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51 

 우리는 이곳에 오게 된 까닭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려 애쓴다.

우리에게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인 오지상초차도, 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줄 모르는 해금은 자신이 어수룩해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한다. 악순 언니는 부모 없는 고아 신세라서, 점순 언니는 자신의 팔자가 사나워서, 끝순은 일본이 전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요시에는 엄마 말을 안 들어서, 을숙 언니는 직업소개꾼에게 속아서, 애순 언니는 그냥 이곳이 어딘지 잊어버린다.

 죄를 지어서 그 벌로, 혹은 사나운 팔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이곳이 어딘지 잊어버리는 게 나을까.

 나는 이곳이 어딘지 잊어버리려고 애쓴다. 그런데 나는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

 

p. 122

 미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미치면 지난밤 군인을 몇 명 받았는지 모를테니까. 부끄러운 것도,

수치스러운 것도, 더러운 것도 모를테니까.

 

p. 157

 '버려지겠지......일본이 전쟁에서 이기면 산 채로, 지면 죽은 채로.......

두 살 먹어서는 엄마에게 버려지고, 아홉 살 먹어서는 큰어머니에게 버려지고, 시집가서는 문둥이 남편에게 버려지고......가는 데마다 버려지다 보니 버리는 걸 배워서 나도 아기를 버렸어

 

p. 172

 아직 어린 새이고 싶었는데, 아직 어린 여자애이고 싶었는데......

 

p.184

 다시 태어나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 남자로도 태어나고 싶지 않다.

남자로 태어나면 군인이 되어야 하니까, 총과 칼을 들고 전쟁을 해야 하니까, 사람을 죽여야 하니까.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

구름이나 새, 나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사람으로 태어나느니 차라리 돌맹이로 태어나고 싶다.

 

p.195

" 너는 어떻게든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라......

너는 어떻게든 살아서......"

 

p.249

아버지, 어머니,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라고 빌어주세요. 제가 살아 돌아오라고 빌지 말고

 

p.291

어머니, 오늘 밤 나는 아기를 낳을지오 몰라요.

닭띠 아기를요.

어머니, 그런데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요.

무슨 죄를 지어서 이 먼 데까지 끌려와 조센삐가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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