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 - 미래 인류를 위한 담론, 도덕경
차경남 지음 / 글라이더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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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하여질수 없다(도덕경)

차경남

글라이더 / 319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중에서 <논어>를 다룬 책은 수십종이 넘는다. 논어만 못하겠지만 <노자> 역시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중 김용옥의 노자 해설서는 내게도 있다.

차경남의 이 책 <진리는 말하여질수 없다>도 노자를 다룬 해설서다. <노자>는 다른 이름으로 <도덕경>이라고도 하는데 81편 5000자의 간략한 책으로 유명하다. 지은이인 차경남은 변호사이고 장애인관련 일을 하고있으며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 이 방면에 몇권의 저서를 낸 사람이다. 처음에는 이 책이 노자 전체를 번역한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그게 아니고 81편중 20편만 번역한 책이다.

 

이른바 아마추어 고전연구자들이 많다. 이 노자만 해도 몇 년전 김용옥교수에게 반론을 던지며 책을 낸 여성독서인이 화제가 된적 있다. 작년에 읽은 <신도림역에서 공자를 만나다>는 신분도 불분명한 중국인 아마추어가 쓴 책이다. <신도림...>을 읽고는 상당한 실망을 했기 때문에 이 <진리는...>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좀 다른 해석이 있겠지 정도로만.

 

그런데 읽어보니 썩 괜찮다 이책. 바로 직전에 너무 난해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어려운 책과 씨름한 뒤라 그런지 몰라도 대단히 간결하고 쉽다. 쉬운 책을 어렵게 만든 현학(衒學)적인 현학(玄學)도 아니다. 비근 - 낮고 가까운 예를 들어서 이해와 수긍이 가게 해설한 책이다.

 

노자를 안 읽어본 사람이라도 자주 들어본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현묘지도 玄妙之道” “천지불인 天地不仁” “천장지구 天長地久” “상선약수 上善若水” “금옥만당 金玉滿堂” 등 익숙한 어귀를 볼수 있다. 아주 오래전 어릴 때(少時的) 외국영화가 개봉되면서 퀴즈가 붙었다. 영화제목이 Straw Dog인데 기억나는게 “이 제목은 노자에서 따왔다 원문에서 straw dog을 한자로 뭐라고 부르는가” 뭐 대충 그런 퀴즈였다.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때인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수 없었다. 나중에 발표된 정답이 추구였는데 더 알수 없었다.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 에피소드의 의문은 한참 후 노자를 보고서야 비로소 풀렸지만 영화제목이 왜 추구인지는 작년인가 재작년에 리메이크된 <어둠의 표적>을 또 봤는데도 이해를 못했다.

유덕화 주연 영화 천장지구 역시 틀림없이 봤는데 내용은 기억이 안난다. 여주인공이 예뻤다는 정도. 그저 제목을 어찌 철학적으로 붙였나 생각한 정도.

 

1장과 2장은 김용옥의 책과 원문번역을 비교하면서 읽었다. 전공학자라 그런지 김용옥의 책은 고증과 훈고가 정확하고 근래에 발견된 <노자> 죽간과 백서 까지 검토해서 노자도덕경의 본뜻을 전달하려 애쓴 점이 돋보인다. 원문번역도 김용옥이 치밀하다. 그러나 차경남의 이 책도 정밀하지는 못해도 해설은 위에서 밝힌 것처럼 쉽게 쉽게 머리에 들어갔다.

 

저자에 따르면 도란 달을 의미하는데 달을 본 사람이 없으니 쓸데없이 문자와 언어에 매달린다는 것. 진리와 언어의 문제는 서양에선 비트겐슈타인에 와서 문제제기되지만 동양권에선 노자가 맨처음 지적하고 우리도 원효의 <대승기신론>에서 이 문제를 검토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즉 진리란 결코 언어로 설명될수 없다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노자에 접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노자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노자를 통해 인식의 변화를 겪는다는 것인데 노자를 읽고 유식해졌다면 그건 노자를 잘못 읽은 것이라 한다.

 

무위(無爲)를 설명하는 대목은 이렇다. - 너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라. 삶에 있어서의 온갖 억지와 인위의 배제, 그리고 자연스러움에 대한 찬미, 이것이 바로 무위이다. 인간의 행위중에서 가장 창조적인 것들은 사실 무위에서 나온다.

 

간결하지 못하고 만연체 문장으로 써진 글을 경계하라는 말도 나온다.

 

이름(名) - 경계와 구획, 이것이 다름아닌 노자가 말하는 이름이다. 노자는 이미 1장에서 이름이 지닌 허상을 지적하며 그 위험을 경고했다. 14장은 1장과 내용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노자의 도를 체득한 이의 모습은 확실히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의 모습과는 달라보인다. 유교의 군자는 어딘지 잘나보이고 씩씩해보이며 아는 것도 많고 나서기 좋아하는데 반해 도가의 인물은 어딘지 못나보이고 우물쭈물해 보이며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앞에 나서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그 안에 새로운 리더십의 특질이 고스란히 들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미래형 리더십의 근본이념은 소통이다.... 신중과 경청,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궁극의 진리는 이성적으로 파악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위와 허정(虛靜)을 아는 것인데 호흡법이나 만트라나 명상비법도 좋지만 그 어떤 것도 허와 정을 벗어나면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자 장자를 ‘연구’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저 노자 장자를 훑어보고 확인할 뿐이라고 한다. 궁극의 경지에 도달한 자만이 말할수 있는 지혜가 들어있는지를.

 

인용하고 싶은 보석같은 말들이 너무많다. 그러니 직접 보시라 할 수밖에 없다. 진리는 말해질수 없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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