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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브레스트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평점 :

#레드브레스트 #요네스뵈 #비채
* 드디어 읽은 해리 홀레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레드브레스트』.
688페이지라는, 들고 읽기에도
만만치 않은 두께지만 붉은 표지와
다시 만나게 된 해리는 그 자체로 설렘이었다.
우리 해리는 이번에는 또 어떤 개고생을 하게 될까.
* 1999년, 미국 대통령의 방문으로
파트너 엘렌과 함께 경호 임무를 맡았던
해리는 불미스럽지만 ‘영웅이 되어야 했던’ 사건 이후,
윗선의 뜻에 따라 경위로 승진한다.
승진과 동시에 소속은 경찰청에서
국가정보원으로 옮겨지고, 엘렌과도 헤어지게 된다.
* 만들어진 영웅이었기에, 그들이 말하는
‘비밀 작전’은 그저 눈속임처럼 보였다.
독립기념일을 한참 앞둔 시점,
해리가 신나치주의자들과 독립기념일 계획에
대해 상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매르클린 라이플의 탄약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 매르클린 라이플은 독일에서 생산된
반자동 사냥용 총으로, 최강의 살인 무기로도
이용될 수 있는 암살 무기다.
총기 등록부에도 기록되지 않은 채,
수입업자도 없이 밀반입된 총.
대체 누가, 왜, 하필 독립기념일을 한참 앞둔
이 시점에 이 총을 오슬로로 들여온 것일까.
* 한편 현재의 해리 이야기와 더불어,
소설은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특히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쟁 상황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서사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이 작품의 핵심이다.
* 1940년대 레닌그라드의 전쟁은 끝났지만,
그곳에서 태어난 증오와 신념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나치주의는 패배했으나,
사상은 살아남아 형태만 바꾼 채 현재로 흘러들어온다.
‘레드브레스트’는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총알 하나에 담긴 것은 단순한 살의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부패하지 않은 증오였다.
* ‘레드브레스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건의 스케일보다, 그 사건을 통과하며
무너져 가는 해리 홀레의 상태다.
늘 외로운 인물이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 고독이 유난히 선명하다.
엘렌과의 이별, 만들어진 영웅이라는 허울,
그리고 국가정보원이라는 낯선 조직 속에서
해리는 점점 더 고립된다.
영웅이 되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그는 여전히 진실 앞에 혼자 서 있다.
* 해리는 과거를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개인의 상처든, 국가가 숨기고 싶어 하는 역사든
그는 끝까지 파고든다. 그 집요함은 정의감이라기보다,
스스로를 놓아주지 못하는 자기 처벌에 가깝다.
그래서 그의 수사는 언제나 고통스럽고,
그만큼 날것의 진실에 닿아 있다.
해리는 진실을 밝히는 대가로 늘 관계를 잃고,
신뢰를 잃고, 자신을 조금씩 소모한다.
*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나치주의와 신나치주의는
단순한 악의 상징이 아니다.
패배한 사상은 사라지지 않고,
피해의식과 분노를 먹고 자라 현재로 되살아난다.
총알 하나에 담긴 것은 개인의 살의가 아니라,
직면하지 않은 역사와 왜곡된 기억이 축적된 증오다.
‘레드브레스트’는 과거의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냉정하게 보여준다.
* 더욱 불편한 점은, 국가 역시 이 사상과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상부가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체면이고,
정의가 아니라 안정이다.
불편한 과거는 덮이고,
위험한 현재는 관리된다.
필요하다면 영웅은 만들어지고,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해리는 그 구조 속에서 가장 불편한 존재다.
그는 총의 출처를, 사상의 뿌리를,
그리고 과거로부터 이어진 악의 연결고리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
* 그래서 해리의 고독은 개인적인 비극을 넘어선다.
그는 과거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대가로
현재에서 고립되고, 모두가 침묵으로
합의한 영역을 혼자서 파헤친다.
멈추지 않는 이유는 정의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멈추는 순간, 자신 역시 그 침묵의 일부가 되어버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 ‘레드브레스트’는 연쇄살인의 쾌감보다
훨씬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인간은 과거의 죄를 어디까지 짊어져야 하는가.
나치주의는 정말로 패배했는가,
아니면 침묵 속에서 진화했는가.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같은 증오를,
같은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는 건 아닐까.
* 페이지 수만큼이나 묵직한 이 작품은
해리 홀레 시리즈를 단숨에 다음 단계로 끌어올린다.
단순한 범죄소설을 넘어, 역사와 사상,
그리고 그 속에서 상처 입는 개인을 동시에 응시하는 작품이다.
이 책이 불편한 이유는 분명하다.
나치주의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며,
침묵은 결코 중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레드브레스트』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 이 전쟁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해리홀레 #영웅 #나치 #2차세계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