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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전면개정판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평점 :

#일본소설 #그리고밤은되살아난다 #하라료 #비채
* 작년에 비채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만났던 작품들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캐릭터들이 있다.
해리 홀레와 탐정 사와자키.
이 인물들을 사랑하게 된 탓에 결국 정주행을 결심했고,
해리 홀레 시리즈는 어느새 3권까지 읽었다.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다음 책을 언제 펼칠지 고민하던 중,
비채에서 원하는 책 두 권을 골라 선물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내가 죽인 소녀』와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를 선택했고,
그렇게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꺼내 들었다.
『안녕, 긴 잠이여』 이후 약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사와자키였다.
* 가을도 저물어가던 어느 날 오전 10시쯤,
사무실로 들어서는 사와자키 앞에
카키색 코트를 입은 정체불명의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르포라이터 사에키라는 인물과
급히 만나야 한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곧이어 걸려온 전화에서는
유명한 미술 평론가 사라시나 슈조가
사에키 나오키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한다.
하루 사이 같은 이름으로 들어온 두 건의 문의.
사와자키는 이 사건을 외면할 수 없게 된다.
* 사라시나의 집에서 알게 된 사실은 간단하지 않았다.
사에키는 행방불명 상태였고,
그날 밤 아내 나오코와 이혼을 앞두고 있었으며
위자료로 거액을 받을 예정이었다.
게다가 그날의 달력에는
사와자키의 이름과 탐정사무소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남편을 완전히 미워하지는 못한 나오코는
사와자키에게 사에키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 조사를 이어가던 사와자키는
사에키의 집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경찰의 시신을 발견하고,
사건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는 인물이 가이후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그는
본명도, 과거도, 기억도 없는 ‘무(無)의 남자’였다.
모종의 사고로 모든 기억을 잃은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 가이후를 돌봐주던 여성의 증언에 따르면
그와 사에키는 ‘협력자’ 관계였다.
사라진 르포라이터와 기억을 잃은 남자의 접점을 좇던 사와자키는
이 사건이 당시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던
도쿄 도지사 저격 사건과 맞닿아 있음을 알아낸다.
* 이 작품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사건의 진실보다도 그 진실을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과 선택에 있었다.
기억을 잃은 가이후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지만,
그 공백 자체가 하나의 진실처럼 느껴진다.
기억이 없다는 것은 과연 무죄일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책임일까.
작품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은 채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 사와자키라는 탐정의 매력 역시 여기에 있다.
그는 모든 것을 꿰뚫는 천재도,
차갑게 정의를 집행하는 인물도 아니다.
다만 눈앞의 사람과 사건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을 뿐이다.
느릿하지만 집요한 그의 추적은
이야기를 가장 인간적인 방향으로 이끈다.
* 마지막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읽는 내내 ‘이게 정말 80년대 작품이라고?’
싶을 정도로 지금의 사회와도 맞닿아 있는 주제들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플롯은 촘촘하게 짜여 있고,
탐정 사와자키라는 캐릭터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등장인물들 각자의 개성과
곳곳에 스며든 유머, 그 케미스트리는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권력, 진실, 언론, 그리고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선택.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질문들이
이 작품을 여전히 현재형으로 만든다.
*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사와자키의 뒷모습이 오래 남았다.
사와자키는 늘 그렇듯 아무 말 없이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독자는 알고 있다.
이 사건이 끝났다고 해서
이야기까지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음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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