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평가와 연옥
그런데 일반적으로 낮은 노동의 시간, 밤은 휴식의 시간 이라는 사고가 있다. 낮에는 여러 가지 것들을 보고 듣는다. 밤은 『만요슈』에 ‘칠흑 같은 밤‘ 이라고 나와 있듯이 매우 어둡다. 캄캄한 밤에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을 떠올릴 수 있다.
밤에 단순한 자연 상태에서 자신의 주위를 정화하면 주위의 아름다운 사람, 편리한 도구, 예술 작품, 자기가하고 싶은 일의 소재 같은 가시적 대상은 모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자기 마음만 남게 되므로 밤이야말로 기도할 시간이라고 말한다. 수도원에서는 세속을 끊어 내는 그러한 밤 시간을 중시했다.
밤이 신과 만나는 시간이라는 생각은 중세 신앙서 속에서 많이 발견되며, 기도수도회 예를 들면 베네딕트회나 시토회(트라피스트희)에서는밤에도 시종(時鐘)에 맞춰 몇 번이고 일어나서 성당으로 향하고 기원을 노래한다. 밤 아홉 시경 그날의 마지막 기도를 올리면 방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든다.
한밤중인 자정에 일어나 모두 함께 40분 정도 시편을 낭송하는 기도를 행한다. 다시 잠들었다가 새벽 세 시쯤 일어나 기도한다. 카르투지오회는 이를 혼자서 행한다. 밤은 기도의 시간이다.
그러나 밤은 한편으로 다른 사람의 눈도 없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로부터 벗어나 있으므로 나쁜 일을 생각할 가능성도 있다. 검은 옷을입은 악마는 밤에 슬그머니 찾아온다. 대부분의 죄는 밤에 일어난다.
따라서 밤은 신이 부여해 주신 시간이긴 하나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13세기 신학적 문제의 하나였다. - P345
아직 연옥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연옥 들판에 있던 베르질리오와 단테는 성을 향해 가던 도중 우연히 마주친 소르델로(Sordello)에게 지름길을 묻는다. 그러자 소르델로는 위로 오르는 일은 밤에는 할 수 없으니(ed andar su di notte non si puete;) (연 · 7.44)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문답은 이어진다.
그것은 어인 연유요, 밤에 오르고자 하는 이는 다른 이에게 방해를 받기 때문이오, 아니면 힘이 미치지 않아 스스로 오르지 못함이오착한 소르델로가 손가락으로 땅을 그으며 이르기를, 보시오, 그대는 해가 진 후에는 이 금 하나도 넘기 어려우리허나 오르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밤의 어둠뿐이니, 그 어둠이 힘을 앗아 의지를 가로막으리 (연 · 7. 49-57 야마카와)
이 세상의 밤은 신에게 다가가는 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죄로 기우는 때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연옥에서는 밤의 어둠이 사람의 힘을빼앗아 의지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연옥에서는 밤에 움직이면 안 된다.
우리는 하루 종일 온갖 일들에 마음을 빼앗겨 신을 생각할 수 없다. 밤에야말로 신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밤은 아름다운 상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이므로 밤에야말로 사색의 능력이 커지고 사색의 의지도 강해진다. 그러한 시간에 우리의 마음도 천국을 향한 방향으로 조금은 가까워진다.
그러나 동시에 밤에는 나쁜 마음이 일거나 사악한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현세를 사는 우리의 마음에는 양극성이 있다. 그에 비해 연옥의 밤은 부정성 하나로 결정되어 있으며 그것은 죽음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단테의 지옥과 연옥은 모두 현세 자체를 깊게 생각하게 하는 것들로 - P346
가득 차 있다. 지옥편에서는 이 세상에서 절망하면 그것이 곧 지옥임을배웠는데, 밤이 가지는 양면성 중에서 밤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의지가약해지고 능력도 빼앗길 때는 살아 있으되 연옥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읽어 나가면 지옥이나 연옥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문학의 의미를 통절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곡』은 현세를 사는사람들에게 현세와는 다른 세계를 현세의 현실 행위와 관련시켜 생생하게 묘사해 줌으로써 어느새 현세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해 깊은 질문을던지게 하는 책이다. 이는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만인에게 열린 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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