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냉장고에도 쇼핑몰에도 없는 것 - 뚱뚱하고 가난하고 외로운 나와 이별하는 50가지 비결
빅토리아 모란 지음, 윤정숙 옮김 / 아고라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이기적인 것. 경계를 짓는 일이 가끔은 나는 헷갈린다. 여자라서 뭐든 양보하고, 상냥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내면에 짐으로 남았다. 엔간하면 두루두루 부드럽게 넘어가는 나였지만, 혼자 남겨지면 전혀 달랐다. 소위 ‘복습’이었다. 친구들이 가끔 물었었다. 너는 그닥 많이 먹지 않는데, 살이 찌는 체질 같다고. 또 어떤 날은 안먹어도 살찌는 체질은 없지 않느냐고, 찌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는 그들의 말이 꽤나 서운하게 들렸다. 너희들이 뭘 아느냐고.
냉장고를 열어야 진정되는 이 마음을 아느냐고. 먹어서 맛나지도 않은데도. 왜 먹어서 없애듯 그러고 있는 나를. 지금 나는 그런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걸 바꾸는 방법도 알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아는 것’은 시작일 뿐, ‘행한다’는 과제앞에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처음 보면서, 제목에 꽤나 찔렸다. 한창 지름신의 강령으로 카드값이 천정부지로 솟던 때였다. 이걸 바르면 이뻐지겠지, 저걸 입으면 간지가 나겠지 하면서 말이다. 사서 받아보면 마치 산타클로오스에게 선물이 도착한 것처럼 좋아했지만, 카드값이 누적되는 건 참으로 한심했다. 몇 년 봉급 모았다면 지금쯤 상당히 모였을 터였다. 그 흔한 종자돈도 없이...그렇다고 이뻐지지도 못한 채, 돈은 다 어디갔을까?
쇼핑몰과 냉장고, 집앞 편의점. 내가 우울할 때, 혹은 짬이 날 때, 아니, 짬이 나지 않아도 참새방앗간처럼 노니는 곳이다. 이런 나를 두고, 친한 친구가 모진 소리를 하면 그때뿐이다. 능력이 안되면 쓰지 말라는 투로 말해도 그때뿐이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그건 감정만 상하게 한다. 왜냐하면 근원이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독이란 무릇 어딘가 허전하게 빈 데서 온다. 처음 이 책을 고르게 된 데는, 저자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많은 사람을 상담해주었다는 원인이 컸다. 헬스장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면 뚱보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웨딩케이크를 혼자서 다 먹었다는 사람. 처음에는 즐겁게 먹다가, 나중에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는 사람. 50킬로를 감량했다는 사람 등등. 대부분 건강해진 모습을 자랑하지만 요요현상이 오곤 한다는 뒷이야기를 이 책에서 읽었다.
원인은 훨씬 깊은 데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이다. 그리고,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이는 잠시잠깐 긍정적인 모습을 하더라도 곧 무너진다. 저자도 가난했다고, 뚱뚱했다고 말한다. 가난과 뚱뚱이 어째서 종합선물 셋트처럼 따라다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외모지상주의를 철저히 거부하는 나지만, 보기에 이쁜 것 싫은 사람은 없을 거고, 연봉이 달라지는 것도 현실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지 않을 거고, 자신을 챙기는 사람이 미래에 대한 대비없이 적금통장이 없을리도 만무하다. 다시 원점으로...자신을 사랑하는 것.
이 책이 계기가 되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적금을 들러갔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 범위안에서 사치할 뿐이다. 쇼핑몰에서 뭘 사는 것이 당연히 줄었다. 적금과 보험 내고 나서 쓰는 용돈의 한계가 정해졌기에 어차피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먹는 것이 몸 챙기는데 좋다고 생각한데서 좋은 것으로 적게 먹자고 맘을 바꿨더니, 식생활에 드는 돈은 여전하지만 내용이 바뀌었다. 예전엔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이 있으면 그게 대치되는 싼 걸로 먹고 만족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젠 먹고 싶은 ‘그것’이 아니면 안 먹는다.
싸다고 사지 않고, 싸다고 사먹지 않는다. 꼭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만 산다. 비용이 줄지 않지만 제대로 만족한다. 그리고, 싸게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각심도 준다. 그렇게 새출발이 시작되었다. 요즘 눈빛도 바뀌었다. 체중도 절로 줄었다. 물론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크게 괘념치 않는다.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긍정성이 남에게 좋게 투영되는 것 같다. 저자의 글이 꽤나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가 고민했던 인생이 담겨있고, 자신의 삶을 바꾸다보면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에 관해 그가 잘 알기에 이 책이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카드값으로 신음하는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