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힘의 시대 - 대화로 재구성한 20세기 양자 물리학의 역사
루이자 길더 지음, 노태복 옮김 / 부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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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의 자연철학자들은 이 세계의 존재와 본질에 대한 의문을 풀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중 데모크리토스는 더 이상 나눌수 없는 물질의 본질을 원자라고 이름지었다. 많은 세월이 지나 원자를 분석하게된 과학자들은 원자의 99.999%가 속이 텅비어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원자의 세계를 탐구하던 과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자연법칙이 원자속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극미의 세계에서 적용할수 있는 분석틀은 양자역학이라 불렸고 과학자들은 다시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대화로 재구성했다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이고 사실 이 책은 소설로 재구성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아니면 다큐멘터리라 해도 좋다. 소설적 표현을 가진 물리학역사! 그래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리학자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대화가 간간이 이어질뿐 주요 개념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는 않는다. 때문에 독자가 물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없다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소설의 형식이라 주를 거의 달지 않았고, 이점을 보완하기 위해 말미에 용어해설을 붙였다. 상당한 양의 미주는 대화의 전거나 보충설명으로 사용되었다.

 

양자역학은 책에 나오는 표현대로라면 물리학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론이다. 어느 시대에는 12명만 이해했다는 표현도 있다. 이책이 말하는 ‘얽힘현상’이란 무엇인가? 양자론에서는 물질과 빛의 이중성(파동이면서 입자), 양자도약, 불확정성 등 고전물리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여러 현상이 나타난다. 그중 얽힘은, 멀리 떨어져있는 두 입자중 한쪽에 어떤 영향을 가하면 동시에 나머지 다른 입자에 같거나 다른 반응이 나타난다는 이론이다. 왜 그런지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두 입자의 반응은 동시에 일어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는데 얽힘은 동시에 발생한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슈뢰딩거에 의하면 물질=파동=빛 이다. 두 개의 전자가 함께 있으면 단일한 6차원 파동이 된다. 이때 연결되었다고 한다. 슈뢰딩거는 파동방정식을 만들어 양자역학을 수학으로 증명했는데 언어로는 이렇게 한다. “보지 않을때는 파동이 존재하다가 볼때는 입자가 존재한다면 관찰자가 진리라고 여기고 싶어하는 취향에 따라 진리가 달라지게돼.”

 

하이젠베르크는 이렇게 말한다. “19세기의 세련된 과학이었던 인과적 결정론에 의하면 조건이 확정되면 미래를 예측할수 있다. 즉 P×Q = Q×P이다. 그러나 양자의 세계에서는 P×Q는 Q×P가 아니다. 또 P와 Q를 한꺼번에 보려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불확정성 원리다. 즉 입자와 파동은 함께 존재하며 인과성을 부정한다.”

 

과학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아는, 별처럼 빛나는 과학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아인슈타인 보어 플랑크 좀머펠트 보른 드브로이 파울리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디랙 오펜하이머 봄 파인만 그리고 현대의 과학자들 까지. 물리학의 스타들이다. 그러나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슈테른 게를라흐 실험, 배타원리, 불확정성 원리, 얽힘, Ψ 등등 기본개념에 대한 손톱만큼의 이해도 없이 이 책을 읽기란 정말 힘들다. 어느 신문평을 보니 쉽게 읽을수 있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알려면 글자만 읽어가면 된다.

 

양자도약 또는 전자스핀이란 뭔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기로는 전자는 원자의 바깥쪽을 돌고 있다. 타원궤도를 그린다고 한다. 그래서 흡사 태양계 행성배열처럼 상상하고 그런 식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전자궤도의 시각화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단지 우리의 이해를 위해 즉 고전물리학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델을 찾다보니 행성배열 모델을 적용했을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태양을 돌던 지구가 갑자기 토성자리에서 돌고 있다. 이것이 양자도약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모른다. 공을 앞으로 던졌는데 내 뒤통수를 때릴수도 있고, 옆에서 다른 공이 나타나 두 개가 날아갈수도 있고, 뒤로도 똑같은 공이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설명 불가능한 양자역학이다. 그러나 러더퍼드의 말처럼 “어떤 이론이건 술집여종업원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건 불완전한 이론인 것”이다. 양자론의 세계는 고전물리학의 인과성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미시세계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소설적 구성을 빌렸기 때문에 표현과 묘사에 멋진 글이 많고 학자들 간의 갈등관계나 고민 긴박한 상황의 묘사가 매우 뛰어나다. 원자의 발견과 1905년 상대성이론부터 최근에 이르가까지 물리학과 학자들의 동향을 시간의 흐름으로 서술했고 전반부는 유럽을 무대로 2차대전 이후는 미국을 무대로 학자들의 활동을 그렸다. 아인슈타인의 주사위론, 슈뢰딩거가 17세인 친구 딸을 임신시킨 애기며 보른과 슈바이처의 우연한 만남, 오펜하이머와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생한 봄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많다.

또한 이책은 양자론이 기술하는 이 세계의 어쩔 수 없는 기이함 때문에 철학적 논의를 빠뜨릴수 없음도 말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EPR 논문 제목은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설명을 완벽하다고 볼수 있는가>이고 봄의 경우 평생의 연구목표를 “실재를 일관된 전체로서 이해하는 것이며 마음을 전체의 한부분으로 이해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물리학자들에게 객관적 실재란 철학자나 신학자 만큼이나 절박한 문제였던 것이다.

 

책속에는 너무나도 멋진 표현들이 많이나오는데 일일이 소개할 수가 없다. 그중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은 이런 것이다. “저명한 물리학자들이 인간적으로도 아주훌륭하다는 건 물리학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네.”

 

이제까지 양자역학의 결론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관찰하는 행위자의 의지가 입자들을 창조하거나 변형시킨다. 최소한 미시세계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었고 원자의 내부는 텅 비어있다. 원자 안에는 전자 중성자 양성자 등 소립자가 있다. 이들은 관찰자의 의지에 따라 변한다. 인간은 다시 태초의 마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바꿀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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