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꽃 - 고은 작은 시편
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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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누구도 매순간의 엄연한 기운과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존재 자체가 변화 미분들의 순간을 이어가는 것 아닌가. (중략)
그저 눈 깜짝할 사이라는 그 순간의 어여쁜 의미가 세상과 맞으리라 여겼다. 순간 속의 무궁!
이런 경계란 무릇 상상 속에 잠겨 있는 것이겠지만 하나의 직관은 꽃과 꽃을 보는 눈 사이의 일회저인 실체를 구현하는 것 같아서 시집의 이름으로 삼고 말았다.


순간 속의 무궁.

삶은 순간 순간으로 이루어지고 이러한 순간은 삶과 바로 맞닿아 있다.
그저 매일 보는 삶의 순간이지만 그 속에서 아름다운 혹은 절망적인 세상의 단면을 발견한 고은의 시.
짧은 시구 하나 하나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얇은 책인데도 책장 하나하나 넘길때마다 붙이는 플래그가 수도 없이 많았고 다시 옮길때도 도저히 뺄 수 없는 아름다운 시들이 많다.

이런 시를 두고 분석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저 두고두고 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가장 좋았던 시 10개. 나중에 필라그래피를 배운다면 직접 써서 남겨두고 싶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4월 30일
저 서운산 연둣빛 좀 보아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무슨 미움이겠는가

뭐니 뭐니 해도
호수는
누구와 헤어진 뒤
거기 있더라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오마르 하이얌
그대 예순일곱 생일날
천문대가 꿈이었지
지상의 술
천상의 별이 그대의 나라였지
어린이가 늙은이 속에 자꾸자꾸 태어나서....

아무래도 미워하는 힘 이상으로
사랑하는 힘이 있어야겠다
이 세상과
저 세상에는
사람 살 만한 아침이 있다 저녁이 있다 밤이 있다

호젓이 불 밝혀

소말리아에 가서
너희들의 자본주의를 보아라
너희들의 사회주의를 보아라
주린 아이들의 눈을 보아라

개는 가난한 제 집에 있다
무슨 대궐
무슨 부자네 기웃거리지 않는다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가
닿은 곳에서
싹 틔우는 땅버들씨앗
이렇게 시작해보거라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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