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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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안읽던 시절에 왜인지 충동구매해놓고 안 읽다가 아무 생각없이 펼쳤다가 괜시리 엄마와 나를 떠올리며 뭉클해진 책. 그리고 이제 나이도 좀 차서인지 내가 나중에 엄마가 되었을때의 위녕같은 딸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입하며 본 책이다.


서툴고 어리숙하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 위녕의 엄마. 이혼했다거나 하는 가정환경 같은 것 다 떠나서 위녕에게 해준 말들을 되새겨보면, 나도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 저런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행복에 대해 말하면서 행복하지 않으면 공부도 명예도 다 필요없다고 말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여느 엄마들처럼 주변에 휩쓸려 그래도 공부는 해야한다고 설득하는 모습이 괜히 기억에 남는다. 위녕말대로 바보같아보이면서도 나라도 그럴수밖에 없겠다 싶어서. 나도 어릴땐 그런 엄마가 싫었는데 나이가 들면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게 이런걸까 싶다. 이 책은 위녕의 시점에서 쓰여진 책이니 내가 만약 위녕의 엄마였다면 저런 상황에서 위녕에게 어떻게 해줄 수 있었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중에 자식들에게 보여질 엄마의 모습이라던가 나를 키워준 엄마의 입장을 이제서야 조금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던가.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게된 듯하다.


p.50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그러니까 말하자면... 창 밖에 말이야. 벌판 같은 데 불빛 하나 없고 바람이 불어. 그런데 나지막하고 허름한 모텔이 있는 거야. 아주 후지지. 창틈으로 바람은 새어 들어오고 비도 뿌리는데, 겨우 먼 길을 걸어와 누운 거야. 아침부터 먹은 거라곤 배낭 속에 들은 딱딱한 빵 한 덩이뿐이고, 해진 신발 틈으로 물이 새고 침낭은 낡았고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라. 뭐 이런거 말이야. 그때 올려다본 천장의 어둠은 얼마나 서늘하겠니.


p.85

"어떤 순간에도 너 자신을 존중하소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 돼. 너도 모자라고 엄마도 모자라고 아빠도 모자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자람 때문에 누구를 멸시하거나 미워할 권리는 없어. ......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가 있는 거야. 엄마는 엄마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어."


p.105

"위녕, 행복이란 건 말이다. 누가 물어서 네, 아니요로 대답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란다. 그건 죽을 때만이 진정으로 대답할 수 있는 거야. 살아온 모든 나날을 한 손에 쥐게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지."


p.107

"삶이란 건 참 이상하다. 어느 것도 지속되지 않는다. 슬픔도 기쁨도 노여움도 그리고 웃음도."


p.225

"스님,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 스님이 대답하더구나. 앉아 있을 때 앉아 있고, 일어설 때 일어서며 걸어갈 때 걸어가면 됩니다, 하는 거야. 아저씨가 다시 물었지. 그건 누구나 다 하는 일 아닙니까? 그러자 그 스님이,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아직도 그 눈빛이 생각난다. 형형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그 눈으로 아저씨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하더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앉아 있을 때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일어설 때 이미 걸어가고 있습니다."


p.263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잘' 키워서 내가 '잘' 자란다, 는 무슨 뜻일까.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자기네들도 결코 스스로를 꼭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으면서, "엄마도 이렇게 컸어, 이게 맞아."라든가, "아빠도 어릴 때 이랬어. 그러니 그렇게 해."라는 말을 한다. 내가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나는 엄연히 개성이 있는 하나의 인격체인데 말이다."


p.337

"사랑하는 딸, 너의 길을 가거라. 엄마는 여기 남아 있을게. 너의 스물은 엄마의 스물과 다르고 달라야 하겠지. 엄마의 기도를 믿고 앞으로 가거라. 고통이 너의 스승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네 앞에 있는 많은 시간의 결들을 촘촘히 살아내라. 그리고 엄마의 사랑으로 너에게 금빛 열쇠를 줄게. 그것으로 세상을 열어라. 오직 너만의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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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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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살인을 했다는 이해하기 힘든 구절로 유명한 카뮈의 소설 이방인.


첫 장부터 죽 읽을땐 나도 어떻게 죽음에 대해 그것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슬픈 기색 하나 안비칠수가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마지막 재판과정에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심정 변화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맨 마지막 페이지에 죽기 전 하나님을 믿으라는 선교사에 울부짖으며 내뱉은 마지막 한마디에 주인공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장의 울부짖음은 주인공에게 완전 몰입해서 읽느라 마지막에 행복했다고 끝나는 부분에서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p.42

창문을 닫고 되돌아오는데 문득 거울에 비친 식탁 모서리가 눈에 들어왔다. 알코올램프와 빵조각이 흩어져 있는 식탁. 언제나처럼 또 한번의 일요일이 지나갔고, 엄마는 이제 땅 속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64

"자넨 젊어, 자네에겐 그런 생활이 구미가 당길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만, 사실 내게는 그나저나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생활에 변화를 주는 데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람들은 결코 삶을 바꿀 수 없다고, 어떤 경우의 삶이든 그 나름의 좋은 점이 있으며, 여기서의 내 삶도 결코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p.113

전에 나는 감옥 안에서는 결국 시간관념을 잃게 된다는 글을 분명히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별로 의미가 없던 말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루하루가 얼마든지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는 그 점이. 아마도 살아 내기에도 길지만, 너무나 늘어나서 종국에는 쌓이고 넘치게 되는 것이 하루였다. 그들은 이름을 잃었다. 단지 어제 또는 오늘이라는 단어만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p.138

나는 정중하게, 거의 애정을 담아, 실제로 어떤 것을 후회하는 게 내게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다. 내 마음은 항상 금명간 다가올 일에 붙들려 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모든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으며 달라진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장례식을 끝내는 주인공. 자신의 살인이 정당방위였든 뭐든 다른 어떤것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슬퍼하지 않았다는 거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이유로 자신의 이야기는 해보지도 못하고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 주인공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감옥에서 수감하는 동안에 끊임없이 자신이 살면서 겪어온 수많은 '하루'를 되새기며 무료한 시간들을 보낸다. 주인공에게 중요한 것은 이 삶을 기억할 수 있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나간 것보다는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하루와 지금 이 순간.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p.162

아니야, 나는 자네를 믿을 수 없네. 나는 확신하네, 자네도 한번쯤은 다른 삶을 원했었다는 걸." 나는 물론 그랬다고 답했으나, 그것은 부자가 된다든가 헤엄을 매우 빨리 칠 수 있다든가, 아니면 좀 더 잘생긴 입을 가지게 되기를 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을 저지하고는 내가 그리는 다른 삶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 이 삶을 기억할 수 있는 그런 것이오!


p.163 ~ p.165

그는 너무나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확실성은 여자 머리카락 한 올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면에 나는 마치 빈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나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그가 확신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삶을, 다가올 이 죽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 내겐 그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 진실이 나를 꼭 움켜쥔 만큼 그것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옳았고, 여전히 옳았으며, 항상 옳았다. 나는 이런식으로 살아왔지만 다른 식으로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했고 저것은 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건 하지 않았으나 또 다른 건 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이 모든 시간 동안 이 순간을, 이 이른 새벽을, 나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기다려 왔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겠다. 그도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내가 살았던 부조리한 삶 내내, 내 미래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직 오지 않은 수년의 시간을 건너서 어두운 바람이 내게로 거슬러 왔다. 그 바람은 이 여정에서, 내가 살았던 시간보다 더 사실적일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당시 내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을 그만그만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른 이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이 내게 뭐가 중요하며, 그의 하느님이나 우리가 택하는 삶, 우리가 정하는 운명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단 하나의 운명만이 나를, 나 자신을, 그리고 나와 함께 무수한 특권자를 택해야 했는데, 그리고 이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나의 형제라고 스스로 말하는데. 

그러니까 그는 이해할까? 모든 사람은 특권자라는 것을, 특권자밖에 없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 역시, 언젠가는 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 역시, 선고를 받을 것이다. 

만약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고 그의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된다 한들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살라마노의 개는 그의 아내만큼이나 가치가 있다. 그 작은 로봇 여자는 마송과 결혼한 파리 여자처럼 또는 내가 결혼해 주기를 원했던 마리처럼 죄인인 것이다. 레몽이 그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나은 셀레스트와 똑같이 나의 친구라는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제 마리가 그녀의 입술을 새로운 뫼르소에게 허락한다 한들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는, 그러니까 그는 이해할까, 이 사형수는, 내 미래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p.165 ~ p.166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그녀가 왜 말년에 "약혼자"를 갖게 되었는지, 왜 그녀가 새로운 시작을 시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거기에서도, 삶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그곳 양로원에서도, 저녁은 쓸쓸한 휴식 같은 것이었다. 죽음에 인접해서야, 엄마는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됐다고 느꼈음에 틀림없었다. 누구도, 그 누구도 그녀의 죽음에 울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이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쫓아내고, 희망을 비워 낸 것처럼, 처음으로 신호와 별들로 가득한 그 밤 앞에서,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 세계가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하여, 내가 혼자임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나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얽매여 슬퍼하고 괴로워하지만 주인공에게 이미 지나간 과거보다 중요한것은 현재이다. 중요한 것은 삶을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는 것, 그리고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 마지막 울부짖음에서 주인공은 선교사를 죽은채로 살고있다고 하는 부분에서 또다시 느낄 수 있다. 주인공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삶을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지 죽음 이후의 삶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두려울뿐이지 절망적이진 않다고 말한다. 감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도 발자국소리에도 심장이 터질것 같으면서도 마지막에는 결국 행복했다고 말한다.


아직도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는 읽고 또 읽어도 완벽히 이해되질 않는다. 하지만, 한 사형수에게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에 대해 굉장히 솔직한 내면을 보여주었고, 그 과정에서 현재에 사는 것이 삶의 끝자락에 살아온 삶을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것인지를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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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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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닐때였나. 당시 매 회에 감동받았던 프로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였던 이 책. 저 프로 다시하면 좋겠다. 진짜 감동스런 프로였는데. 아무튼 저 프로 보다가 느낌표 선정도서를 마구 사재끼곤했는데 그 중 가장 읽기 힘든 책이었달까.


워낙 책을 안읽어서였겠지만 말도 너무 어렵고 펴기만 하면 폭풍 졸아댔던 책이다. 이제서야 펼쳐든건 집 안 서재에 먼지쌓인 책들부터 좀 읽고 새 책을 읽던지 하자는 마음에서였다. 얇아서 금방 읽을것같기도 했고.


농사꾼 전우익 선생님이 농사를 지으며 느끼는 세상의 이치를 편지로 죽 써내려간걸 그대로 엮어낸 책인데 어렵다고 하면 중간중간 나오는 농업 용어?가 좀 어렵고, 사실상 금방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민병산 선생님의 구절, 노신의 말, 아Q정전의 구절 등이 많이 나오는데 그 주옥같은 말들과 이치들을 농사와 맞물려 쓴 부분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밭에 자라는 곡식을 사람이 성장하는 것과 비유하기도 하고 밭일하면서 중요한 부분등을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잊지말아야할 것들과 결부시켜 말해주기도 한다. 얇은 책인데도 마음에 새길 구절이 많았던 책. 나중에 나이가 더 들면 다시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p.27

스님,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별볼일 없는 말은 길게 마련이지요.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삶이란 그 무엇(일)엔가에 그 누구(사람)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라고."


p.31

호미, 낫, 괭이를 치는 쇠도 유하면 굽고 강하면 부러집니다. 굽지 말고 부러지지 않게 사는 길이 유강을 겸비하는 거라지요. 한 줄기의 부들, 하잘것없는 쇠붙이에서 인생을 배워야 되나 봅니다. 굽은 척, 죽은 척, 자는 척해야 하는 기막힌 세상에 살고 있는 걸 모르진 않습니다.


p.61

나무가 싹터 크고 가지 치는 데서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나무는 자체의 힘과 이십사 절기와 사계절의 리듬을 타고 다지며 커 가는데, 사람들은 억지와 경쟁으로 자신과 이웃, 줄기까지도 갉아 먹으면서 크려고 하니까 일이 뒤틀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p.110

사람의 감정은 한정된 화분에다 기를 것이 아니라 넓은 땅에 길러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밀실 속에 가둘 것이 아니라 사회라고 하는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고 공명정대하게 길러야 한다. '담' 높이를 낮춰야 하며 개인의 '방'과 '거리'가 잘 소통되어야 한다. - 민병산


p.111

현대의 모든 단체는 오직 강력하게 되려고 조직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를 배척한다. 그 조직에 참가하고 있는 각 개인이 표명하는 사상이나 정신적 가치로 강력해지려 하지 않고 그들의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결속과 통일로 강력해지려 한다. - 아Q정전


p.112

인생을 사랑하고 사악한 편견으로부터 생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빵과 서커스만으로 만족하는 그런 인간이 되지 말자는 것이다.

인식의 길은 어디까지나 철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못하면 각자의 입장을 변명하는 재료에 그치고 만다.

주위가 소란할 때일수록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자. 높이 지르는 소리는 오히려 세상의 소요 속에 묻혀버리고 말기 때문에.


p.130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길 따 먹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을 안기듯이, 착함이 자기 방어 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지키기 위해서 억세고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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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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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배운 지루하기만 하고 어렵기만 했던 '시'라는 장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구절 구절이 일반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닌다던가 눈은 순수를 의미하고 별은 꿈을 상징한다 뭐 이런 상징적 의미만 달달달 외웠던 고등학교 시절의 교육은 저자의 말처럼 제사와 같다. 다른 생각, 다른 의견을 내면 이단아로 몰리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라고, 창의력을 기르라면서 정작 우리가 받은 교육은 이렇게나 획일화되어 있었다.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세상.


이 책을 통해 다시 보게된 '시'는 시인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었다. 시인이 겪은 일들과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면서 시인의 감정이 그 시절 느꼈던 시인의 생각을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문학작품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심정을 이해하려 했는데, 왜 시를 읽을땐 그러지 못했을까.


그저 어렵다고만 느낀 몇몇 시의 구절들을 시인이 겪은 것들과 함께 이해하니 시 속에서 쏟아져나오는 감성들이 이해가 가고 감동이 배가 된다. 이 시의 성격은 뭔지 표현상의 특징들은 뭐가 있는지 이런것들을 분석하듯 암기했던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냐는 듯이 시가 마음에 들어와 읽혔다. 책의 제목처럼 시를 잊은 우리들에게 시에 대해 이해하고 사람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수있는 책인것 같다.


p.52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 이성선, <사랑하는 별 하나>


가장 가슴에 파고들었던 시. 별처럼 나를 비추어주는 사람을 갖기전에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별처럼 비추어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너무 이기적이어야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것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불평하고 어떤 잣대에 들어 판단하고, 외롭고 괴로운 사람의 마음에 별처럼 길을 비추어줄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사람을 꿈꾸게 하는 별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기를 꿈꾸게 해준 시.


p.64

꽃은 굳이 맹세하지 않아도, 침 튀어 가며 부르짖지 않아도, 때가 되면 피고 때가 되면 진다. 반면에 그 역시 자연인 주제에 인간만은 영 그것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런 일에 그는 늘 결심하며 늘 실패한다. 꽃러럼 아름답게 살기는커녕 꽃처럼 죽기도 왜 이리 힘이 드는 겐지 인간은 자꾸만 현재를 더 붙잡으려다 자꾸만 추한 꼴을 보이곤 한다.


p.69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 복효근, <목련 후기>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이 구절이 참 와닿는다.

그게 상처일지언정 너무 큰 아픔일지언정 차라리 낫지 않고 싶다고 조금이라도 더 앓고 싶다고 말하는 이 시처럼 쿨한 척 하기보다 아픔에 대해서 제대로 앓는게 필요한건지 모른다.


p.95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 박노해, <다시>


결국 절망스러운 세상이지만 사람이 만든 세상이고 그 절망또한 사람이 만들었다.

따라서,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다시 재생하고 회복할 수 있는 것도 사람뿐이다.

남에게서 희망을 기다릴게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서 희망을 찾아야한다.


p.96 ~ p.97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 정호승,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중에서


슬픔이나 절망 조차 없는 절망적인 세상.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이 희망이다. 우리가 이러한 세상에서 해야할 것은 사랑뿐이다.

박노해의 '다시'에서처럼 다시 한 번 사람 안에서 희망을 찾아야만 한다.


p.101

온 세상이 캄캄해 보일 정도로 희망이 사라진 날, 정말이지 지독히 외로운 날, 그런 날일수록 시를 찾고, 노래를 하며, 누가 뭐래도 나를 믿어 주는 한 사람을 떠올려 보라.

빛은 실재이고 어둠은 결국 현상에 불과한 것. 빛이 없어 어두운 것이지 어두워서 빛이 없는 건 아니기에, 빛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어도 어둠이 빛을 몰아낼 수는 없는 것이기에, 우리의 절망과 슬픔은 끝내 소망과 기쁨에 무릎을 꿇으리니.


p.165

일상도 권력이다. 아니, 일상의 권력이 더 무서운 법이다.

일상은 그래서 잘 변하지 않는다.


p.285

논쟁이라고 해서 반드시 거기에 갈등만 있을 리는 없다. '너'로 인하여 '나를' 더욱 잘 알게 되고 '너'를 아는 것은 결국 '나'를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에게만 갇힐 때 우리는 아집에 빠지고, 그저 남의 견해에 순응할 때 우리는 무지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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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 -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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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부터 보고싶었지만 개정되기 이전의 책들만 도서관에 있어서 선택할 것 없이 북한에서의 답사기의 상편인 4권을 먼저 보았다. 북한이라 내가 이미 본 것이라거나 또는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어서 조금 지루해지는 듯 했지만(특히 2부의 고인돌과 박물관 관련 부분) 왠지모를 신기함과 궁금증에 끝까지 읽게 된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북한사람들에게는 시를 암송하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 것과 비슷해서 식당 웨이트리스부터 접대원들도 즉석에서 애송시를 읊을줄 알고, 시를 잘 짓고 못 짓는 것이 꼭 우리나라사람들이 노래를 잘 부르고 못 부르는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어떤 풍경이나 경치를 보면서 또는 느낀 감정에 대해 노래를 부르듯 즉흥시를 만들어내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 굉장히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하나는 종교인이 아닌 절간 관리인 같은 모습의 북한 스님들. 종교보다 더한 신앙이 있기 때문에 신이 없는 나라, 북한의 모습이 이러한 부분에서 크게 와닿았다. 


1-4부 중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3부의 묘향산 기행. 장엄하고 수려한 매력적인 산 묘향산에서의 서산대사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한국전쟁때 동강난채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서산대사비, 그리고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수많은 폭포를 만날 수 있다는 만폭동은 다른 파트에 비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 중 이름처럼 호랑이가 나올것같던 인호대의 사진. 그 사진을 보고 이게 진짜 폭포인가하고 한참 고민했을정도로 엄청난 경치를 자랑했던.


몇 일 전에는 북한에서 외화 벌겠다고 평양 먹방 동영상같은 것을 만든걸 봤는데, 첫 방북으로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써내려간 이 답사기를 보자니 역사 속에 남을 첫 답사같은 생각에 더 신기하기도 했다. 1997년 말에 다녀온 답사기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8년전. 이 답사기에는 북한의 어떤 풍경들이나 말투 등이 약 20년전 우리나라 모습같다는 말이 꽤 나온다. 경쟁이 필요없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건물 디자인따위 전혀 안중에도 없는 벽돌식 건물에 '우리는 행복합니다'라는 문구만 붙어있는 한 평양의 백화점 간판 사진이 기억난다. 백화점 입구에 '행복합니다'라니. 이제 북한에서도 관광객들 유치한다니 좀 변했을지 앞으로 자연스럽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경쟁이 없는 곳에 발전이 없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던 와중에 본 북한 먹방 동영상은 조금 충격적이었달까. 게다가 파스타를 돌돌 말아먹는 모습까지. 교통체증조차 없었던 이 답사기에서의 평양 거리와 달리 최근 BBC뉴스에서의 북한 취재에 의하면 거리에 외제차도 있고 교통체증도 보인다고 말한다. 햄버거랑 파스타를 즐기는 북한 사람들, 그리고 암암리에 인정되는 민간 시장들. 정치적인 부분이나 사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최근 북한의 모습을 보면 북한도 조금씩 자본주의의 바람이 불고있는 것 아닌가 싶다.


p.83

지금 평양에서 고쳐야 할 것은 이 보통문만이 아니다. 나라 곳간이 텅 비고 재정이 고갈된 것은 문의 기둥이 썩는 것과 무엇이 다르며, 백성들이 가렴주구로 시달리는 것은 서까래 네 구석이 무너져내리는 형세와 무엇이 다르며, 풍속이 퇴폐해 날로 낮은 데로 흘러감은 기와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물건이 허물어진 것은 혹은 기다려 고치면 되겠지만 백성의 삶이 허물어진 것은 장차 어디에 기대해야 할 것인가. 나는 이 말을 여기에 기록해두어 내가 근본을 버리고 그 말엽만 힘쓴 것을 부끄러워했음을 알게 하고자 하노라. - 체제공의 '보통문 중건기' 중에서


허물어가는 평양의 보통문을 보면서 백성들의 삶을 걱정했던 체제공의 명문은 현 시대에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p.241

산중의 암자에 와서 건물생김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 중요한 것은 어떤 곳에 자리잡았는가이다. 상원암은 그중 아늑함을 택했다. 아마도 발아래 있는 용연폭포의 장쾌함과 저쪽 편 인호대의 호방한 전망이 기실은 상원암에 속한 것이니 암자 자체는 오히려 그윽함을 택한 것이리라.


산중 암자의 자리매김에 대해 주목하게 된 구절. 그 뒤로도 이렇게 자리매김에 의미를 지닌 공간들이 많이 나오는데 자리를 잡는 것조차 그 곳에 머물던 사람, 주변의 경관과의 조화를 고려한 지혜를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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