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야기를 해볼까? 사랑의 목적은 뭘까. 사랑하는 것이다. 덜도 더도 아니고 사랑하는 것. 그러니 사랑 이야기가 결혼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는 없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리더라도 그렇다. '바보같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인생이라면, 사랑은 바보같이 두 사람이 서로를 찾아 헤매는 일이다.' 결혼은 찾아 헤맬 필요 없음을 뜻한다. 같이 살며 매일 보는데 뭐~ 찾아헤맬 일이 어디 있겠나.
인터뷰에서 조정래 선생이 한 이야기다. 어느 날 독자가 '선생님은 왜 역사, 사회 등 무거운 주제만 다루고 사랑 이야기는 쓰지 않는지' 묻더란다. '내가 그랬나?' 싶었단다. 또 다른 독자가 묻기를 '사랑 이야기를 못쓰는 것은 작가로서 불구 아닙니까?'
'나는 슬픈 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그 슬픔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근원을 소설의 주제로 삼아서. (p. 13 작가의 말)'
여든 살 넘어 조정래의 마지막 장편이 사랑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고, 이왕이면 슬프고 영원한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십 년 넘게 굴린 끝에 탄생한 소설이 <서리꽃>이다.
윤소이와 이재이의 사랑 이야기는 왠지 스마트폰으로 숏츠를 보며 결혼하기도 전에 관계를 갖는 시대와 어울리지 않았다. 대사 톤도 마찬가지다. 유럽여행에서 서로 각방을 쓰는 모습에선 순수와 함께 올드한, 마치 조정래 선생 청춘시절에나 있을법한 사랑이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요즘에 어울리는, 내가 생각한 그런 사랑 이야기, 다시 말해 인스턴트 식으로 소비되는 사랑 이야기로는 조정래 작가 자신이 품은 사랑 이야기를 담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조정래 작가는 <서리꽃>을 쓰기 위해 프랑스, 네덜란드로 반 고흐의 그림을 따라 취재 여행을 다녀왔다. 화가의 꿈을 키워지만 가난으로 그 꿈을 포기했던, 그림을 향한, 조정래 작가의 사랑을 <서리꽃>에 담았다. 이루어진 사랑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형 반 고흐가 가진 화가의 꿈을 위한 동생 테오의 희생적인 사랑도 이재이와 윤소이 관계를 통해 <서리꽃>에 담았다. 희생이 빠졌다면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윤소이의 꿈을 막은 가난을 보았음에도 거침없이 부를 버리고 사랑하는 이의 꿈을 택하는 이재이의 현실을 초월하는 사랑이야말로 조정래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요즘엔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는 그런 사랑말이다. 마치 천민자본주의와 야합하지 않는 사랑, 당신들 이런 사랑을 보기는 했어?라고 외치는 듯하다.
영원한 사랑은 또 어떻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으니 죽어서라도 이룰 거야 하며 당당하게 보여주는 영원한 사랑. 우리 머릿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사랑이어서 오히려 신선하다.
'독자들께서 슬픈 사랑 이야기 <서리꽃>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잘 찾아주신다면, 수술로 기력이 떨어져 후반으로 갈수록 사흘거리 몸살을 앓아 예정보다 두 달이나 늦게 소설을 끝낸 작가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p. 13 작가의 말)'
조정래 작가가 <서리꽃>에 숨겨놓은 사랑 주제를 잘 찾았는지 모르겠다. 한때 익숙했던 사랑 이야기였지만 어느새 낯설어진 사랑 이야기. 희생이 뒤따른 헌신적 사랑이었음에도 이루어질 수 없어서 슬픈 사랑 이야기, 내 마음 한편에 아직까지 조금 남아있어 아련한 사랑 이야기, <서리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