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내를 만났고, 그 만남으로부터 비롯된 삶은 부부라는, 이전과 다른 풍경이었다. 이렇듯 아내와 맺은 관계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만들었다.


'삶은 어디로 간 걸까? (p. 15)'

작가로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로버트 애플야드는 열여섯 살 자신의 모습을 회상한다.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막 끝난 1946년, 영국 탄광촌 더럼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광부의 삶을 살았다. 언젠가 로버트 역시 광부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 삶 이전에 탄광 마을 너머 바깥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소년 로버트는 알고 싶었다. 배낭을 메고 하루하루 일하고 그 대가로 끼니를 때우며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노스요크셔 로빈 후드 베이 오솔길에 들어선 로버트는 오두막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운명적인 사람 덜시 파이퍼를 만난다.

종잡을 수 없는 나이의 노부인, 지식은 많아 보이지만 거침없이 말하는 덜시와 로버트는 진솔한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던 중 오두막 옆 낡은 창고를 손봐주던 로버트는 로미 란다우라는 시인의 이름과 <앞바다 The Offing>라는 제목이 적힌 원고 뭉치를 발견한다.


아내 맺은 관계로 내 삶의 풍경이 달라졌듯이, 덜시 파이퍼 그리고 로미 란다우의 시와 관계를 맺은 로버트 애플야드의 삶 역시 다른 풍경을 맞이한다.


덜시와 로버트의 관계는 갈등 속에 파묻힌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에게 화해의 실마리를 준다. 부모 세대의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청년, 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은 어떤 태도를 보여줘야 할까.

'"운전을 못 한다니? 딱히 할 것도 없는데."
"그런데 진짜 아예 못 해요."
"진짜 운전이라는 걸 하는 사람도 있니?"
"음, 네."
"로버트, 솔직히 말이다. 200미터 남짓 떨어져 있고, 완전 내리막길이잖니. 핸드브레이크를 풀고 바퀴가 그냥 알아서 구르게 놔두면 돼. 아주 쉽잖아. 네가 할 일은 완만한 모퉁이 몇 군데서 핸들을 조금 틀고, 가끔 경적을 울리는 것뿐이야. 아 참, 그리고 필요할 때 브레이크를 밟고." (p. 239)'

앞으로 닥칠 미래에 로버트는 겁먹었다. 덜시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로버트를 안심시킨다. 그리고 로버트와 다투려 하지 않고 끝없는 관대를 베푼다. 그 관대함이 그다음 그다음으로 이어지도록.

'"아직도 왜 이렇게 저에게 관대하게 베풀어주시는지 이해가 안 돼요, 덜시."
"말했잖아. 그게 내가 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아마 언젠가는 너도 그렇게 될 거야." (pp. 326, 327)'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그 분쟁을 통과한 이들의 기억 속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가난이라는 전쟁 후유증을 겪는 상황에서 로버트는 독일에 대해 적의로 가득 차 있다. 덜시는 독일 출신 시인 란다우와 맺은 관계를 이야기해 주며 그녀의 시를 로버트에게 권한다.

저자 벤자민 마이어스는 1976년 생으로 영국 더럼에서 태어나 그곳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설 속 주인공 로버트와 닮았다. 소설가이자 시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글은 운율에 서정을 갖춘 시처럼 다가온다.

저자는 1912년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공부한 후, 시집을 발표해 명성을 쌓았고, 로빈 후드 베이 근처 바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로미 란다우라는 실제 인물을 소설 속으로 데려온다.

소설 속 덜시는 '천사처럼 찰나에 밝게 타오르며 글을 쓴 다음, 자신의 민족이 파괴한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는 모든 것을 끝장내길 택한 비운의 독일인 시인 (p. 324)' 란다우를 로버트에 앞에 데려다 놓고 독일인과 화해를 그리고 진정으로 싸울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 결국 진정으로 싸울 가치가 있는 건 몇 개 안 돼. 자유, 그리고 자유가 가져다주는 모든 것. 시, 어쩌면 좋은 와인 한 잔, 맛난 식사, 자연, 운이 좋으면 사랑을 얻을 수도 있겠지. 그게 전부야. 독일인을 전부 미워하진 마. 그들 대부분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거든." (p. 62)'


탄광촌을 떠나온 소년은 친절한 어른을 만나 세상을 다른 풍경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시를 만나 미움은 버리고 사랑을 취한다. 그렇게 다른 풍경에서 자라 어른이 된 로버트 애플야드는 '"... 삶에 시가 부족해서." (p. 147)' 잘못된 이들을 위해 시를 쓴다.

우리 아이들이 발견한 '<앞바다>는 수평선 너머로 밀려가 저 넓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p. 302)' 그리고 노년을 앞둔 나는 퇴직한 다음 책을 만났고, 책 속 주인공들과 관계를 맺으며 요즘 또 다른 풍경으로 옮겨와 살아가고 있다.

"또 다른 풍경 속 삶은, 또 언제 시작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