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25
서머셋 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 달은 무엇일까? 그 달의 세계를 찾아 떠날 마음이 있었던 적은? 난 6펜스의 세계에서 사느라 바빠 달을 쳐다볼 생각조차 안 했던 것 같다. 강제로 이를테면 6펜스의 세계에서 타의로 쫓겨났다면? 그때는 억지로라도 나의 달을 찾아가는 길에 나섰을까?


'찰스 스트릭랜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솔직히 말해서 그가 여느 사람과 다른 인간이라는 인상은 조금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의 위대함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p. 8, 첫 문장)'

<달과 6펜스>는 파리에서 태어난 후기인상파 화가 폴 고갱을 모티브로 안정된 삶을 버리고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난 사람의 이야기다.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예술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던 스트릭랜드는 안정된 가정을 뒤로하고 파리로 향한다. 부인 에이미와 주변 사람들은 여자와 눈이 맞아 떠난 것으로 알지만 스트릭랜드는 단지 그림 그리기 위해서 파리에 왔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와 갖가지 방법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사람에 따라 줄기찬 격류가 바위를 단번에 산산 조각내듯 과감한 개조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뚫듯 서서히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스트릭랜드의 경우에는 광신자의 열성적인 면과 사도(使徒)의 격렬한 점을 다 가지고 있었다. (p. 83)'

가난이 파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그의 천재성을 알아차린 스트로브의 도움으로 그림에 열중한다. 비참한 생활 속에서 병에 걸린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와 그의 아내 블란치의 사랑과 돌봄으로 회복하지만 끝내 그들을 배신한다. 마르세유 항을 배회하며 소일거리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그는 자신이 동경하던 이국땅 타이티로 향한다.

어느덧 마흔일곱 살이 된 스트릭랜드는 타이티라는 대자연 속에서 만나 결혼한 아타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걸작을 완성한다. 나병에 시력마저 잃은 스트릭랜드는 온 정열을 쏟아부어 오두막 벽에 그려낸 대작을 불태워버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스트릭랜드는 6펜스의 세계에서 달의 세계로 가는 길에 세 여인을 만났다.

그의 부인 에이미는 남편의 욕망에 무관심했다. 에이미는 문학에 관심이 많아 문학계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이 잦았다. 문학과 거리가 먼 남편은 그녀에게 열등감을 안겨줄 뿐이었다.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는 스트릭랜드를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자신이 준 만큼의 사랑을 받기를 원했다.

타이티에서 만난 아타는 이전의 두 여인과 달랐다. 아타는 스트릭랜드를 사랑하는 데 온전히 자기 자신을 희생했다. 그 사랑으로 스트릭랜드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떠날 필요가 없었다. 그곳에서 예술가로서 꿈을 이루는 것만 남았다.


'사람들 중에는 처음부터 고향이 정해져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일 어쩌다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살게 된다 해도 그들은 계속 미지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태어난 곳에선 오히려 나그네 같은 신세로 지낼 뿐이며, (pp. 278, 279)'

스트릭랜드 이방인이나 외톨이로 지내기를 거부했다. 진정한 고향을 찾아 떠났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그는 동그란 구멍 속에 박힌 네모난 못이었다. 어떤 못이라도 구멍에 맞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이 나타날 때까지 험난한 모험을 멈추지 않았다. 별난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아도 되는 곳을 마침내 찾았을 때 비로소 그곳에 정착했다. 사람들의 동정과 공감이 있는 곳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런 걸 뭣 때문에 생각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p. 228)'

사십이라는 늦은 나이일지라도 스트릭랜드가 달의 세계로 가는 길을 막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는 물에 빠져 죽는다. 물속에서 빠져나와야겠기에 그림을 그렸다.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그만큼 스트릭랜드는 남이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의 재능에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마스터피스가 탄생하지 않는다. 자신의 재능만을 믿고, 사랑도 이용하고 도움도 이용하고 규범이나 윤리 따위의 개념을 팽개친 채 딴 세상 사람처럼 살아간다면. 모든 것을 달의 세계로 가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기심만으로는 말이다.

달의 세계의 도착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스트릭랜드, 그의 예술가로서 여정의 마침표에는 그의 재능에 더해 아타의 사랑과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는 유토피아, 동정과 공감이 가득한 타이티가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고갱과 스트릭랜드 사이에 차이가 있다. 고갱이 타의에 의해 예술가의 길에 들어섰다면 스트릭랜드는 스스로 달의 세계로 향하는 모험을 택했다. 나는... 자의는 아니더라도 고갱처럼 타의로 떠밀려 달의 세계로 향하는 출발점에 섰다면? 그 길을 걸어갔을까?

아니, 난 스트릭랜드처럼 죽음과 맞바꿀 정도의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없다. 진정한 나를 찾기에는 사회화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스트릭랜드 같은 인물을 만나면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