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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다닐때였나. 당시 매 회에 감동받았던 프로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였던 이 책. 저 프로 다시하면 좋겠다. 진짜 감동스런 프로였는데. 아무튼 저 프로 보다가 느낌표 선정도서를 마구 사재끼곤했는데 그 중 가장 읽기 힘든 책이었달까.
워낙 책을 안읽어서였겠지만 말도 너무 어렵고 펴기만 하면 폭풍 졸아댔던 책이다. 이제서야 펼쳐든건 집 안 서재에 먼지쌓인 책들부터 좀 읽고 새 책을 읽던지 하자는 마음에서였다. 얇아서 금방 읽을것같기도 했고.
농사꾼 전우익 선생님이 농사를 지으며 느끼는 세상의 이치를 편지로 죽 써내려간걸 그대로 엮어낸 책인데 어렵다고 하면 중간중간 나오는 농업 용어?가 좀 어렵고, 사실상 금방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민병산 선생님의 구절, 노신의 말, 아Q정전의 구절 등이 많이 나오는데 그 주옥같은 말들과 이치들을 농사와 맞물려 쓴 부분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밭에 자라는 곡식을 사람이 성장하는 것과 비유하기도 하고 밭일하면서 중요한 부분등을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잊지말아야할 것들과 결부시켜 말해주기도 한다. 얇은 책인데도 마음에 새길 구절이 많았던 책. 나중에 나이가 더 들면 다시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p.27
스님,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별볼일 없는 말은 길게 마련이지요.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삶이란 그 무엇(일)엔가에 그 누구(사람)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라고."
p.31
호미, 낫, 괭이를 치는 쇠도 유하면 굽고 강하면 부러집니다. 굽지 말고 부러지지 않게 사는 길이 유강을 겸비하는 거라지요. 한 줄기의 부들, 하잘것없는 쇠붙이에서 인생을 배워야 되나 봅니다. 굽은 척, 죽은 척, 자는 척해야 하는 기막힌 세상에 살고 있는 걸 모르진 않습니다.
p.61
나무가 싹터 크고 가지 치는 데서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나무는 자체의 힘과 이십사 절기와 사계절의 리듬을 타고 다지며 커 가는데, 사람들은 억지와 경쟁으로 자신과 이웃, 줄기까지도 갉아 먹으면서 크려고 하니까 일이 뒤틀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p.110
사람의 감정은 한정된 화분에다 기를 것이 아니라 넓은 땅에 길러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밀실 속에 가둘 것이 아니라 사회라고 하는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고 공명정대하게 길러야 한다. '담' 높이를 낮춰야 하며 개인의 '방'과 '거리'가 잘 소통되어야 한다. - 민병산
p.111
현대의 모든 단체는 오직 강력하게 되려고 조직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를 배척한다. 그 조직에 참가하고 있는 각 개인이 표명하는 사상이나 정신적 가치로 강력해지려 하지 않고 그들의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결속과 통일로 강력해지려 한다. - 아Q정전
p.112
인생을 사랑하고 사악한 편견으로부터 생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빵과 서커스만으로 만족하는 그런 인간이 되지 말자는 것이다.
인식의 길은 어디까지나 철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못하면 각자의 입장을 변명하는 재료에 그치고 만다.
주위가 소란할 때일수록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자. 높이 지르는 소리는 오히려 세상의 소요 속에 묻혀버리고 말기 때문에.
p.130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길 따 먹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을 안기듯이, 착함이 자기 방어 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지키기 위해서 억세고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