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의무에서 벗어나 기다리던 자유로운 때를 꿈꾸고 그 시간이 오면 본업에만 전념하겠다고 말하곤 한다. 자투리 시간에는책을 쓰거나 연구를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변명을 하면서, (…)
세월이 흘러서 마침내 기다리던 자유를 얻었다. 고대했던 그 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때쯤이면 더 이상 자신이원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끔 변해 있었다. - P16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탓에 독자들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삶은 외면적으로는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하게 보일 수 있다. 게다가 보통 사람들의 눈에 그는 전형적인 ‘운 나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그는 조화로운 정신력의 소유자였고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런 종류의 사람이 더이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오래 전에 멸종한 공룡처럼 말이다. 탐험가가 대륙을 처음 발견했을 때, 혹은 천문학자들이 새로운 별을 찾아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작가도 새로운 인물을 세상에 소개하면서 아주 커다란 행복감을 느낀다. 문학사를 보면 많은 작가들이 그러한 행복을 누렸다. - P25
나 자신의 ‘이상‘을 찾아냈다. 솔직히 ‘이상‘이라는 단어가 류비셰프에게 별로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누구나 그를 알았지만, 누구도 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는 커다란 강당에 앉아 있었다. 앞쪽으로 백발, 대머리, 짧게 다듬어진 학생 머리, 헝클어진 장발, 유행을 따른 듯한 가발, 꼬불거리는 흑인머리 등이 강렬한 전등 불빛을 받고 있었다. 교수, 박사, 대학생, 기자, 역사학자, 생물학자들이 모인 자리였다.
특히 수학자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날의 행사를 수학회에서 주최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Aleksandir Aleksandrovich Lyubishev를 기리는 첫 번째학술 모임이었다.
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못했다. 더구나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들은 아마 호기심때문에 온 듯했다. 아직 류비셰프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할테니 말이다. 류비셰프는 생물학자도 아니고 수학자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까? 아마추어인가? 그렇다, 아마추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지방의회 의원으로 일하면서 취미로 수학을 공부했던 페르마Pierre de Fermat(1601~1665), 철 - P26
제강법을 발견해낸 베서머Henry Bessemer(1813~1898), 재판소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화학을 공부해 새로운 제철 제조 과정을 개발한 토마스S,G, Thomas(1850~1885)가 그랬듯이 말이다. 류비셰프를 이끌어간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생기론生氣論(물질적인 요인만으로는 생명 현상을 이해할 수 없으며 설명하기힘든 독자적 법칙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론. ― 옮긴이)도, 실증주의도, 이상주의도 아니었다. 그는 이단아였다.
발표자들도 류비셰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한 사람은 생물학자라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역사학자라고 했으며 곤충학자 혹은 철학자라 부르는 이도 있었다.
발표자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류비셰프가 탄생했다. 각자 그에 대해 나름대로 정의하여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는진화론과 유전학에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던 류비셰프를 혁명가라 칭했고 다른 누군가는 이단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혹은 반대파에 대하여 한없이 너그럽고 선랑한 러시아 지식인의 올바른표본이라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류비셰프는 어떤 유파의 철학이든, 거기에 비판정신과 창조성이담겨 있으면 그것을 매우 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류비셰프는 언제 어디서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해냈고 항상 - P27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사고를 자극했습니다." "어느 유명한 수학자가 ‘천재적인 수학자는 이론을 제시하고 실력 있는 수학자는 그 이론을 증명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류비세프는 후자 쪽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류비셰프는 자신의 능력을 너무 분산시켰습니다. 그는 처음부터분류학에만 치중하고 철학적인 문제에는 아예 관여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류비세프는 인간이 집중력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면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지 확실히 보여주는 본보기였습니다. 그는한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수학적 친재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철학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종의 기원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실증론자였습니다." "그는 유물론자였습니다." "그는 공상가이자 직관론자였고 모든 것에 풍부한 호기심을 가지고 몰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발표를 한 사람들은 모두 류비셰프와 오랜 시간동안 알고 지내면서 그의 연구를 수차례 접했던 이들이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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