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토지 7 - 박경리 대하소설, 2부 3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차분히 필사를 하면서 읽다보니
어느새 7권까지 왔다.
처음 읽었을 때도 7권은 5, 6권에 비해
수월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역사'보다는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사건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희와 길상, 월선을 찾아서 간도로 간 기화.
낯선 땅이지만 그들이 있다는 이유로
고향땅을 밟는 것만 같다던
그 목소리가 자꾸 맴돈다.
친정집을 찾은 새댁 같다던 그 모습에
어찌나 가슴이 미어지던지.
봉순네가 살아있었다면, 원하던 대로
밤새 길쌈하고 아이를 낳고 살았을 아이인데.
그래도 이렇게나마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서희보단 더 나은 건가, 싶다가도
자매 같은, 친구 같은 둘의 모습을 보니
역시나 가슴이 아프다.
강포수의 두메를 향한 그 마음은 또 어떠한가.
어미의 과거를 들추지 않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아들 하나 데리고 훌쩍 떠나버린 무정한 사내.
그러나 아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단 한시도 자신의 핏줄이라 의심하지 않은
부정이었다.
아들을 맡기고 떠나는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나와있진 않아도 아마 피눈물 꽤나 쏟지 않았을까.
서희와 혼인한 길상의 방황은 끝이 없었다.
하인의 신분으로 주인댁 아씨와 혼인한 사내.
그를 향한 주변의 눈초리도 그러했거니와
자신조차조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쩌면 길상은 중이 되어서 자유롭게
나다녀야 하는 팔자였을까.
서희와의 혼인이 그에게는 이렇게도
괴로운 일인 것일까.
아들을 낳았지만 서로의 슬픔과 아픔은
보지도, 보여주지도, 만져주지도 않은 부부.
이런 길상을 보며 서희의 마음은 어떠할까,
쉬이 짐작이 되질 않았다.
나라 잃고 땅 뺏긴 백성이나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자그마한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들.
어디서 살아가든지 '나는 조선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어딜가나 조준구 같은 놈은 있는건지,
새로운 빌런으로 떠오르는 김두수!
앞날이 창창한 처녀의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취하는가 하면, 친일을 대단히 자랑스레 생각한다.
같은 조선인을 등쳐 먹고, 목숨을 빼앗으며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못된 놈.
얘 동생은 안그러는데 얘는
어릴때 뭘 먹였는지 왜 이모양 이꼴로 큰거지.....
너도 조준구랑 같이 망해라!!
7권 말미는 슬슬 조준구를 망조의 길로 내모는
모양새이기도 해서 더 즐겁게 읽었다.
임역관과 공노인에게 당하는 조준구의 모습을 보니
어찌나 통쾌하던지!
홍씨 부인 외에 기생 첩을 두고
또 다른 신여성을 꾀는 그 정욕하며,
재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것 아니냐며
되묻는 물욕하며,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었다.
이제 공노인의 손길이 뻗쳤으니
무일푼으로 나앉는 것도 시간 문제.
남의 재물을 빼앗아 피눈물 흘리게 한만큼,
딱 그만큼만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나마 토지를 보면서 웃을 수 있던 것은
귀여운 홍이의 모습이었다.
월선의 손을 잡고 촐랑촐랑 뛰어가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해서 나도 모르게 미소지어졌다.
더 악독해진 임이네와 어미 못지 않은 임이가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지만.
봉선이에게 반한 주갑 아재의 마음도 안쓰럽고,
김두수의 손길에 망가진 금녀와 송애의 처지도
안쓰러웠지만 그래도 용이 아재와 월선 아지매 처럼
철벽 같은 애정이 있어서 위안도 되었다.
이제 남은 권수 12권.
처음엔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토지 필사에 푹 빠지게 되었다.
등장 인물이 많은 만큼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꼭 우리네
인간관계를 닮은 것 같아 기분이 묘해지기도 했다.
나라의 땅은 이미 빼앗겼으나
그들은 아직 조선인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