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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자본론 - 자본은 인간을 해방할 수 있는가 ㅣ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이재유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6월
평점 :
컴퓨터 보안에는 '샌드박스(sandbox)'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온 집안을 어지럽히지 않게 모래상자 안에서만 놀 수 있게 한 것처럼, 외부의 서비스가 컴퓨터 전체를 접근하지 못하고, 샌드박스 라는 허용된 공간안에서만 운용되게 하는 겁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나 크롬같은 웹 브라우저에도 그 개념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웹 브라우저를 통해 접근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내 컴퓨터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면 내 컴퓨터는 남들의 놀이터가 될 뿐이죠. 그래서 웹 브라우저 안에서만 동작하게 하는 것, 그것이 샌드박스입니다. 브라우저밖의 내 컴퓨터에 접근하려면 나의 동의가 있어야 하죠. 파일 업로드나 파일 다운로드 처럼.
액티브 엑스가 보안의 적으로 지목되었던 이유는 샌드박스의 개념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공신력있는 정부 사이트와 금융권 사이트 등에서 액티브 엑스의 설치를 강제하면서 사용자들에게 잘못된 컴퓨터 사용 습관을 길들인 것입니다.
무슨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고 설치를 물으면 '예'를 누르는 습관을 강요해서, 악성 사이트와 악성 프로그램에게 내 컴퓨터를 내어주게 하는 것입니다. 신뢰할 수 없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아니오'를 눌러야 하는데 무작정 '예'를 누르는 습관을 길들인 것, 그게 액티브 엑스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근데, 그런 맥락은 외면한채 그저 액티브 엑스 기술만 축출하는 건 눈가리고 아웅일 뿐입니다. 명칭은 다르지만 위험한 맥락은 고스란히 간직한 다른 프로그램들로 대체했을 뿐이지요. 게다가 최근의 안드로이드 앱은 액티브 엑스의 위험을 뛰어 넘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고, 신뢰하지도 못하고, 그에 대한 보장도 없는 앱들을 무방비로 설치하고, 폰에 대한 접근 권한을 줍니다.
저는 경제학 이론들을 접하면 그 샌드박스를 떠올립니다. 고딩 때 정치경제 과목과 대1 때 경제학 원론이 제 경제학 배움의 전부이지만,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본 주요한 이론들, 보면 실현되기 어려운 전제 조건들 하에서의 이론입니다. 예를 들면 완전 경쟁 시장.
경제학 이론들이 매우 중요하고 유효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그런 비현실의 조건을 전제하는 이론들입니다. 근데 그것이 마치 복잡한 현실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절대의 진리인 것처럼 경제 학자들은 말합니다.
저는 그 이론들이 일종의 샌드박스 안에서 세워진 이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론들은 매우 중요한 진리의 단면을 갖고 있지만, 복잡다단한 현실 세계에서도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절대 반지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부론 해설서를 읽을 때도, 이번에 자본론 해설서를 읽으면서도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제가 이 책의 내용을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히고 싶습니다.
1 장. 실천적 유물론자 카를 마르크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자본의 물신적 특성을 드러낸 고전으로 유명하다. 그 이면에는 생시몽, 푸리에 등의 프랑스 사회주의, 애덤 스미스 등의 영국의 정치경제학이라는 경험론에 근거한 유물론과 헤겔 변증법을 비롯한 독일 관념론에 영향을 받고, 그 둘을 넘어선 '고차적인 단계'인 그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기존의 유물론과 관념론은 단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세계를 '해석'할 뿐이지만,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변혁'한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기존의 유물론과 관념론을 헤겔처럼 단지 종합, 통일한 것이 아니라, 이 둘을 뛰어넘는 고차원적인 단계에 있는 혁명적 유물론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따르자면, 인간의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기존의 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삶의 의지, 즉 투쟁이다. 그가 '자본론'을 연구하고 써내려갔던 것 또한 투쟁이었다.
- 고차적 유물론으로서의 과학
관조적인 경험론과 공상적인 관념론은 근대 과학의 철학적 세계관으로, 그 원리는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관조적이고 수동적인 것이다. 그에 반해 마르크스의 과학에 있어서 제 1 원리는 인간의 실천 활동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과학은 근대의 과학에 근거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고차적인 유물론적 관점에서의 과학이다. 이 과학은 자기 비판적이며 자기 혁명적이다.
- 마르크스 유물론과 변증법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인 과학으로서의 철학이다. 이 철학은 변혁적 실천의 이론적 무기로서 , 과학으로서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이 철학은 관조적 철학의 지위를 넘어서는 실천적인 유물론 철학이다.
그렇다면 모순적인 현실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할 현실적 인간, 즉 실천의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프롤레타리아트, 다시 말해 노동자 계급이다. 타자의 필요욕구를 충족시키지 않고는 자신의 필요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사회적 존재, 이들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이다. 이는 개별적이고 고립적인 원자화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내포하는 계급이다.
철저하게 속박되어 있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시민 사회의 한 계급이지만, 자신의 특수한 권리를 넘어서서 시민 사회의 모든 계급의 권리를 쟁취할 때만, 즉 모든 인간의 완전한 회복을 통해서만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특수한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보편적 존재이다.
시민 사회내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다른 계급의 당파성과 달리 프롤레타리아트의 당파성은 이를 넘어 보편성의 영역에 있다. 이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과학성과 당파성이 통일 되어 있는 실천적, 보편적 존재이다.
자본론은 자본의 운동 법칙을 관조적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을 해체할 수 있는 투쟁의 무기를 스스로 쟁취할 수 있게 하는 목적을 가진 변혁적이고 고차적인 유물론적 저서이다.
- 실천활동의 근원
마르크스의 유물론 철학은 실천활동의 산물인 과학적 세계관이다. 그런데 이러한 실천활동 또는 실천의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지금 우리의 삶이 인간답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문제의식은 내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자기의식이다. 여기서 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관계에 있는 나이다. 다시 말해 세계를 자신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는 나이다.
이 일상적으로 인간답지 못한 세계와의 관계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 삶의 역사적인 실천활동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 관계도 인간의 구체적인 실천활동을 통해 인간다운 관계로 바뀔 수도 있다.
- 자본론의 전체 모습
마르크스는 제 1판 서문에서 자본론의 목적을 첫째, 자본주의 생산의 자연법칙을 해명하는 것, 둘째, 이러한 자연법칙의 해명과 더불어 변혁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해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마르크스의 애초 자본론에 대한 구상은 자본, 토지재산, 임금노동, 국가, 대외정책, 세계시장이라는 여섯권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처음 세 권만이 자본론으로 엮여서 나왔고 나머지 세 권은 쓰이지 못했다.
제 1권 : 자본의 생산과정
이것은 생산과정에 투입된 자본이 어떻게 잉여가치를 생산하는지, 자본축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유지되는 지를 분석적, 역사적 방법을 동원해 규명한다.
제 2권 : 자본의 유통과정
자본가가 투자한 화폐가 생산수단과 노동력으로 전환되어 상품을 생산하고 이 상품이 판매되어 다시 화폐로 돌아오는 순환과정을 다룬다.
제 3권 :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
이윤, 이자, 지대, 임금의 원천이 잉여가치임을 밝히고, 자본 축적이 진행됨에 따라 이윤율이 저하되고 이로 인해 자본주의 모순이 더욱 심화되는 점을 밝힌다.
2 장. 자본론 읽기
- 상품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 사회이며, 따라서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 시작된다.
노동생산물이 교환이 이루어질 때, 그것은 상품이 된다. 상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유용성을 가지며, 이를 사용가치라 한다. 그러나 상품은 교환되지 못하면 단순한 노동생산물에 지나지 않으므로 교환될수 있는 가치가 필요하며, 이를 교환가치라 한다. 사용가치는 상품의 질적 속성을 나타내는 반면 교환가치는 양적 속성을 나타낸다.
교환가치는 상품이 교환되는 양적 비율로 나타나는데, 교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생산물을 하나의 공통적인 척도로의 환원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추상적 인간 노동이며, 그것이 바로 가치이다.
가치의 크기는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인 노동의 양에 의해 측정된다. 노동의 양은 평균적인 숙련도와 평균적인 노동강도와 평균적인 생산력 수준에서 필요한 노동시간, 즉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으로 측정한다.
가치는 노동생산물에 내재된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교환이라는 상품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가치는 인간 욕구의 다양성으로 인해 상품세계 전체와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가치는 상품 소유자들끼리 주관적이고 일시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하게 불변하는 법칙적 관계에 따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형태이어야 한다. 이제 가치의 등가 상태를 나타내는 현물 형태, 즉 화폐 상품이 필요하다.
- 화폐
화폐는 상품 교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유통 수단으로서 상품의 가치를 표현해주는 일반적인 등가물인데, 상품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여러 상품들 속에서 선택된 특수한 상품이다. 아주 작은 양의 가치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잘게 자를 수 있으며, 내구성이 강하고, 많은 양의 가치도 적은 양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금이 화폐의 역할을 하게 된다.
화폐는 상품 세계에 가치 표현의 재료를 제공한다. 모든 상품의 가치는 인간 노동이고 그것은 같은 단위로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화폐의 가치 척도는 상품들에 내재하는 가치 척도, 즉 노동시간을 현상하는 형태이다.
물물교환에서는 판매와 구매가 즉시 일어나기 때문에 판매와 구매(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화폐를 통한 상품 유통에서는 판매와 구매가 각각 따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써 과잉 생산으로 인한 공황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화폐는 모든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부의 축장 수단으로 사용된다. 상품은 다른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폐로 바꾸기 위해 판매된다. 상품 교환이 아닌 화폐의 축적이 목적이 되어버린다.
또한 화폐는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므로, 축적 수단과 지불 수단의 기능을 지닌 화폐는 세계 모든 상품을 구매하도록 해준다. 국내 유통의 단계를 벗어나면 화폐인 금은 국지적 특성을 벗어버리고 원래의 귀금속 덩이 형태로 변환한다. 세계 시장에서 비로소 화폐는, 그 현물형태가 추상적 인간 노동의 직접적인 사회적 실현인 상품의 성격을 완전히 발휘한다. 이제 세계화폐는 일반적 지불수단, 일반적 구매수단, 그리고 부 일반의 절대적․ 사회적 체현물로 기능한다.
- 자본
화폐는 유통과정에서 자본으로 변신한다. 화폐-상품-화폐의 순환 목적이 사용가치가 아니라 더 큰 화폐의 획득일 때, 화폐는 자본이 된다. 자본으로서 화폐의 유통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므로 자본의 운동에는 한계가 없다.
그렇다면 등가물의 교환인 교환 과정에서 잉여가치의 발생, 즉 가치증식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가치의 변화는 사용가치, 즉 상품의 소비에서 발생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용하면 가치가 창조되는 특수한 상품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다.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노동력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으로 규정된다. 이는 자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일정량의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다.
- 자본의 증식
자본가는 생산 과정에 생산 수단과 노동력을 투입하는데 , 자본가의 목적은 자기가 생산에 사용한 가치총액 보다 더 가치가 큰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즉, 잉여가치의 생산이 목적이다.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생산수단과 노동력에 화폐를 투입한다. 생산수단은 자기의 가치를 생산물에 그대로 이전한다. 가치를 증식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에 해당하는 노동시간 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을 투여해야 한다.
자본가의 입장에서 생산수단에 투자한 화폐는 가치량의 변화가 없는 불변자본이고, 노동력에 투자한 화폐는 가치를 증식시키는 가변자본이다. 그러므로 <상품의 가치 = 불변자본(c) + 가변자본(v) + 잉여가치(s)>의 등식이 성립된다.
노동자의 노동시간중 노동자가 받는 임금에 해당하는 노동시간을 필요노동이라고 하고, 임금으로 받지 못하는 추가적인 노동시간을 잉여노동이라고 하며, 착취라고도 한다. 이 잉여노동시간을 잉여가치라고 하는데, 이 잉여가치가 자본이 된다.(필요노동=가변자본(v) 이며, 잉여노동=잉여가치(s)이다.)
이때 자본의 자기가치 증식 비율을 <잉여가치율=잉여노동(s)/필요노동(v)>이라고 하는데 잉여가치율은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착취도가 된다. 자본은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여 자기의 몸집을 불리려고 한다.
그래서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을 어떻게든 더 늘려서 최대한의 잉여가치를 생산하려고 한다. 이것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라고 한다. 자본가와 노동자는 노동시간을 두고 서로 갈등하고 투쟁하는 관계에 놓인다. 그리하여 노동시간의 표준화는 총자본(자본가 계급)과 총노동(노동자 계급)의 투쟁에서 결정된다.
표준노동일의 제정으로 노동시간을 늘리는 건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이제 필요노동을 줄여야 한다. 이는 상품의 단위당 가치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필요노동시간의 단축으로 생기는 잉여가치를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한다.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협업, 분업, 그리고 기계제 대공업이 있다. 기계제 대공업에서 노동생산성의 향상은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협업이나 분업은 노동자가 도구를 사용하지만 기계제 대공업에서는 기계가 노동자를 사용한다.
노동자의 노동은 기계에 맞춰지고 자본가는 기계를 최대치로 운용하므로 노동자의 노동은 기계의 최대치에 맞춰야 하는 엄청난 강도로 이루어진다. 이제 노동자의 노동의 강화는 곧바로 노동자의 소외(인간 소외), 즉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노동이 가벼워지는 것조차 기계가 노동자의 노동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기계 그 자체는 노동을 경감시키지만 자본주의적인 사용으로 노동시간을 연장시키고, 노동강도를 높이며, 인간을 노예로 만들며, 생산자를 빈민으로 만든다.
기계제 대공업의 발전은 주기적 공황이 발생하는 경제적 조건으로 작용한다. 열병적인 생산과 이에 따른 과잉 공급, 그리고 시장의 축소와 이에 따르는 생산의 마비를 일으킨다. 산업의 생애는 활황, 번영, 과잉생산, 공황, 침체라는 일련의 시기로 구성된다.
- 자본의 축적
잉여가치를 획득한 자본가는 개인적 소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다시 자본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를 '자본의 축적'이라고 한다.
자본의 축적, 즉 자본주의적 생산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자본의 생산 과정에서 자본-노동의 계급 관계가 끊임없이 유지되어야 한다. 즉, 자본가 계급은 잉여가치를 끊임없이 생산해 자본을 축적해야 하고, 노동자는 노동력의 판매를 통해 자기 자신과 다음 세대의 노동자를 생산, 유지해야 하며, 어떠한 생산수단도 소유할 수 없어야 한다.
이로부터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이 도출된다. 사회적 기능자본의 성장과 이로 인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절대수와 노동생산력이 커질수록 산업예비군과 빈민은 그만큼 커진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임금노동자로부터 자기의 노동을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빼앗아야만 가능하며, 따라서 이른바 국부를 증진시키기 위해 국민 대다수를 빈곤하게 만들어야 한다.
- 자본의 유통 과정
자본의 순환은 화폐 - 상품(생산수단, 노동력) - 생산 - 상품 - 화폐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자본이 가치증식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이 순환과정을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
이러한 자본이 투자되어 다시 자본의 형태로 돌아오는 순환을 자본의 회전이라 부르며, 자본의 회전 시간의 단축은 보다 많은 잉여가치의 증대를 가져온다.
-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
애덤 스미스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이윤과 지대의 원천이 잉여가치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을 고찰해야 한다.
과학을 통해 <상품가치 = 불변자본 + 가변자본 + 잉여가치>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자본가의 관점에서는 <상품가치 = 자기가 생산에 투입한 비용 + 이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잉여가치 대신에 이윤으로 대체되고, 잉여가치율(잉여가치(s)/가변자본(v)) 대신에 이윤율(잉여가치(s)/자본투입총액(c+v))이라는 개념으로 대체된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c/v)가 높다는 것은 가변자본이 적어진다는 것, 즉 노동자의 임금 부분이 적어지고 불변자본이 많아지고 노동강도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가변자본이 줄어든다는 것은 잉여가치(s)가 줄어드는 것이고 이는 이윤율(s/(c+v))을 저하시킨다. 이를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윤율 저하 경향은 노동력을 감소 시키고 이는 다시 이윤율의 저하와 이에 따른 노동력의 감소로 순환된다. 노동력의 감소는 과소 소비 상태를 불러오고 결국은 경제 공황을 불러온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유물론적 변증법(추상에서 구체)에 의한 고찰을 통하여 속류 경제학의 삼위일체 공식의 오류를 정리하고 있다. 자본-이윤, 토지-지대, 노동-임금의 세 항은 속류 경제학에서 서로 연관성이 없는 개별적인 것들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윤, 지대, 임금이라는 수입은 노동자가 새로 창조한 잉여가치의 세 가지 형태로서 그 원천은 노동자의 잉여노동이다.
속류 경제학이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모든 사회의 생산양식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자연법칙으로 파악하는 것과 달리,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특수한 종류의 생산양식이다. 분배관계는 이 생산양식과 동일하며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근대 경험론에 근거한 속류 경제학자에게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은 노동자, 자본가, 지주 3개이다. 그런데 이 3대 계급은 분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므로 사회적 분업에 따라 무수히 많은 계급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무한하게 많은 계급이라는 것은 계급이 없다는 말과 같다. 결국 속류경제학에서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충돌은 개인들의 이기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같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이 인간 해방을 어떻게 가로막고 있는지, 그리고 노동자 계급이 이 장애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늕가를 '과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대표 저작이다. 그리고 유물론의 '과학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는 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이다. 그리하여 '자본론'은 하나의 과학으로서 유물론과 변증법이 종합, 통일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