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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 내 인생의 제1조, 제1절, 제1항은 이거다
클라우디아 프렌첼 지음, 조경수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내일 아침에는 모든 게 완전히 달라 보인다, 는 건 없다.
새로운 날, 새로운 행운은 없다.
나에게는 없다.
나는 누구나 섬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우리 모두 조금은 블루나 인 것을 안다.
나는 더 나쁜 일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클라우디아프렌첼의 '싫어'의 주인공 속 '나' 미리암.
신적 전능함을 가진 자연이 가벼운 장난을 쳐 '비조직적 유형의 다상성 수면 패턴'이라는 중추신경계의 신경전달물질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들처럼 잠을 자지 못하는 ~ 깨어있는 시간이 대충 네 시간 지속되고, 그러고 나면 다시 두 시간 자야하고, 잘 수 있으면, 자도 되는 ~ 사실상 시계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열두살 때, 부모님 침실 문턱에 서서 '잠이 안 와요' 라고 말하기 시작했던 것이 시작. 열세살 때 처음으로 경찰이 새벽 다섯 시에 집에 데려다 주는 일도 생겼는데 그건 단지 잠이 안 와 잠깐 산책한 것 뿐이었던 것. 인생 계획을 전부 내다 버려야하고, 이 모든것을 운명에 맡기게 된 게 열다섯 살때 일이라니 너무나 안타깝다.
장거리 여행이나 하루 여덟 시간 근무하는 직업등 꿈도 꿀 수 없는 수많은 일들. 그녀가 일주일에 몇 시간 플레이보이지 편집부에서 일을 돕고, 맞춤법에 있어서는 따라올 자가 없어 때때로 석사, 박사 논문을 교정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으로 여겨졌다.
수면기. 각성기, 그리고 또 수면기. 밀물과 썰물 같은 시작과 끝을 모르는 반복.
낮과 밤이 상관없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요일도 의미를 잃어버린 그녀의 생활을 읽어내려가는것은 조금 힘들었다.
놀랍고 안타까우면서도 나에게 이런 병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서른살이 넘으면 혹여나 호전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의사가 둘이나 있지만, 그런 희망은 포기했다는 그녀. 호전되길 바라면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자야 해. 자야 해. 자야 해. 수천 년 된 시간 분배에 동참하지 않고, 자연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저 바깥의 모든 것이 아주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뭔가에 맞서 싸워야하는 그녀. 되돌릴 수 없고, 앞으로도 해결책은 생기지 않으면 이것이 나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그녀이기에 대입자격시험을 치른 후에 대학에 입학하고, 의미있는 일을 하려 노력했지만 번번히 좌절당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 공동체가 아니라 나만을 위해서 하게 될 것임을 스스로 인정해야만 했던 상황들이 얼마나 절망적으로 다가왔을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의 원인과 치유 방법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현실에 수긍하고 그 안에서 멋진 자신만의 생활 패턴을 만들어 나가는데 그것이 내 눈엔 이상한 일 투성이라 할지라도 그녀에겐 그녀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기에 그 한없는 당당함이 부럽기도 했다.
숨 가쁜 수다와 잡담이 때론 건방지게, 때론 똑똑하게, 때론 센티멘털하게 이어진다.
시작과 끝을 모르고 평일의 의미를 상실한 세상을 즐겁게 들여다보는 책.
ㅣ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내가 읽은 독일소설이 몇권이나 될까 ?
요즘 푹 빠져있는 독특한 스타일의 일본소설은 내게 너무나 익숙해졌는데 독일 소설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지한 나.
그래서인지 책 속 그녀만의 독특한 유머를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상황이 여럿 있었다.
편식을 버리고 다양한 나라, 다양한 작가의 책에 관심을 돌려야겠다고 다시 한번 반성 그리고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굉장히 독특한 내용의 소설임은 인정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 책의 진정한 재미를 이해하려면 몇번 더 읽어봐야할 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