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비범한 철학 에세이
김필영 지음 / 스마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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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무엇일까? 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저자는 '대상에 대한 생각의 생각'이 가장 그럴듯한 정의라고 여긴다. 예를 들면 '이 사과가 여기에 존재한다'라는 대상에 대해 생각하는 것, 즉 '나는 왜 이 사과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라고 질문하는 것이 철학이란 뜻이다.

그런데 인간은 언어를 생각한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생각은 진짜 생각이 아니다. 생각이 아니거나 자신의 생각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의 집약체가 개념이다. 그래서 알고 있는 개념이 풍부하다면 풍부하게 생각을 할 수 있다. 즉 철학을 공부한다는 건 생각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철학적 개념을 익히는 것이다. 내가 칸트나 니체가 아니라면 철학을 한답시고 혼자 끙끙거리며 그 개념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개념을 누군가 생각해서 정리해 놓았다.

멀리 보고 멀리 나가고 싶다면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하듯,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가면 된다. 거인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철학적 개념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왜 철학을 알아야 할까? 이러한 개념 위에 올라서서 보는 세상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위대한 철학자들도 이전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았다.


공대 출신 회사원인 저자는 일상에서 느낀 불안을 극복하고자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을 가졌고 뒤늦게 공부했다. <평범하고 비범한 철학 에세이>는 어느 날 저자의 관심 속으로 들어온 삶의 의미를 되묻는 26가지 스토리를 담은 철학 에세이다.

여기에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 헤겔, 니체, 러셀,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와 프로이트, 라캉 같은 심리학자, 그리고 아인슈타인, 밀그램 같은 과학자의 이해하기 어렵고 다소 딱딱한 이론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학술적 해석이 아닌 풀이의 유연함에 있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영화 <인터스텔라>, 프로이트의 언캐니(Uncanny) 개념을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존재론을 추리소설 <도둑맞은 편지>, 언어와 생각의 문제를 영화 <콘택트>, 신화를 이해하는 방식을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등을 통해 26가지 철학 이론을 쉽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편안하고 재미있다. 철학의 진입장벽을 낮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일상이 평범한듯하지만 비범한 순간들이 있다. 저자는 그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 아름다운 순간, 깨달음의 순간, 고통스러운 순간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 비범한 순간들이 삶에 묻혀버린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는 지나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그 자리에 박제가 되어 영원히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비범한 순간이 영원한 순간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의 시간이 비범한 영원한 순간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p. 301,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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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을 지켜라 - 아파트, 빌라, 원룸, 오피스텔 전세 사기로부터
덕방연구소 지음 / 황금부엉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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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맡기고 월세 없이 계약 기간 동안 거주하는 방식이다. (p. 5)'

모두 알다시피 전세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전세제도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생긴 제도다. 한정된 자본이 산업에 집중되다 보니 주택 구입을 위한 목돈 마련이 어려운 시절이었다. 전세보증금은 이자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은행 대출 역할을 톡톡해 해냈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번거로운 월세보다 원금을 보장받는 전세가 편리했다.

문제는 전세보증금이 부동산을 통한 재산 증식으로 이용되면서 시작된다. 부동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집값이 폭등할 때는 이런 방식의 투자(아니 투기)가 현명해 보인다. 하지만 전세제도는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면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제도다.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집값과 전셋값이 같이 급락해 우리는 이미 역전세난을 직접 겪은 적이 있다.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1992년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경험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부동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떨어진 집값은 올라갈 기미가 없다. 역전세, 깡통전세라는 말이 요즘 다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이유다. 이 같은 현상은 전셋값이 최고일 때 계약한 전세 물건의 만료 시점인 내년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우리에게도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되는 건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 때문이다. 시장의 자유를 부르짖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만큼은 적극적을 개입한다. 전세금을 돌려줄 돈이 없다면 집주인은 당연히 집을 팔아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게 시장의 이치다. 그런데 오히려 정부는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줄 테니 집을 팔지 말라고 한다.

진짜 문제는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줘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려 하는데, 그 의도와 반대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때 찾아온다. 일본과 같은 패턴으로 부동산 버블이 터져버린다.

영끌해서 전세자금을 마련한 청년부부가 피해 입을 때 그 충격은 훨씬 크다. 안타깝게도 출발부터 좌절하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겹다.


전세제도를 없애버리는 방법을 해결 방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집값을 전세가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전세가 월세로 일부 대체되긴 하겠지만 사라지긴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 부동산 가격을 시장에 맡겨 스스로 조정하게 하지 않는 한 역전세, 깡통전세로 인한 피해 사례는 계속될 것이다.

'덕방연구소'는 부동산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유튜브다. <전세금을 지켜라>는 유튜브에서 자세히 다루지 못한 세입자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전세제도가 유지되는 한 전세금을 지키는 방법을 아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그 방법이 담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전셋집을 구하려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고 갈팡질팡만 하는 임차인들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을 책에 담았다. 이 책을 읽은 임차인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전세 세입자, 월세 세입자로 사는 동안만큼은 보증금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p.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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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한 불행 - 부서지는 생의 조각으로 쌓아 올린 단단한 평온
김설 지음 / 책과이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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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을 허물고 하나가 되겠다는 꿈은 꾸지 마라
더 강하고 간소해진 사랑을 만들라 (p. 5)'

결혼하면 부부는 한 몸이라느니, 반쪽이라느니 그런 허황된 꿈을 꾸지 말라는 소리겠지... 그리고 한껏 기대하지 말라는 뜻도 되겠고...


작가 김설은 결혼도 성급하게 했고 그런 성격이어서인지 이혼도 성급하게 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 다시 부부로 재결합했다 (흔치 않은 일). 그 이후 7년차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부부 이야기를 고백하는 김설 작가의 <다행한 불행>, 결혼과 이혼이 불행이라면 결혼 27년 차 끝에 알게 된 작가의 삶 관점에서 그 불행한 결혼은 다행한 일이다. 왜 그럴까?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의 결혼 생활과 배우자와의 관계를 자연히 떠올리지 않을까? 읽는 중간에 잠깐잠깐 멈춰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만난 지 3개월만 결혼했다. 성급하게 결혼한 동기는 작가와 다르지만 내 결혼 역시 성급했다. 결혼은 90퍼센트가 운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운이 좋았던 건지 이혼할 정도 큰 부딪힘이 없었다. 그 자신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자신 있게 반복했던 말이 있다.

'오래 사귀고 결혼하든 그렇지 않든 결혼하면 다 똑같다. 배우자는 내가 하기 나름이다.'
무슨 자신감에 이런 소릴 해댔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 창피하다.

8년이란 오랜 세월을 홀로 지내다 결혼하니 모든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누가 옆에서 자고 있다는 것부터 간섭, 잔소리 등등 오롯이 내가 계획하고 내 맘대로 사용하던 시간에 끼어드는 것들 투성이였다. 편함도 있어 타협하며 김설 작가처럼 27년이 지났다.

아직도 모르겠다. 아내의 성격을 다 파악한듯싶어 자신 있게 내뱉은 말끝에 찾아오는 건 낭패뿐이다. 생각이 많아져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렵다. 이런 연유로 대화가 줄어든다.

'살아보니 부부는 서로 사랑하는 것과 동시에 미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런 마음을 두려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올바르게 미워하는 일이 매섭게 대립하는 것보다 나았다. (p. 207)'

미워했지만 어느 정도를 넘지 않은 건 운이 좋았다. 실망하고, 원망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집을 뛰쳐나가기도 하고 등등 모든 것이 어느 정도를 넘지 않았다. 다행이다.


'권태와 괴로움의 이유를 나의 심리적 변화에서 찾아보려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던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 모른다. 남편은 운이 나쁘게 까마귀 날자마자 배 떨어지는 상황에 놓였을 뿐인데, 까마귀를 왜 날아가게 했냐며, 배는 왜 떨어뜨렸냐며 생떼를 부렸는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며 내가 겪는 권태와 괴로움을 정당화했을지도. (p. 239)'

드러내기 쉽지 않은 김설 작가의 고백에 내 결혼 생활이 많이 겹친다. 아무리 결혼이 불행하다 할지라도 그 생활 속에서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포용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작가는 다행이란 표현을 한 모양이다.

아내를 쳐다본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나를 살아냈을까? 웃는 걸까? 체념일까? 불행하다 여길까, 행복하다고 여길까? 무엇을 잡고 버티며 일어섰을까?... 여러 생각 끝에 항상 속으로 되풀이하게 되는 말은...

'하고많은 남자 중에 왜 하필 날 만나서... 고생일까... 한 번뿐인 인생을...'

다투다가도 이런 생각이 들면 눈시울이 뜨거워져 고개를 돌린다.

'그저 삶의 모든 모순에도 불구하고, 불행에 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나아가는 순간 우리에게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고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에 불행이 온 것은 어찌 보면 다행한 일이기도 했다. 내가 내 몫의 불행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일찌감치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의 나락에 빠지거나, 외려 피로한 일상의 권태와 의미 없는 행복에 지쳐 허물어졌을지도 모르겠다. (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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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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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은 극단적 전체주의 국가인 오세아니아에 산다. 최고 권력 기관인 당은 빅 브라더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텔레스크린 등 다양한 장치로 말과 행동, 표정뿐만 아니라 생각, 감정조차도 감시한다. 그리고 당은 당원들을 통제하고 당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과거를 끊임없이 고쳐 거짓으로 꾸민다. 당에 반발해 저항한 사람은 끌려가 그 존재 자체가 증발해버린다.

윈스턴은 이런 당을 의심한다. 사랑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품고 당의 감시를 피해 줄리아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동질감을 느낀 핵심당원 오브라이언에게 접근하지만, 오히려 그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다. 게다가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심문하며 세뇌시킨다.

<1984>는 폐결핵 투병 중에 쓴 조지 오웰의 마지막 작품으로 생을 마치기 5개월 전에 출간된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사피어-워프 가설에 의하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이 가설의 직접적인 묘사가 소설에 등장한다. 오웰 상상력의 완벽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고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 신조어를 만든 목적이다. 어휘를 점점 줄여서 선택을 폭을 좁힌다.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데 쓸만한 단어가 없어 이단적인 사상을 표현할 길이 없다. 신조어가 개인의 사고를 지배해 주장을 펼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아 횡설수설하는 터무니없는 중얼거림으로 바꿔버린다.


'죽기 얼마 전 병상에서 가진 BBC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나직하지만 또렷한 어조로, 현재 세계가 빠져들고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p. 480)'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이루질 수 있는 권력의 남용과 오용의 끝판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독재권력이 행사될 때 인간 그 개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피폐해지고 말살되는지 그 결과를 경고한다.


'"중요한 건 자기뿐이요." 그가 그녀의 말을 따라 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그 사람에 대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거구요."
"그렇소." 그가 말했다. "예전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해요." (p. 449)'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에 더해 학습, 이해, 수용의 단계를 거친 재통합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고통의 차원을 넘어선 인간성 말살이다. 그야말로 빈 껍데기만 남는다. 감정을 느끼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전체주의 권력의 완성이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 역시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정치제도 중 민주주의가 그나마 가장 사람을 믿지 않는 제도라는 유시민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시민들의 원하면 합법적으로 정권 교체가 가능한 우리 사회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위안한다.

그렇지만 한편에는 소설 속 주인공 윈스턴과 같은 삶을 나, 내가 아니면 내 자식들이 살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여전히 존재해 두렵다. 조지 오웰이 이렇게 완벽한 전체주의 상상했으니 그 상상을 이루려는 자들이 혹시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윈스턴은 총살되기에 앞서 10초만 미리 알아도 체제에 반하는 증오심 가득한 자신의 내부 세계를 드러내리라 다짐한다. 10초만이라도 자유를 누리며 죽기를... 하지만...

'하지만 괜찮았다. 만사가 다 괜찮았다. 이제 투쟁의 시간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p. 457)'
마지막 10초의 자유마저 윈스턴에게서 빼앗아간 소설의 결말이 무섭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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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여행 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이재형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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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풀어헤치고 매섭게 파고드는 프로방스 계절풍 '미스트랄'. 항상 손에 들려있는 파스티스, 식탁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포도주. 피터 메일의 프로방스 일 년 살기 기록 <아피! 미스트랄 (효형출판)>에서 읽은 프로방스의 풍경이다.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에서 얘기했다시피 파리에서 나를 괴롭힌 우울증은 예술의 힘으로 서서히 치유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늘 프로방스의 푸근한 날씨와 눈부신 태양, 시리도록 파란 바다,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마을들, 끝없이 펼쳐진 보라색 라벤더밭, 5월이면 온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개양귀비 꽃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프로방스의 풍경은 다시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나를 부추겼다. (p. 6)'

그런가 하면 이번에는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디 이니셔티브)>에서 파리에 대한 지식, 예술 작품들과 그 작품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글 솜씨로 파리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프랑스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온 저자 이재형을 따라나선 프로방스 예술여행이다.


'1888년 2월 2일, 반 고흐는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15시간을 여행한 끝에 아를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프로방스의 강렬한 빛과 눈부시게 선명한 하늘, 투명한 공기 속에서 꽃을 피운 과실수와 협죽도, 보라색 땅, 올리브나무의 은빛, 실편백나무의 진한 녹색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 보냈다.
"난 새로운 예술의 미래가 프로방스에 있다고 믿어." (p. 14)'

프로방스 여행 첫 번째 여행지는 고흐가 고갱을 기다리던 곳인 아를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를은 축제의 도시, 문화의 도시이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우환 미술관도 이곳에 있다.


아를을 시작으로 이재형 작가와 여행하게 될 프로방스의 도시와 마을은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제각각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부족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르 코르뷔지에는 수직마을을 생각해냈다. 마르세유의 행복주택단지는 70년이 지났지만 정상적으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에르메스와 샤넬, 루이비통 등 고급 부티크들이 즐비한 생트로페, 이곳은 한산한 어촌이었다. 1956년 여기서 촬영된 브리지트 바르도 주연의 영화 〈신이…여자를 창조하셨다〉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프랑수아즈 사강의 첫 작품 <슬픔이여 안녕?>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세 살짜리 딸과 바캉스 중이던 스물여덟 살이었던 프랑스 여배우 시몬 시뇨레는 생폴드방스의 황금 비둘기 식당에서 얼마 전 에디트 피아프와 헤어진 가수 이브 몽탕과 만난다. 둘은 한눈에 서로에게 끌렸다. 생폴드방스는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간직한 곳이다.

마티스와 샤갈이 사랑한 예술의 도시 니스, 하늘로 올라가는 니체의 산책로가 있는 곳 에즈, 세잔의 영혼이 깃든 생트빅투아르산이 있는 곳은 엑상프로방스다. 바농에는 프랑스 농촌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이 있고, 피카소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던 연인 도라 마르는 정신병원을 나온 후 메네브르에서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다.

'해가 서산마루에 뉘엿거리면 고르드의 돌집들은 빨갛게 물들고 저 아래 계곡은 초록 바다로 변한다. (p. 216)'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고르드다.

마지막 여행지는 고대 건축가들의 놀라운 기술을 보여주는 증거, 50킬로미터에 달하는 수도교 있는 곳 아비뇽이다. 그리고 아비뇽 남동쪽 몽파베 마을의 공동묘지 정신병자 구역은 로댕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의 일흔여덟 살 인생, 마지막 종착지이기도 하다.


파리가 그렇듯 이렇게 사연이 많은 곳이 있을까? 라벤더, 해바라기,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 수많은 예술가들이 매력을 느낀 곳 프로방스. 피터 메일은 이곳이 너무 좋아 집을 덜컥 사버렸다. 이재형 작가와 함께 프로방스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타보자. 반 고흐가 '예술의 미래가 있다'라고 믿고 파리에서 아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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