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Dongwon님의 "처연한 슬픔."

그렇지 않겠지요. 우리 곁에 한글이 있듯이 말입니다. 명나라가 있어야만 살수 있었던 그 옛날의 사람들. 미국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지금의 사람들... 역사란 이렇게 흐르면서 변화겠죠. 그러면서 조만간 역사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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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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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보

 

내내 불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난 우리가 지난 4년전에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오. 벌써 4년이 넘게 지났구려.

세상의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인가 보오. 체제의 다름에 상관없이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 다름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신분, 서로 다른 경제적 위치와 정치적 성향 그리고 가치관 등등등. 하긴 이 지구상에 어느 누구 하나도 서로 같은 사람이 존재하겠소만....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는 하지만, 도무지 쉽지 않은 성인들의 길이라는 걸 안다면, 결국 우리는 2006년을 살아가는 오늘과 수백년 전인 '뿌리깊은 나무'의 시대와 같은 일들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소. 보수와 개혁의 갈등과 대립. 가진자들의 뺏기지 않으려는 몸부림...

 

2006년의 끝자락을 보내는 있는 요즘에 왜 이렇게 아파트 가격이 문제가 되고 있을까를 한번 생각해 보았소. 혹자들은 시장의 원리에 준해서 수요와 공급의 문제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심리적이라고들 하오. 그러나 난 생각하기를 그 가장 근저에는 기득권층에 있는 사람들의 농간이라 생각하오. 고졸출신의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 그들은 처음부터 그랬소. 지난 50년 넘게 누려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이용하는 잇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그틀을 부수려고 하는 대통령간의 힘겨루기가 아닐까 생각하오. 그런데 이번의 아파트 싸움은 오히려 대통령이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저들이 먼저 시작했소. 1년남은 차기 대선에서의 선점을 위해서는 서민들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주거 문제를 건드리는 것 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 아니겠소. 잘못된 정책, 잘못된 대통령으로 남아 주어야 이제는 저들이 말하는 빼앗긴 10년을 되찾아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말이오.

 

여보. 늘 곁에 있어 고마움을 몰랐던 우리의 이 글. 이 한글에 대해서 어쩌면 우리는 한번도 그 수고와 아픔이란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지 모르겠소. 그저 그런 것이었겠거니... 세종대왕이야 말로 정말로 위대한 성군이었다고, 한글을 만들어 배포하였다고... 이렇게 참 편하게도 생각했었소. 그런데, 책장의 책장을 넘기면서, 충분히 이럴 수 있겠구나 하는 아픔이 들더구려. 수백년을 넘게 중국의 문자를 배워서 그것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지켜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농부들 같은 무지랭이들, 시정잡배와 같은 상인들, 심지어는 더러운 천민들까지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은 세상인 셈이라는 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되오.

 

보수주의자, 기득권층, 가진자들은 꼭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 만을 칭하지는 않잖소. 현재의 내가 누리고 있는 편안함, 정신적인 우월감 등 만으로도 충분히 보수주의자, 기득권층이 될 수있소. 우리는 주위에서 이런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만나고 있지 않소. 자기 집이 없어도, 본인이 일류대학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난 50년동안이나 권리를 누려 온 자들을 오히려 두둔하는 사람들 말이오.

노무현 대통령. 4년전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 사람들은 그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들이었소.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변한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그를 뽑아준 사람들이었소. 오히려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기성세력에 대한 과소평가라고나 할까? 기득권의 대변인인 언론을 žA잖아보고, 보수 세력에 대한 힘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오. 우리 스스로도 그가 대통령이 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었소. 대선자금의 비리를 수사하는 일부터, 행정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재개정 등등등... 솔직히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 부터 해주기를 바랐고, 원했던 일들을 하려고 할 때 마다 목숨 걸고 반대하던 기성 세력때문에 물러나야 했고, 할 수가 없었고... 결국은 저들은 서민들의 눈과 귀를 완전히 멀게 하려고 마지막으로 아파트라고 하는 주거의 문제를 가지고 세력화 시켜 버리고 말은 듯한 느낌이오.

노무현 대통령의 말처럼  FAT와 자이툰 부대 파병만을 빼고는 우리가 그를 뽑아주었을 때 해주기를 바라는 것들이었는데도, 사람들은 먼저 변했소. 이제는 피곤하다고 하오... 바로 저들이 원하는 그 시나리오대로 말이오.

 

새로운 시대를 원하는 사람들과 기존의 시대를 지키려는 사람들간의 싸움은 목숨이라도 걸게 되기 마련이잖소.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는 이 두 세력간의 목숨을 건 싸움을 말하고 있소.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 지켜낸 우리의 글자.

생각해보면 말이오. 정말로 이 소설에서 처럼 그랬을 것 같소. 훈민정음이 언문이라는 이름으로 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섦움도 결국엔 그렇기 때문 아니겠소.

 

여보. 그렇지만 정말로 진실과 진리는 존재하는 것이고, 가치를 인정받게 되기 마련이오. 전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우리의 한글이 이렇게 우리에게 있듯이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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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아이 2006-11-2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너무 잘 읽었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우리의 개혁은 결국 이렇게 좌절하고 마는 걸까요?..........정말 눈물이 납니다.

Dongwon 2006-11-2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겠지요. 우리 곁에 한글이 있듯이 말입니다. 명나라가 있어야만 살수 있었던 그 옛날의 사람들. 미국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지금의 사람들... 역사란 이렇게 흐르면서 변화겠죠. 그러면서 조만간 역사가 되겠죠...
 
천 유로 세대
안토니오 인코르바이아.알레산드로 리마싸 지음, 김효진 옮김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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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과의 만남부터도 재미있다. 지하철에서였다. 무가지로 나누어지던 다른 사람이 보다가 늘 그렇듯이 지하철 선반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던 낱장에서 우연히 본 지면이 이놈과의 첫 대면이었다. 어쨌거나 책 소개에 대한 칼럼 비슷한 페이지 였을테고, 그곳에서 만난 두권의 책중의 하나가 바로 이 '천유로 세대'라고 하는 녀석이다.

   천유로라? 이게 얼마쯤 되냐면... 흠... 지금 1유로가 약 1250정도 할까? 그러면 약 125만원 정도... 우리나라 돈으로... 이태리의 밀라노의 젊은이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몇발자욱을 들여놓은 20대 후반 혹은 아주 이른 30대 초반의 그들이, 천유로 정도의 월 수입으로 한달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니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버텨가는지에 대한 적나라한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이틀만에, 정확히는 만 하루만에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떠오른 첫번째 감상은 "엄청 공감되네" 이었다. 엄청 공감된다. 그렇게도 속상해 하는 사회문제중 하나인 청년 실업문제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라는 것이야 알고 있던 터이었지만, 그런 사회적, 제도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는 우리랑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노동계에서의 집중 공격으로 한국 사회는 갈라져 있지만, 이 책을 보니 그 곳 유럽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극과 극인 모양이다. 우리나라랑 똑같다.

   계약직으로서의 불안한 젊은이들, 텅빈 머리로 취급받지만 실제론 그들의 윗 세대 어른들보다 더 머리터지게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이념, 정치, 사회등을 통탄하는 친구들... 그들의 머리는 결코 비어있지 않다. 사랑과 이성에 대한 태도, 대처하는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의 문체는 새로웠다. 나를 확 사로잡은 이 책의 광고 카피처럼 이 책은 인터넷 소설로 먼저 알려졌고 그후에 책으로 출간된 것이기에, 인터넷 소설의 감성과 맛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책의 광고 카피가 뭔지 아는가? "2006년 유럽을 흔들어놓은 두 청년의 포스트펑크 소설!"이라구... 흠... 도대체 포스트(?) 펑크(?) 소설이라? 아이구, 이거 너무 힘든 단어의 조합아닌가?

어쨌든, 그들 - 이책의 작가는 2명이다. 그래서 그가 아닌 그들이다 - 의 문체는 너무도 생생하고, 생활상을 그대로 드러내기에 충분하도록 적합하다. 역자인 김효진씨의 옮김의 힘이 크달 수 밖에...

 

   톡톡튀는 감각적인, 상큼한 샐러드같은 책을 한권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강추이다. 왜 그러날 있지 않나? 밥 먹기에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끼니를 그냥 거르기에도 좀 그렇고, 그러날 먹는 가벼운 샐러드 같은 싱싱함...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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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반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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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망적이고 낙관적인 견해들, 혼란스럽고 낯선 것들, 이해가 되면서도 그렇지 않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모습들, 무섭고 두려운 것들, 기대들... 지금까지의 일들이 주는 교훈....

- 도대체 이책 '부의 미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부의 미래? 무슨 재테크책인가?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어여 덮으시길...

   엘빈 토플러'라는 이름이야 수십번도 넘게 들어본... 뭘 하는 사람인지, 작가인지 음악가인지 모르지만, 심지어는 무슨 토플 강사이름인가 ... 하옇든 어디선가는 들어본 이름이라는 것엔 모두들 동의할 것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미래학자'라는 엘빈 토플러.

   미래학이라? 도대체 뭘 연구하는 것인지? 지질학이면 지질을 연구하는 것이고, 역사학이면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니까, 미래학이라면 미래를 연구하는 것인데... 미래의 '무엇'을 연구하는 것인지에 대한 규정이 없으면 어떻게 하란 말인지? 솔직히 나 같으면 그냥 역사학이나 연구하는 역사학자같은 것이 맘 편할 것 같다.  미래란 연구할 것이 무엇인지 정하기도 힘들뿐더러, 답도 없는 숙제같은 것 아닌가? 미래의 사회를 연구하는 것인가? 아님 미래의 경제? 아니면 미래의 자연 환경의 변화? 아니면 미래의 정치? 아니면 미래의 음악? 영화? 등의 문화? 도대체 미래의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보아야 할지 모르지만......... 그런데, 작가는 미래학자란다. 이 '방대'라는 단어를 붙일 수 조차 없는 '미래'를 연구하는 학자란다. 그가 2006년도에 '부의 미래'라는 책으로 돌아왔다. '미래'라는 단어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광범위''방대'이다. 소름끼치도록 놀라운 사람이며, 존경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 엘빈토플러.... 이사람 대단한 사람이다.

 

   번역에 대한 불평은 하지 않기로 했다. 역자 후기에 김중웅 역자가 달아놓았듯이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단어는 번역을 어렵게 했다는 고백인데... 솔직히 번역은 아직 초벌 번역의 상태를 갓 벗어난 상태이지만... 앞으로 조금씩 더 다듬어간다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손에 처음 잡은 것이 10월4일로 되어 있는 맨 앞장을 보니, 오늘이 11월 5일이니 무려 한달이나 손에 들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다른 책이 갑작스런 반가운 손님처럼 끼어들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책이었다. 내용적인 것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그 두꺼운 책의 무게는 웬만한 독서의 내공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주눅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책은 어느 한페이지도, 어느 한 구절도 중언부언 하는 곳이 없다. 엘빈은 그렇게 할말이 많았던 것이다. 어쩌면 이 두꺼운 책의 내용보다도 더 하고 싶은 말이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대개의 책들은 작가가 하고픈 말의 결론을 미리 독자에게 알려주고, 설명을 붙이는 방식을 취한다. 그보다 적은 퍼센트의 책들은 반대로 독자의 궁금증을 잔뜩 일으켜놓고 중반을 넘어서야 비로소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려주기 시작하여, 결론에 가서야 명확히 드러내곤 한다. 그런데 이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결론이라는 것이 없다. 그저 모든 분야에 대한 관찰과 질문과 전망 등이 끊임없는 사실과 분석과 가정들로 이어져 있다. 하긴 결론이란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부의 미래 ; Revolutionary Wealth - 굳이 이 원제를 부의 미래로 바꿔서 번역물 제목으로 삼은 것은 그래도 끝끝내 '미래'라는 단어를 버릴 수 없었던 세일즈의 얄팍한 욕심이었다고 이해해 주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사실은 이 책의 원제를 그대로 옮긴다면 '혁명적 부'혹은 '부의 혁명'이라고 해야 옳다. 그리고, 엘빈은 미래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그 속에서의 부란 어떻게 이동하고 움직이고, 심지어 재정의될 것이란 것을 말하고 있고, 그것을 엘빈은 '혁명'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이 '혁명'이라고 하는 단어를, 아무리 얄팍한 세일즈의 욕심이라고 해도, 그냥 슬그머니 빼 먹어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원제에서나 역제에서나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것은 '부'이다. '부'에 대해서는 너무도 다양한 개별적인 시각과 느낌을 갖고 있을 것이기에, 명확히 규정하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김종웅 역자도 지적했듯이, 엘빈 토플러가 말하는 부는 단순히 돈이나 자산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유무형의 소유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 즉 효용을 가진 모든 것을 일컫는다고 했다. 올바른 해석이라고 본다.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부'란 '돈'이라는 협의의 개념을 훨씬 넘어서는 효용적인 모든 것을 의미한다. 작가또한 프롤로그에서 부 창출 시스템(wealth system)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부 창출 시스템(wealth system)은 화폐및 비화폐 경제를 총칭하는 것이다. 상호 작용을 하는 화폐경제와 비화폐 경제에서 동시에 혁명적인 변화가 발생하여 강력하면서도 역사적으로 전례없는 새로운 부 창출 시스템이 창조되고 있다"라고 말이다.

   작가는 부의 심층기반으로 3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시간, 공간 그리고 지식이다. 이 3가지의 각각의 측면에서의 부의 변화및 미래의 전망을 말하면서도,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이 3가지 요소의 융합과 합성 효과및 전망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문득문득은 도대체 엘빈 토플러는 소설가라고 해도 되겠다 싶은 정도의 상상력을 지닌 사람으로도 보이기도 했다. 이 3가지의 큰 카테고리를 근간으로 프로슈머에 대한 엄청난 견해, 자본주의에 대한 견해, 그리고 국지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인도등 신흥 강국으로 전망되는 국가들에 대한 얘기와, 짧지만 독립 chapter로 되어 있는 한반도에 대한 얘기(한반도의 시간과의 충돌, chapter 46),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 오해와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밑줄 그으면서 봐야할 책이다. 실용적이며, 비유적이며, 전문적이며, 인간적이기까지 한 책이다.학자이며, 작가이며, 영화감독같은 엘빈토플러이다. 그리고 그의 책이었다.

   그리고 실은 내가 부족한 번역이었다고 감히 말했지만 솔직히 역자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대대단한 분량의 작업이었을 것이다. (** 그런데, 대리번역은 아니였죠? 김종웅씨가 현대경제연구원 - 뭐하는 곳인지 잘모른다. - 이라는 곳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이렇게 방대하고 두꺼운 책을 직접 번역(???) 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없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혹시 대학생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돈 좀 주면서 대리 번역 시키신 것은 절대 아니죠???)

 

   난 마치 세계 최고의 석학이 내 앞에 앉아서 내게 6시간을 밥도 먹지 않고, 물만 간혹 마시면서 열정적으로 토해내는 1:1 토론을 막 끝내고 돌아앉은 기분이다.

    그의 마지막 인간적인 구절이 생생하다.    "미래의 경제와 사회가 형태를 갖추어 감에 따라 개인과 기업, 조직, 정부등 우리 모두는 미래 속으로 뛰어드는 가장 격렬하고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모든 사항을 고려했을 때, 이것도 한 번 살아볼 가치가 있는 환상적인 순간이다. 미지의 21세기에 들어온 것을 뜨거운 가슴으로 환영한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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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flwr7373 2006-11-08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지 않은 상태, 동원님이신가요? 역자도 앨빈 토플러도 위대하지만 동원님 또한 위대하신 분 같아요. 그 방대한 책을 끝내(?) 읽고 이렇게 simple하면서도 섬세하게 서평을 하셨다니요... 읽어보고 싶네요. 동원님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도 하구요.^^*

wildflwr7373 2006-11-08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그 마지막 구절이 참 맘에 드네요. "... 이것도 한 번 살아볼 가치가 있는 환상적인 순간이다..." 작가도 동원님도 너무도 인간적인 너무도 지적인 그런 사람...^^*

Dongwon 2006-11-08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ildflwr7373님. 칭찬 고맙습니다. 혹시 시간이 되시면 제가 갖고 있는 Naver Blog의 서평 모음 Blog에 오셔서 둘러보셔도 됩니다. http://blog.naver.com/3countrycho 그리고 부의 미래는 보실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온 2006-12-12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체적이고도 이해가 가는 서평이네요. 이책이 어떠한 책인지 어느 정도 느낌이 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
 
성경 왜곡의 역사 -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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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Misquoting Jesus" 라는 원제가 번역본의 제목인 "성경왜곡의 역사"보다는 저자가 전달하려는 내용을 담은 제목으로는 더 적당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 제목을 번역한다해도 우리말의 '왜곡'이라는 단어의 불편한 어감이 끝내 발목을 잡는다. '잘못 인용된 예수'라고 해야 하나??? 이것도 웬지 적절치 않은 것 같지만...

 

   지난 몇년 전부터 시작된, 성서및 기독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예수에 대한 의문과 역사적 사실과 다양한 견해와 해석과 논란등... 사회적 이슈가 되기전부터의 나의 개인적인 가치관의 변화를 주는 많은 사실의 발견은 이미 이 책을 읽기전부터 본문 내용에 대한 논란과 나름대로의 결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책은 이러한 성서적인 단편적인 논란에 한획을 그을 수 있는 정점이었다. 파열되어 있는, Puzzle과도 같은 단편적 사실들의 논리정연한 정리는 내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바트 어만이라는 저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의 종교학부 학장으로 있는 교수이다. -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은 정치학으로 유명한 곳이라서 내가 아는 선배 한분도 그곳에서 미국학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한국에서 미국학이라는 강의를 하고 있다. - 한국의 신학 대학에서와는 달리 외국의 종교학과에서는 다양한 의견의 수용이 용인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장로회 신학대학에서의 커리큘럼이나 수업의 근저는 한가지 목표(한국의 기독교를 융성 발전시키자)를 정해놓고, 모든 학생들이 그 목표를 위해 공부하고 세뇌당한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물론 내가 직접 모르는 그곳에서도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의 바탕위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성경에 대한 시각은 어때야 하는가? 내가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이 심각한 고민은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잘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물론 이 책 한권으로 성경에 대한 나의 모든 고민이 말끔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교회 교육이라는 테두리에서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면서도 아무도 얘기해 주는 이도 없을 뿐더러, 얘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는 공간에서의 허망함에 비한다면 그래도 한결 속 시원한 얘기를 들려준 책이다.

 

저자는 성서는 매우 인간적인 책이라는 말로 글의 전제를 삼고 있다. 저자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소위 말하는 '거듭남'의 체험 후에 목회자의 길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성서에 대한 궁극적이고도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성서란 어떻게 만들어진 책이며, 어떻게 전승되어 왔으며, 그 와중에 어떻게 변형되어 왔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손에 쥐워진 바이블은 어떻게 정립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지은 책, 인간이 전승한 책, 한사람이 낭독하고 다른이가 받아적으면서 복사되어 계승된 책, 수많은 이문들 중에서 정통이라는 쪽이 승리하면서 한가지 사상으로 통합된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논리적 모순이 존재하는 책이다.

무조건적이고 - 어떤 이들은 소위 신앙적이라는 의미를 이 무조건적이라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 - 비논리적인 많은 것들 속에서, 그래도 가능한한 상식적인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나 역시 아직도 찾고 있는 참된 신앙이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의문의 길위에 한 이정표를 놓을 수 있는 책이었음을 고백한다.

 

알라딘 서평의 pain69라는 분의 서평이 이 책을 구매하게된 결정된 계기였다. 절판되기 전에 어서 읽어보아야 할 것이라는 그분의 다급함이 나를 서두르게 하였고, 이렇게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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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7key 2022-06-25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경의 양면적인 그 시작은 세상의 300종이 넘는 성경들 중에서 실제로 모든 성경들은 단 두 종류로 나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는 안디옥(다수사본, 시리아) 사본 계열입니다. 다른 하나는 알렉산드리아(소수사본) 계열입니다.

첫 번째 안디옥 사본 계열은 역사적으로 그 사본들을 보존했던 크리스챤들이 최대 1억 5천 만명이 순교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들은 이단으로 정죄되어서 승자들의 역사에서 지워지는 듯 했으나 알비덴스 왈덴시스 몬타니스트 재침례교인 등 역사의 조명은 남아서 그들을 비춰줍니다.

성경은 두 종류입니다. 변개 된 성경과 온전한 성경.
왜 그 많은 사람들이 2000여 년간 지금 이 순간에도 온전한 성경을 위해서 목숨들을 내놓을까요?
어떤 사본이 온전한 것인지 알기위해서 노력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한 상태로 읽혀지고 양심으로 분별하게 된다면
아마 새로 태어남을 실제 경험을 하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