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헨델이 만든 오페라 <리날도(Rinaldo)>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 영화 <파리넬리>를 보면서 전설적인 카스트라토 목소리로 처음 들었다. 그 장면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지금도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던 서른 즈음이었을 때가 생각난다. 모든 게 슬펐다. 그래서 듣고 또 들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슬퍼졌다. 노래 가사처럼 내 운명은 비참함으로 가득 찼고, 한숨짓게 만드는 나날뿐이었다. 슬픔과 고통이 나를 짓눌렀다. 그런 내 모습을 남들이 봤다면 청승 떤다며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울고 나면 말로만 듣던 '카타르시스(Catharsis)'가 찾아왔다. 한동안 그런 일상에 중독됐었다.'비가 와도 젖지 않는 남자와 늘 물속에 잠겨 있는 아이죽은 자의 피를 증류하는 연금술사와 달빛이 눈부셔서 잠 못 드는 외톨이. (p. 142 작가의 말)'이들을 기록한 이상하고 슬픈 한 편의 시, <감정술사>는 이원정 작가가 쓴 첫 소설이다. 생화학을 전공했다. 전공하는 동안 해온 실험을 통해서 피를 증류해 슬픔을 걷어낼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일까?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비에 젖지 않는 연금술사 남편에게 투명한 증류기를 선물로 남긴다. 이 증류기로 영원히 썩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말도 남겼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에서 불순물을 걸러내는 방식으로 슬픔이 없는 생명을 탄생시켰다. 완벽한 모습으로, 순금처럼. (p. 56)'슬픔을 지녔기 때문이었을까? 늘 젖어있던 아들이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감정술사는 죽은 아들의 피를 증류 플라스크 안에 쏟아붓고 양초에 불을 붙여 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들의 피는 남김없이 증류되어버렸다. '"달빛은 왜 나의 밤을 밝히는 걸까요?""달빛은 밤을 낮이라고 믿거든." (p. 119)'달빛의 눈부심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외톨이 아이. 그 아이는 '이토록 우아하고 묵직하게 가슴을 할퀴는 통증의 정체를 깨닫는다. (p. 139)' 슬픔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한결같이 알게 된 것이 있다고 한다. 감정 표현이 유난히 많은 우리말을 배우면서 '내게도 이런 감정이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이야기 속 감정은 작가 자신을 기록한 것이라고 밝힌다. 글을 쓰는 동안 스스로 못마땅하게 여겼던 감정에 이름을 붙였다고도 말한다.서른 중반이었던 나는 <울게 하소서>를 들으며 뭔지 모를 슬픔에 잠긴 나날에 이름을 붙인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카타르시스 경험했을 테고. 알지 못했던 감정을 지닌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배움으로써 그 감정에 이름이 생기자 선명하게 감정을 바라보게 됐을 것이다. '폭로당하고 싶은 슬픔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견뎌낼 힘이 생긴다는 것을 배웠다. (p. 142 작가의 말)'증류하는 과정은 뒤섞인 여러 감정 가운데 하나의 감정을 찾아 명명식을 치르는 작업인 셈이다. 그래야 그 감정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 감정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작가 이원정이 모든 감정을 영감으로 증류하듯이 감정에 이름을 부여했던 작업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그러면 모든 감정을 품을 수 있다. 지우고 싶은 감정은 없다. 감정을 행복이나 불행으로 덧씌울 수도 없다. 슬픔마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