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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을 말한다
유광종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20년 6월
평점 :


백선엽님은 평안남도 태생으로 평양 인근 마을에서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며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일곱살 때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아내와 3남매를 남겨두고 홀로 집을 떠났습니다.
그로 인해 아버지의 기억은 남아 있지도 않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가야 하는 어머니는 앞이 막막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습니다.
다섯살 차이 나든 그의 누이가 울며 매달리며
그냥 죽을 수는 없다. 몇년만 더 살아보자 라고 어머니를 설득하였습니다.
백선엽은 행동이나 언행이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몸은 아이였지만 머리와 마음은 어른보다도 더 어른 다웠다고 해야 할까요?
25P 군인의 길은 숙명이었다.
『선엽의 외조부 이름은 방흥주, 구한말의 군인으로서,
참령이라는 계급까지 올라선 인물이었다.
참령은 말하자면 평안남도 주둔 사령부의 부사령관쯤 되는 계급이다.
꼿꼿한 성품에 군인으로서 강직한 성격이었으며,
행동거지가 진중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맏았다고
그의 어머니는 유년의 선엽에게 자주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
그의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초상을 만들고 잘 보이도록 안방에 걸어 두었습니다.
그리곤 외할아버지의 살아계셨을 때의 일들을 이야기 해주었고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백선엽은 어머니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있었습니다.
이 계기로 백선엽은 군인의 길에 들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존경받던 외할아버지를 백선엽은 동경하고 있었고
군인은 무엇이며 어떤일을 하는지
왜?? 존경을 받을 수 있었는 지에 물음표를 던지며 의식 하고 있었습니다.
157P "백선엽은 뭐하는 지휘관이냐"
『 백선엽은 여순 사건에서 돌아와 숙군 작업을 마무리 짓고
다시 5사단장을 맡아 지리산 공비 토벌에 들어갔던 것인데
(전임자인) 김백일과는 달리 작전 명령이 떨어졌는데도
꽤 오랫동안 묵묵부답인 채로 있었다.
(군사 고문단장인) 로버트 장군은 '백은 어떻게 된거냐'고 』
그렇습니다. 백선엽은 명령을 받고선 바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렸습니다.
작전이 성공 할 때까지 부대를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고 대신에
부대를 훈련 시키고 주변의 있는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협조를 구했습니다.
백선엽을 잘 몰랐던 로버트 장군은 일을 잘 못하는 지휘관으로 봤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때를 기다리며 훈련을 지속하였고 주변 이웃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 가며 적들이 숨을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결국에는 그 작전이 성공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명령에 의한 복종만 했더라면 적들을 물리 쳤을 수 있었을까요?
어떤 것이 이 작전에 효과 적인지 생각하고 움직이는 백선엽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86P 왜 그를 명장이라 부를까
『 백선엽을 다루는 이유는 간단하다.
70년 전 벌어진 이 땽 위의 전쟁에서 그는 가장 두드러진 야전의 잔사였고,
모든 유무형의 싸움에서도 승리한 최고의 승부사였기 때문이다.
꼭 내가 나서야 할 싸움에서는 전력을 기울일 줄 알았던
승부사로서의 백선엽은 한국 사회의 커다른 연구대상이다. 』
6.25는 우리나라가 2개의 나라가 되어 각 자의 삶을 살게된 시기라 볼 수 있습니다.
함께 하려고 애썼지만 애석하게도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져 버렸습니다.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을 하게된 그들에게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학교 다녔을 때 교과서의 글로만 읽었었고 영화에서 다루어진 것을 봤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 들어가 있지 않았기에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단장 자리를 물러선 백선엽은 예비역의 군복을 입고 군대로 갔습니다.
뼛속까지 군인이였습니다.
결코 물러 서지 않았던 백선엽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았을까요?
검색을 해보니 약간의 문제는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때의 문제로 친일을 했던 자로 적힐 것인가..
아니면 6.25 전쟁에 나선 우리나라의 영웅인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던 군인으로서의 전략적인 리더십은 인정할 만합니다.
전쟁의 여파는 컸고 백선엽도
과거의 기억 속에 갇혀 버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