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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에타
마틴 클루거 지음, 장혜경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나의 계획
1.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운다. 생각하지도 꿈꾸지도 말고 알아낸다.
2. 시간이 날 때마다 자선병원 도서관으로, 매일 네 시간씩 라틴어. 해가 날 때나 비가 올 때나 기쁠 때나 절망할 때나 절대 빈둥거리지 마라.
Nunquam otio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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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녀를 생각하지도 않고 꿈꾸지도 않게 배우고 또 배우게 만들었을까.
마틴 클루거의 소설 '헨리에타'는 크게 1부 헨리에타, 2부 헨리, 3부 실루엣으로 나뉘어져 있다.
헨리 에타 말로우, 여성의 학문 참여가 제한되었던 비스마르크 시대를 배경으로 제국 최초의 여자 의사를 꿈꾸는 한 여인의 흥미진진한 인생사를 담고 있다.
소녀의 이름은 헨리 에타. 아버지는 랑엔 가에서 자그마한 공방을 운영하는 목수인데 칠흑같이 깜깜한 공방의 마당에서 노래하는 한 여자에게 반한다. 그녀의 이름은 루이제. 그녀는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아는 신비스러운 여자이다. 어머니의 임종 자리에서 빨강 머리나 검은 머리하고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 굳게 맹세했지만 자신의 심장을 멈춰 세울 수 없었던 그. 그렇게게 시작된 신혼생활. 첫아들이 태어나면 주려고 근위보병대의 군악대 인형 하나를 깍고 빌헬름이라는 이름을 짓고 둘째가 태어나면 파울이라고 지을거라며 계획을 세워놓았는데 막상 태어날 아이는 딸. 그렇게 헨리에타는 1월 6일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삶이 시작되었다. 자신의 생일이 곧 그녀 어머니의 기일이다보니 평생 생일파티를 열지 못하고 인사도, 키스도, 선물도 없이 그저 하루가 다 지나갈때까지 시간을 죽이며 지냈던 소녀는 자선병원의 권위자들에게 배운 덕택에 그녀가 어머니를 살해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살해 무기였다는 사실에 마음답답해한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손에 자라고, 병원의 간병인 자리를 얻은 아버지와 함께 표본과 시험관 틈을 누비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해부실과 실험실에서 현대의학의 발판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결핵균의 발견이 질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얼마나 바꾸었는지, 그 역사의 산 증인이 되는데 . . .
어느 시대건, 어느 나라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수많은 제약이 따른건 사실. 많이 배운 사람들에게조차 여자는 그런 존재였나보다.
"네 아이디어도 최고지. 네겐 직관과 상상력이 있어. 하지만 누구에게나 제자리가 있단다. 헨리에타. 여자의 자리는 실험실이 아니야. 해부학 실습실은 더더구나 아니고"
고정관념 자체를 깬다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쉬운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그들이 있었기에 어떤 분야에서건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우리들이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닐까
금남, 금녀의 구역이란 틀을 깨고서 진출하지 못하는 분야가 없는 이런 세대에 살면서 그녀보다 더 게으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할 듯 ~
책 한권을 통해 재미난 이야기는 물론 멀게만 느껴졌던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 헨리에타가 살았던 그 시대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고 내가 그때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무한한 상상력에 나를 내놓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절실함, 절박함이 없는~ 오히려 너무나 너무나 풍족해서 아까운 재능을 썩히고 있는 지금이 아닌가 싶은 안타까운 들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