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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도 안읽던 시절에 왜인지 충동구매해놓고 안 읽다가 아무 생각없이 펼쳤다가 괜시리 엄마와 나를 떠올리며 뭉클해진 책. 그리고 이제 나이도 좀 차서인지 내가 나중에 엄마가 되었을때의 위녕같은 딸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입하며 본 책이다.
서툴고 어리숙하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 위녕의 엄마. 이혼했다거나 하는 가정환경 같은 것 다 떠나서 위녕에게 해준 말들을 되새겨보면, 나도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 저런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행복에 대해 말하면서 행복하지 않으면 공부도 명예도 다 필요없다고 말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여느 엄마들처럼 주변에 휩쓸려 그래도 공부는 해야한다고 설득하는 모습이 괜히 기억에 남는다. 위녕말대로 바보같아보이면서도 나라도 그럴수밖에 없겠다 싶어서. 나도 어릴땐 그런 엄마가 싫었는데 나이가 들면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게 이런걸까 싶다. 이 책은 위녕의 시점에서 쓰여진 책이니 내가 만약 위녕의 엄마였다면 저런 상황에서 위녕에게 어떻게 해줄 수 있었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중에 자식들에게 보여질 엄마의 모습이라던가 나를 키워준 엄마의 입장을 이제서야 조금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던가.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게된 듯하다.
p.50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그러니까 말하자면... 창 밖에 말이야. 벌판 같은 데 불빛 하나 없고 바람이 불어. 그런데 나지막하고 허름한 모텔이 있는 거야. 아주 후지지. 창틈으로 바람은 새어 들어오고 비도 뿌리는데, 겨우 먼 길을 걸어와 누운 거야. 아침부터 먹은 거라곤 배낭 속에 들은 딱딱한 빵 한 덩이뿐이고, 해진 신발 틈으로 물이 새고 침낭은 낡았고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라. 뭐 이런거 말이야. 그때 올려다본 천장의 어둠은 얼마나 서늘하겠니.
p.85
"어떤 순간에도 너 자신을 존중하소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 돼. 너도 모자라고 엄마도 모자라고 아빠도 모자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자람 때문에 누구를 멸시하거나 미워할 권리는 없어. ......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가 있는 거야. 엄마는 엄마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어."
p.105
"위녕, 행복이란 건 말이다. 누가 물어서 네, 아니요로 대답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란다. 그건 죽을 때만이 진정으로 대답할 수 있는 거야. 살아온 모든 나날을 한 손에 쥐게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지."
p.107
"삶이란 건 참 이상하다. 어느 것도 지속되지 않는다. 슬픔도 기쁨도 노여움도 그리고 웃음도."
p.225
"스님,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 스님이 대답하더구나. 앉아 있을 때 앉아 있고, 일어설 때 일어서며 걸어갈 때 걸어가면 됩니다, 하는 거야. 아저씨가 다시 물었지. 그건 누구나 다 하는 일 아닙니까? 그러자 그 스님이,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아직도 그 눈빛이 생각난다. 형형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그 눈으로 아저씨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하더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앉아 있을 때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일어설 때 이미 걸어가고 있습니다."
p.263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잘' 키워서 내가 '잘' 자란다, 는 무슨 뜻일까.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자기네들도 결코 스스로를 꼭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으면서, "엄마도 이렇게 컸어, 이게 맞아."라든가, "아빠도 어릴 때 이랬어. 그러니 그렇게 해."라는 말을 한다. 내가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나는 엄연히 개성이 있는 하나의 인격체인데 말이다."
p.337
"사랑하는 딸, 너의 길을 가거라. 엄마는 여기 남아 있을게. 너의 스물은 엄마의 스물과 다르고 달라야 하겠지. 엄마의 기도를 믿고 앞으로 가거라. 고통이 너의 스승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네 앞에 있는 많은 시간의 결들을 촘촘히 살아내라. 그리고 엄마의 사랑으로 너에게 금빛 열쇠를 줄게. 그것으로 세상을 열어라. 오직 너만의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