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두행숙 옮김 / 걷는나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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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수 없다

 

배르델 바르데츠키 지음 두행숙 옮김

걷는나무 / 259

 

살아가면서 마음에 상처 안 받고 지내는 사람이 몇이나 있으려나. 고만고만한 심리치유서중의 하나인가 했는데 나도 많은 위로를 받은 듯 하다. 더구나 요새 지인들중 몇이 평소와 다른 언행을 보였는데 이 책에 대입해 보니 비로소 그들을 이해할수 있었다. 말하자면 강건너 상관없는 남 이야기가 아닌 실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비교해 너무 잘 들어맞는 경우로 생각해 매우 흥미롭게 읽을수 있었다.

 

누구나 상처받고 가끔 상처를 주면서 갈아간다.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나 때문에 상처받고 있는지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이들을 위해 독일의 임상심리학자가 펴낸 상처에 영향받지 않는 방법론이다.

 

상처란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마음의 상처는 대부분 마음 상함에서 비롯되는데 마음상함이란 어떤 말이나 행동 때문에 자존감에 상처받았다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들. 나보다 늦게 온 손님에게 음식이 먼저 나올 때, 회식이 있다는데 오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때,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단칼에 거절 당했을 때 등등 저자는 우리와 유럽의 경우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말해준다. 상처 받았을 때 사람들은 분노하거나 좌절하고 때론 복수심을 갖는데 그래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러번을 이렇게 강조한다. 상처가 되는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내게 달려있다고!

상대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존감에 달려있는데 자존감은 이렇게 표현한다. “자존감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

 

즉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자신을 사랑하기란 쉬운가? 아니다. 자기를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애,나르시즘과 구별되는 것이다.

 

내 주변의 어떤이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참 잘난 사람이다. 대기업 중역에 인물도 훤하고 뭐하나 빠질 것 없는 사람인데도 늘 남을 비방하고 늘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한다. 이 사람은 자존감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잘난 맛에 빠진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은 잘생기고 능력많은 여자인데 늘 남탓을 하고 자기잘못을 인정할줄 모른다. 완벽주의자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은근히 주목받길 원한다. 누구 하나라도 잘못을 지적하면 히스테리 상태가 된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존감이 없고 기준을 남에게 맞춘다는 점이다. 남을 비방하면서도 자신을 인정해줄 남이 있어야만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바와 똑같다. 그 근원은 열등감이다. 어떤 열등감인지 나는 모른다. 그걸 감추려고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점을 늘 강조하니까.

 

이런 상태를 이 책에서는 거짓 자아 뒤에 숨은 잃어버린 나 라고 한다. 좋은 옷과 물건으로 치장하고 능력을 과시하며 어려운 업무를 떠맡아 완성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일도 한다. 바로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으려는 욕구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기준을 남에게 맞추지 말고 무슨일이 생기면 내문제와 남의 문제를 구분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분노 좌절 편견 복수심은 해결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여행 대화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이런 관계 해소에 크게 도움을 준다고 한다.

 

한때 근무했던 직장 상사가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성격이었다. 당시 나도 마음의 상처가 깊고 컸다. 직장을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가 돈이나 업무가 아닌 상사 동료와의 관계 때문이라는데 정말 힘든 나날이었다. 한참 후에 그 입장을 이해하고 보니 감정의 응어리가 풀어졌는데 나도 그랬으니 남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싶었다. 그후 종교와 명상 일을 하며 더 이상 상처받는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종교나 명상에서 말하는 바와 이 책의 주장이 똑같다. 나를 사랑하고 기준을 내게 맞추라는 것이다. 우주에서 나는 하나다. 내가 곧 우주고 우주가 내 일부다. 신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 된다. 남의 말에 휩쓸려 아파하지 말고 저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구나 왜 저런 말을 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이민호 김태희같은 미남미녀는 아니니 뚱뚱하고 못생긴 나를 어찌 사랑할수 있을까. 그게 관건이다.

숱한 결점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래야 소중한 나를 외부의 관점으로부터 보호할수 있다. 이는 이기적 자기애나 독불장군과는 다른 얘기다.

 

상처받은 경험이 있고 아직도 힘들어한다면 이 책을 통해 많은 부분 도움을 받을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 책은 반 정도는 남녀간 사랑에서 오는 상처를 다루고 있다. 또 삐뚤어진 성격의 원인을 유아기의 부모관계에서 찾는다. 오랜 임상 상담의 결과겠지만 유아기의 사랑부족이 아니라도 남에게 상처주는 사람은 여러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한때 가톨릭에서 내탓이오 내탓이오를 외친 적 있는데 이 역시 바람직한 해결방법은 아니다. 이 책 말고도 적지않은 심리학 책들이 문제를 내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주장을 편다. 자기계발서라면 내겐 문제가 많으니 고치자 할수 있겠지만 종교적으로 내 탓을 외치면 심지가 굳지 못한 사람은 모든 문제를 정말 내탓으로 돌리고 절망할수 있다. 남편이 잘못돼도 아이가 삐뚤어져도 사업이 망해도 내탓이면 살 수가 없다. 오직 신께 매달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무턱대고 남의 탓을 하는 것도 나쁘지만 무조건 내탓은 더 나쁘다. 조용하게 상황을 관조하고 해결책을 찾는 육체적 정신적 거리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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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 - 미래 인류를 위한 담론, 도덕경
차경남 지음 / 글라이더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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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리는 말하여질수 없다(도덕경)

차경남

글라이더 / 319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중에서 <논어>를 다룬 책은 수십종이 넘는다. 논어만 못하겠지만 <노자> 역시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중 김용옥의 노자 해설서는 내게도 있다.

차경남의 이 책 <진리는 말하여질수 없다>도 노자를 다룬 해설서다. <노자>는 다른 이름으로 <도덕경>이라고도 하는데 81편 5000자의 간략한 책으로 유명하다. 지은이인 차경남은 변호사이고 장애인관련 일을 하고있으며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 이 방면에 몇권의 저서를 낸 사람이다. 처음에는 이 책이 노자 전체를 번역한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그게 아니고 81편중 20편만 번역한 책이다.

 

이른바 아마추어 고전연구자들이 많다. 이 노자만 해도 몇 년전 김용옥교수에게 반론을 던지며 책을 낸 여성독서인이 화제가 된적 있다. 작년에 읽은 <신도림역에서 공자를 만나다>는 신분도 불분명한 중국인 아마추어가 쓴 책이다. <신도림...>을 읽고는 상당한 실망을 했기 때문에 이 <진리는...>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좀 다른 해석이 있겠지 정도로만.

 

그런데 읽어보니 썩 괜찮다 이책. 바로 직전에 너무 난해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어려운 책과 씨름한 뒤라 그런지 몰라도 대단히 간결하고 쉽다. 쉬운 책을 어렵게 만든 현학(衒學)적인 현학(玄學)도 아니다. 비근 - 낮고 가까운 예를 들어서 이해와 수긍이 가게 해설한 책이다.

 

노자를 안 읽어본 사람이라도 자주 들어본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현묘지도 玄妙之道” “천지불인 天地不仁” “천장지구 天長地久” “상선약수 上善若水” “금옥만당 金玉滿堂” 등 익숙한 어귀를 볼수 있다. 아주 오래전 어릴 때(少時的) 외국영화가 개봉되면서 퀴즈가 붙었다. 영화제목이 Straw Dog인데 기억나는게 “이 제목은 노자에서 따왔다 원문에서 straw dog을 한자로 뭐라고 부르는가” 뭐 대충 그런 퀴즈였다.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때인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수 없었다. 나중에 발표된 정답이 추구였는데 더 알수 없었다.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 에피소드의 의문은 한참 후 노자를 보고서야 비로소 풀렸지만 영화제목이 왜 추구인지는 작년인가 재작년에 리메이크된 <어둠의 표적>을 또 봤는데도 이해를 못했다.

유덕화 주연 영화 천장지구 역시 틀림없이 봤는데 내용은 기억이 안난다. 여주인공이 예뻤다는 정도. 그저 제목을 어찌 철학적으로 붙였나 생각한 정도.

 

1장과 2장은 김용옥의 책과 원문번역을 비교하면서 읽었다. 전공학자라 그런지 김용옥의 책은 고증과 훈고가 정확하고 근래에 발견된 <노자> 죽간과 백서 까지 검토해서 노자도덕경의 본뜻을 전달하려 애쓴 점이 돋보인다. 원문번역도 김용옥이 치밀하다. 그러나 차경남의 이 책도 정밀하지는 못해도 해설은 위에서 밝힌 것처럼 쉽게 쉽게 머리에 들어갔다.

 

저자에 따르면 도란 달을 의미하는데 달을 본 사람이 없으니 쓸데없이 문자와 언어에 매달린다는 것. 진리와 언어의 문제는 서양에선 비트겐슈타인에 와서 문제제기되지만 동양권에선 노자가 맨처음 지적하고 우리도 원효의 <대승기신론>에서 이 문제를 검토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즉 진리란 결코 언어로 설명될수 없다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노자에 접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노자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노자를 통해 인식의 변화를 겪는다는 것인데 노자를 읽고 유식해졌다면 그건 노자를 잘못 읽은 것이라 한다.

 

무위(無爲)를 설명하는 대목은 이렇다. - 너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라. 삶에 있어서의 온갖 억지와 인위의 배제, 그리고 자연스러움에 대한 찬미, 이것이 바로 무위이다. 인간의 행위중에서 가장 창조적인 것들은 사실 무위에서 나온다.

 

간결하지 못하고 만연체 문장으로 써진 글을 경계하라는 말도 나온다.

 

이름(名) - 경계와 구획, 이것이 다름아닌 노자가 말하는 이름이다. 노자는 이미 1장에서 이름이 지닌 허상을 지적하며 그 위험을 경고했다. 14장은 1장과 내용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노자의 도를 체득한 이의 모습은 확실히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의 모습과는 달라보인다. 유교의 군자는 어딘지 잘나보이고 씩씩해보이며 아는 것도 많고 나서기 좋아하는데 반해 도가의 인물은 어딘지 못나보이고 우물쭈물해 보이며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앞에 나서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그 안에 새로운 리더십의 특질이 고스란히 들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미래형 리더십의 근본이념은 소통이다.... 신중과 경청,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궁극의 진리는 이성적으로 파악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위와 허정(虛靜)을 아는 것인데 호흡법이나 만트라나 명상비법도 좋지만 그 어떤 것도 허와 정을 벗어나면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자 장자를 ‘연구’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저 노자 장자를 훑어보고 확인할 뿐이라고 한다. 궁극의 경지에 도달한 자만이 말할수 있는 지혜가 들어있는지를.

 

인용하고 싶은 보석같은 말들이 너무많다. 그러니 직접 보시라 할 수밖에 없다. 진리는 말해질수 없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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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힘의 시대 - 대화로 재구성한 20세기 양자 물리학의 역사
루이자 길더 지음, 노태복 옮김 / 부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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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의 자연철학자들은 이 세계의 존재와 본질에 대한 의문을 풀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중 데모크리토스는 더 이상 나눌수 없는 물질의 본질을 원자라고 이름지었다. 많은 세월이 지나 원자를 분석하게된 과학자들은 원자의 99.999%가 속이 텅비어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원자의 세계를 탐구하던 과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자연법칙이 원자속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극미의 세계에서 적용할수 있는 분석틀은 양자역학이라 불렸고 과학자들은 다시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대화로 재구성했다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이고 사실 이 책은 소설로 재구성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아니면 다큐멘터리라 해도 좋다. 소설적 표현을 가진 물리학역사! 그래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리학자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대화가 간간이 이어질뿐 주요 개념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는 않는다. 때문에 독자가 물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없다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소설의 형식이라 주를 거의 달지 않았고, 이점을 보완하기 위해 말미에 용어해설을 붙였다. 상당한 양의 미주는 대화의 전거나 보충설명으로 사용되었다.

 

양자역학은 책에 나오는 표현대로라면 물리학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론이다. 어느 시대에는 12명만 이해했다는 표현도 있다. 이책이 말하는 ‘얽힘현상’이란 무엇인가? 양자론에서는 물질과 빛의 이중성(파동이면서 입자), 양자도약, 불확정성 등 고전물리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여러 현상이 나타난다. 그중 얽힘은, 멀리 떨어져있는 두 입자중 한쪽에 어떤 영향을 가하면 동시에 나머지 다른 입자에 같거나 다른 반응이 나타난다는 이론이다. 왜 그런지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두 입자의 반응은 동시에 일어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는데 얽힘은 동시에 발생한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슈뢰딩거에 의하면 물질=파동=빛 이다. 두 개의 전자가 함께 있으면 단일한 6차원 파동이 된다. 이때 연결되었다고 한다. 슈뢰딩거는 파동방정식을 만들어 양자역학을 수학으로 증명했는데 언어로는 이렇게 한다. “보지 않을때는 파동이 존재하다가 볼때는 입자가 존재한다면 관찰자가 진리라고 여기고 싶어하는 취향에 따라 진리가 달라지게돼.”

 

하이젠베르크는 이렇게 말한다. “19세기의 세련된 과학이었던 인과적 결정론에 의하면 조건이 확정되면 미래를 예측할수 있다. 즉 P×Q = Q×P이다. 그러나 양자의 세계에서는 P×Q는 Q×P가 아니다. 또 P와 Q를 한꺼번에 보려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불확정성 원리다. 즉 입자와 파동은 함께 존재하며 인과성을 부정한다.”

 

과학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아는, 별처럼 빛나는 과학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아인슈타인 보어 플랑크 좀머펠트 보른 드브로이 파울리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디랙 오펜하이머 봄 파인만 그리고 현대의 과학자들 까지. 물리학의 스타들이다. 그러나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슈테른 게를라흐 실험, 배타원리, 불확정성 원리, 얽힘, Ψ 등등 기본개념에 대한 손톱만큼의 이해도 없이 이 책을 읽기란 정말 힘들다. 어느 신문평을 보니 쉽게 읽을수 있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알려면 글자만 읽어가면 된다.

 

양자도약 또는 전자스핀이란 뭔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기로는 전자는 원자의 바깥쪽을 돌고 있다. 타원궤도를 그린다고 한다. 그래서 흡사 태양계 행성배열처럼 상상하고 그런 식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전자궤도의 시각화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단지 우리의 이해를 위해 즉 고전물리학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델을 찾다보니 행성배열 모델을 적용했을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태양을 돌던 지구가 갑자기 토성자리에서 돌고 있다. 이것이 양자도약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모른다. 공을 앞으로 던졌는데 내 뒤통수를 때릴수도 있고, 옆에서 다른 공이 나타나 두 개가 날아갈수도 있고, 뒤로도 똑같은 공이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설명 불가능한 양자역학이다. 그러나 러더퍼드의 말처럼 “어떤 이론이건 술집여종업원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건 불완전한 이론인 것”이다. 양자론의 세계는 고전물리학의 인과성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미시세계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소설적 구성을 빌렸기 때문에 표현과 묘사에 멋진 글이 많고 학자들 간의 갈등관계나 고민 긴박한 상황의 묘사가 매우 뛰어나다. 원자의 발견과 1905년 상대성이론부터 최근에 이르가까지 물리학과 학자들의 동향을 시간의 흐름으로 서술했고 전반부는 유럽을 무대로 2차대전 이후는 미국을 무대로 학자들의 활동을 그렸다. 아인슈타인의 주사위론, 슈뢰딩거가 17세인 친구 딸을 임신시킨 애기며 보른과 슈바이처의 우연한 만남, 오펜하이머와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생한 봄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많다.

또한 이책은 양자론이 기술하는 이 세계의 어쩔 수 없는 기이함 때문에 철학적 논의를 빠뜨릴수 없음도 말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EPR 논문 제목은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설명을 완벽하다고 볼수 있는가>이고 봄의 경우 평생의 연구목표를 “실재를 일관된 전체로서 이해하는 것이며 마음을 전체의 한부분으로 이해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물리학자들에게 객관적 실재란 철학자나 신학자 만큼이나 절박한 문제였던 것이다.

 

책속에는 너무나도 멋진 표현들이 많이나오는데 일일이 소개할 수가 없다. 그중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은 이런 것이다. “저명한 물리학자들이 인간적으로도 아주훌륭하다는 건 물리학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네.”

 

이제까지 양자역학의 결론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관찰하는 행위자의 의지가 입자들을 창조하거나 변형시킨다. 최소한 미시세계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었고 원자의 내부는 텅 비어있다. 원자 안에는 전자 중성자 양성자 등 소립자가 있다. 이들은 관찰자의 의지에 따라 변한다. 인간은 다시 태초의 마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바꿀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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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잡는 자, 세상을 잡는다 -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꿈꾸었던 칭기즈칸 이야기
서정록 지음 / 학고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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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잡는자, 세상을 잡는다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꿈꾸었던 칭기즈칸이야기

서정록 / 학고재 / 599

 

예스24에 들어가 칭기즈칸으로 검색을 하니 무려 194개의 검색결과가 뜬다. 어린이위인전부터 역사 경영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많은 종류의 칭기즈칸이 존재한다. 위인전이 아니라면 대개 칭기즈칸을 찾는 사람들은 대제국을 건설한 그의 성과주의 리더십을 기대하는게 일반적이리라. 혹시라도 그런 종류의 기대를 품고 이책을 찾은 이들은 실망을 금치못할 것이다. 저자인 서정록은 그런 분야와는 거리가 먼 분이다. 그럼 우리 고대문화와 인디언의 영성탐구를 주로해온 저자가 칭기즈칸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우리민족과 문화의 원류를 찾아 공부하는 과정에서 몽골에 주목하였고 그런중에 800년전 몽골고원의 변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의문을 갖게되었다고 한다. 즉 칭기즈칸이 어떻게 하층유목민의 변화요구를 받아들여 당대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모래알같은 몽골인들을 하나로 묶어 거대제국의 전초를 열었는지 알기위해 몽골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칭기즈칸의 발자취와 흔적을 따라 몽골전역을 답사한 기행문이자 칭기즈칸 연구라 할수 있다. 사진자료가 많고 간간이 그림지도를 첨부하여 이해를 도운다. 전체를 9개 장으로 구성했는데 그중 한 개 장은 고구려 부여와 바이칼의 관련성에 대해 지적한 것이다.

 

이책의 주제는 역시 부제에 잘 나타나있다.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꿈꾸었던 칭기즈칸 이야기”. 저자에 따르면 칭기즈칸의 천호제만호제는 귀족 평민의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능력만큼 대접받는 세상을 연것이라 한다. 그렇게해서 몽골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세상을 사람답게 사는 곳으로, 사람들이 서로믿고 신뢰하며 더불어 사는 곳으로 만들려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칭기즈칸의 꿈과 이상이며 동시대 몽골인들의 꿈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울란바토르공항에서부터 시작하여 초원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칭키즈칸의 흔적을 찾아나선다. 좀더 알고싶은 사람은 세계지도를 갖다놓고 세심히 보면 더 좋겠다. 몽골고원은 현재 남동부가 내몽골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예속되어있지만 고대 스키타이족부터 시작 흉노, 돌궐, 타타르, 몽골족 등 북방유목민이 활동한 아시아 유럽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다. 책에는 씨족명 부족명이 혼재되어 나오는데 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약한 흉노 돌궐 타타르 몽골은 거의 비슷한 종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몽골리안은 8세기이후에야 지역에 등장한다. 가장 늦게 나타난 몽골족은 13세기에 와서 하층유목민의 꿈과 이상을 공유했던 칭기즈칸이 활약하며 세계제국으로 변모한다. 칭기즈칸은 분배법을 평등하게 고치고 천호제만호제로 귀족과 평민 구분을 없앴으며 케식텐제를 실시해 개인의 능력과 전문성을 개발하도록 했다.

 

이런 저런 탐구과정에서 저자는 리더십이라는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기존에 칭기즈칸을 다루었던 책들에서 그 리더십의 원천을 포용이나 개방성, 과단성 등으로 규정한 것과 달리 저자 서정록은 칭기즈칸이 영적으로 매우 성숙한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인간을 잘 이해할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가는곳마다 영적 존재와 교감하고 인간의 본성을 찾으려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어느곳에서는 스스로 샤먼적인 모습도 비춘다.

 

칭기즈칸의 탄생지를 빈데르 비장의 언덕으로 확신하고 몽골인의 시조인 알랑고아가 바이칼 부리야트족 버드나무샤먼이었다는 점을 밝혀 주몽의 모친 유화부인과의 관련성을 제기한다.칭기즈칸의 성지인 보르칸칼돈산을 찾아 원래 이산이 부리야트에 있음을 확인하고 한역음인 불함산이 부리야트, 몽골, 백두 세곳에 존재하므로 부리야트 몽골 한민족의 관련을 더욱 깊게 인식하는 계기를 삼기도 한다. 몽골역사박물관에는 동명왕 람촐로(석상)가 있는데 동몽골지역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이로보아 부여의 동명왕( 우리는 주몽을 동명왕으로 알고있지만 사실 동명왕은 부여의 시조이며 고주몽이 부여를 탈출해서 고구려를 건국하며 동명왕 설화를 차용하여 자신을 신성시했다는 것이 사학계의 정설이다)이 이곳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물론 책에는 이런 역사탐구 뿐만아니라 테무진의 어린시절부터의 행적을 소설처럼 그리고 있기도 하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는 인근 메르키트부족의 젊은귀족과 막 혼례를 마치고 시집으로 돌아가던 신혼부부행열을 공격하여 이미 남의 부인이 된 허엘룬을 약탈하여 자신의 부인으로 삼았다. 물론 허엘룬과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다. 그 아들인 테무진은 어머니부족의 처녀였던 버르테와 혼인했는데 과거 신부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했던 메르키트부족이 쳐들어와 버르테를 약탈해갔다. 테무진이 버르테를 되찾아왔을 때 버르테는 임신상태였고 그래서 테무진의 큰 아들은 원수의 씨였지만 테무진은 죽을때까지 큰아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형제살해, 자모카와의 우정과 배신, 양부 옹칸과의 갈등 등 연속극에 나올만한 주제도 많이 나타나있다. 인내 끈기 계기 기회 같은 기존의 영웅 조건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역시 인간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다. 이것이 칭기즈칸이 몽골인의 마음을 얻은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인들의 꿈과 이상이 특히 하층민들의 꿈과 이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몰락한 테무진의 가문인 보르지긴씨족이나 키야트부족이 다시 일어서는 것이 꿈인가? 사회적 신분편제에서 벗어나 귀족이 되는 것이 꿈인가? 초원지대의 춥고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단지 평화롭게 먹고살기를 바라는 것은 꿈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떤 지도자든 개인적인 호의호식에서 벗어나 잘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면 그를 쫒았을 것이다. 칭기즈칸의 특별한 매력과 능력은 무엇인가?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하고 각 지역을 정복하는 과정, 그 무력이나 전략전술, 무자비하고 잔인한 처리 등은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칭기즈칸 리더십의 정체나 군사 정치적 패권장악과정을 알고싶은 이들은 이책을 보면 안된다. 어찌보면 한계점이라고도 말할수 있다. 무엇보다 참고자료나 찾아보기가 없는 것이 매우 아쉽다.

그러나 다른 눈으로 역사를 보고픈 사람, 한국과 몽골의 역사적 관련을 알고싶은 사람, 서정록의 영성탐구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책은 보다많은 것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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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12
김호동 지음 / 돌베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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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인문학에서 역사 말고 역사학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가볍게 훑어보려고 집었다가 금방 빠져들었다.

 

이 책은 한국연구재단 주최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2009)에서 4회에 걸쳐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저술된 것인데 학술적 입문서라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재미있게 서술되지 못한 단점은 있겠지만 인문서를 자처하는 여타의 책들이 주는 가벼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저자 김호동은 하버드에서 내륙아시아와 알타이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에 재직중인 유목국가 전문가이다.

 

책은 네부분으로 구성되어 각기 /실크로드와 유목제국/세계를 제패한 몽골제국/팍스 몽골리카/세계사의 탄생/ 의 제목을 달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세계사란 고등학교 교과서로 등장하는 세계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형성 발전 전파라는 큰주제와 관련해서 지구상의 여러 지역과 문명들이 공간적으로 연관성을 맺고 시간적으로 계기적 발전을 이룩하는 총체적 과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동아시아나 유럽 등의 소지역 단위가 아닌 동아시아에서 유럽, 아프리카북부까지 아우르는, 아프로유라시아의 문명전개를 유목민을 키워드로 분석하고 있다.

 

몽골제국은 13세기 초에 건국되어 정복전쟁을 이어나가 인도 중동을 포함하는 아시아대륙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교통통신 네트워크를 만들어 유럽과 아프리카를 포함하는 문물교류의 장을 마련해주었다. 그러한 팍스 몽골리카를 배경으로 대여행의 시대가 시작되어 사신,종교인,상인들이 원거리여행을 가능하게 했고 동시에 아프리카대륙을 포함한 상세한 세계지도가 처음 제작되어 비로소 사람이 사는 전대륙이 하나의 온전한 실체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가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사의 탄생’이라 부를수 있는 시대였다. 그 직후 이어진 대항해시대와 유럽의 발전은 팍스 몽골리카로 인해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유목민 유목국가가 미친 거대한 영향력을 지금까지는 너무 경시해왔다는 것이다. 스카타이 흉노 돌궐 위그르 타타르 거란 몽골 등등 북방유목민족의 실상은 많이 왜곡되어왔다. 그중 이책은 몽골이 세계제국으로 성장하면서 유목민과 농경민의 대립구조를 성공적으로 융합하였음을 보여준다.

 

이책을 통해 알게된 사실이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는 최초의 세계사가 현 이란인 일칸국의 재상 라시드 앗딘이 저술한 방대한 책 <집사集史>라는 것이다. 이름도 처음 들어본 이책은 김호동의 번역으로 출간되어 있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나라로 전락한 몽골. 그러나 그 선조의 나라는 역사상 최대의 육상 제국으로 존재했고 강력한 정치적 지배뿐만 아니라 경제적 문화적으로 전세계와 교류한 진정한 세계제국이었다. 각장마다 상세한 미주를 달았고 참고문헌이 수백편인 읽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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