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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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다룬다. 오랫동안 곁에 있을 사람과 흘러가버릴 사람을 구분하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을 지배한다는 것.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길 것이냐, 그리고 남이 하는 말은 모조리 반박하고, 제 혼자 옳은 줄 아는 무지. 인생 한 판에 역전을 기대하는 심리들, 이 글들은 참으로 통쾌하다. 뜨끔하기도 하다. 문인이 인터넷 용어, 비어 들을 사용해서 신세대와 소통을 한 것은 좋은데, 문인으로서 이렇게 비속어를 쓴 것이 생소하다. 물론 이외수 선생님이니까 뭔 깊은 뜻이 있겠지 싶으면서도.
글을 좀 잘 썼으면 좋겠다. 글쓰기의 공중부양도 읽었더랬지만, 그의 글은 살아 있다. 읽고 있으면 활력이 넘치고, 바로 귓전에 대고 고함을 치는 것도 같다. 옆에서 항아리가 쨍 툭하고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땀냄새도 나는 것도 같고. 아무튼 대단한 분이다.

문학에 비한다면, 실용적인 글이야 얼마나 쉬우랴만은, 어제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보고서를 생각나는 대로, 펜가는 대로 썼다가 혼쭐이 났다. 주변에 사람이 많았는데 깨지자니 무지 쪽팔렸다.(이런 표현 쓰면 안 되는데…) 니가 무슨 팔릴 쪽이 있냐. 우리 교수님이 늘 하시는 말씀인데. 그래도 낯이 뜨거웁다. 보고서를 잘 써야지 하고 늘 생각한다. 생각대로 안된다. 일목요연하게 짧은 시간안에 제대로 내용을 다 담아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보고하는 건 예술이다. 길 필요도 없다는데… 허구헌 날 메모의 기술과 정리의 기술, 뭐 보고 요령 읽었건만 허사다. 책을 허투루 읽은 게냐.

아마 정성을 들이지 않고 글을 내동댕이친 걸 상대도 아는 모양이다. 내 속에 홧기가 가득해서 글을 다 뿜어내버린 걸 느끼는 것 같다. 한번에 일필휘지 휘갈겨제끼고 다시는 보기 싫다. 내 새끼같은 글이건만 나 닮았으련만 그래서 아주 싫다. 요즘 내 속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서평을 쓸 때도 단편적이지만 단순하지는 않은,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는 글인 것 같아 속이 상한다.

그래서 자극적인 선생님의 글이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다. 고수가 쉬운 글을 쓰니 그것도 멋져보였다. 일부러 인터넷용어와 비속어로 글의 권위를 찌그러트린 걸로 생각되었다. 인터넷에서 자주 만날 법한 내용이지만, 문학하는 이의 외로움과 한 줄 한 줄 열심히 살은 땀자욱이 느껴진다. 하악하악이 야동을 보고 내는 소리일 줄이야. 무슨 한자일 줄 알았는데. 역시 괴짜이다.

형식은 가벼웁되, 주장하는 바도 그렇지는 않다. 예술에 대한 갈망, 자신의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의 내공, 젊은이들을 향한 조언들이 귓전에 쟁쟁하다.

한 가지 일에 평생을 건 사람에게는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격언이 무의미하다. 그에게는 오늘이나 내일이 따로 없고 다만 ‘언제나’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한 우물을 파다가 끝까지 물이 안 나오면 인생 막장 되는 거 아냐, 라고 말하면서 손도 까딱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삽질 한 번 해보지 않고 그런 소리나 하는 사람들, 대개 남에게 물을 얻어먹고 살거나 한평생 갈증에 허덕거리면서 세상 탓이나 하고 살아간다. 쩝이다.

실패할까봐, 쪽팔릴까봐 조마조마하면서 언제나 최선을 아껴둔다. 한번쯤 몸도 던져보지 못하고 인생이 시들어간다. 웹 2.0은 각 분야에서 혼자서 실컷 또라이짓하는 친구들의 한바탕 버라이어티 쇼가 어우러져 장르도, 나이도, 국가도,
경험도 다 무시하고 넘나들어 최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인데....시대착오적으로 학력(그것도 십년도 넘게 졸업한 대학교), 전공(전공책 다 읽은 사람 있으면 나와보시라. 진작 엿바꿔먹었다.) 운운하면서 살고 있다.

남들은 시간을 다섯 배로 굴려서 복리도 혜택을 받을 동안, 겨우 한 가지 움켜쥐고, 그나마 잃어버릴까 조마조마한 애늙은이처럼 뭐냐...이게. 이 책을 읽다보니, 흥분하게 됐다. 불끈불끈...컴퓨터가 다운되더라도 한번 달려봐야 되는 거 아니냐. 설사 그게 야동 탐험이었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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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지만 알면 나도 스토리텔링 전문가
리처드 맥스웰.로버트 딕먼 지음, 전행선 옮김 / 지식노마드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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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연 시나리오 작가가 쓴 글다웠다. 저자는 열정, 주인공, 악당, 깨달음의 순간, 변화의 다섯 가지가 스토리텔링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인공과 악당이 있고, 그들의 갈등이 있고, 해소되는 과정을 우리는 학교 다닐 적에 ‘기승전결’이라고도 배웠다. 이야기가 시작해서 전개되다가 갈등을 만나고 변화의 국면을 맞으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저자는 이야기가 출발하려는 토양을 열정이라고 소개했다. 스티브 잡스의 열정이 없었다면 맥북의 스토리텔링이 그렇게 먹히지는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냥 듣기에는 고개가 끄덕거려지지만, 5가지만 알면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는 그 다섯 가지의 요소로서는 나머지 요소와 동등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나리오’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접근이 아닌가 싶었다. 열정은 오히려 이야기가 태동하기 전에 바탕에 갖춰져야 할 ‘프롤로그’ 정도는 아닐런지.




책은 상당히 재밌었다. 무엇보다 저자는 ‘닥터 하우스’의 매니아인 모양인데, 나도 그렇다. 닥터 하우스만 기억하면 5가지 요소가 다 기억나기 때문에 일단 요소를 기억하고 적용하는 데는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뭔가 약점이 있다. 그리고 진로를 방해하는 악당. 악당에게서 단서를 찾아내어 깨달음을 얻는 순간. 사건은 변화되며 마무리된다. 닥터하우스 같은 경우는 냉소적이고 자폐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미지의 병을 알아내는 데는 강한 열정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놈의 병은, 입원할 때는 멀쩡히 두 발로 들어왔던 환자를 심장마사지를 하고 온 닥터가 밤을 새도록 유난을 떨어서 주인공의 투지를 불사르게 한다. 전혀 뜻밖의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병마의 단서를 찾아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의 주인공은 병을 처치한다. 그렇게 40분 안에 환자 하나가 생명을 찾아 나간다. 뻔한 전개임을 알면서도 그 시간을 조마조마 하게 기다리게 된다.




기업이 하는 이야기도 어찌 보면 뻔하다. 목적이 뚜렷하고, 내부고객에겐 동기부여를 외부고객에게는 소비 및 이미지 제고를 하려한다는 걸 누가 모르는가. 그런데 그걸 성공적으로 해내는 이야기꾼들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주인공을 최강의 모습으로 만들지 않고, 갈등을 부각시킬 줄 알며, 악당을 강하게 어필해야 할 때를 알고, 남들이 다 아는 것을 새롭게 꾸며낼 줄 아는 스킬에 비밀이 있지 않을까?




이 책에 소름이 돋도록 와닿는 사례가 하나 있었다. 회사를 말아먹은 ‘포드’의 사례였다. 그림은 명확하다. ‘잘해보자’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자’는 거였는데, 그걸 내 입으로 말하고 남에게 강박을 줄 것인가, 아니면 가슴을 뜨겁게 해서 ‘숨어 있는 메시지’에 동조하게 만들 것인가는 아주 큰 차이다.




메신저는 모두 메시지를 갖고 있다. 그걸 제 입으로 말해서 ‘당위적인 표현’으로 압박해버리는 사람을, 나는 하수라고 부른다. 아무도 위로부터 내려오는 메시지로 설득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꿈꾸고 싶어 하고, 이러저러하면 앞으로 이렇게 된다. 그러니 당신도 동참하겠는가? 하고 선택권을 넘겨주는 것을 원한다. 하다못해 히틀러도 청중의 가슴을 움직였다. 철저히 계획된 설득이었다.




포드는 그 순간을 잘못 접근함으로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우리는 이 자동차를 내놓은 세대의 자손이다. (그러니) 앞으로 변화에도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해법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하고 한번 부추겨줬으면 모두 목을 걸고 달려갔을 고지를, 김빠진 설득으로 초를 쳐버렸다. 안그러면 우린 망한다는 투로 말이다.




5가지만 알면 안 된다. 5가지를 잘 운용할 줄 알아야 하고, 사람의 심리를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의 요구와 내 목표가 일치하는 점을 잘 찾아서 요리하고, 마음속의 잡음을 제거해줄 수 있어야 스토리텔링이 먹힌다. 철저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시뮬레이션은 필수다. 수많은 설득의 메시지의 홍수가 난 시대건만, 기본 원칙과 기본 전개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눈에 띄었다. 기승전결의 수많은 변주. 명확한 그림을 그려준 것에 대해 이 책에 감사한다. 한편 창의적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케이스를 연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너도 나도 스토리텔링을 해야 먹고 사는 시대다. 무엇을 악당으로 돌리고, 어떻게 적용해나가야 할 것인지 많은 과제를 받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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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도 쇼핑몰에도 없는 것 - 뚱뚱하고 가난하고 외로운 나와 이별하는 50가지 비결
빅토리아 모란 지음, 윤정숙 옮김 / 아고라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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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이기적인 것. 경계를 짓는 일이 가끔은 나는 헷갈린다. 여자라서 뭐든 양보하고, 상냥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내면에 짐으로 남았다. 엔간하면 두루두루 부드럽게 넘어가는 나였지만, 혼자 남겨지면 전혀 달랐다. 소위 ‘복습’이었다. 친구들이 가끔 물었었다. 너는 그닥 많이 먹지 않는데, 살이 찌는 체질 같다고. 또 어떤 날은 안먹어도 살찌는 체질은 없지 않느냐고, 찌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는 그들의 말이 꽤나 서운하게 들렸다. 너희들이 뭘 아느냐고.


냉장고를 열어야 진정되는 이 마음을 아느냐고. 먹어서 맛나지도 않은데도. 왜 먹어서 없애듯 그러고 있는 나를. 지금 나는 그런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걸 바꾸는 방법도 알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아는 것’은 시작일 뿐, ‘행한다’는 과제앞에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처음 보면서, 제목에 꽤나 찔렸다. 한창 지름신의 강령으로 카드값이 천정부지로 솟던 때였다. 이걸 바르면 이뻐지겠지, 저걸 입으면 간지가 나겠지 하면서 말이다. 사서 받아보면 마치 산타클로오스에게 선물이 도착한 것처럼 좋아했지만, 카드값이 누적되는 건 참으로 한심했다. 몇 년 봉급 모았다면 지금쯤 상당히 모였을 터였다. 그 흔한 종자돈도 없이...그렇다고 이뻐지지도 못한 채, 돈은 다 어디갔을까?


쇼핑몰과 냉장고, 집앞 편의점. 내가 우울할 때, 혹은 짬이 날 때, 아니, 짬이 나지 않아도 참새방앗간처럼 노니는 곳이다. 이런 나를 두고, 친한 친구가 모진 소리를 하면 그때뿐이다. 능력이 안되면 쓰지 말라는 투로 말해도 그때뿐이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그건 감정만 상하게 한다. 왜냐하면 근원이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독이란 무릇 어딘가 허전하게 빈 데서 온다. 처음 이 책을 고르게 된 데는, 저자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많은 사람을 상담해주었다는 원인이 컸다. 헬스장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면 뚱보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웨딩케이크를 혼자서 다 먹었다는 사람. 처음에는 즐겁게 먹다가, 나중에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는 사람. 50킬로를 감량했다는 사람 등등. 대부분 건강해진 모습을 자랑하지만 요요현상이 오곤 한다는 뒷이야기를 이 책에서 읽었다.


원인은 훨씬 깊은 데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이다. 그리고,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이는 잠시잠깐 긍정적인 모습을 하더라도 곧 무너진다. 저자도 가난했다고, 뚱뚱했다고 말한다. 가난과 뚱뚱이 어째서 종합선물 셋트처럼 따라다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외모지상주의를 철저히 거부하는 나지만, 보기에 이쁜 것 싫은 사람은 없을 거고, 연봉이 달라지는 것도 현실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지 않을 거고, 자신을 챙기는 사람이 미래에 대한 대비없이 적금통장이 없을리도 만무하다. 다시 원점으로...자신을 사랑하는 것.

 

이 책이 계기가 되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적금을 들러갔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 범위안에서 사치할 뿐이다. 쇼핑몰에서 뭘 사는 것이 당연히 줄었다. 적금과 보험 내고 나서 쓰는 용돈의 한계가 정해졌기에 어차피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먹는 것이 몸 챙기는데 좋다고 생각한데서 좋은 것으로 적게 먹자고 맘을 바꿨더니, 식생활에 드는 돈은 여전하지만 내용이 바뀌었다. 예전엔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이 있으면 그게 대치되는 싼 걸로 먹고 만족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젠 먹고 싶은 ‘그것’이 아니면 안 먹는다.

싸다고 사지 않고, 싸다고 사먹지 않는다. 꼭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만 산다. 비용이 줄지 않지만 제대로 만족한다. 그리고, 싸게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각심도 준다. 그렇게 새출발이 시작되었다. 요즘 눈빛도 바뀌었다. 체중도 절로 줄었다. 물론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크게 괘념치 않는다.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긍정성이 남에게 좋게 투영되는 것 같다. 저자의 글이 꽤나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가 고민했던 인생이 담겨있고, 자신의 삶을 바꾸다보면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에 관해 그가 잘 알기에 이 책이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카드값으로 신음하는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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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쉽게 찾기 Outdoor Books 9
윤주복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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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쉽게 찾기란 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든든함이란. 아껴먹고 싶은 간식처럼 이 책이 꼭 그랬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시는 엄마도 이 책을 반기셨다. 사진이 큼지막하게 컸으면 이 자체로 보고 그림도 그리는 데 더 낫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나로서는 자그마하니, 포켓용으로 들고 다니며 이 꽃 저 꽃 비교해보기 안성맞춤이라 불만이 없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꽃을 색깔별로 구분한 것에 감탄했다. 이름 별로 되어 있으면 어쩌나 하고 고민했는데 말이다.

붉은 꽃

꽃바지는 완벽한 다섯 개의 꽃잎이 도자기처럼 곱다.
용담과 구슬붕이는 화려하게 핀 모양새가 파티장 장식처럼 화사하다.
숨 막힐 듯 핀 설앵초의 핑크빛과 단아함이 참 멋지다.
가로수 공원이나 근처에서 자주 심어두었던 시클라멘도 확인해보게 되어 좋았다. 이름을 알기 어려웠었는데. 어릴 적 엄마가 자주 심었던 꽃은 사철베고니아였다. 학교에서는 베고니아라고 배웠던 것 같긴 하다. 그때는 심었던 그 꽃 이름을 몰랐는데.

한 가지인줄만 알았던 제비꽃은 열 네가지나 된다.
자운영은 동양적인 모양새가 품위 있어서 좋았다.
둥근말냉이는 수국을 닮았는데 야생초의 풋풋한 맛이 참 곱다.
현호색이란 꽃도 일곱 가지나 되었다.
폭죽이 터지는 듯한 각시붓꽃의 아름다움, 자연이 선사한 그라데이션.
그림보다 더 그림같은 등심붓꽃의 고운 모양새.

노란꽃

나는 작고 모양새가 빚은 것처럼 단정하게 붙은 꽃들을 좋아한다.
바위미나리아재비의 모양은 사진으로만 보아도 숨이 막힌다.
유채꽃이 이렇게 고울 줄 몰랐다.
흰털괭이눈은 종이꽃 돌돌 말아 만든 것처럼 곱고 완벽했다.
오대산괭이눈도 생김이 비슷한데 좀더 수줍은 모양새를 지녔다.
가락지나물은 이름도 다소곳한 데다 모양도 수줍어보인다.
양지꽃이랑 가락지나물은 꽃 자체는 참 비슷하다. 잎사귀를
보지 않으면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다.

흰꽃

개벼룩은 이름이 흉측한데 꽃은 참 곱게 생겼다.
개별꽃은 지천에 흔하게 핀다고 이름앞에 '개'를
붙였나본데, 꽃들에게는 참 억울하겠다 싶다.
큰개별꽃, 개별꽃, 덩굴개별꽃, 숲개별꽃이 참 곱다.
바람꽃도 다섯개나 되는데, 언제 한번 여행갔던 변산의 한
펜션 이름이 바로 '변산바람꽃'펜션이어서 참 반가왔다.
열 개도 넘는 냉이도 소박하니 곱다.
흰색 제비꽃도 여러 개가 된다.
말로만 듣던 마거리트 꽃을 사진으로 보니, 길에서 흔하게
보았던 그 꽃 이름을 이제 알게 되어 기쁘다.


녹색꽃

인삼은 녹색꽃이 핀다. 약재로 쓰이는 몸통에 비하면 꽃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꽃인지 잎인지 잘 구분이 안 가는 꽃들이 많아 약간은 서운하다.
봄에 볼 수 있는 여름꽃들도 반가웁다.
별패랭이꽃은 녀석이 참 단정하다. 부러 손으로 만든 꽃처럼
어쩜 그런지. 디기탈러스는 초롱꽃과 많이 닮았다. 사촌간이 아닌가 싶다.메리골드의 화려한 주황색과 노랑빛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우리 꽃들은 자그마하니 이쁘게 피는 게 특징인 거 같다. 큼직하게 이쁜 꽃은 아니어도, 오밀조밀한 게 훨씬 이쁘다. 봄꽃은 찬바람도 맞으며 꽃을 피운다. 향기도 그래선지 더 진하고 가슴에 남는 것 같다. 작은 꽃이 있는 힘을 다해 지천으로 펴서 산천에 흔들리듯이 하루하루가 내게 꽃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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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탄생 (반양장) - 대학 2.0 시대, 내 젊음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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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가 살아 계신 시대에 난 것이 축복이다. 동서고금을 이렇게 쉽게 꿰뚫어 풀어줄 수 있는 이가 많지 않다. 젊음의 탄생은 9가지 매직 카드를 핵심으로 해서 젊음에게 던지는 도전이다. 인간이 왜 인간인지, 젊음의 빈칸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이 책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평생에 한 때, 공부할 수 있었던 그 대학시절에 왜 직업학교처럼 대학을 여겼는지 통탄했다. 이 책을 접하고, 아직 늦지 않았다 여기고 맘을 다잡아 본다.

상상력이 배제되고 실용만 강조되는 치우친 교육. 붕어빵처럼 효율만 중시하는 교육에서 이 시대 ‘풀죽은’젊음이 양산되었다. 한편으로는 인터넷을 매개로 전세계와 교감하는 뜨거운 열정은 한국 젊은이가 단연코 최고다. 이 두가지가 충돌한다. 내 속에서도 혼돈과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원래 선형이 아니라 물질계는 유선형이다. 가장 효율이 높은 도형은 육각형이다. 벌들은 그걸 날 때 유전인자 속에 가지고 난다. 그러나 학습이 없기에 발전하지 못한다. 창의란, 본래 갖고 나지 못했으나 그걸 깨닫고 발전시킬 수 있는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다.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젊음은 무릎팍이 깨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빈칸은 원래 인간에게 주어져 태어난 것으로,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각자가 다른 길을 가게 되어 있다. 경쟁이 아니라 360도 방향으로 제각기 뛰어서 각자 자기의 길을 ‘온리 원’으로 달려가면 최고의 성과, 최고의 젊은이들이 다 될 수 있다.

인문학을 배제하고, 혹은 형식적인 인문학의 굴레만 갖춰놨을 적에 우리 사회는 큰 힘을 잃었다. 다시 문사철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한참이다. 돌아가야 한다. 물길을 찾아야 샘이 솟듯이 파낼 것이 있어야 보화도 나온다.

이 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종이값, 책값이 아닌, 평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귀한 책이다. 동기를 부여하고 마음을 열며 한 데 치우쳤던 사고를 균형을 잡아준다. 읽기에 따라서는 반절도 소화못하는 경우도 있을 터이고, 더 큰 화두를 얻어서 장래를 설계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처음 만나는 터라 통독으로 훑었지만, 필사를 하든 발췌독을 하든 꼭 내 것으로 소화할 작정이다. 모처럼 ‘선생’이라 부를 만한 스승이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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