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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파스타, 콩수프
미야시타 나츠 지음, 임정희 옮김 / 봄풀출판 / 2012년 8월
평점 :

"우선은, 여기에서 일어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하는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할 것 같아." <p.112>
일방적으로 파혼당한 한 여성이 홀로서기 하는 과정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따뜻하게 엮어낸 책 <태양의 파스타, 콩수프>
제목에 나온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일 줄 알고 '달팽이 식당'과 비슷한 이야기가 아닐까 기대가 컸는데 그정도는 아녔던 듯 ~
결혼식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파혼을 통보받은 이십대 후반의 사무원 아스와. 2년이나 사귀었는데 '우리는 좀 안 맞는 것 같다'라는 유즈루의 말로 모든것이 엉망진창이 된다.
안맞는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안 맞는 두 사람이 어찌어찌 잘 헤쳐나가는 것. 그거야말로 결혼이 아닌가 ? 생각했던 그녀는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는데 ~
노처녀 롯카 이모는 망연자실, 마냥 혼자 있고 싶어하는 그녀에게 하고 싶은 것을 리스트로 써보라고 권하고 아스와는 리스트의 항목을 하나씩 채워 나가고 그것들을 실천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타고난 것인 줄 알고 부러워했던 누군가의 자신감이나 재능이 실은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는데 . . .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 한순간에 보석으로 바뀐다는 짧은 멘트 하나에 혹해 리뷰 이벤트에 신청하게 된 책.
이 글귀 하나에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임신말기, 출산을 앞두고 내 일상이 너무나 평범하면서 시시한 것 같아 재미난 일 없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때.
날은 덥고 재미난 일은 없고 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복받은 날들이었는지 ~
출산으로 모든것이 확 바뀌길 기대하며 이 책을 읽으며 분위기 전환을 하고 싶어 신청하게 됐는데 출산은 진짜 모든것을 확 바꿔놓음과 동시에 나를 미치게 만들기도 했다 ㅠ
육아가 이렇게 힘들다는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평온했던 그 날들을 시시하다 말할수 없었을텐데 하는 뒤늦은 후회가 ~
조카들 4명이 자라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내가 애엄마가 되고 보니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 사명감을 갖고 해야하는 일인지를 이제서야 무섭게 깨닫고 배워가는 중이다.
책 속 주인공 아스와가 요리 같은 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거라 여겼던 것처럼 나 역시 여자라면 육아쯤이야 ~ 출산을 했다면 모유수유 쯤이야 하고 웃어넘겼는데 막상 부딪혀보니 이것이 보통일이 아니더라는. 첨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겠냐며 뭐든 노력하면 노력한만큼 보답이 올거라 자신했던 나였는데 모유수유와 육아앞에선 두손두발 들고 말았으니 ㅎㅎ
모유수유와 육아에 완패 당하고 천사 같은 아이를 앞에두고서 악몽(?)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이지만 먼 훗날 이날에 대해 웃으며 얘기할 날이 오겠지 ?
매일 하는 것.나의 중심이 되어줄 것 같은 어떤 것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아스와의 이야기. 초반엔 크게 공감하지 못했지만 사랑뿐만이 아닌 다른 어떤 것 앞에서 좌절했을때 우리들의 모습 또한 아스와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
몸도 마음도 말랑말랑 해질때까지 그냥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해나가봐야지~
아스와처럼 이제부터의 새로운 나. 기대되는 나. 앞만 바라보며 나아가보자.
내가 선택한 것들이 나를 만든다. 좋아서 선택한 것이든 억지로 선택한 것이든, 그리고 선택하지 않았으나 무의식적으로 선택해 버린 것이든 말이다.
유즈루를 선택한 것도 나였고, 유즈루에게 선택받지 못한 것도 나였다. 다 나한테 일어난 일들이고, 그것들이 나의 일부가 된다.
내 몸의, 내 마음의, 그리고 내 인생의.
그리고 또 있다.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나한테 온 것과 선택하고 싶어도 선택할 수 없는 것들.
나는 나인 것이다. 교도 아니고, 이쿠도 아니고, 롯카 이모도 아니다.
처음부터 주어져 있었던 것, 나에게 닥쳐온 것, 내 발목을 붙잡는 것.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다만, 할 수 있는 만큼 선택해서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고 싶다고 바라는 쪽으로.
그것을 문자화해서 표현한 것이 드리프터스 리스트가 아닐까 ?
전철 안 손잡이를 붙잡은 채 다른 손으로 리스트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만져본다.
내가 이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 그것이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p.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