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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부터가 격하게 불편한 책.
그래서 더 현실적인 책.
오히려 너무나 현실이어서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책이다.
네이버 CEO 특강에서 추천받은 책이라 읽어보는데 극단적으로 모든 말을 격하게 표현한 탓에 어떻게 보면 불편할수도, 아니면 너무 심각할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난 평소에도 조금 생각했던 것들이라 몇몇 구절에서 심히 공감했다. 특히 직장인이랑 부모님 떠나 자립하라는
부분.
결과적으로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는 건 자립의 중요성인 듯 하다.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 가져온 내 생각이랑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굉장히 공감됐다.
몇몇 부분은 좀 불편했지만.. 특히 몇 페이지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도 아닌 남자가' 왜 그러고 사냐는.. 좀 격하게 표현하다보니 좀
거르지 않은 부분인건가. 싶은데 솔직히 좀 불편했다. 여자는 찌질하게 살아도 된다는 건지? 앞 뒤 문맥을 봐도 어떤 의도로 쓴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부모에게 신세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몸이라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도전을 하든 어짜피 어린애 장난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을 하든 학자의 길을 걷든, 자신에 대한 인식 없이 부모의 도움으로 쌓이 올린 것은 언젠가는 허물어지게 되어
있다.
안정한 삶만을 택하고,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른 무언가에게 끊임없이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은 언젠가 무너진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의 인생인데 자립할 수 없는 힘이 없는 이상 언젠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
'도전'이 없이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는데, 이 '도전'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힘, 자립의 힘이 없이는 해낼 수 없다.
작가가 말하는 일본사회에서 안일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삶'은 겹치는 데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가정을 이루고 나 자신이 부모가 되면서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기는 이 삶에 과연 다른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는 것인지. 누가 그러라고 강요한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이렇게 살기를 자처하고 있는지. 한번 쯤은 생각해볼만 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들어와 꽂힌 부분.
왜 우리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닥 행복하지도 않은, 아니 오히려 노예같은 직장인의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을까. 느긋한 인생, 안정적이고 무난한 인생을 지향해야하는 세상에 살아서일까.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노예로 족쇠는 인생이외의
선택권은 없는 걸까.
책을 보는 중에 여러번 생각해봤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 외의 선택권이 있을까?라고 생각해봐도 답이 없는 것 같은게
정말 이런 삶에 많이 물들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용주가, 단순히 사회적인 값어치를 매기는 데 목적이 있는 학력을 그렇게나 중시하는 까닭은 오로지 순종할 인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세상의 가치관에 어디까지 순종적일 수 있는지,
그 어처구니없는 입시 전쟁에 얼마나 투신한 인간인지를 판단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따위 관심 없다.
회사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 관심 없다. 그저 충실하게 묵묵히 일해줄 사람이 필요할 뿐.
우리도 이 사실을 모르는게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노예같은 삶에 뛰어들기를 오히려 소망하고, 어느 책의 구절에서처럼 더 좋은 쇠사슬을 달기 위해 의미없는
싸움을 하는 젊은이들. '젊음'이라는게 참 허망해지는 순간이다.
언젠가는 더 큰 꿈을 꾸었을, 계속 꾸어야할 젊은이들이 지금 이 삶 이외의
보물같은 순간 순간을 사치로 여기고 살고 있다.
이렇게 살면서 죽을 날만 세고 있는 인생은 이미 죽은 인생이나 다름 없다며 욕이란 욕은 다
해대는 작가의 마음이 이해가 갈만도 하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모르고,
인생의 목적을 찾는 데서 오는 기쁨도 모른다.
삶의 목적이라는 아주 중요한
책무를 방기하고,
고뇌를 위한 고뇌로 끝날 수밖에 없는 좁은 길을 가기가 괴로워
그때그때 방종한 쾌락을 추구하며 그것을 사는
목적이라고 착각한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혼란을 늘 변화하는 인생의 허망함이라고 믿고,
지적 변모를 꾀하기는 커녕 태어났을 때보다
한층 격이 떨어진 처절한 패배자로 변해 버린다.
진짜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
자신의 인생의 참된 목적을 찾아내는 것.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이 인생의 목적을 찾는
일이 언제부턴가 사치가 되어버렸다.
난 이모든게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들만의 탓은 아니라고 본다.
이 책에서도 그렇기에 미련없이
버리라는 이 나라의 공도 혁혁하다.
대한민국의 1프로만이 이 나라를 먹여살린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99프로의 우리가 아무리
애국을 외치며 순종적인 국민으로 살아봤자 있는 거라도 안 뺏기는게 다행이다.
몇 번이나 말하는데,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런 시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이다.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렇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생겨난 얄팍한 환영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긴장하고, 그 긴장감에서야말로 살아 있음과 사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든
아니면 옛날에나 생각해봤으나 사치가 되어버렸든,
다시 한번 멍청하게 살아온 내 인생에 반기를 들고
변화를 주어야할 때라고 느꼈다.
자기 신뢰의 습관을 터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전 생에에 걸친 목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흔들림 없는
목적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자립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나 자신만의 흔들림 없는 삶의 목적.
남이 길러준 것이 아닌, 주변의 환경에 의해 자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
이 삶에 대한 고픔을 느낀 이 순간이 진정한 자립의 의미를 찾아 인생을 바꿔야할 때이다.
너를 키우는 자가 너를 파멸시키리니.
타자에 기댄 삶의 끝은 파멸이라는 뜻이다.
부모와 직장과 사회와 아내와 각종 신과 권력과
권위에 의해 파멸되는, 그런 인생을 안이하게 받아들여도 좋은 것인가.
나를 위한 '내 인생'을 사는데 떠오르는 수 많은 것들.
이제 한 발짝을 내딛기 위해 용기를 내고 안이하게만 살아온 인생에서
벗어나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