점 달라지는 환경 속에서 작은 차이가 쌓이게 되고, 그것이 그들의 관계를 서먹하게 만든다. 그래서 작은 성의를 베푸는 것조차 상대는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만남 자체도 거북하기 일쑤다. 세월의 무게는 그렇게 둘 사이를 닿을 수 없을 만큼 멀게 만들었다. 쓸쓸하게 돌아서는 친구의 뒷모습이 점점 더 작아지기 전에 마음의 시간을 그 때 그 시절로 되돌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유년을 기억해 주는 친구야말로 인생에 가장 소중한 친구니까 말이다. 나는 왕짜오가 정성을 다해 그린 그림을 가지고 딩샤오하이와 재회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 그림 속에는 왠지 그 시절 가장 친했던 철부지 삼인방이 짓궂게 웃는 모습이 담겨 있을 것 같다. 더불어 그 그림의 제목은 ’독종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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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인간
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조경수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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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뇌와 한 사람의 육체를 빌어 태어난 인간

<걸작인간>은 정말 흥미로운 소설이다. 육체는 온전하지만 사고로 인해 뇌를 포함한 머리가 망가져 버린 한 청년과 오로지 머리만 말짱한 채 사지는 엉망이 돼버린 한 남자의 결합! 뇌가 인간의 모든 활동을 제어하는 중추역할을 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나는 머리만 살아있던 남자 게로의 머리(뇌)가 육체만 남아있던 요제프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취해서 쉬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 흔해빠진 장기이식이 조금 거창하게 진행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결합하는 수술의 과정처럼 '새로운 게로로 태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 사람의 육체 모두를 취하는 것은 그 육체에 묻어나는 경험의 흔적들과 본능의 파편마저 수용해야 했다.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반응, 좋아하는 운동 등등 요제프의 육체가 남긴 생각과 행동의 경험들이 그것을 제어하려는 게로의 의식에도 불구하고 불쑥불쑥 '게로도 모르는 사이' 벌어지게 된다. 요제프의 육체에 남아있던 신경들은 자신의 주인이 바뀌었음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게다가 이런 게로와 요제프간의 육체와 정신의 대결, 의식과 경험의 대립 구도에서 또 하나의 모습이 끼어들게 되었으니 두 사람의 결합으로 발현한 '신인간'이었다. 마치 드래곤볼에 나오는 트랭크스와 손오천이 '퓨전'이라는 것을 통해 '오천크스'라는 둘의 특징을 지녔지만 전혀 다른 인물을 만들어냈듯이 게로와 요제프의 '합체'는 요르게라는 인물을 만들어 냈다. 정확히 따진다면 게로와 요제프의 수술적 결합은 요제프의 몸을 가진 게로나 게로의 뇌를 가진 요제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요르게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인간 요르게는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게로와 요제프를 정신의 수면 밑으로 가라앉힌 채 이제 자신의 길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의 길동무로 게로와 요제프 수술의 길잡이 의사였던 레나를 택한 건 아주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레나는 요르게에게 있어 모성애와 이성애 모두를 느끼게 하는 대상이다. 요르게라는 인간이 탄생하기까지 일 년 남짓한 짧은 시간동안 항상 곁에서 함께했던 레나의 보살핌은 모성애의 싹이 되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요르게라는 사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또 인정해주는 그녀였기에 요르게는 게로의 처 이본네나 요제프의 여친 리타가 아닌 레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뇌를 가진 사람에게 육체를 선사한 사람이 모든 면에서 구속될 줄 알았던 처음의 생각은 전혀 맞지 않았고, 너무 단순한 판단이었다. 경험의 총체인 사지와 의식을 지배하는 뇌의 결합은 전혀 다른 인물을 탄생시켰고, 그 인물은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 진정 자신을 위한 삶을 찾으려 노력한다. 인간의 손에 의해 탄생된 요르게. 의식의 수면아래 침잠해 있는 게로와 요제프의 무수히 많은 기억과 경험의 산물들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기억, 새로운 경험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길...아직 그의 육체는 충분히 젊고, 그의 뇌 역시 새로운 세포 속에 모든 것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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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 설득의 기술 - 끊임없는 노력이 설득의 달인을 만든다
테리 L. 쇼딘 지음, 어윤금 옮김 / 아인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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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달인을 향하여

학교 수업 중에서 유일하게 발표 위주로 진행되는 과목이 있었다. 조원은 총 4명 이하여야 하고 각 조마다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조원 모두가 자료수집에서 발표까지 참여해야 하는 조금은 까다로운 수업이었다. 발표하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던 내게는 정말 악몽과 같은 과목이었다. 그 수업은 '전필'과목이었기에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고 오로지 철저한 준비, 그것만이 살길이었다. 완벽한 발표가 아닌 망신만 피해보자는 심정으로 정말 많은 시간을 발표준비에 할애했다. 그 학기에 수강하던 다른 과목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오로지 내 머릿속에는 내가 맡은 주제와 그것에 대한 발표 준비뿐이었다. 조교에게 찾아가 자문을 구하는 건 물론 온 도서관을 뒤져가며 준비에 열을 올렸고, 이런저런 질문들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대비책도 세워두었다.

드디어 발표하는 날. 완벽하게 준비했음에도 발표하는 순간 떨리는 마음만은 어쩌지 못했다. 떨림으로 부정확해진 발음은 구석에서 묵묵히 참관하시던 교수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덩달아 작은 실수 몇 가지가 겹치자 교수님의 가공할만한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당연히 나는 한 가지도 대답하지 못했고 멍한 표정의 홍당무 석고상이 되었다.

그 날의 악몽과도 같은 발표는 나에게 희망보다는 절망을 안겨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욱 더 발표를 꺼리게 되었고, 소규모 그룹의 가벼운 발표마저도 부담스럽게 느꼈다. 난로에 덴 후 아무리 추워도 절대 난로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렇게 나는 정면승부 보다는 피하는 승부로 응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모든 생활은 크고 작은 발표 즉, 프리젠테이션을 하게끔 되어있다. 유형의 상품에서 무형의 가치, 투자, 채용에 이르기까지 프레젠테이션은 언어 못지않게 필요한 '도구'가 되었다.

<프레젠테이션 설득의 기술>은 나에게 전환점을 마련해줄 책으로 기대하며 읽었다. 악몽은 떨쳐버리고 더 나은 모습의 나를 만들기 위해 완벽한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기술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정독했다. 일단 풍부한 사례와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프리젠테이션 구성안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이 책이 뭔가를 파는 목적의 세일즈에 좀 더 유리하게 만들어진 책이라 단순히 프리젠테이션 그 자체를 원하는 내게 좀 이질감이 있었지만 저자의 말대로 '팔아야 한다는 것' 자체를 광범위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하게 느낄 필요는 없다고 위안했다.

<프레젠테이션 설득의 기술>에서는 무엇보다도 타인과 잠재고객을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제보제공을 위한 장황한 설명은 일종의 낭비이며 결국 목적달성에 실패하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상황에 맞는 시간배정과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 시의적절한 자료사용 등은 프리젠테이션에 있어서 많이 이들이 실수를 범하는 부분이며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내용전달에 어울리는 목소리, 표현력을 배가시키는 손짓, 상황에 맞는 옷차림도 청자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였다.

악몽이 되었던 그날의 발표는 <프레젠테이션 설득의 기술>을 읽고 난 지금 철저히 해부되어 부족한 부분들을 조목조목 따져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거의 다가 부족한 부분이었지만 적어도 발표준비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점만은 높이 살만 했다. 이제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진정으로 나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또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자세히 배우게 되었다. 끊임없는 노력이 설득의 달인을 만든다는 이 책의 부제처럼 나 역시도 끊임없는 노력만이 의연한 마음으로 강단 위에 우뚝 서게 만드는 거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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