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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창고 살인사건
알프레드 코마렉 지음, 진일상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11월
평점 :
"이젠 아무도 돌이킬 수 없어. 그리고 아무도 돌이키려 하지 않아." <p.246>
조명없는 와이너리의 어둠에 몸을 누인 한 남자가 있다. 9월 중순 이래 근방에서만 벌써 네 번째 사고.
이웃저장고에서 들어온 듯 한 발효가스에 의한 사고로 사망한 알베르트 하안.
한 사람이 죽었음데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슬퍼하는 사람은 커녕 이 죽음이 부룬도르프, 아니 이 근방의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킬 거라는 생각을 하다니 어찌된 일일까 -
폴트 경위는 알베르트 하안의 죽음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이웃 저장고 혹은 여러 곳에서 동시에 스며 들어온 발효 가스. 이 무렵의 와인 저장고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양초만 있었어도 알아차렸을 텐데 왜 해마다 수확 철에 지하실로 갔는데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왜 하필 이번 가을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현장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다.
공문을 작성하면서 다른 사람의 약점과 무지를 이용해 돈을 버는 재주가 있었던 알베르트 하안. 그래서인지 주위엔 그를 죽일 이유를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다.
폴트 경위는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해 낼 수 있을까 ??
알베르트 하안의 죽음은 사고사일까 어떤 의도가 담긴 계획적인 살인일까, 살인이라면 과연 그를 죽인 사람이 누굴까 ?
책을 읽는 내내 흙, 젖은 나무, 발효하는 효모, 알코올 속에서 떠다니는 달콤한 냄새, 와인 오크통들이 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한 잔 마셔볼까? 하는 유혹을 느꼈을 정도니 글이 주는 유혹은 언제나 강렬하다.
와인하면 보는 내내 달콤한 향에 취하게 만드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구름 위의 산책'중 커다란 오크통 속에 포도를 넣고 발로 밟는 여인네들과 동네 남자들이 노래를 부르는 유명한 포도 수확 장면의 로맨틱함이 제일 먼저 생각나곤 했는데 이제는 이 책 와인창고 살인사건처럼 어둠컴컴 하면서도 아슬아슬한 남자들의 세계랄까~ 와인을 둘러싼 이런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알아둬야 할 듯 !!!
이백오십여페이지의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입안에 뱅글뱅글 맴도는 와인향처럼 희뿌옇기만 하고 확 와닿지 않는 범인때문에 애를 먹긴 했지만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이랄까, 심리적인 묘사가 재밌기만 하다. 죽어서도 대접 못받는 서글픈 인생에 맘 한켠이 짠해올 법도 한데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런 생각을 갖는 것도 쉽지 않으니 ~
어떤이는 인생은 묘비명을 준비해가는 과정이라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한번쯤 어떤 묘비명을 남기고 세상을 떠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청렴하지만 각박하지 않고, 화합하지만 휩쓸리지 않으며 엄격하지만 잔혹하지 않고, 너그럽지만 해아해지지 않기. 항상 그것을 생각하며 정신 바짝 차리고 지내야 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