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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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건 불꽃놀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 부드럽고 매혹적인 형형색색의 불꽃이 어둠 속으로 높이 솟아올랐다가 금세 그 속에 잠겨 사라져 버리는 모습은, 마치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안타깝게 그리고 더 빠르게 사그라져 버려야만 하는... (p. 70, 크놀프에 대한 나의 회상)'

직장을 한 번도 옮기지 않은 채 하나의 직업을 가졌던 나는 불꽃놀이 같은 삶을 부러워한 적이 많다. 그렇다고 그 삶이 내 앞에 놓여있었다면? 분명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과 내 본성 사이에 간격은 너무나 멀다.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꾸리는 삶이 나와 가깝다.


<크눌프>는 세 개의 이야기다. 젊은 크눌프가 폐병으로 입원한 병원에서 퇴원한 후 무두장이 친구 집에서 머물렀을 때 이야기인 '초봄', 화자와 크놀프 사이의 대화와 감정을 담은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그리고 병이 깊어져 죽음을 앞둔 크눌프가 고향을 찾아와 과거를 떠올리며 신과 대화를 나누는 '종말'로 구성됐다.

무두장이 로트푸스는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으며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크눌프에게 자신의 삶을 뻐기며 방랑과 무위도식을 이제 그만두라고 충고하지만, 천성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며 사는 크눌프를 질투한다. 그런 로트푸스에게 크눌프는 겪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일 뿐이라면서 부러워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고는 두 살짜리 아이가 있지만 입양돼 손을 잡아보거나 키스를 해주어도 안되는 고독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크놀프와 같이 방황했던 화자 '나'는 고독과 외로움에 갇혀있기는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방랑하는 크놀프의 삶 그리고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그의 삶에 가치를 느낀다.

'크눌프가 말했다.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 (p. 79, 크놀프에 대한 나의 회상)'

고향으로 돌아온 크놀프는 친구인 의사 마홀트에게 방랑하는 삶이 시작된 계기를 고백한다. 열두 살 때 만나 사랑했던 두 살 많은 프란치스카의 배신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크놀프는 약속을 믿지 않았고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기로 했다. 혼자가 됐다.

프란치스카가 자신의 기다림을 헛되게 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크눌프는 생각했다. 하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고향 사람들과 그곳의 모습 모두 변했다. 아름다운 젊은 날에는 사랑받았을지 모르나 이제 남은 건 나이 들고 병들어 혼자 남은 크놀프뿐이였다.

'그 길고도 힘겹고 의미 없는 여행 내내 그는 어긋나고 뒤엉켜버린 자신의 삶 속에 깊이깊이 빠져들어갔다. 그것은 마치 질긴 가시덤불 속으로 빠져드는 것과 같았는데, 그는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나 위로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병마가 그를 다시 덮쳤다. (pp. 128, 129, 종말)'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자책하며 크놀프는 신을 찾아 나섰다. 어떤 기회도 살리지 못한 이룬 것 없는 실패한 삶이었다. 계획도 목표도 없었다. 남들처럼 살지도 못했다. 오답투성이 인생을 신께 내보이며 한탄했다.

신은 크놀프에게 이루지 못한 것을 질책하는 대신 크놀프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줬다.
'"보아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 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 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 (p. 134, 종말)'


불꽃놀이 같은 삶을 부러워했던 건 타인의 삶과 나를 비교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내가 끊임없이 뭔가를 이뤄냈다고 증명하기를 요구한다. 타인의 속도와 맞추느라 나만의 속도로 나아갈 여유가 없다. 나만의 방식으로 살려면 고독을 견뎌야 했다. 난 그 고독이 두려웠지 싶다. 그래서 사회가 정해준 틀에서 벗어나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살아온 삶에 만족하나... 크놀프를 동경했을 뿐 그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았지만 오답투성이 삶인 건 크놀프와 다름없다.

요즘 기독교인으로서 내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지 자주 생각한다. 내 삶과 나를 화해시켜주는 존재다. 위로받고 싶을 때, 나와 다툼이 벌어졌을 때... 찾아가는 존재다. 너만의 방식대로 살아온 삶, 그 자체로 존귀하다고 말해주는 분, 크놀프가 만났던 그분이다.

'... 크눌프와 같은 인물들은 나에겐 매우 매혹적이네. 그들은 '유용하지는' 않지만 많은 유용한 사람들처럼 해를 끼치지는 않지. 그들을 심판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닐세. (...) 또한 내가 독자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 연약한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일세. '
- 1954년 1월 에른스트 모르겐탈러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p. 141)'

헤르만 헤세가 애정했다고 하는 크눌프는 불꽃놀이 같은 삶을 살았다. 크눌프는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시인이고 휘파람 불며 노래했다. 내면의 음성대로 살았다. 밝은 성품과 여러 가지 재주로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해 어딜 가나 그는 사랑받고 환영받았다. 그리고 타인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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