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는 되살아난다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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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마녀는되살아난다 #나카야마시치리 #블루홀6 


* 이번에 블루홀6에서 나온 신작은

시치리 형님의 처녀작인 '마녀는 되살아난다'이다.

마녀와 꼭 붙어다니는 까마귀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책은

첫 문단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 수사 현장에 12년 간 몸담으며

이런 저런 현장들을 봐온 형사마저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처참한 사건 현장.

살점과 뼈만 남은 조각들이 반경 2미터에 걸쳐

흩어져 있는 현장은 셔츠와 스웨터의

잔해마저 없었더라면 시신이라고

유추할 수조차 없었으리라.

성별은 물론이고 나이, 체격 등

모든 것을 판별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토막, 혹은 조각 나있었다.


* 그나마 다행이라면 코트 주머니에서

나온 지갑으로 신원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치과 진료 기록과 대조 후 확인을 거쳐

찢겨진 시신의 남자가 서른 두 살의

기류 다카시라는 남자임을 확인한다.

지갑에는 사원증도 같이 있었는데,

그 곳은 '스턴버그 제약'이라는

독일 소유의 연구소였다.


* 스턴버그 제약은 오래 전부터 이곳에 있었지만

딱히 마을 주민들과 교류도 없었고,

두 달 전에는 폐업까지 했다.

그 길목에서 발견된 연구원의 시체.

폐쇄된 연구소와 주변을 맴도는 까마귀 떼.

여기까지 읽었을 때, 그 음산한 분위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꼭 뭔가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


* 사방을 둘러봐도 음산한 기운만 감도는 가운데

연구소를 중심으로 기류에 대해

파헤치던 마키하타는 최근 고등학생이 벌인

끔찍한 사건의 뒤에 이 연구소가 있음을 알게 된다.


* 고등학생들에게서 나온 '히트'라는 약의 성분.

그리고 마을에서 또 다시 발생한 사건까지.

마키하타는 이 수상한 연구소와

기류를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그 와중에 독자는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다.

바로 와타세 경부와 고테가와!

와타세 경부는 왜인지 조금 더 따뜻한 모습이었고,

고테가와는..... 지금까지 내가 알던 모습이

월등히 성장한 모습이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요놈, 사람 된 거였어.......


* 여기에 시치리 형님의 초기작품이라고 해서

사실 스타일이 그때부터 형성되지 않았으리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왠걸.....

역시나 이 형님은 '반전의 제왕'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분이셨다.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범인의 정체로 나를 놀라게 하더니

그 뒤부터는 느와르 영화 저리가라는 장면들로

후반부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쫄깃함을 선보였다.


* 이 기세를 이어서 후속작인 '히트업'까지

쭉, 빠르게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찢겨진 시신으로 반전을 거쳐 영화로 끝나버린 책.

언제나 느끼지만 나는 어떤 작품을 읽어도

시치리 형님의 팬이 될 수 밖에 없었음을

다시금 확인 할 수 있었다. 


* 출판사 도장깨기 6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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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설 #추리소설 #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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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에, 손을 잡는다
기타가와 에리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빈페이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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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해질녘에손을잡는다 #기타가와에리코 #빈페이지 #협찬도서


* 살면서 마음에 새겨둔 몇 가지 문구가 있다.

그중 하나가

“해 질 녘엔 의자를 사지 마라.

어느 의자에나 앉아도 편안하다.”

라는 말이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대학생 때부터 나는 늘 해 질 녘의 의자를 경계하며 살아왔다.


* 『해 질 녘에, 손을 잡는다』라는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그 문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해 질 녘에 잡은 손은 지쳐서 잡는 손일까,

돌고 돌아 그 시간쯤 다시 만나 잡은 손일까.

그 손을 잡고 둘은 어디로 걸어가는 걸까.

그 궁금증을 안은 채 책을 펼쳤다.


* 음악가를 꿈꾸는 우미노 오토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운명이라고 믿었다.

우연히 부딪혀 뒤바뀐 이어폰,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같은 노래.

누가 봐도 운명 아닌가.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를 보고 환히 웃었고,

그 운명은 단 몇 분 만에 끝나버렸다.


* 그리고 1년 뒤,

그 우연은 다시 반복된다.

이번에는 그녀가 오토의 소중한 멜로디를 구해주었다.

그 뒤 또다시 마주친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옷차림에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있었고,

아슬아슬해 보이던 그녀를 오토가 구해준다.

그리고 그녀가 막 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규슈의 자연을 닮은 여자, 아사기 소라마메.

그녀는 오래도록 마음에 품어온 사람과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연인이었던 쇼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그녀를 단번에 버렸고,

무너진 소라마메를 오토가 붙잡아 준다.


* 오토의 하숙집 주인 교코 씨가

목욕탕에서 쓰러진 여자아이를 주어와

오토 앞에 놓아두었을 때,

나는 확신했다.

이건 운명이다.

우연이 겹치면, 그게 바로 운명이지 뭐.


* 집에 파혼 소식을 알리지 못한 소라마메는

오토와 함께 교코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머문다.

동갑내기 두 사람은

서툰 초등학생처럼 지지고 볶으며 하루를 채워가고,

어느새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조용히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 오토는 음악가의 꿈을 꾸고 있었고,

놀랍게도 소라마메와 만난 이후부터

일은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한다.

한편 소라마메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모른 채

‘성공한 결혼’만을 꿈꾸다 잠시 길을 잃지만

이내 자신의 갈 길을 찾는다.

자신을 버린 엄마와 같은 직업이라 내키지 않았지만,

가슴을 뛰게 한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 그렇게 두 사람은

평범하면서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특별한 일상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꿈이 현실이 될수록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무언가를 만들어 멀리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이는

가까운 사람을 슬프게 한다는 소라마메의 말처럼.


* 늘 티격태격 싸움으로 번지는

오토와 소라마메를 보고 있으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해 질 녘은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가장 경계하던 순간이다.

늘 쓸쓸하고 처연하면서도 평온하다고만 생각했던 그 시간이

이렇게 반짝이며 예쁠 수도 있구나,

내일을 위한 도약이 될 수도 있구나,

이 책을 통해 해 질 녘에 대한

새로운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 엇갈리는 두 사람을 보며

“왜 말을 못 해!” 하고 답답해하다가도

꿈을 향해 질주하는 청년들이 기특해서

결국 웃어버렸다.

두 사람을 보며 해 질 녘도 아닌데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나이의 나는 무엇을 꿈꿨는지.

지나가버린 꿈을 떠올리고,

새로운 꿈을 조심스레 만들어보게 되었다.


* 해 질 녘의 모든 것을 경계하던 나에게

“지쳐서 좀 쉬면 어때,

내일 또 뛰면 되지.”

라고 말해준 책.

방황하는 청춘들,

잠시 쉬어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휴식이 되어줄 이야기였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니,

OTT를 끊고

눈부신 두 사람의 시간을

영상으로도 만나보고 싶어진다.


* 해 질 녘의 의자에 앉아도 괜찮다고,

이 책은 처음으로 말해주었다.

해 질 녘에 멈춰 서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은 의자에 앉아 이 책이 건네는

손을 한 번쯤은 잡아봐도 좋겠다.


@book_emptypage

#잘읽었습니다

#우연한만남 #꿈꾸는 #청년들 #해질녘 #청춘

#청춘소설 #감성소설 #드라마원작 #로맨스소설

#서평 #독서기록 #도서협찬 #신간소설 #꿈을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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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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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나의완벽한장례식 #조현선 #북로망스 #협찬도서

* 북로망스에서 받아본 책이다.
『나의 완벽한 장례식』.
내가 떠난 자리에 슬픔 대신 웃음이 남고,
미련 없이 잘 보냈다는 말이 오가는 장례식.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비슷한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그 궁금증으로 책을 펼쳤다.

* 삼종합병원 매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나희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아가씨다.
홀로 분식집을 운영하며 자신을 키워온 아빠를 위해
대학 등록금만큼은 스스로 마련하고 싶었던 나희는
시급이 센 병원 매점 아르바이트를 선택한다.

* 사장 이미주도 좋은 사람처럼 보였고,
술 취한 손님이 들이닥치는 일도 없어 일은 편했다.
하지만 나희는 일주일 만에 이곳을 그만두기로 마음먹는다.
새벽 2시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손님들 때문이었다.

* 계절에 맞지 않는 두툼한 패딩을 입고
붕대와 소독약을 찾는 청년,
언뜻 보기에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존재들.
나희에게만 보이는 그들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나타났다.

* 퇴사 의사를 밝히자 미주는
10년 전에도 나희와 같은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며
자신은 그런 존재를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귀신은 낮에는 나오지 못할 거라 생각한 나희는
근무 시간을 오후로 바꾸지만,
해질녘이 되면 그들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상한 부탁들을 들고서.

* 10년 전, 먼저 그들을 보았던 수영에게서
사정을 들은 나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가게 문 밑의 작은 문을 열어달라는 것,
잃어버린 물건을 전해달라는 것처럼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사소한 부탁들.
하지만 마지막 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놓고 갈 수 없는 단 하나의 일이었다.

* 나희가 부탁을 들어주고 나면 그들은
후련한 모습으로 그들만의 장례지도사와 함께
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떠난다.
그 뒷모습을 생각하면 씁쓸해지기도 하고,
그들의 부탁을 외면하지 않은
나희에게 고마워지기도 했다.

* 그들은 노인, 청년, 아줌마, 학생,
심지어 강아지까지
삶에 놓아두고 갈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는 생명이라면
어김없이 나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장례식이 되기 위해서는
‘미련’이 없어야겠다고.
그리고 이 ‘미련’이라는 것이
보통은 하지 못한 말,
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도.
이 책은 귀신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미련을 정리하지 못한 마음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 그리고 오래전 묵혀두었던 기억이
또 툭하고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
그때도 어김없이 감기가 폐렴으로 번져
응급실에서 비몽사몽 링거를 맞고 있었다.
응급실엔 나뿐이어서 커튼도 치지 않고
그냥 쟤가 언제 내 몸속으로 다 들어갈까 하며
떨어지는 방울만 세고 있을 때였다.

*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더니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교통사고로 실려 들어왔다.
뚝뚝 떨어지는 피와 분주한 의료진보다
내 눈에 먼저 들어왔던 것은
그 뒤로 들어오는,
머리가 산발한 채 어린 아이를 업고 있는 여성과
그 여성을 부축하고 있는 남성이었다.

* 그리고 곧 그 교통사고 환자는
뒤따라온 남성에게
“아들과 형수를 잘 부탁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 듯 보였다.
형과 여보를 부르며 오열하는 두 사람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란 울 아부지는
바로 나를 강제 입원시켰고,
그 뒤로 그 응급실을 찾지 않았다.
잠깐 차에서 눈 붙이다 온 사이에
딸이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 가끔 살다 보면 나는
그 장면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그 여자는 그 뒤로 어떻게 살았을까,
그 아이는 아빠의 얼굴을 기억이나 할까.
그 환자와의 약속을 그 남성은 지켰을까.
그 남자에게 나희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생각하니
곧 먹먹해졌다.

* 세상에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고마우면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먼 훗날이 되든,
당장 내일이 되든
나는 나의 죽음도
꽃길이길 바라니까.

* 그래서일까. 개인적으로 이 책이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매점에서 일하는 나희와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한 윤성우의 이야기도 더 보고싶고,
미주와 수영의 앞날도 살짝 더 들여다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여운 루비를 잔뜩 보고싶다.


@_book_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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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3 - 박경리 대하소설, 4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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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한하게 토지는 새로운 부가 들어가면

그 처음 반권을 넘기기가 매우 어렵다.

반면에 딱 그 반권을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정말 술술 읽힌다.

이 반권의 수수께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토지13권은 암울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광주학생사건을 시작으로 평사리 아이들이

붙잡히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을 계기로 만고의 역적이 영웅으로

되살아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쓰리다.


* 특히 광주학생사건은 이 일을 계기로

이듬해 3월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학생들의 시위운동이고

3·1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로 벌어진 항일운동이다.

이 학생사건 이후에 윤국이는 크게 방황했다.

방황하는 윤국이의 모습에서 길상이의 어릴 적 모습이

얼핏 보이는 듯해 역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한편, 또 다른 암울한 사건으로는

평사리에서 30여년만에 다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우발적인 범죄지만 정월 초하루에 벌어진 사건은

평사리 주민들에게 큰 충격이며 공포였다.

이 일로 홍이가 다치게 되고, 누군가는 그 옛날

최참판댁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시작은 작은 오해와 말싸움이었으나

이내 큰 사건으로 벌어진 모습에

꽤나 또 마음이 쓰렸다.

이 이야기 또한 전혀 없었던 일, 혹은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 우리 조상들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아리고 아린 마음 뒷편으로 이번 편에서는

감옥으로부터의 해방, 자유를 찾은 명희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그리고 오가타 지로와 조찬하가 얘기하는

조선의 문화와 일본의 문화, 특히 그중에서도

나쓰메를 자주 언급하신 작가님 덕분에

일본 문학이야기가 흥미로웠다.


* 식민지의 나라이나 우리의 온돌을 극찬하는 오가타를 보며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또 한번 감탄했다.

괜히, 나쓰메 소설을 한번 찾아 읽어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고.


* 일본과 조선, 만주와 중국, 러시아까지 오가며

무대가 굉장히 넓은 토지.

가끔은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게 맞나,

내가 작가님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너무 주옥 같은 문장들에

죽기 전에 한번은 전권 필사에 도전해보리라!

하는 막연한 다짐을 할 때도 있다.


* 흔들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도 같이 흔들린다.

토지를 13권까지나 읽었지만 늘 드는 생각은

언제쯤이면 이들이 마음 편히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이다.

역시 해방이 되어야 하나.

속도가 더뎠던 13권이니만큼

다음 14권은 더 수월하게 읽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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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
요기 허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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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세렌디피티 #요기허 #아프로스미디어 #협찬도서


*  아프로스 미디어에서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본 책,

『세렌디피티』.

‘운 좋은 발견’, 혹은 재수 좋게 찾아온

우연한 행운을 뜻하는 말이다.

복권처럼 예상치 못한 행운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지만,

이 소설이 내미는 세계는 제목만큼 반짝이지 않는다.


* 책을 펼치자마자 느껴지는 건 행운이 아니라,

어딘가 깊은 구렁 속을 더듬으며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P시에서 임상 심리 전문가로 일하는 심동만.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인 직업과 일상을 가진 인물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생각보다 훨씬 위태롭다.


* 희귀병인 스틸씨병으로 인한 만성 통증,

그리고 그 병이 남긴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의 상처.

외로움과 고독이 깊어지던 밤,

막내동생처럼 생각하던 미영이

깔아둔 데이트 앱을 열게 된다.

그 이름이 바로 ‘세렌디피티’다.


* 그곳에서 동만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난다.

파병 미군 ‘케니’.

단조롭고 고독한 동만의 일상에

그는 메시지 몇 줄로 온기를 불어넣는다.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 없는 남자였지만,

그가 건네는 ‘사랑’이라는 말 속에서

동만은 오랜만에 자신이 살아 있고,

어딘가에 필요로 되는 존재임을 느낀다.


*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케니의 오랜 친구라는 조니로부터

케니가 작전 중 무장 조직에 납치되었다는 연락이 온다.

몸값으로 요구된 돈은 10만 불.

동만은 망설임 없이 돈을 보낸다.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면서.


* 하지만 일주일 후, 다시 온 연락.

몸값은 50만 불로 뛰어올랐다.

처음 10만 불을 너무 쉽게 보낸 탓일지도 모른다.

조니는 지금 케니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동만뿐이라며 그녀를 압박한다.

당장 마련하기 어려운 거액임에도,

먼 곳에서 고통받고 있을 케니를 떠올리면

동만은 외면할 수 없다.


* 결국 그녀는 직접,

50만 불을 들고 케니가 있다는

무법지대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그곳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 책을 읽는 내내 헛웃음이 났다.

‘저걸 정말 진심으로 믿는다고?’

그것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을 위해,

이런 선택을 한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케니는 비록 인터넷 너머에 있었지만,

그녀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원하던 것을

건네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문득 20대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길에서 번호를 묻던 사람들,

하나같이 “마음에 들어서요”라고 말하던 얼굴들.

‘나를 언제 봤다고?’라는 생각에

나는 단 한 번도 번호를 준 적이 없다.

얼굴을 보고도 믿기 어려운데,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을

대화 몇 번으로 믿어버리는 현실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왔다.


* 최근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캄보디아 사건,

데이트 앱을 이용한 사기와 로맨스 스캠들.

이 책을 읽으며 그 모든 사건들이 겹쳐 떠올랐다.

나는 이런 범죄가 살인만큼이나 나쁘다고 생각한다.

목숨을 빼앗는 대신,

그들은 인간의 가장 아픈 상처를 파고들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무너뜨린다.


*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찾아온 행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외로움이 얼마나 쉽게 함정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누군가의 ‘필요함’이

얼마나 잔인하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믿은 게 문제가 아니다.

믿고 싶을 만큼,

너무 오래 혼자였다는 게 문제였다.

로맨스처럼 시작하지만

읽다 보면 스릴러보다 더 서늘해진다.

이 책이 무서운 이유는

특별한 악인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외로움과 결핍이라는

너무 현실적인 감정을

정확히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소설은

“왜 속았을까”가 아니라

“왜 믿고 싶었을까”를 묻는다.

사랑을 믿고 싶은 사람일수록,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이야기.

『세렌디피티』는

행운의 얼굴을 한 범죄에 대한 이야기이며,

읽고 끝나는 소설이 아니라

읽고 난 뒤에도 계속 남는 경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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