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 민심을 얻는 왕도정치의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맹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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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왈 공자왈'이란 말의 쓰임새는 탁상공론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이론을 비웃을 때다. <맹자>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과연 맹자의 말이 그럴까?'였다.

맹자는 제14편 <진심 하> 9장에서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아내와 자식을 물론 그 어느 누구도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며 솔선수범을 말한다. 그리고 맹자 자신도 먼저 행동으로 보여준다. 제국의 왕들 앞에서 자신의 이론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음 물론 절대 쫄지 않는다. 대장부大丈夫로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몸소 실천한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합니까?"
"말로 하기 어렵다. 그 기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한데, 곧게 길러서 해치는 것이 없으면 천지 사이에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 기는 정당함과 도리에 들어맞아야 하니, 이렇지 않으면 (호연지기가) 위축된다. (pp. 108, 109 <공손추 상> 2장)'

왕 앞에서 역성혁명론을 말하면서도 절대 주눅 들지 않는 맹자의 모습은 맹자와 맹자의 말을 '공자왈 맹자왈'로 폄훼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했는데 (이것이) 옳습니까?"
"인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고 하고, 의로움을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고 하며, 잔적殘賊 한 사람을 '한 사내'라고 하니, 한 사내인 주를 주살했다는 말은 들었지,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p. 83 <양혜왕 하> 8장)'

맹자는 느닷없이 우물로 들어가려는 어린아이를 보고 깜짝 놀라 구하려는 불인지심不忍之心,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p. 122 <공손추 상> 6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성선설을 인간의 본성으로 사단四端을 설명하는 맹자의 시선이 따뜻하다.

'측은해하는 마음은 인仁의 단서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로움(義)의 단서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단서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은 지혜(智)의 단서다. 사람이 이 네 가지 단서(四端)를 가지고 있음은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pp. 122, 123 <공손추 상> 6장)'

그러니 사람, 한 나라의 백성은 왕에게 인仁과 의義라는 왕도정치의 실현 대상인 것이다.
'"노인장께서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p. 34 <양혜왕 상> 1장)'

왕 노릇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모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든 자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일반 백성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p. 59 <양혜왕 상> 7장)'도록 백성의 생업을 마련해 주고 충분히 부모를 섬길 수 있고 충분히 아내와 자식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은 여민동락與民同樂, 왕과 함께 즐길 대상이기도 하다.
'"혼자 음악을 즐기시는 것과 다른 사람과 음악을 즐기시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왕이) 말씀하였다.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기는 것만 못합니다." (...)
"...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백성과 함께 즐기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백성과 함께 즐기신다면 (훌륭히) 왕 노릇 하실 것입니다." (pp. 66, 67 <양혜왕 하> 1장)'

<양혜왕 상> 7장에서 제나라 선왕은 종의 틈에 피를 바르는 의식에 끌려가는 소가 벌벌 떠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양으로 바꾸라고 한다. 이 일로 백성으로부터 선왕이 오해를 받자 맹자는 왕의 측은지심을 백성이 모르고 그런 것이니 괘념치 말고 그 마음을 백성에게 베풀라고 조언한다.

2024년 12월 내란을 일으킨 우두머리와 베네수엘라를 농락하고 이란을 무참히 폭격하는 미국의 대통령이란 자에게서 측은지심이란 걸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인仁과 의義를 갖춘 왕도정치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없다. 그들도 그들이지만 그들 앞에 맹자처럼 호연지기를 가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도 이 시대의 비극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춘추전국시대나 힘을 가진 깡패가 세계를 제 맘대로 쥐락펴락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알다시피 맹자孟子의 본이름은 맹가孟軻이다. 이름 끝에 자子가 붙은 건 그가 스승이기 때문이다. 2400년 전 스승의 가르침이 현재도 유효한 것은 변하지 않는 세상과 그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의 사유와 맹자의 호연지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것이 2400년 전에 쓴 <맹자>를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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