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낯설게 보기 - 우리는 어떻게 죽고,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박혜윤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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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사에서 김라합 번역으로 펴낸 <스콧 니어링 자서전>은 죽음을 떠올리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100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곡기를 끊고 7주 후 스스로 의지로 숨을 거뒀다. 이때 나도 곡기 끊는 걸 죽는 방법으로 생각해 두었다.

철학 하는 간호사 박혜윤 교수의 <죽음 낯설게 보기>는 그때 막연했던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 책은 저자가 임상과 철학을 오가며 사유한 기록이다.

'연명의료와 돌봄, 임종처럼 죽음을 앞두고 만나는 사건은 물론, 고립사와 안락사 등 다양한 죽음의 모습까지 폭넓게 다룬다. (저자 소개 글에서)'


'죽음을 낯설게 보자'는 박혜윤 교수의 제안은 삶과 생명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깨우고자 함이다. 그동안 지나쳤거나 막연하게 바라보던 삶과 죽음을 좀 더 선명하게 보자는 것이기도 하고.

가족을 울리는 자살, 집에서 죽는 당연함이 과거가 돼버린 병원 임종의 현실, '자연스러운 죽음'을 전혀 자연스럽게 여기지 않는 연명치료,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리다'는 산자와 죽은 자 사이의 존재, 뇌사 기증자까지 저자가 보여주는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다양한 광경은 그 죽음 하나하나에 나를 대입해 보게 한다.

죽음을 앞둔 몸을 펼쳐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고상한 설명 대신 그저 스스로 '뒤처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기력이 있고 없음이 곧 존엄의 척도는 아닐까? (p. 119)'

허물어진 존엄에 더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한 몸이 내 몸이라면 조력자살 또는 스스로 곡기를 끊는 단식존엄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스페인 안락사 법을 통과시키는데 강력한 동력이 된 라몬 삼페드로의 말처럼 '삶은 권리이지 의지가 아니 (p. 151)'니까 말이다.

저자가 세 번째로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 공동체가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가다. 삶이 고립된 고독사, 진정한 집을 상실하고 손님처럼 살다가 떠나는 현대판 객사, 비극의 사무적인 마침표인 무연고 장례가 '죽음이 마치 죽어버린 시대'가 죽음 다루는 방식들이다.


수많은 삶과 죽음을 마주했던 박혜윤 교수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면 이런 물음이지 않을까?
'당신의 죽음은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가.'
그가 제안한 '낯설게 죽음을 보는' 방식으로 대답해 보려 한다.

내가 죽는 과정에서 내 아내와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내 아내도 나로 인해 고생할 만큼 했고,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 내게 줄 기쁨은 다 주었다. 당연히 연명치료도 거부한다. 타인의 의지로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 '삶은 권리'라는 말에 공감한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고 조력자살이란 선택이 굳어졌다. 가족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더라도 말이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환경 조성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어 실현 불가능한 것이 단점이긴 하다.

스콧 니어링은 '사람이 산다는 건 결국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 있다'고 했다. 같은 생각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이야기가 시작됐지만, 이야기 끝맺음은 내 삶을 내 선택으로 쌓았듯이 내 방식으로 마치고 싶다.

그래서 맺은 결론은 이렇다. 내 생각대로 내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곡기를 끊어 내 삶을 마감하기로. '먹지 않을 자유'까지 처벌하는 하는 나라는 없다고 하니까. 물론 많은 행운이 뒤따라야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치매에 걸리지 않아야 하고 무엇보다 곡기를 끊을 의지가 필요하다.

내 스스로 의지로 삶을 매듭짓기를... 언제나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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