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처럼 붉은색 2
강미강 지음 / 청어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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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배롱나무처럼붉은색 #강미강 #청어람

* 바로 이어 읽어본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2권.
흐뭇하게 지켜보던 개차반 세자와
오만방자한 의녀의 내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 신비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기로 마음먹은 날,
왕은 갑작스레 자리 보전하며 눕게 되고
세자는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이어 왕은 오래전부터 점찍어 둔 세자빈이 있다며,
자신만의 ‘삼간택’을 통과한 인물의
기량이 예상을 뛰어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감이 왔다.
왕이 점찍은 세자빈이 누구인지.

* 결국 왕은 일어나지 못한 채 승하하고,
세자는 자연스레 보위를 물려받는다.
선왕의 마지막 날 약을 올렸던 신비는
어쩔 수 없이 궁을 떠나게 된다.
아니, 사람 목숨이야 하늘에 달린 걸 어쩌라고요.
아무튼 꼰대들.

*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은,
그날 끝내 닿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주한다.
신비는 자신의 이름과 태생,
그리고 지금의 자신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담담히 꺼내놓는다.
그 고백은 한 사람의 과거를 넘어,
이 관계 전체의 방향을 바꾸는 열쇠처럼 느껴진다.

*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왕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던 어머니, 폐비 연씨가 있었다.
아비의 말만 믿고 자신을 버렸다고 여겼던 어머니.
오해와 단절, 그리고 너무 늦게 마주한 진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가 믿어왔던 세계는 조용히 무너진다.

* 신비는 그가 성군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처방을 내밀었지만, 그 처방을 받아든 병자는
그것을 독으로 받아들였다.
선왕이 가장 아끼던 것을 스스로
망가뜨리며 자멸해가는 왕.
신비를 위한다면서도 신비가 살아온 길을 부정하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어머니를 몰아붙이던
아비의 모습을 닮아버린 그를 보며,
신비는 난생 처음으로 병자를 포기하고 궁을 떠난다.

* 그의 선택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지만,
그 선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분명히 보였다.
붙잡지도, 매달리지도 못한 채 남겨진
왕은 점점 폭군이 되어간다.
피로 궁을 물들이며 그는 왕이 아니라 상처
그 자체가 된 인간처럼 변해간다.
먹고 마시고, 어머니의 품을 흉내 낸 이를 곁에 두면서도,
신비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 모순된 모습이 오히려 더 참혹하게 다가온다.

* 그리고 이쯤에서야 확신했다.
이 이야기가 연산군과 폐비 신씨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것을.
1권부터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휘와 생모가 달라 ‘아닌가?’ 싶었다가,
폭군이 되어 하는 일을 보며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이 작품은 연산군을 그대로 다시 쓰는 이야기가 아니라,
연산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가능성을 묻는 이야기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잔인하다.

* 과거 신비가 받았던 복숭아와,
그것을 건넨 사람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객관적으로 보면 극적인 장면은 아니었지만,
복숭아를 받았으니 오얏으로 갚겠다는
신비의 마음을 끝내 알아주지 못한
왕의 어리석음이 가슴을 후벼 팠다.
나 역시 신비와 함께 마음고생을 한 기분이었다.

* 지 멋대로 ‘삼간택’이라며 시험을 내린 선왕을 보며,
궁에서 난 사내들은 하나같이 다 미친 게 아닐까 싶었다.
상대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은 채,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선택을 정당화하는 모습이 씁쓸했다.

* 보통 연산군 서사는 생모인
폐비 윤씨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이 작품은 그의 배필이었던
폐비 신씨와의 관계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 덕분에 이 이야기는 정치보다 사랑을,
광기보다 선택의 순간을 오래 붙잡는다.
‘그때 조금만 다른 결정을 했다면.’
그 생각이 끝까지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 1권에서는 흐뭇해서 배알 꼴리게 하더니,
2권에서는 눈물과 콧물을 쏙 빼놓으며 진을 다 빼놓는다.
사극 로맨스를 기대하고 펼쳤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이 사랑은 마냥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병자의 징그러운 상처도 보듬어주는 신비처럼,
고통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고 짠하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오래 남는다.
한겨울인데도, 붉은 배롱나무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삼간택 #과거 #연산군 #폐비신씨 #광기 #폭군
#로맨스소설 #시대극 #로코 #조선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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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처럼 붉은색 1
강미강 지음 / 청어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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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배롱나무처럼붉은색 #강미강 #청어람

* 오랜만에 애틋한 로맨스가 읽고 싶어
늘 그랬듯 제목과 표지만 보고 주문한 책.
그런데 받아보니, 어머나.
〈옷 소매 붉은 끝동〉을 쓴 작가님의 신작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붉은색’이 들어간 제목.
이번 작품의 붉음은 배롱나무,
즉 백일홍에서 비롯된 듯하다.
또 어떤 절절한 사랑을 보여주실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 여인들이 아파도 남성 의원의 치료를
거부하다 병을 키우는 일이 잦아지자,
평민이나 천인 중에서 선발된 의녀들이 등장한다.
이제 막 간병의녀가 된 신비에게는
살면서 몇 번 오지 않을 기회가 찾아온다.

* 내의녀 자희가 건넨, 믿기 힘들 만큼 좋은 기회.
얼마 전 낙마로 두 다리가 부러지고
오른손조차 쓰지 못하는
세자의 간병의녀가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자희의 말이 자꾸만 약장수가 치는 대사처럼 들린다.

* 신비는 동궁전에 들어가 세자와 대면하는 순간 깨닫는다.
자희가 정말로 ‘약을 팔았다’는 사실을.
동궁전의 세자는 병자가 맞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개차반 같은 성격이었다.
툭하면 나가라, 꺼지라 하고
툭하면 애써 달인 약을 엎어버리며
툭하면 문을 걸어잠근다.

* 신비는 이를 병자가 부리는 짜증이라
여기며 묵묵히 받아낸다.
그리고 세자의 틈바구니에 비집고
들어갈 방법을 궁리한다.
조각 같은 외모에 처음으로 미소가 번진 날,
세자는 신비가 준 약을 마신다.
침도 싫다, 약도 싫다, 밥도 싫다.
늘 ‘싫다’와 ‘안 한다’뿐이던 세자의 고집을 꺾은 신비에게
모든 이들의 기대가 쏠리고,
왕은 그 노고를 치하해 상까지 내린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직감했다.
세자는 이미 신비에게 마음이 있다!
얼레리꼴레리~!!!

* 신비가 세자를 움직인 비결은 다름 아닌 오만방자함이었다.
나가라 하면 버티고, 꺼지라 하면 다음 날 또 나타난다.
약을 엎으면 더 넉넉히 준비하고,
문을 잠그면 어떻게든 다시 자신을 보게 만든다.
그렇게 세자는 신비에게 곁을 허락하고,
신비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간병을 이어간다.

* 그러던 어느 날, 신비는 원치 않은 내기를 하게 된다.
신씨 성의 관비라는 뜻으로 불리다
그 이름이 그대로 굳어버린 사정을 알게 된 세자는
신비에게 진짜 이름을 알려달라고 한다.
대신 자신 역시 ‘이운’이라는, 휘가 아닌
진짜 이름을 내놓겠다고 제안한다.

* 신비는 이 제안을 기회로 만든다.
동궁전 앞뜰의 배롱나무 가지를 꺾어 화분에 옮겨 심고,
첫 꽃이 필 때까지 세자가 오른손을 움직이면 세자의 승리,
그렇지 않으면 패배로 하자는 내기였다.
이 내기는 ‘보통의 사내로 살길 바라는’
왕이 지켜보는 앞에서 맺어진다.

* 사실 두 사람에게는 진짜 이름 말고도 숨겨진 비밀이 있다.
세자는 정통성이 부여된 다음 왕이지만,
그 안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어린 아이가 있을 뿐이다.
늘 성취보다 포기가 빨랐던 아이,
아이인 채로 몸만 자라버린 사내가
빛과도 같은 여인을 만난다.

* 신비 역시 관비가 되기 전의 이력을
아무도 알 수 없는 여인이다.
과거는 지워졌지만,
복숭아를 받았으니 오얏으로 갚아야 한다며
왕이 내린 면천의 기회조차 거절하고 세자의 곁에 남는다.
자신의 장점을 ‘붙임성이 좋고, 잘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
왕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여인.
자신이 빚어낸 한 줌의 빛이라도
세자에게 내어주겠다는 여인이
어린 아이를 품은 사내를 만난 것이다.

* 세자와 신비의 티키타카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광대가 승천해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건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들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신비가 숨긴 과거는 대략 짐작이 가지만,
정확한 이야기는 2권에서 확인해야 할 듯하다.

* 의녀는 여인의 치료를 돕는 존재였지만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다.
연회의 흥을 돋우기 위해 불려가고,
궁녀가 죄를 지으면 체포 역할을 맡으며,
여인으로서 남성과 접촉한다는 이유로
추잡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 세자와 신비의 티키타카와 로맨스뿐 아니라
이러한 역사 속 의녀의 처지,
궁중 암투,
가족이면서도 가족이 될 수 없는
왕과 세자의 관계까지—
볼거리가 풍부한 작품이다.
이제, 빨리 2권을 보러 갈 차례다.

#배롱나무 #백일홍 #세자 #사극 #로맨스
#의녀 #내기 #로코 #로맨스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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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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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그리고밤은되살아난다 #하라료 #비채

* 작년에 비채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만났던 작품들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캐릭터들이 있다.
해리 홀레와 탐정 사와자키.
이 인물들을 사랑하게 된 탓에 결국 정주행을 결심했고,
해리 홀레 시리즈는 어느새 3권까지 읽었다.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다음 책을 언제 펼칠지 고민하던 중,
비채에서 원하는 책 두 권을 골라 선물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내가 죽인 소녀』와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를 선택했고,
그렇게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꺼내 들었다.
『안녕, 긴 잠이여』 이후 약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사와자키였다.

* 가을도 저물어가던 어느 날 오전 10시쯤,
사무실로 들어서는 사와자키 앞에
카키색 코트를 입은 정체불명의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르포라이터 사에키라는 인물과
급히 만나야 한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곧이어 걸려온 전화에서는
유명한 미술 평론가 사라시나 슈조가
사에키 나오키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한다.
하루 사이 같은 이름으로 들어온 두 건의 문의.
사와자키는 이 사건을 외면할 수 없게 된다.

* 사라시나의 집에서 알게 된 사실은 간단하지 않았다.
사에키는 행방불명 상태였고,
그날 밤 아내 나오코와 이혼을 앞두고 있었으며
위자료로 거액을 받을 예정이었다.
게다가 그날의 달력에는
사와자키의 이름과 탐정사무소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남편을 완전히 미워하지는 못한 나오코는
사와자키에게 사에키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 조사를 이어가던 사와자키는
사에키의 집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경찰의 시신을 발견하고,
사건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는 인물이 가이후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그는
본명도, 과거도, 기억도 없는 ‘무(無)의 남자’였다.
모종의 사고로 모든 기억을 잃은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 가이후를 돌봐주던 여성의 증언에 따르면
그와 사에키는 ‘협력자’ 관계였다.
사라진 르포라이터와 기억을 잃은 남자의 접점을 좇던 사와자키는
이 사건이 당시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던
도쿄 도지사 저격 사건과 맞닿아 있음을 알아낸다.

* 이 작품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사건의 진실보다도 그 진실을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과 선택에 있었다.
기억을 잃은 가이후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지만,
그 공백 자체가 하나의 진실처럼 느껴진다.
기억이 없다는 것은 과연 무죄일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책임일까.
작품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은 채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 사와자키라는 탐정의 매력 역시 여기에 있다.
그는 모든 것을 꿰뚫는 천재도,
차갑게 정의를 집행하는 인물도 아니다.
다만 눈앞의 사람과 사건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을 뿐이다.
느릿하지만 집요한 그의 추적은
이야기를 가장 인간적인 방향으로 이끈다.

* 마지막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읽는 내내 ‘이게 정말 80년대 작품이라고?’
싶을 정도로 지금의 사회와도 맞닿아 있는 주제들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플롯은 촘촘하게 짜여 있고,
탐정 사와자키라는 캐릭터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등장인물들 각자의 개성과
곳곳에 스며든 유머, 그 케미스트리는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권력, 진실, 언론, 그리고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선택.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질문들이
이 작품을 여전히 현재형으로 만든다.

*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사와자키의 뒷모습이 오래 남았다.
사와자키는 늘 그렇듯 아무 말 없이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독자는 알고 있다.
이 사건이 끝났다고 해서
이야기까지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음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느껴진다.

#사와자키시리즈 #탐정 #탐정사무소
#협력자 #저격 #행방불명 #납치 #기억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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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을 팝니다
고요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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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내남편을팝니다 #고요한 #나무옆의자

* 고요한 작가님의 책 제목을
볼 때마다 든 생각이 있다.
어쩜 이렇게 아줌마들 마음을 정확히 짚어낼까.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도 그랬고,
이번 신작 『내 남편을 팝니다』는 제목만으로도
결혼 생활을 해본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법한 생각을 그대로 꺼내놓는다.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는 장바구니에만
담아둔 채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번 신작은 망설임 없이 결제했다.
마침 한국 소설이 읽고 싶던 타이밍이기도 했다.

* 책을 들고 거실로 나가자 제목을 본 남편이 흠칫 놀란다.
“왜 쫄아?” 하고 물으니 떨리는 목소리로
“나… 팔려가?”라고 묻는다.
“응.”이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 얼마에 팔렸는지 읽어보고 생각해 볼게.”
라고 말하고 책을 펼쳤다.
근데… 너 왜 갑자기 설거지하러 가?

* 해리는 명함에 적힌 알파벳을 주소창에 입력하고
남편을 파는 '비밀 클럽’에 가입한다.
백화점에서 우연히 들은 “니 남편도 팔아버려”라는
한마디가 계속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해리가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문틈으로 건네진 명함 한 장이 부부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

* 가입비 50만 원을 내고 비밀 클럽에 입장한 해리.
남편 마틴은 처음엔 자신을 판다는 말을
농담으로 여겼지만, 휴대폰 화면을 보는 순간 소리를 빼액 지른다.
“저 여자들 미친 거 아니야?”
하지만 어차피 이혼할 사이,
위자료 한 푼 못 받고 개털 되느니
마틴이라도 팔아 본전을 찾자는 해리의 말과,
그 돈의 절반을 나누겠다는 제안에 결국 마틴도 동의하게 된다.

* 클럽에 들어가자마자 도로시라는 인물이 접근하지만,
이건 해리가 생각한 ‘판매’와는 달랐다.
미친 사람에게 잘못 걸렸다고 생각하며
화를 누른 해리는 이번엔 제대로 제목을 달아 글을 올린다.
〈내 남편을 팝니다〉.
마틴의 정보를 적자마자 “사고 싶다”는 댓글이 달린다.
상도덕을 무시하던 해리는 경고를 받은 끝에,
비밀 클럽을 만든 유 회장을 회유해 마틴을 파는 경매를 열게 된다.
이제 남은 건 마틴의 몸값을 올리는 일뿐이다.

*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은 연령도, 직업도 제각각이다.
장소를 제공한 카미유, 압구정, 루비통과 선글라스,
그리고 죽지도 않고 돌아온 도로시도 한참 뒤에 또 나타난다.
각자가 마틴을 사려는 이유도 모두 다르다.
겉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들이지만,
한 꺼풀 더 들어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면
“아,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 마틴은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자였다가,
순식간에 여러 여자들이 거액을 주고도
사지 못해 안달하는 남자가 된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 결혼 생활을 강물에 띄운 종이배에 비유한
장면도 인상 깊었고, 각자가 가진 사연들 역시
고개만 돌리면 마주칠 법한 이야기라 무척 현실적이다.
거기에 압구정 할매의 입담으로 유머까지 챙겼다.

* 나는 부부란 ‘가장 가까운 타인’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유일하게 혈연이 아닌,
오롯이 선택으로 맺어진 관계.
그래서 나는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는다.
어떤 방식이든.
그렇기에 마지막에 해리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저 천하의 나쁜 X…” 하고 욕이 튀어나왔다.
지켜야 할 건 지켜야지!
너 그러다 벌 받는다!!

* 욕하면서 책을 덮자,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쪼르르 달려와 또 묻는다.
그래서 자기는 팔려가냐고.
“로또 1등 금액이면 팔아볼까 했는데,
그 절반도 안 돼. 안 팔래.”
그랬더니 갑자기 엄청 신이 나서,
다음엔 마곡 갈 때 퇴근하고 데리러 오겠단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오는데만 두 시간이라고 싫다며.

* 괜히 궁금해져서 나도 물어봤다.
“오빠는 누가 나 팔라 그러면 팔 거야?”
그랬더니 생각도 안 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 너 팔려면 돈 주고 팔아야 돼.”

* 잠깐만…
당근마켓 앱, 내가 어디에 넣어놨더라……?

#비밀클럽 #경매 #속사정#가장가까운타인
#한국소설추천 #당근 #부부 #현실 #토크
#블랙코미디 #설거지 #유발 #도서 #현실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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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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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소설 #초크맨 #cj튜더 #다산책방

* 집에서 마곡까지 왕복 약 5시간.
나가면서 무슨 책을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초크맨』을 집어 들었다.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틈틈이 읽다 보니
길바닥에서 또 이렇게 한 권을 끝냈다.

* 에디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네 명의 친구가 있다.
뚱뚱이 개브, 메탈 미키, 호포, 니키.
모두 별명이 있지만 니키에게만 별명이 없다.
아무리 아닌 척 애를 써도 여자애이기 때문이다.
1986년, 열두 살의 그들은 매주 토요일에 만나
서로의 집에 번갈아 놀러 가거나,
놀이터에 가거나, 가끔은 숲에서 놀았다.

* 하지만 그 일이 있던 그날에는 축제가 있었다.
그 축제에서 에디는 새로 올 예정이던
선생님 핼로런과 함께 심하게 다친 댄싱걸을 치료해
마을의 영웅이 된다.
그 이후 에디는 핼로런에게
알 수 없는 내적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 사이엔 일련의 사건들이 있긴 했지만.

* 핼로런은 에디에게
예전에 친구들과 했던 작은 규칙을 알려주고,
에디는 그 놀이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그대로 옮긴다.

* 그 놀이는 그들만의 규칙, 그들만의 비밀 언어였다.
초크로 그린 그림.
길 위에 남긴 단순한 그림들은
서로를 부르는 신호가 되고,
비밀 장소로 안내하는 암호가 된다.

*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은 초크 그림을 따라간 끝에서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다.
그날 이후, 아이들의 여름은 끝났고
각자의 삶은 서서히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 30년 후, 성인이 된 에디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편지가 도착한다.
봉투 안에는 단 하나의 그림—
초크로 그린 사람 형상이 있었다.
그 그림을 시작으로
과거에 묻어두었던 사건과 기억들이
하나씩 현재로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 아이였기에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외면해 왔던 선택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된다.

* 『초크맨』은
어린 시절의 장난이 어떻게 비극으로 변하는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따라간다.

* 1986년, 열두 살의 에디와
2016년, 마흔두 살의 에디를 번갈아 보여주는 서술은
그날의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고,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보게 한다.
장난처럼 시작했던 초크 그림은
어느 순간부터 신호가 되고, 암호가 되고,
결국 피할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장면들이
뒤로 갈수록 의미를 바꿔 돌아올 때,
이 소설은 조용히 독자의 발목을 잡는다.

*C.J. 튜더는 공포를 크게 키우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틈,
아이들 사이의 미묘한 권력 관계,
어른들의 무심함 같은 것들을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쌓아 올린다.
그래서 더 불편하고, 더 현실적이다.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한 이유다.

* 요양원 할매가 그렇게 힌트를 주는데도
끝까지 못 알아먹는 에디를 보며
답답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각해 봤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라면, 그 할매 말을 온전히 다 믿을 수 있었을까.

* 『초크맨』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우리가 쉽게 외면해 온
과거와 책임에 대한 이야기다.

* 장난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아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아이들을
끝내 멈추지 못한 어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꿉친구 #비밀언어 #분필 #댄싱걸

#추리소설 #암호 #돌아온 #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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