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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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발칸 반도는 고대부터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에는 종교와 문화가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는 만큼 갈등이 그치지 않아 유럽의 화약고라 불렸다. 작가가 소설 속에 이야기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 남서쪽 모스타르에는 오스만제국이 보스니아를 지배할 때 술탄 쉴레이만의 명에 따라 건설한 스타리 모스트다리가 있다. 이 다리 아래 네베르트 강이 흐르고 다리의 양쪽에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와 카톨릭을 믿는 헤르체고비나가 있다. 서로 다른 종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홍수, 그들의 문화를 침범하는 새로운 문명과 이방인의 세력, 세계대전에도 다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민족간에도 균열이 생기지 않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반 안드리치는 그의 저서 드리나강의 다리에서 다 민족이 서로 공존하고 위기를 극복한 유고의 역사를 건재한 다리를 통해 이야기한다. 또한 이반 안드리치는 서서히 다가오는 도화선인 민족주의의 물결을 걱정한다. 그의 믿음은 지금껏 버텨온 스타리 모스트다리가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나라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이반 안드리치는 1975년에 사망한다. 1991년 서로 화합이 불가능한 유고슬라비아는 전쟁의 도가니속으로 빠져가고 스타리 모스트다리는 1993119일 포화속에서 드리나강 밑으로 가라앉는다.

 

떠나온 자들의 말, 이별, 그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들로 전개된 출신. 작가는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며 여든살이며 동시에 11살인 할머니의 기억을 더듬어 잊혀지는 유고슬라비아의 기억를 우리에게 되돌려 주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작가는 극심한 민족주의로 인한 내전과 분쟁속에서 목숨의 위협을 이 나라를 떠나라는 지시를 받는다. 작별 인사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떠나온 자신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을 어렴풋이 기억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으로 적응하며 살기 위하여 자신의 출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하이델베르크를 도피처로 삼는다. 다른 나라에서 지식인이 아닌 가혹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부모님, 추방 중에 트라우마를 겪게되는 동료, 떠나온 자들의 힘든 사연을 보며 자신의 출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 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거죠 그건 저주에요! 아니면 약간의 운이 들어 있는 능력이랄 수 있어요. 재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장점과 특권을 만들어내는 능력 말이죠.”

타민족에 대한 편견과 감당할 수 없는 차별 앞에 떠나온 자들은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지 않는다. 침착함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기에.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그곳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작가는 할머니와 가브릴로 노인과 함께 조상들의 영혼이 깃든 공동묘지를 찾아가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쓴다. 조상과 후손에 얽힌 이야기를. 무덤과 상차리기, 망령의 이야기를. 그 이야기들은 남아있는 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의 길은 나를 먼 세계로 이끌었고,

나는 내 운명을 쫓아갔지,

내 마음에 너를 품고서

넌 항상 내게 소중했어,

내 사랑하는 고향이여,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종식되자 스타리 모스트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네스코와 각국의 지원을 받아 200161일부터 다리의 복원이 시작됐다. 잠수부들은 파괴된 후 강에 수장된 다리의 파편들을 건져 올려 1088개의 석재 파편을 꼼꼼히 재배치했다. 2004723일에 재건되었고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며 전쟁과 평화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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