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 -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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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부터 보고싶었지만 개정되기 이전의 책들만 도서관에 있어서 선택할 것 없이 북한에서의 답사기의 상편인 4권을 먼저 보았다. 북한이라 내가 이미 본 것이라거나 또는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어서 조금 지루해지는 듯 했지만(특히 2부의 고인돌과 박물관 관련 부분) 왠지모를 신기함과 궁금증에 끝까지 읽게 된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북한사람들에게는 시를 암송하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 것과 비슷해서 식당 웨이트리스부터 접대원들도 즉석에서 애송시를 읊을줄 알고, 시를 잘 짓고 못 짓는 것이 꼭 우리나라사람들이 노래를 잘 부르고 못 부르는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어떤 풍경이나 경치를 보면서 또는 느낀 감정에 대해 노래를 부르듯 즉흥시를 만들어내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 굉장히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하나는 종교인이 아닌 절간 관리인 같은 모습의 북한 스님들. 종교보다 더한 신앙이 있기 때문에 신이 없는 나라, 북한의 모습이 이러한 부분에서 크게 와닿았다. 


1-4부 중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3부의 묘향산 기행. 장엄하고 수려한 매력적인 산 묘향산에서의 서산대사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한국전쟁때 동강난채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서산대사비, 그리고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수많은 폭포를 만날 수 있다는 만폭동은 다른 파트에 비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 중 이름처럼 호랑이가 나올것같던 인호대의 사진. 그 사진을 보고 이게 진짜 폭포인가하고 한참 고민했을정도로 엄청난 경치를 자랑했던.


몇 일 전에는 북한에서 외화 벌겠다고 평양 먹방 동영상같은 것을 만든걸 봤는데, 첫 방북으로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써내려간 이 답사기를 보자니 역사 속에 남을 첫 답사같은 생각에 더 신기하기도 했다. 1997년 말에 다녀온 답사기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8년전. 이 답사기에는 북한의 어떤 풍경들이나 말투 등이 약 20년전 우리나라 모습같다는 말이 꽤 나온다. 경쟁이 필요없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건물 디자인따위 전혀 안중에도 없는 벽돌식 건물에 '우리는 행복합니다'라는 문구만 붙어있는 한 평양의 백화점 간판 사진이 기억난다. 백화점 입구에 '행복합니다'라니. 이제 북한에서도 관광객들 유치한다니 좀 변했을지 앞으로 자연스럽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경쟁이 없는 곳에 발전이 없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던 와중에 본 북한 먹방 동영상은 조금 충격적이었달까. 게다가 파스타를 돌돌 말아먹는 모습까지. 교통체증조차 없었던 이 답사기에서의 평양 거리와 달리 최근 BBC뉴스에서의 북한 취재에 의하면 거리에 외제차도 있고 교통체증도 보인다고 말한다. 햄버거랑 파스타를 즐기는 북한 사람들, 그리고 암암리에 인정되는 민간 시장들. 정치적인 부분이나 사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최근 북한의 모습을 보면 북한도 조금씩 자본주의의 바람이 불고있는 것 아닌가 싶다.


p.83

지금 평양에서 고쳐야 할 것은 이 보통문만이 아니다. 나라 곳간이 텅 비고 재정이 고갈된 것은 문의 기둥이 썩는 것과 무엇이 다르며, 백성들이 가렴주구로 시달리는 것은 서까래 네 구석이 무너져내리는 형세와 무엇이 다르며, 풍속이 퇴폐해 날로 낮은 데로 흘러감은 기와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물건이 허물어진 것은 혹은 기다려 고치면 되겠지만 백성의 삶이 허물어진 것은 장차 어디에 기대해야 할 것인가. 나는 이 말을 여기에 기록해두어 내가 근본을 버리고 그 말엽만 힘쓴 것을 부끄러워했음을 알게 하고자 하노라. - 체제공의 '보통문 중건기' 중에서


허물어가는 평양의 보통문을 보면서 백성들의 삶을 걱정했던 체제공의 명문은 현 시대에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p.241

산중의 암자에 와서 건물생김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 중요한 것은 어떤 곳에 자리잡았는가이다. 상원암은 그중 아늑함을 택했다. 아마도 발아래 있는 용연폭포의 장쾌함과 저쪽 편 인호대의 호방한 전망이 기실은 상원암에 속한 것이니 암자 자체는 오히려 그윽함을 택한 것이리라.


산중 암자의 자리매김에 대해 주목하게 된 구절. 그 뒤로도 이렇게 자리매김에 의미를 지닌 공간들이 많이 나오는데 자리를 잡는 것조차 그 곳에 머물던 사람, 주변의 경관과의 조화를 고려한 지혜를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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