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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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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

- 가장 보통의 존재, 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 라는 노래로 유명한, 언니네 이발관 보컬 이석원의 이야기.
'보통의 존재'라는 말에 끌려서 저 노래를 들었고, 이런 노래를 만들게 해준 이야기가 뭘까 궁금해서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전체적인 느낌이 아주 기억에 남는 정도는 아니지만, 꽤 공감되는 구절이 많았던 책.
산문집은 진짜 오랫만에 읽어보는데 산문집은 작가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엿보는 매력이 있는 듯 하다. 좀 편안하게 볼 수도 있고.

곧 마흔을 바라보는 이석원의 어쩌면 너무 평범한.. 너무 여과없이 솔직한(?) 이야기들을 마치 카페에 앉아 마주보고 듣는 느낌으로 봤다. 이런 얘기까지? 싶을 정도로.

책을 보고 일기가 쓰고싶다. 나도 내 생각들을 이렇게 잘 정리해서 보관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p.36
"내 나이 서른여덟.
나는 아직도 생의 의미를 명확하게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여전히 고민한다. 다만 분명한 건 누구나 배우가 되고 감독이 되고 싶어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배우나 감독이 될 자질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그러니 남은 생을 사는 동안 내가 그저 관객의 안온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할지라도 꿈이 없다 뭐라 할 수 있을까."

관객의 자리를 지키는 인생..
생의 의미가 그리 대단한게 아니라는 생각은 한 적 있다. 삶의 의미라는게 되게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 모이는 거라서 큰 의미를 찾으려고 할수록 더 찾기 힘든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구지 주도하려하지 않아도 그저 흘러가는대로 지켜보며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p.96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사랑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뿐입니다. (...)
해답을 알 수 없는 오랜 물음을 던진 끝에 어느 날, 내가 그토록 달아나고 싶고, 회의하던 것들로부터 나와 내 삶이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인 순간, 나의 모든 아쉬움들은 그제야 비로소 위대한 유산이 될 수 있었습니다."

 

p.115
"역시 조언이란 건 남의 상황을 빌어 자신에게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다 보면 결국 나부터 그렇게 해야하는데.. 라고 반성하며 끝날때가 많다.
힘을 내라고 하는 말이든, 안 좋은 점을 고치라고 하는 말이든 결국 내 경험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보니 결국 나 자신에게 귀결된다.
나 자신도 해결이 안되던 것들이 입 밖으로 내놓는 순간 정리가 되고 해결이 되기도 하고.
말 하다 보니 깨닫게 되는 말도 있으니까.


p.185
"나는 희망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무섭다.
희망 이후의 세계가 두렵기 때문이다.
절망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혹여 운 좋게 거기서 벗어났다 한들 함부러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조심스러운 사람이 될 것 같은데, 세상엔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가보다."

 

p.190
"세상의 이름난 희망의 전도사들이 조금 더 세련된 방법으로 희망을 수혈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대책 없이 세상만사가 너무나 행복하고 하루하루가 그저 기쁨이고 복되기만 하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거든요.

저도 희망이 필요해서, 받고 싶어서 그래요."

어느 순간부터 자기 계발서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눈에 안들어오는 게. 정말 그게 필요한 상황이라기 보다 마음이 좀 여유로운 상황에서 보면 가볍게 볼 수 있는 정도..?
나이가 들수록 희망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다.
이 책의 작가가 한 말처럼 희망 이후의 세계가 두려워져서. 용기있게 희망을 이야기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옛날과 달리 한 번 절망을 맞보면 쉽게 빠져나오질 못하는 것도 같고.
좋은 예감은 비껴가는 일이 많은데, 나쁜 예감은 항상 들어맞으니까.
나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희망이 정말 필요한 '시대' 아닐까.


p.267
"고통으로 자극받아 피어난 사랑은 새로운 고통이 수혈되지 않으면 사그라지고 마는 것처럼, 이해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결코 상대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p.365
"연애는 학습이다. 할 때마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니까. 문제는 배운 것을 써먹게 되는 건 언제나 지금 '이 사람'이 아닌 미래의 '다음 사람'이라는 것이다. 연애는 그래서 이어달리기이다.
(...)
여기 출발선에 서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지난 경주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한다. "이봐. 예전에 받았던 바통 같은 건 던져버려. 첫 번째 주자가 되어 보라구."

과연 그는 출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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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 고은 선禪시집
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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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집 '순간의 꽃'을 보고 왠지 모르게 따뜻해지는데가 있는 고은 시집을 찾다가 순간의 꽃 옆에 있길래 선시가 뭔지도 모르고 빌려 본 책.
선시라는건 사전적 의미로는 선과 시가 합일화된 것으로 모든 형식이나 격식을 벗어나 궁극의 깨달음을 주는 불교시라고 한다.
고은의 선시집에서는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 '뭐냐'라고 물음을 던지며 '선'에 대해 말한다. 그 깊은 의미를 알기 힘든 시들이 많았지만 보다 보니 말할 수 없는 울림을 주는 시들이 많다.


오직 선은 마음뿐이다.
이 마음속의 진면목으로만 기존의 세계에 대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선의 목적이다.


고은 시인이 말하는 선은 마음이다. 기존의 세계와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이 시집에서 시인은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뭐냐'고 물음을 던진다.

    
여름 밤 벌레 소리
귀 없이 마시라
겨울밤
소경으로 별 삼키라

 

전체적인 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으나 이 구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울림같은게 있다. 느끼는 걸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건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으나.

 

육바라밀은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의 실천행이라는데. 한평생 이것이 도둑이라는 게 뭔지. 뭘 이실직고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혹시 지금 무슨 느낌인지 모를 이게 나중에 보면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 남겨두었다.
     
지금까지 중에 세개를 꼽으라면 이실직고, 괜히, 그리움.
세상의 지혜 불쌍하여라. 라는 부분은 노자의 도덕경에서 보았던게 생각났다.
세상의 지혜 또한 사람이 만든것이니 그걸 좇아선 안된다던.
그 책을 보며 당연히 덕목으로 여기는 '지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었는데, 도덕경은 책을 다 읽을 때쯤 '아,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다'하는 깨달음이 있었던 반면, 이 짧은 시에는 부가적인 설명은 없지만 보는 순간 가슴 깊이 느껴지는데가 있었다.
   
확실히 시에는, 특히나 이 선시집에는 짧고 어려운 말들이 많지만 그보다 더한 깊이가 있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느낌.     
     
난 고은의 시만큼 느리게 음미할 수 있는 시는 없는 것 같다.
암흑의 아픔으로 달 떴다는 말은 무슨 생각을 해야 나올 수 있는 말일까.
어둠 속에 빛나는 달을 보며 그저 '달 떴다. 예쁘다.'가 아니라 그 달을 비춰주는 어둠의 존재를 바라보고, 그 어두운 가운데 빛나는 달을 보며 어둠의 아픔을 생각한다니.

 

달, 산꼭대기, 먼 불빛, 푸른 하늘, 물결, 바람
자연의 작은 것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세상을 읽는 고은의 시.
그중에도 산꼭대기, 달과 같은 시는 한참을 바라보아도 아무에게나 나올 것 같지 않은 표현과 아름다움이 있는 듯 하다.


선시는 문자 너머, 사고의 바깥, 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번쩍인다. 그것은 머무름이 없는 머무름이요, 얻은 자취 없이 얻음이고, 쓰임 없은 쓰임이요, 이름할 수 없은 이름이고, 보지 않는 가운데 봄이요, 행함의 흔적 없는 행함이란 점에서 자명한 선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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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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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인생에 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꽤 오랫동안.
결론은 난 신을 믿지 않는다 더이상. 오히려 그런 믿음에 대해 반감도 좀 있다.

하지만 악마는?


「하필 내 영혼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뭐죠?」 내가 궁금해한다. 「훨씬 더 매력적인 영혼들이 많을 텐데.」
「간단해요. 당신이 신을 만났기 때문이죠. 신은 당신을 좋아하는 게 분명해요. 그래서 만일 당신이 지옥의 제왕에게 영혼을 판다면 신이 무척 화가 나지 않겠어요?」
「뭐요? 이유라는 게 그게 다요?」

신이나 악마같은 영적인 존재를 믿지않는 심리 치료사 야콥에게 어느날 악마가 찾아온다.
그리고 뜬금없이 신을 만난 야콥의 영혼을 두고 거래를 청한다.
야콥의 장난스러운 흥정(?) 끝에 야콥의 영혼 값은 1억 유로(약 1300억)까지 뛴다.


「때문에 나는 다시 한 번 당신에게 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간절하게 호소합니다. 야콥, 1억 유로면 이번 생만큼은 부러울 것 하나 없이 즐겁게 살 수 있어요. 별 수를 다 써도 이 세상의 불행과 궁핍은 어차피 막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저세상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게 뭔지 누가 알겠습니까?」

죽음 이후가 그저 완전한 소멸이라면 이 제안은 너무도 달콤하다.
어짜피 없어질 인생 영혼따위 팔아버리고 돈 걱정없이 행복하게 사는거다.
그런데 영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영혼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이 뭔지. 사람에게 영혼이 있긴 한지?라는 이상한 의문도 든다.
그저 악마에게 영혼을 팔면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되는걸까. 그걸로 끝? 죽어서 천당이나 지옥의 세계가 있다는 건 사실 나로서는 믿기 힘들다. 차라리 이미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지옥이고, 악마는 모두 지상으로 떨어졌다는게 더 일리가 있지 않나. 

나는 포근하면서도 짜릿하게 밀착해 오는 발러리의 따듯한 나신을 느끼며 문득, 악마의 존재를 믿으면 꽤나 큰 장점이 있겠구나 하며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나의 이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책임을 나 혼자만 짊어질 필요 없이 최소한 일부라도 악마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싱긋 웃음 짓는다.

1억 유로에도 절대 영혼을 팔지 않는 야콥에게 악마는 끊임없이 야콥을 시험한다. 야콥의 주변 사람들의 영혼을 사들이기도 하고 육체적으로 상해를 입히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악마다운 참신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자신의 비도덕적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악마에게 전가하는 상상을 하며 웃음 짓는 야콥. 더군다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다면 더더욱 양심의 가책 없이 살게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이제 악마가 들고다니는 그 미스테리한 영혼 계약서 한장의 힘이 무엇인지 대충 알 것도 같다.


「우리는 인간들을 타락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기 위해 더 이상 복잡한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인간들이 알아서 서로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도록 자극만 주면 되었어요. 그건 쉬운 일이었죠.」

영혼 계약서 한 장만으로 혹은 악마의 작은 유혹 하나에도 쉽게 넘어가는 사람들. 악마의 말을 빌려 그저 '종이쪼가리'일 뿐인 돈을 가지고 악마는 야콥과 야콥의 주변사람들의 삶을 쥐락펴락한다. 악마의 계략에 죽지 않아도 이미 지옥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조금의 자극에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옥으로 만드는 사람들을 보며 악마는 흐뭇해한다.
야콥과 악마의 싸움을 지켜보며, 아니 계속 야콥만 연타 당하는 듯 하지만, 한 때도 떠올렸을 천국과 지옥,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영혼이 머무는 마음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해서 마음이 천국이 되는건 아니다. 교회나 성당 열심히 다녀도 모든 삶이 천국이 되는건 아니니까.


「아뇨. 말했듯이 난 불교도예요. 내게 인생이란 끊임없는 윤회일 뿐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니에요.」 나는 마음속에서 깊은 울림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카하시 씨는 현자인 듯하다.

내 삶은 천국일까 지옥일까 계속 생각하던 차에 귀신같이 등장한 다카하시 씨의 말.
어찌보면 신과 악마도, 천국과 지옥도 사람이 만들어낸거 아닐까. 어느 종교는 지옥같은 당신들 삶에서 구원해주겠다고 안그래도 힘든 사람들 데려다 사기 치기도 하고. 그저 현실에서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들을 당신을 믿을테니 이것 좀 하게 해달라 저것 좀 달라고 기도하기도 하고. 심지어 내 영혼 깨끗하게 해줘서 천국가게 해달라고 빌기도 한다. 애초에 천국이나 지옥같은게 없다면? 모든 사람들이 천국이나 지옥을 믿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게 될까. 애초에 믿지 않는다면 악마의 현혹에도 안 넘어가지 않을까. 아니면 죽음 이후의 삶이 없으니 더 지옥같은 세상이 되버릴까.


「사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야.
내가 인간의 시야를 넓혀 주는 것만큼 악마는 인간의 시야를 좁힐 수 있어.
어떤 식으로 시야를 좁히느냐 하면 말이야, 인간의 눈에다 일종의 차안대 같은 걸 씌우지. 그래야 삶의 길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위험에 대한 불안을 없앨 수 있다고 달콤하게 속삭이면서 말이야. 하지만 실제로 불안을 야기하는 건 바로 그 차안대야.
그런데도 인간들은 대부분 그걸 깨닫지 못해.
심지어 시간이 가면서 길 양편에 마귀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믿게 돼.
그래서 그걸 보지 않으려고 자기 시야를 점점 더 좁혀 주기를 열렬히 소망해.
하지만 진실로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딱 하나야.
차안대를 벗어던지고 하늘과 자기 자신을 믿는 거지.」
(.....)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속 깊이 알고 있어.
영혼은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내줄 수 있는 것뿐이라는 걸.」
다카하시는 잠시 말을 쉬며 내 눈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건 자네도 알고 있어, 야콥. 결국 중요한 건 마음먹기야. 영혼도 마음이 가는 곳에 머물려고 할 테니까.」

소설을 보며 계속 드는 의문에 신의 입을 빌려 꽤나 명쾌한 답을 주는 작가.
결론적으로 정답은 영혼은 누구에게 팔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 중요한 건 그 어떤 것에도 불안해하지 말고 하늘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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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상인들 - 프란치스코 교황 vs 부패한 바티칸
잔루이지 누치 지음, 소하영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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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성전의 상인들.
처음엔 책 제목을 보고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부패한 바티칸의 현 상황을 낱낱이 고발한 현실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처음 보고 '성인'이라는 건 저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관심도 없던 천주교나 바티칸, 로마 교황청에 관심이 생긴것도 그쯤이었던 것 같다.
청빈의 상징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전의 교황들과 다르게 굉장히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고, 가난한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성전의 상인들이라니? 부패한 바티칸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응이 너무 궁금했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썩어버린 바티칸의 재무 상황, 그 속에서 버티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성직자들. 책을 계속 보면서 느낀 건 너무 많이 썩어버려서 이미 정화능력을 잃어버렸다는 느낌.
수십억의 돈이 오가는데도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아 이미 공중으로 증발한 돈이 수십, 수천억인데다 다 갈아버리기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편에 서서 가난한 교회를 지향하는 사람이 오히려 얼마 없는 듯 했다.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했지만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가고, 반대하는 사람들과의 전쟁 속에서 지쳐가는 교황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승리할 수 있을까?
글쎄, 이 책은 어마어마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폭로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이 모든걸 공개한 저널리스트 잔루이지 누치도 상황이 낙관적이지는 않다고 말하며 끝맺는다. 하지만, 이 엄청나고 썩어문드러진 바티칸과 싸우고 있는 교황이 있는 한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 시대에 같이 있다는 게 영광스러울 정도로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거대한 개혁 프로젝트를 통해 그가 지향하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이뤄낼 수 있길 바라게 된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이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수많은 지원군들과 함께 그가 원하는 가난한 교회, 바티칸을 만들기를 바란다.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교회가 가난해져야 한다
...

 

우리의 목표는 모인 돈이 가난한 사람과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되게끔 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돈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신자들의 보이지 않는 영혼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


- 프란치스코 교황


p.56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이었을 때는 감사관들의 경고가 모두 무시됐다. 그러나 프란치스코가 교황으로 있는 지금은 달랐다. 프란치스코는 재무 영역에서 발생한 변칙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했다. 그는 용기 내 진실을 말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p.57
교회 구조 내부의 많은 비정상적인 문제들은 `일종의 신학적인 유아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교회가 `병들어 쓰러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p.93
교황청의 추기경들이 교황청의 가장 중요한 부처들을 관리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가톨릭이라고 하는 세계의 중심 역할까지 해야 한다. ... 내가 `해야 한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교황이 생각한 것과 현실이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p.104
사실상 지금까지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모금된 돈은 검은 구멍으로 줄줄 새고 있다.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절대적인 비밀이며 단지 얼마큼의 돈이 들어왔는지에 대한 항목만 존재한다.

p.129
스카라노의 계좌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계좌는 10년간 올바르지 못한 일에 사용되었고 이제 와서야 그 사실이 밝혀졌지요. (...) 우리는 세 가지 문제들이 각각 꼭짓점을 이룬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첫 번째 꼭짓점은 돈세탁업자이고, 두 번째 꼭짓점은 세간에 퍼진 유언비어이며, 마지막 꼭짓점은 우리의 절대적인 침묵입니다.

p.150
타성은 교황청의 `기본값`이었다. `교황들은 변할 수 있어도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

p.220
바티칸의 한편에서는 관리자들이 고급 양복을 입고 막대한 부를 통제하며, 지주 회사들로 이뤄진 정교한 금융 열도를 관리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교황이 복음의 명을 받들어 가난한 교회를 위해 싸우고 바티칸에 자발적인 정화를 요구한다.

p.248
이 비밀 통로의 존재는 교황청의 이중적인 세계를 가장 잘 함축했다. 한 세계는 표면적인 사건들을 공식 발표를 통해 공개하지만 또 다른 세계는 비밀의 방들에서 완성된다.

p.259
복음의 사제들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과 함께 캄캄한 밤을 뚫고 지나는 사람이어야 하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되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요. 또한 대화의 방법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신의 사람들은 목자를 원하지 관료나 공무원처럼 행동하는 성직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p.260
교황청의 중심은 바티칸입니다. 교황청은 바티칸의 이해를 파악하고 돌봐야 하지만, 아직도 세속적인 이해가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할 것입니다.

p.273
돈은 사고와 신념을 병들게 합니다. 탐욕이 승리하면 인간은 존엄성을 잃고, 정신이 부패하며, 돈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면서끼지 종교를 이용하게 됩니다. 돈을 숭배하는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하느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p.276
`성취한 모든 성과들을 개혁과 함께 잃게 될 것이다.` (...)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변화는 반드시 보편적 합의를 이뤄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방해자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기경들은 분명한 신념을 갖고 행동했지만, 관성에 대해 관성으로 대응해서는 아무데도 이를 수 없었다.

p.283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선한 의지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p.306
"가난한 교회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길 원합니다." 프란치스코는 2013년 3뤌 16일 언론과의 면담에서 진솔하게 말했다. 교황청의 많은 사람들이 교황의 그 말을 기억했다. 그들은 바티칸은행의 회장 마르친쿠스 몬시뇰의 악명 높은 발언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대조하곤 했다. 그는 종종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기도만으로 교회를 운영할 수는 없다`고 비꼬는 듯이 말하며, 역사의 어두운 시기에서나 우위를 점했을 법한 마음가짐을 퍼뜨렸다. 현재 교황청의 한구석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그런 상태 말이다.

p.339
그들은 가톨릭교회가 2000년을 존립해왔고, 앞으로 일부의 신부가 남더라도 교회는 살아남을 것이라 말하곤 했다. 애석하게도 교황청에 존재하는 몇몇 썩은 사과들은 교황이 바뀌어도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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