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와 악마 1 - 마신각성, NT Novel
무츠즈카 아키라 지음, 김은영 옮김, 카즈아키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드디어 과거의 명작들을 대강 훑어보고, 신간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름이 자자한 명작들에 비해서, 조금은 떨어지는 작품을 보는 것은 필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내 피 같은 돈.

어느 날 갑자기 엑스칼리버를 쥐어주고 ‘너는 사실 세계를 구할 용사의 후예야!’ 하면서 마왕과 싸우라고 냅다 던져주니, 주인공은 주인공 나름대로 ‘아. 세계를 구해야 해.’ 하면서 열혈용사 모드로 변한다.
그런 70년대 게임 시나리오 수준의 몰입도다. 차라리 게임 시나리오였다면 좀더 좋은 평가를 해줄 수 있을텐데.

팔안장패. 마왕이 여덟명이 싸워서 가장 강한 자를 자신의 숙주 삼겠다는, ‘고독’이라는 주술형태의 시스템이다. 그리고 무찔러야 할 적을 명확히 제시하고, 소년에게 칼을 쥐어준다는- 굉장히 게임 시스템과 같이 전개된다.
괜히 게임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 볼일 없는 것이 가려지지 않는다.

그저 설정을 밀어닥치는 식으로 설명하는 전개에, 70년대 게임의 주인공들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의문도, 고민도 가지지 않는다(물론 그런 장면이 잠깐 있기는 하지만). 그저 밀어닥치는 전개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뿐.

섬세한 심리전이라던가, 고뇌라던가 할 것은 터럭도 없다.
하긴, 그저 ‘원수를 갚겠다’ 정도의 소원 가지고 뭘 하겠는가. 복수심을 허투루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소년에게 있어서 ‘복수를 위해서 이 한 몸 불사르겠어!’ 하는 자세도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욕심이 없는 것도 정도껏이지. 고작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데 하는 말이 아버지의 복수? 발상의 전환도 이 정도면 최악이다. 적어도 ‘그럼 내 아버지를 다시 부활시켜!’ 정도의 기개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가능의 여부를 떠나서)
아니면 생각이 거기까지 닿지 않은거냐. (이건 이것 나름대로 절망적인데?)

악당들도 절망적이다. 그야말로 어디서 싸구려 악당을 채용했다.
삼류 건달도 이보다 좋을텐데. 마왕의 힘으로 세계를 장악하겠어! 따위의 망상을 하며 희희낙락하는 놈들을 보니 골치가 아프다.
머리에 생각이라는 것이 박힌 놈들인가, 이것이. 정말 그렇게 세상이 쉽게 돌아갈 것 같은가? 마왕의 힘을 이용하려는 주제에 마왕의 의사는 논외다. 한 때 세상을 장악했다는 녀석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잖아?

포켓몬스터의 로캣 개그단이 딱 이정도였으나, 그 쪽은 순수하기라도 하다. 이건 뭔가. 능력도 기량도 되지 않는 액스트라다. 배포는 가상하다만 거기에 정의도 논리도 야망도 시정잡배란 말이다.
촌스러워서 같이 놀겠나, 정말. 보는 내가 더 창피하다.

여하튼 종합 평가는 ‘초반 보스로는 적당함.’ 다른 녀석들이 전부 똑 같은 케이스라면 앞날이 까마득하다. 마왕폐하께서는 남의 소원을 밟으니 어쩌니 거창하게 말했지만- 내 생각은 이거다. ‘고만고만하구만.’.
적어도 에반게리온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책의 대부분은 전투로 때우지만, 액션이 훌륭하지도 않다. 같은 시기에 번역 출간된 ‘강각의 레기오스’는 정말 훌륭한 액션을 보여줬건만, 싸우는 순간에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판타지. 쾅쾅 하고 쏘대고 쾅쾅 하고 끝나 버린다.
만약 내가 처음 본 것이 렌즈와 악마라면 ‘우와아 특이해!’ 하면서 좋아하겠지만, 이제는 이정도는 면역이 되어 있다. 렌즈로 악마를 소환한다는 특이한 설정정도는 여느 라노베나 게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싸우는 전투 방식에는 흥미 없다. 그런 것 역시 쌓이고 쌓였다.
애니메이션으로라면 의외로 번쩍거리면서 반응이 좋을지도.

그 외에 기타, 필력도 그저 그렇다. 이야기의 태반이 대사로 진행된다. 대사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무척 흔한 전개이지만, 거기에 특출난 필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문장 가지고 점수를 주긴 조금 뭣하지.

정말 별 볼일 없는 소설.
이정도 소설은 대한민국에서도 쌓였다. 괜히 일러스트에 혹하지 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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