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노자 지음, 남만성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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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럽고 안정되지 못한 세상에서 무, 허, 정, 유약, 소박을 찬양한 노자. 

그 시절과 지금이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욱 소란스러워지기만 했으니 노자의 사상은 여전히 마음 깊숙히 와닿는다.


무(無) - 무는 유의 어머니이며 천지 만물의 근원이다

허(虛) - 골짜기는 비었기에 온 시내의 물들이 모여 든다

정(靜) - 고요함은 조급한 것을 다스린다

유약(柔弱) - 유약하고 고요한 것은 강한 것을 이긴다

소박(素朴) - 손질하지 않은 순수한 원형으로 돌아가는 것


노자는 이 도덕경이라는 책에서 시종일관 무위자연의 도에 대해 말한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피하고 자연스러움을 따라 고요한 그 상태로 돌아가는 것. 

자연이란 작위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은 작위하지 않음에도 저절로 만물을 다스리고 소생시킴에 부족함이 없다. 

군주가 백성을 다스릴때에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도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천지자연은 만물을 소생시키면서도 그 공을 스스로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물과 같이 가장 낮은 곳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 자는 천지자연의 상태와 같이 그 공이 오랫동안 빛을 발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


성인은 작위함이 없이 일을 처리하고, 말하지 않고 가르침을 행한다.

'천지자연'은 만물을 활동하게 하고도 그 노고를 사양하지 아니하며, 

만물을 생육하게 하고도 소유하지 않는다.


일을 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공을 이루고도 자기 공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의 공로라고 자처하지 않기 때문에 공은 그에게서 떠나가지 않는 것이다.

- 도경 제2장


내가 어떤 것을 두고 잘한다 혹은 아름답다고 말하면 그에 비해 못하고 못난것이 생긴다. 

비교와 차별은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는데에서 생긴다. 그렇기에 노자는 무위자연의 도를 칭송하였다. 

또한 자연의 법칙과 같이 자신의 공에 대해 자처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 공이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라 말한다.


무(無)의 공효(功效)함


이미 가지고 있는데 또 채우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고, 

이미 두드려 불린 것을 다시 또 예리하게 만들면 오래 보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할 만큼 많으면 그것을 지킬 수 없고, 

부귀하여 교만하게 되면 스스로 화를 초래할 것이다. 


공을 이루고 난 후 이룬 자가 물러나야 하는 것은 천도의 법칙이다.

- 도경 제9장


선비의 도를 지키는 자는 차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차면 넘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오직 차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 도는 능히 모든 것들을 덮을 뿐이고, 

새로운 것을 성취하려고 작위하지는 않는다.

- 도경 제15장


있는 것(有)이 이(利)가 된다는 것은 없는 것(無)이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 도경 11장


없는 것이 사실은 가장 있는 것이다.


마치 태양이 세상을 가득 비추고도 때가 되면 빛을 감추는 것처럼, 만물을 소생케하는 봄이 가고 다음 계절이 오는 것처럼 만족할 줄 알고 멈추고 비워낼줄 아는 인생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박수칠 때 떠날 줄 알아야 한다. 

공을 이루고 난 후에 자연이 그 노고를 자랑하지 않듯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을 따르는 천도인 것이다.


도는 항상 비고 무한 것이다. 항상 겸허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찬 것을 비워낼 수 있고 교만하지 않는다. 따라서 작위하여 새로이 채우려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순응할 뿐이다.


작위(作爲)함이 없는 것


작위함이 없는 정치를 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 

- 도경 제3장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능히 지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 

태양의 밝고 흰 광명이 저절로 사방에 골고루 퍼지듯이, 

능히 아무런 작위함이 없이 천하가 잘 다스려지게 할 수 있다. 

- 도경 제10장


지혜를 부리려 애쓰지 않기 때문에 욕망에 휩쓸리지 않고 흐트러짐없는 자연적인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작위하지 않으면 치세와 난세가 오고가는 때에도 태양이 뜨고 지는 것과 같이 물이 흐르듯 천하는 잘 다스려질 수 있다.


노자는 사람이 만든 즉 작위한 지혜는 도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것이 옳은 것인양 사람을 다스리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작위하면 모든 것이 옳고 그른 것처럼 양극으로 나뉘는데 그러면 다툼이 난다. 


사람의 혼과 백이 따로 놀 수 없듯이 세상 만물도 '자연스레' 물 흐르듯 흘러야 하고, 통치하는 일도 그렇게 다스려져야 한다.


성인의 자세


오색의 찬란한 빛은 사람의 눈을 소경으로 만들고,

오음의 아름다운 소리는 사람의 귀을 멀게 만들며,

오미의 좋은 맛은 사람의 입을 버려 놓고,

말을 달려 사냥하는 유쾌한 일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며,

희귀한 물품은 사람으로 하여금 해로운 일을 하게 한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은 위하지 않는다. 

그래서 '눈, 즉 감각적인 쾌락'을 버리고 '배부른 것'을 취한다.

- 도경 제12장


군주가 아름다운 빛만을 탐내면 백성의 굶주린 얼굴을 볼 수 없고, 

아름다운 음악만을 즐기면 백성의 원성을 들을 수 없으며 진귀한 재화만을 탐내면 도둑질을 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모든 생물에 이로움을 주면서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즐겨 있다. 

그런 까닭에 물은 도에 거의 가까운 것이다.

- 도경 제8장


세상의 모든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하고, 높은 것은 낮은 것으로 기초를 삼는다.

진실로 높은 것, 진실로 존귀한 것은 항상 겸허하다.

- 덕경 제39장


무릇 진정한 선이라는 것은 물과 같이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생물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다. 겸허하게 가장 낮은 곳에 있기를 즐겨 스스로 드러내지고, 공을 자랑하지도 않는 것이 성인의 자세라고 말한다.

알리거나 자랑하지 않지만 그 덕이 온 세상에 퍼지는 것이 불가사의한 덕을 현덕이라 하였다.


휘어지는 나무는 꺾이지 않기 때문에 안전할 수 있다.

몸을 구부리는 자벌레는 장차 곧게 펴기 위함이다.

땅은 우묵하게 파인 곳이 있어야 물이 채워지고, 옷은 해어져야 새 옷을 입게 된다. 

스스로 뽐내지 않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공은 오래갈 수 있는 것이다. 

- 도경 제22장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 있는 자이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은 더욱 명찰함이 있는 자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자이지만,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더욱 강한 사람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넉넉하고, 근면역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자이다.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는 자는 장구할 수 있고, 사력을 다하여 생의 길을 찾아 그치지 않는 자는 장구할 수 있을 것이다.

- 도경 제33장


자연의 법칙은 비어있기 때문에 채워질 수 있다. 낮은 곳이 있기에 높은 곳도 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공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천지가 늘 그자리에 영원히 장구하듯이 사람도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는다면 장구할 수 있다. 자신의 위치를 알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뒤에 남이 업신여긴다."

남에게 업신여기는 사람은 이미 자신 스스로에게도 업신여겨지는 사람이다.


"뜻있는 자는 마침내 뜻하는 일을 성취한다."

자신의 위치를 알고 인생의 뜻을 찾아 사력을 다하는 사람은 그치지 않기 때문에 장구할 수 있다.


믿음성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성이 없다.

선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는다. 변론을 잘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아니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다.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성인은 자기에게 쌓아두지 않는다. 비어서, 있는 것이 없다. 이미 남을 위하여 다 쓰지만 쓰면 쓸수록 자기에게는 더욱 더 있게 되고, 이미 남에게 다 주었지만 주면 줄수록 자기에게는 더욱더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 되게 하고 해 됨이 없으며, 성인의 도는 다투지 않는다.

- 덕경 81장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 덕경 제56장


만족할 줄 아는 것


성인은 스스로 아는 것으로 자족할 뿐 그것을 나타내어서 스스로 과대하게 보이려고 하지 않으며, 또 스스로 사랑하지만 스스로 존귀하게 되기 위하여 부자연하게 욕구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좁게 여기거나 싫어하는 일을 버리고, 스스로 편안해 할 줄 아는 자연스러움을 택한다.

- 덕경 제72장


재물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반드시 크게 소비하게 되고, 

재물을 썩 많이 감추어 두면 반드시 많이 잃게 될 것이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하지 않다. 

그렇게 하면 장구할 것이다.

- 덕경 제44장


성인은 자신을 위한 일을 뒤로 밀기 때문에 실은 자신이 앞서게 되고, 

자신의 이익을 제외하기 때문에 실은 자신이 거기에 있게 되는 것이다. 

- 도경 제7장


재물에서나 모든 것에서나 만족할 줄 알고 그칠 줄 알아야 한다. 넘치면 잃게되니 덜어내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이며 성인의 도이다.


끝없는 욕망은 삶을 싫어지게 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자신의 환경을 좁게 여기고 싫어하게 되는 것을 버리고 천지의 뜻에 맞게 자연스러움을 따라야 한다. 현재에 순응하고 만족하는 것은 부족한 듯 보이지만 실은 가장 넉넉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말해준다.


하늘의 도는 이렇게 남음이 있는 것을 덜어서 부족한 것에 보충하는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은 부족한 자의 것을 덜어서 남음이 있는 자를 받들고 있구나. - 덕경 77장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서늘한 가을이 오는 자연의 법칙과 같이 하늘의 도는 남음이 있는 것을 덜어서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다. 

세상의 일은 그렇지 못하니 오직 하늘의 도를 따르는 성인만이 자신의 남음을 덜어 부족한 곳에 채울 수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공을 자처하거나 현명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위 정치, 군주의 자세


가장 훌륭한 군주는 아래 백성들이 다만 임금이 있다는 것만을 알게 할 뿐이다.

그 다음의 군주는 백성들이 그에게 친근감을 가지며 그를 칭찬한다.

그 다음의 군주는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한다.

그 다음의 군주는 백성들이 그를 업신여긴다.

군주에게 믿음성이 부족하면 백성들은 그를 믿지 않는다. 조심하여 그 말을 중히 여기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최선의 군주는 무위의 정치를 하기 때문에, 공을 이루고 일을 성취하여도 백성들은 알지 못하고 '내가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 도경 제17장


백성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일은 농부처럼 하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농부는 밭을 다스릴 때에 힘써 잡초를 제거하고, 농작물을 제일이 되게 한다. 그리고 자연에 맡겨 무리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 덕경 제59장


최상의 군주는 마치 우리가 너무도 당연해 고마움을 모르는 태양의 존재와도 같다. 그의 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질정도로 크다. 그만한 능력이 없는 군주는 이를 눈에 보이게 작위하여 그를 칭송하게 한다. 그럴 능력도 없는 군주는 법과 형벌로 다스린다. 공을 행할 능력도 없거니와 형벌이 없이는 백성을 이끌어갈 능력이 없는 군주의 정치다. 그나마의 형벌로도 다스릴 능력이 없는 최하위의 군주는 그저 속이고 거짓말만으로 백성을 농락하고, 백성조차 그를 업신여긴다. 


수천년 전의 혼란했던 그 시대와 비교한 지금은 어떤가. 살 곳을 얻으려고 보면 나라가 얼마나 이 땅을 도둑질해가서 귀하고 어렵게 만들어놓았는지를 깨닫게 하고, 국가에 바친 세금은 어디로 새 나가는지 이 나라의 어느 곳이 이롭게 되는지 체감되는 것이 없으며, 청년때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고, 노년때까지 먹고 살 것을 걱정해야 하며, 죽을 때까지 나라가 주는 공과 덕을 태양이 그 자리에 있듯이 누리게 해주기는 커녕 손으로 잡아보기 조차 힘에 겹다.


처음엔 서론에 나온 말처럼 노자가 우민정치를 지향하는게 아닌가 오해했는데 도경을 다 읽어갈때쯤 무위 정치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백성을 어리석게 만든다는 말은 세상이 작위한 지혜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말하는 듯 하다. 당연히 누려야할 것에 의문을 가질 필요도 지혜를 작위할 필요도 없이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최상의 군주가 해야할 도임을 말한다. 중국 요임금 때에 한 늙은 농부가 "밭 갈아 밥 먹고, 우물 파 물 마시고, 날이 새면 일하고, 밤이 오면 잠자니 임금의 공력이 내게 무엇이 있는가"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에 주는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 뒤흔들지도, 조급하게 서두르지도 말고 가만히 두어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국가가 너무 번거롭게 간섭하지 말고 백성을 안정하게 하여야 한다. 

- 덕경 제60장


덕경에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가 작위하지 말아야 국민이 안정하고 불안에 떨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준다. 비록 선의에서 하는 일이라도 지나치게 간섭하고, 법령을 계속 바꾸거나 좋은 것이라도 강요하고 간섭하면 안된다. 자연스러운 생활 속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농부가 잡초를 뜯으며 자연이 농작물을 키우는 것을 지켜보듯이 그 근본만을 북돋아 주라고 말한다.


큰 일이 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하다


무위를 하고, 무사를 일삼으며, 맛없는 것을 맛보고, 작은 것을 크게 여기며, 적은 것을 많게 여기고, 원한은 덕으로 갚으라.

어려운 일은 그것이 쉬울 때에 처리하고, 큰일은 그것이 미세할 때에 해결하라.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부터 일어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결코 큰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능히 큰 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대체로 가볍게 승낙하는 것은 반드시 믿음성이 적고, 쉬운 것이 많으면 반드시 어려운 것이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도 오히려 그 쉬운 일을 어렵게 여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마침내 어려운 것이 없는 것이다. 

- 덕경 제63장


편안할 때에 위태한 것을 잊지 않으면 보전하기가 쉽고, 낌새가 나타나기 전에 미리 대책을 세우면 계획하기가 쉽다.

취약한 것은 깨뜨리기 쉽고, 미세한 것은 흩어 버리기 쉽다. 그러므로 나타나기 전에 대책을 세우고, 어지럽게 되기 전에 미리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미연에 방지하고 미세할 때에 대책을 세우면 작위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백성들이 하는 일을 보면 항상 거의 완성하게 되었을 때에 실패한다. 그것은 실패의 원인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고, 일이 완성에 가깝도록 실패의 원인도 커지게 버려두었기 때문이다. - 덕경 제64장


농사를 잘 짓는 농부가 잡초를 미연에 방지하고 둑이 무너지기전에 제방의 구멍을 막는 것과 같이 큰 일은 항상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니 미연에 방지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를 이루지 못하면 미연에 방지하지 못해서 일이 터지고나야 고치는 것이고, 최악은 일이 터지면 아예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노자의 세 가지 보물


나에게 세 가지 보물이 있어서 그것을 가져 보존한다.

첫째 자애, 둘째 검약, 셋째 감히 천하보다 앞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애하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다. 

검약하기 때문에 능히 널리 베풀어 쓸 수 있다. 

감히 천하보다 앞서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천하의 훌륭한 그릇을 이루어 남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서는 자애를 버리고 용기만을 취하려 하고, 

검약한 것을 버리고 널리 쓰려고만 하며, 

남의 뒤에 서는 일을 버리고 앞에만 서려고 한다. 

이런 것을 죽음의 문에 들어가는 일이라고 한다. 

- 덕경 제67장


훌륭한 전사는 무용을 부리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자는 성내지 않으며, 

적에게 가장 잘 승리하는 자는 적과 대전하지 않고, 

사람을 잘 쓸 줄 아는 사람은 그 사람 앞에 몸을 낮춘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남의 힘을 쓰는 길이라고 한다. 

이것을 하늘의 지고한 법칙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한다.

- 덕경 제68장


자애와 겸허의 존귀함을 강조한 노자.

자애하고 겸허하여 나를 낮출 줄 알아야 남의 힘을 도리어 나의 힘으로 쓸 수 있다. 그래서 노자는 이를 잃는 것이 가진 보물을 모두 잃는 것처럼 큰 실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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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꽃 - 고은 작은 시편
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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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누구도 매순간의 엄연한 기운과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존재 자체가 변화 미분들의 순간을 이어가는 것 아닌가. (중략)
그저 눈 깜짝할 사이라는 그 순간의 어여쁜 의미가 세상과 맞으리라 여겼다. 순간 속의 무궁!
이런 경계란 무릇 상상 속에 잠겨 있는 것이겠지만 하나의 직관은 꽃과 꽃을 보는 눈 사이의 일회저인 실체를 구현하는 것 같아서 시집의 이름으로 삼고 말았다.


순간 속의 무궁.

삶은 순간 순간으로 이루어지고 이러한 순간은 삶과 바로 맞닿아 있다.
그저 매일 보는 삶의 순간이지만 그 속에서 아름다운 혹은 절망적인 세상의 단면을 발견한 고은의 시.
짧은 시구 하나 하나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얇은 책인데도 책장 하나하나 넘길때마다 붙이는 플래그가 수도 없이 많았고 다시 옮길때도 도저히 뺄 수 없는 아름다운 시들이 많다.

이런 시를 두고 분석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저 두고두고 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가장 좋았던 시 10개. 나중에 필라그래피를 배운다면 직접 써서 남겨두고 싶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4월 30일
저 서운산 연둣빛 좀 보아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무슨 미움이겠는가

뭐니 뭐니 해도
호수는
누구와 헤어진 뒤
거기 있더라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오마르 하이얌
그대 예순일곱 생일날
천문대가 꿈이었지
지상의 술
천상의 별이 그대의 나라였지
어린이가 늙은이 속에 자꾸자꾸 태어나서....

아무래도 미워하는 힘 이상으로
사랑하는 힘이 있어야겠다
이 세상과
저 세상에는
사람 살 만한 아침이 있다 저녁이 있다 밤이 있다

호젓이 불 밝혀

소말리아에 가서
너희들의 자본주의를 보아라
너희들의 사회주의를 보아라
주린 아이들의 눈을 보아라

개는 가난한 제 집에 있다
무슨 대궐
무슨 부자네 기웃거리지 않는다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가
닿은 곳에서
싹 틔우는 땅버들씨앗
이렇게 시작해보거라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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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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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

'썩는다' '부패한다'라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따라서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반한 현상이다.
그런데도 절대 부패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것이 돈이다.
돈의 그 같은 부자연스러움이 '작아도 진짜인 것'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돈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부패해야한다는 말과 함께 독특한 일본의 한 빵집에 대해 소개한다.
지인의 추천으로 보게된 책인데, 자본과 세계에 뻗친 자본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p.195
상품의 가격을 떨어뜨리면 노동력이 값싸지고
노동력이 값싸지면 상품 가격도 떨어진다.
그 끝없는 반복 속에서 상품과 노동력의 질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숙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도 부패하지 않는 돈이 만들어낸 병리 현상이다.


돈은 부패하기는 커녕 자본주의 경제 안에서 신용창조와 이자의 힘으로 끊임없이 불어난다.
인위적으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내 이윤을 내는 빵집들처럼 인위적으로 동원한 돈은 부패하지 않는 경제를 만든다.

자본가들이 이윤을 내기 위해 상품의 가격은 점점 떨어지고, 노동은 단순해진다. 따라서, 노동자의 노동력도 값싸진다. 그 결과 노동자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단순히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노동력으로 끊임없이 착취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것이다.

 

p.196

이윤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의미,
즉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우리는 종업원, 생산자, 자연, 소비자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돈을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올바르게 쓰고,
상품을 정당하게 '비싼' 가격에 팔 것이다.
착취 없는 경영이야말로 돈이 새끼치지 않는 부패하는 경제를 만들 수 있다.


이윤이 없다는 곧 내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 따라서 생활할 수가 없다. 라고 자동적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윤이 없다는 것은 불필요한 착취가 없다는 것, 그저 자본이 더이상 규모를 불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일 규모로 경영을 지속하는 데에 이윤은 필요하지 않다. 규모를 불리기 위해서만 이윤이 필요한 것이다.
자본가가 막대한 이윤을 내기위해서는 노동자의 희생, 착취가 불가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우리가 받는 것보다, 정당하지 않게, 불가피하게 착취당해온 것이다.

 

p.177

인간은 지역의 부를 모아 그 지역을 넉넉하게 하는 자원이다.
경제활동이 낳은 부는 자원으로서의 인간이 가진 기능과 자연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빵집을 통해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상적인 경제의 모습이다.

이 빵집은 이윤을 내지 않는다.
게다가 빵을 만드는 장인이 숙련된 기술을 가졌다는 이유로 존경받으려면 잘 쉴 수 있어야 한다며, 운영이 될까 싶을정도로 휴일도 많다.

이 특이한 빵집은 지역 소상인을 살리고, 적어도 먹거리만큼은 '돈'의 힘에 놀아나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주는 건 서포트해주는 아내와 가족들, 무엇보다 이 모든 도전을 해낼 용기가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끝없이 부패하지 않고 불어나는 돈처럼 끊임없이 불어나는게 사람의 욕심이다.

진정한 노동자로서의 삶, 건강한 지역 경제를 만드는 힘, 진정한 의미의 Well-being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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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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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부터가 격하게 불편한 책. 

그래서 더 현실적인 책.
오히려 너무나 현실이어서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책이다.

네이버 CEO 특강에서 추천받은 책이라 읽어보는데 극단적으로 모든 말을 격하게 표현한 탓에 어떻게 보면 불편할수도, 아니면 너무 심각할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난 평소에도 조금 생각했던 것들이라 몇몇 구절에서 심히 공감했다. 특히 직장인이랑 부모님 떠나 자립하라는 부분.
결과적으로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는 건 자립의 중요성인 듯 하다.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 가져온 내 생각이랑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굉장히 공감됐다.

몇몇 부분은 좀 불편했지만.. 특히 몇 페이지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도 아닌 남자가' 왜 그러고 사냐는.. 좀 격하게 표현하다보니 좀 거르지 않은 부분인건가. 싶은데 솔직히 좀 불편했다. 여자는 찌질하게 살아도 된다는 건지? 앞 뒤 문맥을 봐도 어떤 의도로 쓴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부모에게 신세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몸이라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도전을 하든 어짜피 어린애 장난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을 하든 학자의 길을 걷든, 자신에 대한 인식 없이 부모의 도움으로 쌓이 올린 것은 언젠가는 허물어지게 되어 있다.

안정한 삶만을 택하고,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른 무언가에게 끊임없이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은 언젠가 무너진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의 인생인데 자립할 수 없는 힘이 없는 이상 언젠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
'도전'이 없이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는데, 이 '도전'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힘, 자립의 힘이 없이는 해낼 수 없다.
작가가 말하는 일본사회에서 안일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삶'은 겹치는 데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가정을 이루고 나 자신이 부모가 되면서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기는 이 삶에 과연 다른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는 것인지. 누가 그러라고 강요한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이렇게 살기를 자처하고 있는지. 한번 쯤은 생각해볼만 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들어와 꽂힌 부분.
왜 우리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닥 행복하지도 않은, 아니 오히려 노예같은 직장인의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을까. 느긋한 인생, 안정적이고 무난한 인생을 지향해야하는 세상에 살아서일까.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노예로 족쇠는 인생이외의 선택권은 없는 걸까.
책을 보는 중에 여러번 생각해봤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 외의 선택권이 있을까?라고 생각해봐도 답이 없는 것 같은게 정말 이런 삶에 많이 물들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용주가, 단순히 사회적인 값어치를 매기는 데 목적이 있는 학력을 그렇게나 중시하는 까닭은 오로지 순종할 인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세상의 가치관에 어디까지 순종적일 수 있는지,
그 어처구니없는 입시 전쟁에 얼마나 투신한 인간인지를 판단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따위 관심 없다.
회사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 관심 없다. 그저 충실하게 묵묵히 일해줄 사람이 필요할 뿐.
우리도 이 사실을 모르는게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노예같은 삶에 뛰어들기를 오히려 소망하고, 어느 책의 구절에서처럼 더 좋은 쇠사슬을 달기 위해 의미없는 싸움을 하는 젊은이들. '젊음'이라는게 참 허망해지는 순간이다.
언젠가는 더 큰 꿈을 꾸었을, 계속 꾸어야할 젊은이들이 지금 이 삶 이외의 보물같은 순간 순간을 사치로 여기고 살고 있다.
이렇게 살면서 죽을 날만 세고 있는 인생은 이미 죽은 인생이나 다름 없다며 욕이란 욕은 다 해대는 작가의 마음이 이해가 갈만도 하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모르고,
인생의 목적을 찾는 데서 오는 기쁨도 모른다.
삶의 목적이라는 아주 중요한 책무를 방기하고,
고뇌를 위한 고뇌로 끝날 수밖에 없는 좁은 길을 가기가 괴로워
그때그때 방종한 쾌락을 추구하며 그것을 사는 목적이라고 착각한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혼란을 늘 변화하는 인생의 허망함이라고 믿고,
지적 변모를 꾀하기는 커녕 태어났을 때보다 한층 격이 떨어진 처절한 패배자로 변해 버린다.

진짜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
자신의 인생의 참된 목적을 찾아내는 것.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이 인생의 목적을 찾는 일이 언제부턴가 사치가 되어버렸다.
난 이모든게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들만의 탓은 아니라고 본다.
이 책에서도 그렇기에 미련없이 버리라는 이 나라의 공도 혁혁하다.
대한민국의 1프로만이 이 나라를 먹여살린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99프로의 우리가 아무리 애국을 외치며 순종적인 국민으로 살아봤자 있는 거라도 안 뺏기는게 다행이다.

몇 번이나 말하는데,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런 시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이다.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렇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생겨난 얄팍한 환영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긴장하고, 그 긴장감에서야말로 살아 있음과 사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든
아니면 옛날에나 생각해봤으나 사치가 되어버렸든,
다시 한번 멍청하게 살아온 내 인생에 반기를 들고 변화를 주어야할 때라고 느꼈다.

자기 신뢰의 습관을 터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전 생에에 걸친 목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흔들림 없는 목적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자립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나 자신만의 흔들림 없는 삶의 목적.
남이 길러준 것이 아닌, 주변의 환경에 의해 자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
이 삶에 대한 고픔을 느낀 이 순간이 진정한 자립의 의미를 찾아 인생을 바꿔야할 때이다.

 

너를 키우는 자가 너를 파멸시키리니.
타자에 기댄 삶의 끝은 파멸이라는 뜻이다.
부모와 직장과 사회와 아내와 각종 신과 권력과 권위에 의해 파멸되는, 그런 인생을 안이하게 받아들여도 좋은 것인가.


나를 위한 '내 인생'을 사는데 떠오르는 수 많은 것들.

이제 한 발짝을 내딛기 위해 용기를 내고 안이하게만 살아온 인생에서 벗어나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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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좀머 씨 이야기.
장 자끄 상뻬의 <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 라는 그림책을 보고 다른 책에도 관심이 생겨 찾아보다가 알게 된 독일 소설이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마을의 희한한 좀머 아저씨를 보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향수>의 작가 파브리크 쥐스킨트와 아름다운 장 자끄 상뻬의 그림이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준다.
동화책 같은 표현과 여전히 가만히 바라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그림 덕분에 기분 좋아지면서도 왠지 모르게 먹먹해지는.

 

가느다란 금발의 여린 얼굴, 유행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낡은 스웨터 차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남자.
사람 만나기를 싫어해 상 받는 것도 마다하고, 인터뷰도 거절해 버리는 기이한 은둔자.
이 사람이 바로 전 세계 매스컴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
파트리크 쥔스킨트이다.

 

좀머 아저씨의 유일한 한 마디
'그러니 제발 날 좀 내버려 두시오!'
작가 소개 부분에서 작가가 은둔자로 유명하다는 걸 보고 난 이후로 이 대목을 볼 때마다 꼭 작가가 외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차 안에서 우박이 엄청나게 쏟아져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인데.
그걸 표현한 그림이 왠지 너무 예뻤다.

 

 

p.42
나는 괴상한 그 새 단어와 그것에 얽힌 모든 것들을 빨리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다. 그런 다음 나는 좀머 아저씨가 아무 병에도 걸리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만 한다는 강요도 받지 않고 있으며, 단지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내가 나무를 기어오를 때 즐거움을 느끼듯이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모두 자기 자신의 만족과 쾌락을 위해서

좀머 아저씨는 밖에서 걸어 다니는 것뿐이고, 거기에 다른 설명은 필요치 않은 것 같았다.

 

좀머 아저씨는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걸어 다니기만 한다.
밀폐 공포증이니 뭐니 수군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주인공은 좀머 아저씨는 그저 자신이 나무를 타는 것처럼 걸어 다니는 게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동화 같고 순수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p.58
나는 언덕을 내려가 집으로 향했다. 숲 가장자리에 다다라 무심코 윗마을로 향하는 길을 쳐다보았을 때 아무도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아 그날 내가 굉장히 천천히 걸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 서서 몸을 돌려 내가 방금 걸어왔던 구부러진 언덕길을 쳐다보았다. 초원에 햇빛이 충만하게 넘쳐흘렀다. 풀 사이로 바람 한 줄기도 불지 않았다. 풍경이 마치 그대로 굳어 버린 것 같았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집에 가는 길에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 며칠간을 행복감에 둘러싸여 있던 주인공은 완벽하고 달콤한 산책길을 계획하며 함께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여자아이의 한 마디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날씨마저 완벽했던 그날의 소풍을 뒤로하고 집에 가는 길의 풍경은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버린다.
가장 예뻤던 장면. 여자아이의 한 마디 때문에 풍경이 굳어버렸다고 하는 표현도, 그다음 장에 나온 저 삽화도.

 

 

p.94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싹 가셨다. 웃기는 짓거리 같았다. 난 내가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그까짓 코딱지 때문에 자살을 하다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불과 몇 분 전에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을 보지 않았던가!

피아노 선생님에게 혼난 게 억울해서 나무에 떨어져 자살할 생각을 하는 주인공.
자살을 생각하면서 모두가 자신에게 미안해하고 후회할 거라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한다.
나도 어릴 때 한 번쯤 해본 짓이어서 피식거리면서 본 장면.
것보다 잠깐 누워서 잠을 청할 수도 없을 정도로 쫓기듯이 걸어가는 좀머 씨의 사연은 뭘까.
주인공은 그 좀머 씨를 보자마자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다.

 

 

p.98
좀머 아저씨는 가끔씩 사람들 눈에 띄기는 하였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표현을 빌자면 세월 다 보낸 사람이었다.

 

 

p.116
그것은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 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는 입술과 간청하는 듯하던 아저씨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기억은 좀머 아저씨가 물속에 가라앉던 모습이었다.

가슴 먹먹해지는 글과 삽화로 결국 끝이 나버린 좀머 아저씨의 이야기.
매일을 뭔가에 쫓기듯 걸어 다니던 좀머 아저씨는 결국 독자들에게도 자신을 가만 놔달라며 아무 말없이 물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주인공은 그냥 내버려달라는 좀머 아저씨의 말을 지켜주었다.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먹먹해지는. 그래서 뭔가 잔잔한 여운이 남는 좀머 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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