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초 바람과 비가 몰아치는 날 브론테가와 목사관을 방문했다. 첫인상은 소설속에 나오는 구절처럼 영국이라는 나라와 동떨어진 무척이나 한적하고 황량한 곳이었다. 회색빛 묘지의 비석~저기 어딘가에 브론테가의 묘지가 있다 한다.~과 200년이 된 교회가 우리를 맞이했다. 감리교계의 목사 부부는 2살 ~ 3살 정도의 아이를 데리고 이 곳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폭풍의 언덕은 출간 당시 호평을 받지 못했다. 18세기와 19세기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비난을 받는 일인지라 글을 쓰는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숨긴 가명으로 작품을 출간했고 브론테 자매도 그러했다.

이 책을 처음 읽을때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광적인 사랑과
집착으로 이해했다. 캐서린도 에드가와 히스클리프의 사랑의
차이를 이야기했고 히스클리프도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탈바꿈
하여 캐서리을 뺏기 위한 몸부림이라고.생각했다.

두번째 읽을때는 다른 관점을 생각해보았다.
이 책의 소재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황량하고 질퍽거리는 히스언덕 말고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히스클리프는 브론테가의
야수와 같은 키퍼라는 개에서 소재를 얻은 것은 아니었을까?
소설속에 히스클리프는 개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데려온 언쇼
조차도 이름만 주었을뿐 깊이있는 존중은 나오지 않는다

비와 바람. 그리고 폭풍우가 가득한 워더링하이츠에 어울리는
소설속의 한 남자가 히스클리프다. 에밀리는 워더링 하이츠의 바람과 비를 너무 사랑했다한다. 캐서린도 사랑한 이곳의 자연을 배경으로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을 탄생시켰다.

다시, 생각을 정리하면, 당시 에밀리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비난을 받았다. 기독교적인 관점으로서는 히스클리브의
잔인한 욕망과 사랑이 용납될 수 없었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눈을 닮고 자신의 처지와 너무나 닮은 헤어튼 언쇼에 의해 무너진다. 복수가 덧 없음을 알게 된다.
에밀리는 이 두 주인공의 사랑을 통해 세상에 어떠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으며 신을 통해서 용서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에밀리는 자신은 신 앞에서 절대 나약하지 않으며 자신은
신의 믿음과 자비로 살아갈 것이라 했다.
다시 폭풍의 언덕이 그려진다.
대자연속에 거칠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욕망, 사랑, 애증이
잘 표현된 책이었다.

하워스 언덕을 떠나 히드로 공항을 떠나온 날
갑자기 울컥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같은 여성으로서 자유롭지 못한 기독교의 교리와 시대상황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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