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마니아 : 유럽의 뿌리 현대지성 클래식 75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게르마니아'는 고대 로마제국 시대 라인 강 동쪽과 도나우 강 북쪽 지역으로 게르마니족이 살던 곳을 일컫는다. 현재 독일, 스칸디나비아 등 북유럽과 중부 유럽 여러 민족의 조상이 게르마니 부족이다. 당시 로마에게 게르마니아는 단순한 변방이 아니었다. 로마 문명의 북쪽 진출이 멈춰 선 곳이었다.

<게르마니아 : 유럽의 뿌리>의 원제는 <게르마니족의 기원과 지리에 대하여>(De origine et situ Germanorum)로 우리에게 <역사>와 <연대기>로 알려진 로마의 저술가이자 정치인, 위대한 역사가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 56~120년경)가 98년경 집필 완성한 작품이다.


이 책 1부에서는 게르마니족 전체에 관한 일반적인 서술로 지리, 기원, 신체적 특징, 정치체제, 군사 조직, 일상생활, 가족과 결혼, 종교 의식 등을 다룬다.

'타키투스는 외부와 섞이지 않은 게르마니족의 순수성을 부각한다. 이는 이민족과의 결합과 사치로 고유한 정신을 잃어가는 로마의 현주소를 역설적으로 비판하는 장치다. (p. 29)'

게르마니족은 금이나 은보다 소 떼를 더 귀하게 여기는 등 그들의 삶은 사치와 소유욕과는 거기 멀었다. 물질 풍요 속에 무너져간 로마의 정신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여성을 유희 대상으로 삼는 로마와 달랐다. 여인에게 신성한 예지력이 있다고 믿어 여인들의 조언을 무시하지 않았다.

결혼 제도도 엄격해 한 명의 배우자를 두었다. 자녀 양육도 하녀나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지 않았다. 직접 젖을 먹여 키워 부모와 자식 사이에 깊은 유대감이 있었다. 낯선 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친절하게 환대했다. 로마인 관점에서 놀라운 일도 있었는데 게르마니족은 고리대금업을 하지 않았다. 땅도 공동 경작해 개인 소유보다 생존과 평등을 우선시했다.


2부에서는 게르마니 부족의 지리와 부족별 주요 특징을 설명한다.

'카티족은 다른 부족들보다 더 강인한 신체와 단단한 사지, 위압적인 용모와 왕성한 정신력을 지닌다. 게르마니인들 가운데서도 특히 이성적 사고력과 수완이 뛰어나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 명령에 복종하며 대오를 갖추어 행동한다. 그들은 기회를 포착하고 공격을 늦출 줄 안다. 낮에는 작전을 세우고, 밤에는 방어 시설을 구축한다. 또한 행운은 불확실하지만 용맹은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p. 92)'

카티족 전사들은 성인이 되면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전투에서 적을 죽인 후에야 그동안 기른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고 이마를 드러냈다. 이는 부족과 부모에게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수이오네스족은 바닷가에 고립된 채 살면서도 강력한 왕권을 유지했다. 타키투스는 이런 지형에서 어떻게 통제 시스템이 이뤄지는지를 유심히 살폈다. 시토네스족은 특이하게도 여성이 부족을 지배했다. 타키투스는 이런 통치를 노예 상태보다도 열등한 것으로 여겼다. 여성의 정치 지도력이 비정상이고 퇴보된 것으로 보는 로마인의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타키투스가 <게르마니아>를 집필한 의도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게르마니족의 순수함과 단순함을 당시 부패한 로마 사회와 비교해 로마인들에게 날카로운 경종을 울렸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러 1848년 독일혁명 당시 독일의 지식인들은 이 책 <게르마니아>를 새로운 독일을 설계할 밑그림으로 삼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타키투스의 의도와 다르게 ''순수 독일 혈통'에 대한 위험한 집착으로 이어졌고, 결국 나치의 배타적 인종주의로 변질되었다. (p. 22)'

역사가 타키투스가 후대에게 전해준 인간 사회와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히틀러가 민족의 신화로 잘못 읽고 해석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