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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최정애 옮김 / 비트윈 / 2026년 3월
평점 :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로 유럽 내 반유대주의가 형성됐다. 그런 반감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에 의해 인종 청소라는 학살로까지 이어졌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의 유대인에 대한 역사적 부채감은 이스라엘이 일으키는 전쟁을 비판하는데 주저하게 만들었다.
'나는 안젤름 키퍼가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에 대해서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p. 69)'
비트윈은 노르웨이 출신의 사유하는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세 번째 에세이 <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를 <나는 이래서 쓴다>, <뭉크를 읽는다>에 이어 출간했다. 2014년 어느 날, 크나우스고르는 안젤름 키퍼의 전시를 찾아 작품을 감상하며 그의 예술 세계에 물음표를 갖게 된다. 안젤름 키퍼에게 편지를 썼다. 만남이 이루어졌고 5년여 동안 동행하며 키퍼의 예술 세계를 탐구한다.
안젤름 키퍼는 1945년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기 직전에 태어났다. 그가 속했던 사회 공동체는 전쟁을 일으켰고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하지만 키퍼는 자라면서 그 누구에게도 이 공동체가 저지른 만행을 듣지 못했다. 독일군 장교였던 아버지마저 전쟁에 대해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다. 키퍼는 그의 작품으로 이 침묵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이 책 편집자는 후기에서 키퍼의 작품과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를 잇는다. 소설 속 주인공 한나는 나치에 협력한 전범으로 최고형이 선고되는데도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유럽에서 당했던 비인간적인 차별과 학살에 몇 배나 더해 앙갚음이라도 하듯 팔레스타인 사람을 죽인다. 이를 지켜보면서 유럽은 침묵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침묵하듯이 말이다.
침묵에는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뉘우치려는 마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행위다. 그런 침묵이 지금 중동지역에서 벌어지는 참혹함을 결과로 가져왔다.
크나우스고르는 키퍼에게 언제부터 그림에 납을 사용했는지 질문한다. 이어서 납을 사용하게 된 계기도 묻는다.
'다른 그림들은 납이 여러 가지 무늬로 굳혀진 형태였다. 대부분 거칠고 파편화된 인상을 주었고, 무언가 폭력적이고 혼란스러운 데가 있었다. 그러나 그 폭력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어쩌면 생물학적인 것도 넘어선, 광물적인 폭력이었다. 이 그림들은 돌무더기와 금속 더미들의 폭력과 맞닿아 있었다. (p. 54)'
한편 납은 폭력과 더불어 통제 밖에 있을 때는 아름다움을 만들기도 한다.
'그림 위로 납을 붓는다는 것은 분명히 그림에 대한 통제를 놓아버리고 완성된 결과를 우연에 맡긴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우연은 눈 결정이 아름다운 무늬로 얼어붙게도 만들고, 아이가 밟은 웅덩이의 얼음이 아름다운 무늬로 금이 가게도 만들며, 푸른빛이 도는 녹색 곰팡이가 빵 위로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퍼져나가게도 만든다. 이 모두가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pp. 54, 55)'
크나우스고르는 '모든 예술은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이 되는 것을 다룬다. (p. 55)'라고 말한다. 키퍼는 물감과 납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다른 어떤 것을 다루려고 했을까. 납은 중세 시대 연금술사들에게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재료였다.
키퍼는 독성을 지닌 무거운 납으로부터 폭력을 감추려는 부모 세대의 침묵을 본듯싶다. 납을 그의 예술 세계로 가져온 이유는 납이 금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일 거고. 침묵을 깨고 뉘우칠 때 부채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제야 납은 다른 어떤 것, 아름다운 금이라 할만한 것이 된다.
키퍼는 세 가지 풍경, 숲과 강과 평원을 반복해서 그렸다. 숲은 민족주의와 폭력으로 결합된 나치즘같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강과 평원은 다르다.
''강'은 변화무쌍하며 늘 흐르고 있고, 경계가 있는가 하면 또 동시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키퍼의 작품 속 강은 밝고 색이 화려하며, 어쩌면 변화야말로 가장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평원'은 열린 것이자 무대이며, 세상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격전지이기도 하지만 밀밭이기도 하다. 사람은 없지만 실존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죽음이기도 하다. (p. 88)'
안젤름 키퍼는 그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언제까지 부채감을 가지고 침묵할 것인가. 전쟁을 보고도 침묵할 것인가. 죽음을 앞에 두고도 한나처럼 비밀을 드러내지 않을 것인가. 납이 가진 폭력성을 드러내야만 부어놓은 납이 흘러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듯 부채감을 들어낸 자리에 정의가 들어선다고...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장소가 열린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그곳에만 존재하는 장소 말이다. (p. 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