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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살인을 했다는 이해하기 힘든 구절로 유명한 카뮈의 소설 이방인.
첫 장부터 죽 읽을땐 나도 어떻게 죽음에 대해 그것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슬픈 기색 하나 안비칠수가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마지막 재판과정에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심정 변화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맨 마지막 페이지에 죽기 전 하나님을 믿으라는 선교사에 울부짖으며 내뱉은 마지막 한마디에 주인공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장의 울부짖음은 주인공에게 완전 몰입해서 읽느라 마지막에 행복했다고 끝나는 부분에서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p.42
창문을 닫고 되돌아오는데 문득 거울에 비친 식탁 모서리가 눈에 들어왔다. 알코올램프와 빵조각이 흩어져 있는 식탁. 언제나처럼 또 한번의 일요일이 지나갔고, 엄마는 이제 땅 속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64
"자넨 젊어, 자네에겐 그런 생활이 구미가 당길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만, 사실 내게는 그나저나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생활에 변화를 주는 데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람들은 결코 삶을 바꿀 수 없다고, 어떤 경우의 삶이든 그 나름의 좋은 점이 있으며, 여기서의 내 삶도 결코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p.113
전에 나는 감옥 안에서는 결국 시간관념을 잃게 된다는 글을 분명히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별로 의미가 없던 말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루하루가 얼마든지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는 그 점이. 아마도 살아 내기에도 길지만, 너무나 늘어나서 종국에는 쌓이고 넘치게 되는 것이 하루였다. 그들은 이름을 잃었다. 단지 어제 또는 오늘이라는 단어만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p.138
나는 정중하게, 거의 애정을 담아, 실제로 어떤 것을 후회하는 게 내게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다. 내 마음은 항상 금명간 다가올 일에 붙들려 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모든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으며 달라진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장례식을 끝내는 주인공. 자신의 살인이 정당방위였든 뭐든 다른 어떤것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슬퍼하지 않았다는 거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이유로 자신의 이야기는 해보지도 못하고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 주인공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감옥에서 수감하는 동안에 끊임없이 자신이 살면서 겪어온 수많은 '하루'를 되새기며 무료한 시간들을 보낸다. 주인공에게 중요한 것은 이 삶을 기억할 수 있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나간 것보다는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하루와 지금 이 순간.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p.162
아니야, 나는 자네를 믿을 수 없네. 나는 확신하네, 자네도 한번쯤은 다른 삶을 원했었다는 걸." 나는 물론 그랬다고 답했으나, 그것은 부자가 된다든가 헤엄을 매우 빨리 칠 수 있다든가, 아니면 좀 더 잘생긴 입을 가지게 되기를 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을 저지하고는 내가 그리는 다른 삶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 이 삶을 기억할 수 있는 그런 것이오!
p.163 ~ p.165
그는 너무나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확실성은 여자 머리카락 한 올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면에 나는 마치 빈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나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그가 확신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삶을, 다가올 이 죽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 내겐 그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 진실이 나를 꼭 움켜쥔 만큼 그것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옳았고, 여전히 옳았으며, 항상 옳았다. 나는 이런식으로 살아왔지만 다른 식으로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했고 저것은 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건 하지 않았으나 또 다른 건 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이 모든 시간 동안 이 순간을, 이 이른 새벽을, 나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기다려 왔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겠다. 그도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내가 살았던 부조리한 삶 내내, 내 미래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직 오지 않은 수년의 시간을 건너서 어두운 바람이 내게로 거슬러 왔다. 그 바람은 이 여정에서, 내가 살았던 시간보다 더 사실적일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당시 내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을 그만그만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른 이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이 내게 뭐가 중요하며, 그의 하느님이나 우리가 택하는 삶, 우리가 정하는 운명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단 하나의 운명만이 나를, 나 자신을, 그리고 나와 함께 무수한 특권자를 택해야 했는데, 그리고 이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나의 형제라고 스스로 말하는데.
그러니까 그는 이해할까? 모든 사람은 특권자라는 것을, 특권자밖에 없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 역시, 언젠가는 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 역시, 선고를 받을 것이다.
만약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고 그의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된다 한들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살라마노의 개는 그의 아내만큼이나 가치가 있다. 그 작은 로봇 여자는 마송과 결혼한 파리 여자처럼 또는 내가 결혼해 주기를 원했던 마리처럼 죄인인 것이다. 레몽이 그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나은 셀레스트와 똑같이 나의 친구라는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제 마리가 그녀의 입술을 새로운 뫼르소에게 허락한다 한들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는, 그러니까 그는 이해할까, 이 사형수는, 내 미래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p.165 ~ p.166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그녀가 왜 말년에 "약혼자"를 갖게 되었는지, 왜 그녀가 새로운 시작을 시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거기에서도, 삶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그곳 양로원에서도, 저녁은 쓸쓸한 휴식 같은 것이었다. 죽음에 인접해서야, 엄마는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됐다고 느꼈음에 틀림없었다. 누구도, 그 누구도 그녀의 죽음에 울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이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쫓아내고, 희망을 비워 낸 것처럼, 처음으로 신호와 별들로 가득한 그 밤 앞에서,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 세계가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하여, 내가 혼자임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나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얽매여 슬퍼하고 괴로워하지만 주인공에게 이미 지나간 과거보다 중요한것은 현재이다. 중요한 것은 삶을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는 것, 그리고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 마지막 울부짖음에서 주인공은 선교사를 죽은채로 살고있다고 하는 부분에서 또다시 느낄 수 있다. 주인공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삶을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지 죽음 이후의 삶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두려울뿐이지 절망적이진 않다고 말한다. 감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도 발자국소리에도 심장이 터질것 같으면서도 마지막에는 결국 행복했다고 말한다.
아직도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는 읽고 또 읽어도 완벽히 이해되질 않는다. 하지만, 한 사형수에게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에 대해 굉장히 솔직한 내면을 보여주었고, 그 과정에서 현재에 사는 것이 삶의 끝자락에 살아온 삶을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것인지를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