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표본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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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인간표본 #미나토가나에 #북다


* 요즘 책장 파먹기에 맛들려서

이번에도 사놨던 책 중에서 골랐다.

'인간 표본' 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섬뜩한 느낌이 먼저 들었었다.

파트리크 쥐스킨스의 '향수'라는

책이 생각나기도 했다.


* 곤충이나 동물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박제한 것을 인간에게 접목 시키다니.

인간으로 만든 표본은 왜 만들어졌으며,

어떤 형태로 만들어 졌을지 궁금해 하며 책을 펼쳤다.


* 화가인 아버지와 평범한 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사카키 시로.

아버지는 세상과 연을 끊을 목적으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산속으로 가족을

데리고 이주했다.

사카키는 뒷산에서 넘쳐나는 나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비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 채집통 안을 정성을 다해 꾸며도

다음 날이면 나비들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어디서 오싹한 느낌을 받았는지

더 이상 나비들의 무덤을 만들지 못하게 했고,

여기에 도움을 준 것이 화가인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제안으로 나비 표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 처음 아버지와 함께 나비 표본을 만들었을 때

인간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표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버지의 말은 평생에 걸쳐

그를 따라다녔다.

표본을 만들어서는 안 되니까 그림을 그린다는

아버지의 말에 난생 처음으로 전혀 다른 두 가지

작업이 하나로 연결되기도 했다.


* 사카키 시로는 그때부터 매일 나비를 잡아

표본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표본만 만드는 게 아니라

나비의 생태도 조사해 여름방학 자유

탐구 숙제로 제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숙제와 다르게 자신이 만든 표본을

담기 위해 직접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나비를 배치해 자신만의 표본을 만들었다.


*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사와코 씨와

그녀의 딸 루미가 시로의 표본을 보고 극찬했다.

구매하겠다는 제안에 시로는 루미에게 '선물'의

형태로 그 표본을 넘기고,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었다.

이 날을 계기로 시로는 나비 박사로,

루미는 어머니의 길을 따라 화가로 거듭났다.

각자 결혼도 하고 자녀도 생겼다.


* 그러던 어느 날, 루미가 화가로서 시로와

그의 아들 이타루를 초대했다.

이타루는 조부의 능력을 물려받아 그림 솜씨가 뛰어났고,

루미가 연 여름방학 합숙에 가게 되었다.

예전 시로가 살았던 그 집으로.

그리고 시로는 거기서 이타루와 함께

그림 솜씨가 빼어난 다른 소년 다섯 명을 만났고,

이내 그 소년들이 아름다운 나비로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책은 시로를 중심으로 시로의 부모님과 루미의 부모님,

그리고 부모가 된 시로와 루미를 그리고 있었다.

화가로서 각자의 능력이 뛰어났던 1세대 부모님이었지만

미래는 전적으로 자식들에게 맡겼다.

하지만 2세대 시로와 루미는 부모의 능력과

자식의 능력에 질투와 기대를 반복하며

결국 그들의 몸과 마음을 죽이게 된다.


* 적나라하게 서술된 표본 제작 과정은

연구자로서, 예술가로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감정을 죽인 전형적인 싸이코패스의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자신의 가장 소중한 혈육마저 예술의 재료로

전락시키는 광기를 보며 나는 진저리를 칠 수 밖에 없었다.


* 책의 1/3은 사카키 시로의 표본 제작 과정을

그리고 있고, 중간 부분은 사카키 시로의 범행이

밝혀지며 다각도로 그 현상을 분석한 글이 올라온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독자로서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반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을 꼬아서 만든 이야기.


* 작가로 살아온 15년 동안 가장 재미있는

작품을 썼다고 했는데 과연,

마지막까지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었다.

부모와 자식, 특히 부자와 모녀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익숙한 기괴함을 넘어선, 미나토 가나에 만의

색채로 가득한, '고백'보다 더 지독한 소설이었다.


#나비표본 #부모와자식 #광기의예술 #비극적대물림

#잔혹동화 #반전소설추천 #일본미스터리 #심리스릴러 

#책장파먹기 #오늘의독서 #서평기록 #책읽는밤 #독서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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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깃든 산 이야기 이판사판
아사다 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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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신이깃든산이야기 #아사다지로 #북스피어


⭐ 신의 영역이 충만한 공간에서 만나는 이형의 것들


* 추리 소설을 읽어볼까 하다가,

공포 소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뒤에 읽을 추리 소설들이 있어서

중간에 잠깐 쉬어가도 좋을 듯 해서였다.

그렇게 찾은 책이 '신이 깃든 산 이야기'이다.


* 작가가 어린 시절 미타케산에서 들었던

괴담을 가지고 쓴 소설로서

크게 머리맡에서 이모가 들려준 이야기와

피를 타고 내려온 능력으로 인해

'나'가 겪었던 일들을 서술하고 있었다.


* 메이지 시대에 태어나, 어머니와는

모녀처럼 나이 차이가 나는 지토세 이모.

형제가 많았던 이모는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와

여름에 찾아오는 조카와 어린 친척들을 재우기 전에

머리 맡에서 옛날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주로 무서운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써서

한 권으로 묶은 것이 이 책이었다.


* 미타케산 꼭대기 신사에서 신관으로 있는

증조부는 퇴마 능력이 출중했다.

여우 귀신에 씌여서 찾아오는 소녀들을 치료해주기도 하고,

신통한 능력으로 앞 날을 짐작해

불행한 이들을 달래주기도 했다.


* 아들이 없었던 증조부는 데릴 사위를 들여

신관의 업을 잇게 했다.

그 데릴 사위가 '나'의 조부이자,

지토세 이모와 엄마의 아버지이다.

그는 데릴 사위이기 때문에 신통한 능력은 없었다.

그래도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신관으로서 신사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 조부의 하나뿐인 아들이 다음 신관이 되었고,

나에게는 외삼촌이었다.

장수한 증조부, 조부와는 달리 일찍 돌아가신

외삼촌과의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었다.

이렇게 증조부를 비롯한 조부의 이야기는

지토세 이모의 이야기를 통해서,

외삼촌과의 이야기는 본인의 경험을 통해서

서술되는 이야기 구조로 읽다보면

에세이와 공포 소설의 중간쯤 돼 보였다.


* 지토세 이모의 이야기는 여우 귀신부터

붉은 끈으로 이루어진 남녀까지 그 폭이 매우 다양했다.

특히, 시대적 배경에 종종 '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군인들의 이야기도 있었고,

그 유명한 관동대지진 이야기도 있었다.


* 관동대지진에서 '불령 선인' 이라는

껄끄러운 단어를 마주하며 잠시 마음이 무거워 졌으나,

이내 조선인을 향한 또 다른 시선과

지진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그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잘 표현해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 당시에 홀로 비아냥과 조롱을 견디며

그들을 설득하려 했던 단 한 사람의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당시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가슴이 메어지는 아픔이었다.


* 대대로 신관의 집안이다 보니

핏줄을 타고 능력이 전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나' 또한 보여서는 안될 것이 보이기도 하고,

어떠한 예감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보통 사람들 틈에서 사는

그의 이야기는 때로는 처연하게 슬프면서

사무치게 쓸쓸해 보였다.


* 옹기종기 베개에 누워, 눈만 빼꼼 내놓은 채

지토세 이모의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졌다.

분명 너무 따뜻하고 아련한 이미지인데

나는 어째서 이리도 쓸쓸함만 감도는지.

아무래도 지토세 이모의 이야기도,

'나'의 경험에 국한된 이야기도 그들의 가족과

엮여있어 이런 감정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 우리 엄마도 늦둥이 막내 딸이라 큰 이모와

나이 차이가 꽤 많이난다.

덩달아 사촌 오빠들과 엄마는 거의 같이 크다시피 했고,

나는 사촌 오빠들보다 조카들과 나이 차가 더 적다.

신관의 가계도가 우리 집과 닮아 있어

몰입이 더 쉬웠다.

특히 아들만 둘, 셋씩 둔 이모들에게

귀하디 귀한 하나뿐인 여자아이인 나를

아직도 '우리 공주' 라고 부르는

이모가 보고싶으면서, 그 옛날 내가 느꼈던

이모들의 손길이 생각나기도 했다.


* 신의 영역이 충만한 공간에서 만나는

이형의 것들.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떠도는 그들 속에서

자연의 괴이함과 더불어 인간의 마음까지

세밀하게 전해지는 책이었다.


#이모 #머리맡 #이야기 #신관 #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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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 #호러소설 #소설가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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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신
리즈 무어 지음, 소슬기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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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소설 #숲의신 #리즈무어 #은행나무


⭐ 찬란한 여름날의 실종, 맑은 공기 속에서 퍼지는 어두운 심연


* 직전에 짧은 소설을 읽었기에

이번에는 두꺼운 책을 읽기로 했다.

호평이 자자했던 책이라 궁금했던 숲의 신.

700 페이지에 가까운 페이지 안에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지 궁금했다.


* 이야기는 1975년 8월.

유서 깊은 에머슨 캠프에서 일어난 일을

중심으로 그 과거와 현재,

캠프를 소유한 가문을 둘러싼 이야기였다.

에머슨 캠프는 뉴잉글랜드와 맨해튼의 부유한

사람들이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하는 캠프이다.


* 이 캠프에서 바버라라는 소녀가 사라졌다.

하필 그 아이가.

바버라는 캠프와 그 일대 삼림 보호 구역을

소유한 반라 가문의 딸이었다.

현재 대부분의 참가자가 반라 집안의 친구나

지인의 아이들인 이 곳에서,

소리 소문 없이 자신의 침대를 비우고 사라진 아이.


* 반라 가문의 아이가 숲에서 사라진 것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캠프 일대는 발칵 뒤집혔다.

14년 전, 바버라가 태어나기도 전에

실종되었던 그녀의 오빠 '베어'의

기억이 악몽처럼 되살아난 것이다.


* 캠프 지도교사인 루이즈는 바버라가 사라진 날,

자리를 비웠지만 책임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상황은 루이즈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베어가 사라질 당시

체포 되었던 연쇄 살인범 제이컵 슬루터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바버라가 사라진 지금 그는 탈옥한 상태였다.


* 바버라의 실종으로 캠프는 일주일 먼저 끝나게 됐다.

형사들이 투입 됐고, 바버라와 친하게 지냈던

트레이시를 통해 바버라의 '남자친구'에 대해 듣게 된다.

그리고 독자는 현재 루이즈와 형사 유디타, 트레이시를 비롯해

반라 가문의 안주인 앨리스, 살인범 슬루터의

이야기를 통해 숲이 지키고 있던 비밀의 조각을 맞춰보게 된다.


* 책을 읽으면서 내내 '반라 가문'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베어가 사라진 당시에도 현재에도

아버지인 피터 3세의 속내는 나오지 않아

그저 궁금해하고, 추측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단 한 챕터라도 피터 3세의 이야기가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200페이지에 이르면 내려놓기 힘들다는

스티븐 킹의 말처럼, 이 책은 처음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맑은 공기 속에서 퍼지는 어두운 심연,

그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숲의 모습에

나는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귓가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반면에

소외되고, 한편으로는 불안해 하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 이야기가 계속 될수록 윤곽은 잡히지만

끝내 아무도 믿지 않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다층적인 시점의 변화 속에서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서

바버라가 느꼈을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부자와 부자를 바라보는 시선,

그들에게 기대서 살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

여성에 대한 혐오 시선과 진취적인 여성을

어떻게 평가하는 지에 대해서도 잘 볼 수 있는 책이었다.


* 책을 덮고 보니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 보다

사건 이후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욕망과

기득권의 안위만이 남았다.

여름날의 찬란한 햇빛보다는 태풍에 휘몰아치는

나무들을 마주한 듯한 기분이다.

뼛속까지 시리게 하는 서늘함 속에서도,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나서는 용기 있고

따뜻한 인간의 온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에머슨캠프 #반라가문 #사라진아이 #실종

#여름 #비밀 #조각 #어두운 #심연

#연쇄살인범 #탈옥 #과거 #연결

#독서일지 #오늘의책 #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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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5 - 박경리 대하소설, 4부 3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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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 14권이 생각보다 더디게 읽어지고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음에 좌절했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펼쳐본 15권은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수월하게 읽혔다.


* 백성들이 느끼기에 추상적으로만 생각되었던

가정부의 모습을 드러냈다.

친일파의 집에 가서 돈을 훔친 그들의 행동에

모두들 쉬쉬하면서도 눈짓으로

이야기들을 옮겨갔다.


* 국내 중국인 학살이라는 비극을 낳았던

만보산 사건도 다루었다.

중국에서, 일본에서 이중으로 고통 받던

백성들은 한 언론의 오보로 인해

그 분노를 표출해냈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이 되어 돌아왔다.


* 한편으로는 4000만이 넘는 중국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 윤봉길이 해냈다는

장제스의 극찬이 있었던 홍커우 공원

폭탄 투척 사건도 이야기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선인.

독립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그들은 해냈다.


* 이후, 시간은 흐르고 흘러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 벌어진다.

난징대학살로 유명한 그날의 참극도 이야기 되고,

조선 청년들을 징집한 이야기도 나온다.

일본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전쟁도 나왔는데

크게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의 민초들은 어떠했나.

살림살이는 더러 나아졌을지언정,

늘 불안을 머리에 이고 지는 사람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자신의 생각들을 펼치지만

과도한 의견은 대립이 되었다.


*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했던 젊은 남녀는

결국 다시는 만나지 못할 운명이 되었고,

그들의 결실은 다른 이가 맡아주게 되었다.


* 길상과 두 아들이 함께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장성한 두 아들과  함께 지내는 길상과

아버지의 과거를 생각하면서도

아버지가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들이었다.


* 용정으로 간 홍이는 공노인의 유산을 받아

신경으로 넘어가 공장을 차렸다.

보연과의 사이도 원만하였고,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런데, 그 애미에 그 딸이라고

홍이에게 빌붙기 위해 찾아온 임이.


* 노파가 다 된 모습이었으나

짠한 구석 하나 없이 입에서는 또 쌍욕과 함께

뒷목을 잡게 하는 언행들이었다.

부디 홍이가 마음 단디 묵어서

임이 요 요망한 것에게 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이야기는 어느덧 1930년대 후반을 지나고 있다.

이제 토지는 마지막 5부 다섯 권만 남았다.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 했는데

어느 새 마지막이 닥쳐오니

오래된 인연들과 이별을 하는 기분이다.


* 역사가 스포라고, 이미 알고 있는 사건들을

만나게 되면 내심 반갑다.

그 일들을 이야기하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마지막 남은 5부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그들의 삶에서 사건이 될지.

최대한 빠르게 만나야겠다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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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누이, 다경
서미애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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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여우누이다경 #서미애 #한끼


⭐ 가족의 틈 사이로 들어온 트로이 목마


* 오랜만에 한국 소설이 읽고 싶었다.

평소처럼 호흡이 긴 글이 아닌,

300페이지 안쪽의 속도감 있는 이야기가 그리웠다.

처음에는 사극 로맨스를 뒤졌으나

하나같이 두께가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르다 운명처럼 만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 '여우 누이' 설화는 익히 알고 있다.

간절한 기도 끝에 태어난 귀한 딸이

가축들을 죽이고, 결국 오라비가 던진

호리병에 최후를 맞이하는 이야기.

그렇다면 현대판 변주곡인 <여우 누이, 다경>은

이 고전 설화와 얼마나 닮아 있고,

또 어디서 궤를 달리할까?


* 책은 첫 문단부터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예고 없이 벌컥 열린 문, 자신의 공간을

침범당했다는 큰아들 민규의 짜증과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엄마.

어쩜 엄마들의 모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토록 닮아 있을까.


* 민규와 엄마 세라의 다툼도 잠시,

가족은 아빠 정환의 절친인

경호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넋이 나간

아빠도 걱정이었지만,

민규는 홀로 남겨진 경호의 딸

다경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천애고아가 된

다경 주변에는 위로 대신 유산 이야기만 속삭이는 친척들뿐이었다.


* 결국 다경은 '당분간'이라는 전제하에

정환의 집에 들어오게 된다.

둘째 선규는 상의도 없이 자신의 방을 내준

엄마에게 분노하지만, 자신의 짜증 때문에

다경이 울었다는 소식에 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딸 없는 집에 딸 같은 존재가 생긴 세라,

친구의 딸을 거두었으나 묘한 불편함을 느끼는 정환.

그렇게 다경은 한 가족 사이에 스며든

'트로이 목마'가 되어 조용히 그들을 파멸로 이끈다.


* 각 인물의 시점이 교차하며 서술되는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뚜렷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지 않는다.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가해자가, 또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

다경의 행동 역시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벌'이자 '복수'라는 측면에서

권선징악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행보가 전적으로

정의롭다고 단언하기엔 무리가 있다.


* 다경이 가족을 박살 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집에는 그녀가 오기 전부터

보이지 않는 틈과 상처들이 존재했다.

한솥밥을 먹는 가족임에도 부모와 자식,

부부 사이에 숨겨진 갈등은 깊었고,

다경은 그저 그 틈을 정교하게 파고들었을 뿐이다.

다만 빠른 전개 탓에 장면 전환이

다소 급격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특히 민규의 병원 장면 전에 서사를

쌓아줄 에피소드 하나만 더 있었다면 완벽했을 것 같다.


* 설화의 현대적 해석이면서 동시에

전혀 색다른 여우 누이의 탄생이다.

피 튀기는 묘사 없이 말과 행동만으로

서늘한 공포를 선사한다.

가장 현실적인 여우 누이의 모습을 통해,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여우

한 마리씩은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아빠친구 #아친딸 #여우 #누이 #다경

#전래동화 #복수 #트로이 #트로이목마

#설화 #가족 #틈 #여우누이 #변주곡

#독서일지 #독서기록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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