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가정법원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이명숙.이서원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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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이다. 전세살이 할 때 집주인 사정으로 1년도 안 돼 뒤 동 아파트로 이사했다. 어느 날 퇴근하면서 먼저 살던 동으로 습관적으로 올라가 벨을 눌렀다. 아차 싶었다. 문을 열고 누구라도 나오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계단으로 뛰어내려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데 앞에 아내가 서있었다.
"자기, 앞 동엔 왜 갔어? 거기 만나는 여자 있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멈칫했다. 때마침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벌어지는 불륜 사건이 뉴스로 나오던 때였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 허겁지겁 앞 동에서 빠져나오는 내 모습을 보고 놀려줄 작정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미리 나와 서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작심하고 계속 날 의심했다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를 활동하는 이명숙 변호사가 36년 넘게 접한 실제 법정 사례 가운데 43개를 뽑아 가족심리상담가 이서원 교수와 함께 들여다본 이야기가 <오늘도 가정법원에서 인생을 배웁니다>에 담겨있다.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들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법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하한선을 규정한 공식이라면, 상담은 상한선을 끌어올려 주는 인생 공식이다. 이 책은 하나의 소송 사건을 '권리와 책임이라는 변호사의 시선'을 통해 하한선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예의와 태도라는 상담가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하면 상한선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p. 8 프롤로그)'

불륜을 감추려고 아이들을 결혼시켜 사돈이 되면서까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가는 사건은 불륜의 끝판을 보여준다. 사랑으로 이룬 가정 뒤에 돈이라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을 때 그 사랑이 추악한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마는 사건도 소개됐다.

'이 사건을 겪으며 나는 생각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가? (p. 124)'

가족폭력을 키우는 건 포기하고 침묵하는 '학습된 무력감'이다. '아이들 때문에 참는다'라고들 말하며 이혼을 망설이지만, 그 인내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최선이 아니다. 아이들을 피해자로 만들 뿐이다. 남편이 돈벌이를 위해 아내에게 성매매를 시키는 사건은 남자로서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었다.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은 대기업 승진을 앞두고 세 아이가 있는 돌싱 남자를 받아들인 안민지 씨 사레다. 아이들은 친자식처럼 키우려고 불임 수술까지 했다. 미국에서 세 아이 유학 뒷바라지까지 하며 15년 동안 헌신했지만, 안민지 씨는 자녀 교육을 핑계로 남편을 버리고 미국으로 도망간 나쁜 아내가 돼버렸다. 남편이 재산까지 빼돌리며 이혼을 준비해 안민지 씨에게 남은 건 미국의 월셋집뿐이었다. 안민지 씨를 더 뼈아프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세 아이가 '새어머니가 우리를 학대했다'라고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한 것이다.


법은 이혼과 위자료라는 형태로 책임을 물을뿐 부부 또는 가족이 오랫동안 쌓아온 사연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법적으로 해결되더라고 상처는 남게 된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라 더 아프고 깊다.

배우자와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그 가족 구성원을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수단으로 여긴다면 그 가정을 깨질 수밖에 없다. 신뢰가 자리 잡을 수 없다. 착각해서 앞 동에 갔다 오는 사소한 일을 아내가 불신의 눈으로 바라봤다면, 우리 가정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결혼은 천천히 신중하게, 이혼을 재빠르게.' 한 이혼 전문 변호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절연을 매정하게 여기는 정서가 우리에게 있다. 하지만 올바르지 않은 침묵과 인내가 더 문제를 키우고 상처를 깊게 만든다. 끝내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길이 끝난 곳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법의 길이 끝난 곳에서 새로운 삶의 길이 시작된다. 온전한 인생이란 법의 길과 삶의 길이 함께할 때 시작될 수 있다. (p. 7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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